Inner conflict – indecisive – consequence – accountable – coward

사장님께서 유럽 여행을 떠나신지 16일이 지났다. 혼자서 여러가지 일을 대신해서 하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이다.

오늘 새로 들어온 직원과 잠깐 대화를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와서 그런지 은근히 콧대가 높고 건방진 면이 있는 놈이여서 언젠가 기회를 보아서 한번 지긋이 밣아 버려야 했는데 마침 오늘 좋은 기회를 잡은 샘이다. 대화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내적 갈등의 원인은 우유부단 (優柔不斷)이다.
2. 우유부단의 원인은 바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3.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책임 회피이다.
4. 책임 회피하는 자는 겁쟁이다.

아마도 30초간의 침묵이 지속 되었다. 왜냐하면 바로 위의 내용은 그 건방진 남아공 직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퇴근하기 바로 전에 다시는 건방지게 굴지 않겠다고 정중히 사과하고 돌아갔다. 용서와 관용…. 또 다른 나의 가식적인 대응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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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재주를 자랑치 아니함은…

오늘 금요 철야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오는 중에 한가지 생각을 했다 – 사마중달과 제갈공명의 공통점은 바로 스스로의 재주를 들어내고 뽑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평상시 내 자신을 스스로 사마중달과 흡사하다고 평가를 한다. 그런데 난 내 재주를 들어내고 자랑하고 나만의 색깔을 들어 내려고 한다.
 
드디어 깨딺았다. 이제 작전을 바꾸었다. 이제 정말로 ‘중달 모드’로 들어 갈것이다. 말수가 적으며, 감정의 기복과 흔들림 없이, 차갑고 냉정하게 하지만 이것을 결코 말이나 글로 혹은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난 사장한테서 강한 표현법과 화려한 언어 구사능력을 배웠다. 이젠 이것을 더 이상 남용 할때가 아니다. 스스로의 재주를 더 뽑낼 필요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난 내가 서있는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남에게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즉 남이 나에 대한 평가가 내 삶의 기쁨 수치를 좌지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무언가 알게 된것 같다. 스스로 강한척, 뛰어난척, 자신 있는척 할 필요가 없다. 조용히 진행하고 침묵속에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사마중달의 진정한 모습인것을 난 어리석게도 이것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이제서야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32년이라는 세월, 결코 헛되지 않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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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ord, your ruling is failing…..

사장 아들이 내일 생일이다. 그래서 대 낮에 8명의 영업부 직원 (대다수가 골빈년)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3시간 동안 밥을 쳐먹고 8병의 와인을 마시고 들어 왔다.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장이 대낮부터 영업부 여자직원들이 밖에 나가 술을 쳐먹고 돌아나니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 했던 것을… 그리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 하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 했던 것을… 오늘 이사회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직원들이 불만을 표현한다고 하니 나에게 한 말 한마디…. "내가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내가 규칙을 만든다"라고…. 순간 그에 대한 존경심이 산산 조각이 났다.
 
