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속에 많은 생각들이…

아주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게 됬다. 정신 없이 지나가는 하루에 한잔의 커피를 우아하게 즐길 만한 여유조차 없는 내가 책상이 조용히 앉아 생각을 가다듬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치스러운 여유를 가지지 못한것이 한달 가량이 넘은것 같다.
 
머리속이 많이 복잡하다. 많이 알고 배울수록 걱정과 근심이 끊이질 않는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실행하고 욕심이 앞서니 오히려 집중력과 신중함이 떨어진다. 정당한 동기부여가 주어지기 전에 나에게 올 이익을 계산한다.
 
지금 내 전화기안에는 내가 잠자리에 들기전에 해야될 6가지의 일이 있다. 이것을 다 하기에는 몸이 많이 피곤하고 지친다. 하지만 이것을 하지 않고는 잠을 편하게 잘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잠을 잘 잔다고 해서 내일의 생산성이 향상 되지도 않는다.
 
이것 저것 생각이 정말 많다. 어떻게 무엇을 정리하고 어느 순서와 방향대로 나아가야 될지 정말 모르겠다. 나도 별수 없는 사람이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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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운명’ 교향곡…

자정이 넘었다. 이번주 목요일에 있을 이사회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는라 시간이 이렇게 가는줄 몰랐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가볍게 샴페인 한잔과 함께 한국에서 주문한 시디중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1악장을 들었다. Allegro Con Brio 속도는 나의 귀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아쉽게도 지휘자의 이름은 잊어 버렸지만 작곡가의 해석에 지나치게 충실하지 않고 decrescendo와 crescendo를 확실히 사용하여 강함과 여림의 시작과 끝을 명백히 구분하고, 또 꼭 현악기의 연주법을 바로크 시대를 연상 시키는 듯한, 즉 각이 있고 절도가 있게 했다.
 
난 ‘운명’ 교향곡을 이렇게 받아 드린다. 전혀 생각지도 상상치 못한 ‘운명’이 나에게 다가 왔을때의 당황 그리고 절망이 나를 압도한다. 그 다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내 자신을 점검한다. 그리고 내 자신을 운명이 이끄는 문으로 조심히 다가간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때의 나를 앞도했던 절망과 공포를 다 물리치고, 새로운 시작과 함께 힘차게 전진한다. 이것이 내가 받아 들이고 해석한 운명 교향곡이다.
 
내 운명은 과연 무었일까? 내가 존경하는 분은 36살때에 일본에서 사용하는 최고의 존칭 ‘사마’라고 불렸다. 내 나이는 32살이다. 난 언제 ‘조사마’라고 불릴수 있을까?
 
지금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듣고 있다. 비록 2분 56초 밖에 않되는 짧은 곡이지만 정말 신나는 음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라데츠키 장군, 나폴레옹에게 대항하여 여러 공을 세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서 요한 스트라우스는 이 곳을 작곡했다. 난 언제 누가 나를 위해서 ‘조후혁 행진곡’을 작곡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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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지배자의 차이는?

만약 당신이 실재론자 (Realist) 혹은 유명론자 (Nominalist)라면 지도자 (Leader)라는 단어는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abstract noun이니까.
 
직원중에 서양 철학사를 공부하는 자가 있다. 웹디자이너이고 26살밖에 않된 중동 아이인데 생각이 깊고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울려고 발버둥 치는 아이이다. 독특하게도 postmodernist가 아님을 부정하는 그의 절규를 불쌍히 여기어 내가 가끔씩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정성껏 해주는 편이다.
 
그가 나에게 물어 보았다 – 지도자 (leader)와 지배자 (ruler)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넌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그래서 그는 언어학상으로 지도자는 지배자보다 소리가 더 부드럽다고. 바로 보았다. 정확한 어원의 발전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배자라는 단어가 지도자라는 단어보다 먼저 생성했다고 배웠다.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지도자와 지배자의 차이는 바로 ‘누구’에게 ‘무엇’을 집중하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쉽게 설명을 했다. 지배자는 자기만의 부귀영화와 번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의에 있는 자들의 마치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소유물로 여기는 자가 바로 지배자이다. 지도자는 그와 반대다. 자기만의 부귀영화와 번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공이 아닌, 남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자, 남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자이다.
 