내가 좋아 하는 삼국지연의 영웅 사마중달은 조씨 가문을 3대째 섬겼다. 그는 자신의 대의를 숨기고 가진 재주를 사용해 주군을 위해서 사용 했고 충성된 신하였다. 난 스스로 내 자신을 사마중달과 비유한다. 그런데 내가 사마중달 같이 이 늙고 노망이 들려는 사장을 언제까지 섬겨야 하는데. 이자는 한 나라를 이끄는 왕도 아니요 대통령도 아니다. 작은 중소기업의 사장을 내가 사마중달과 같이 충성을 다해 과연 섬겨야 하는가? 그리고 나의 충성심을 남용하고, 가까운 자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깍득히 대접하라고 했거늘 그는 나를 종종 아주 쉽게 업신 여긴다. 그래서 오늘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나에겐 돌봐야 될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선 내 건강을 유지해야한다. 기계같이 쉬지 않고 계속 이렇게 일한다면 주인 욕심만 채워주고 난 오장원의 지는 별이 될것이다. 즉, 나도 더 이상 추가로 그리고 자력으로 20리 길을 가지 않겠다. 내가 해야 될 일만 하고 더 이상 더 이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일 때문에 내 밤잠을 설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주말에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 이런 나의 충성을 당연히 여기고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는 자를 위해, 내 목숨을 거는 것은 옮지 않다. 새도 자리를 살피고 둥지를 튼다고 했다. 하물며 내가 아무 주인이나 섬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새로운 직장을 찾을 준비를 할 것이다. 이제 MBA는 두과목 남았다. 이것이 끝나면 다음해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른 직장을 찾아 볼것이다. 병원에서 재무관리를 하고 싶다. 큰 기관에서 제대로 된 체계를 잡고 정해진 규율과 규칙대로 일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과정중에 인재들도 양성하고 싶고 교육하고 싶다. 이 곳에선 나만의 성장과 생존에 몰두한다. 더 이상 이러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연민에 정에 얾매이고 싶지 않다. 난 한 중소기업을 한 월급쟁이 직원일 뿐이다. 그는 나에게 고용주일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나의 생존이 먼저이며 내가 그 보다 먼저 온다. 즉 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를 지키기 않을 것이다. 그는 일개 작은 회사의 사장일 뿐이다. 그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사마중달 같이 충절을 지키며 섬겨햐 하나?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난 이제 더 이상 그와 같이 술잔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난 그와 더 이상 와인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갑부가 생색 내면서 사주는 와인을 받아 먹으면서까지 내 자존심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내가 마시고 싶고 즐기고 싶은 음식과 와인은 내 돈으로 사먹는다. 그리고 나랑 마음이 맞는 자와 함께 잔을 나눌것이다. 즉 내가 사탕발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함께 말이다.
 
난 회사에서 가장 충성되고 정직한 직원으로 인정 된다. 이런 내가 위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지도자로써 실격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도력과 지배력은 더 이상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 눈엔 이제 늙고 힘도 없고 아집만 있는 노망들기 일보직전인 노친네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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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충성심의 존속 기간은….. 5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왜 한 나라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의 임직 기간은 4년일까? 나름대로 답을 계산해 보니 두가지 예상안이 나왔다. 하나는 새로운 정책을 계획 및 실행을 하는데 4년이면 충분하고 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충성심의 존속 기간이 4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고 해도 4년동안 옆에서 보좌하면 장점 및 단점 심지어 잠버릇까지 알수 있다. 첫 해는 자기가 보좌하는 지도자의 신비함에 매료 되며, 둘째 해는 지도자의 능력을 배우기 위해 매진하고, 세번째 해는 배운것을 실행하며, 마지막 네번째 해는 자신의 재주가 뛰어남을 인지하고 지도자의 단점을 들추어 낸후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길 계획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영웅 (최고의 경영자)이라고 존경 했던 자를 보좌한지 5년이 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를 보는 나의 시각과 성숙도가 향상됨이 분명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에게 그의 독선은 매력적인 추진력이라 보였고, 그의 모순은 극과 극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유연성이라 믿었고, 그의 강한 어조와 표현력은 군중을 이끄는 최고의 장비라 믿었으며, 그의 연륜에 의한 고집을 난 절대적 존속성이라 믿었다.
 
하지만 32년이라는 세월을 살고,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어보고, 내가 최고의 경영자라고 믿었던 사람 믿에서 5년동안 눈치밥 먹으면서 수련을 하고 나니, 그도 별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세삼스럽게 깨닮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맹목적으로 그를 쫓아 갔다는 것이다 – 올바른것 그른것을 구분하지 않은채로.
 
이제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이제 나도 새로운 인생에 도약을 준비 할 시기가 온것이다. 내년 6월에 승부를 걸것이다. 그때까지는 숨을 죽이고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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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정체성 상실…..

난 32년간 나만의 독특한 색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시대에 방향과 흐름을 거부하고 나만의 길을 창조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나만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중에 독선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고 남의 능력을 나의 기준에 맞추어서 쉽게 판단하고 가치를 평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중에 기독교인의 모습이 상실된다는 사실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의 모습이 상실됨을 인지하면서도 나만의 정체성 확립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3가지의 각도로 내 자신을 바라본다. 하나는 내가 내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이고, 하나는 남들이 내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과 비교해서 보는 것이다.

난 내가 내 자신을 바라 볼때 하루 하루 성장함을 지켜본다. 남들이 나를 바라 볼때 평가할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길 원한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나를 보실때 예수님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내 정체성의 상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닮음으로해서 가장 완벽한 자아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것일까? 난 정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고 이것에 맞게 시행하고 싶지 않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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