지배자는 negative connotation이 들어간 단어이다. 아브라함 링컨을 표현 할때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쓴다. 나폴레옹을 표현 할때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배자라는 단어 사용도 상당히 기피한다. 단어에 내포된 negative connotation을 알기 때문이다.
 
직원이 이렇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이냐고 – 지도자인가 아니면 지배자인가?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내 자신을 지도자 혹은 지배자로 내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한다).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군중의 심리과 그들의 필요함과 갈급함을 알고 반응하고 그들의 위해 행동하는 자는 지도자로 평가될 것이며, 그와 반대로 행동하면 그는 악한 지배자, 독재자로 그들의 눈에 비칠것이다.
 
회사에선 난 지도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엔 내가 지도자로 보이니까.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볼때에는 어떠한가. 난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이다. 난 남의 성공을 도와준다. 남의 성공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내 자신의 희생하면서 남을 성장시키기 않는다. 내가 성장하고 여유가 있을때 남을 볼수 있다. 자신의 배가 부르지 않는 상태에서 남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것은 위선이다. 자신의 몸을 다루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다루는가?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은혜를 배풀고, 성장 시키고, 성공 시키고, 내 사람으로 만들며 내 주의에 둔다면… 결과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라는것 없이 주는 것… 세상의 꽁자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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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32살..

어제가 내 생일이였다. 감기 몸살 때문에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가족들하고 뒹굴뒹굴 보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미역국하고 처제가 사온 ‘녹차’케잌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생 정환이랑 그리고 기린아가 생일 축하 한다고 기특하게 연락을 했다.
 
어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온 내가 과연 무었을 이루었고 앞으로 무었을 이루어야 하는지. 금요일 저녁 사촌 동생과 Azuma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여러가지 애기를 했다. 그중 한가지는 ‘독창적이고 구분되는 자신의 모습 및 가치 창조’이며 다른 하나는 ‘선택을 위한 준비’이다. 인생을 평범하게 대충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관 및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주의의 사람들과 환경들을 변화 시킬수 있는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구분되게 하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독창적인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난 39살이 되기 전까지 준비 할 것이다. 그래서 40살이 되는 해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선택 할수 있는 위치에 설 것이다.
 
난 멈추지 않는다. 변함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갈 것이며 성취감에 내 자신을 나태해지는 일은 없을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산아래에서 나를 우러러 보는 자들을 보며 조롱치 않고 고개를 돌려 내 뒤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나에게 휴식이라는 럭셔리한 옵션은 없다. 휴식은 게으른자들의 자신의 나태함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회계년도가 시작된다. 또 하나의 나만의 역사를 창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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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 2009년 6월….

거의 한달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으니 참 감회가 새롭다.
 
정말 분주한 6월달이였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밸런스 맞게 일어 났다. 나쁜 일은 입에 담을 가치고 생각할 이유도 없으니 그냥 길거리에 놓여 있는 똥덩어리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첼로를 연주하는 가정주부 정희연을 부를때 쓰던 단어)를 아주 재수 없게 지긋이 밣고 지나 갔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6월의 하이라이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이사를 했다. 거의 만 5년간의 셋방 살이를 거두고 새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노스시드니에 있는 건물의 한층을 사서 들어갔다. 회사 이전을 책임지고 모든 일들을 2009년 5월 28일 금요일 저녁 10시 45분에 모드것을 완벽하게 끝냈다. 이전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세밀하게 계획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한 나의 충성심과 능력을 높이사 사장님께서 나에게 1999년도 산 Henschke Hill of Grace를 선물로 주셨다. 시중가로 $800하는 귀한 와인이다.
 
2. 경영 철학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마키아빌리의 군주론과 니처의 나일리즘 그리고 맥스 슈터너의 이고이즘등 모든 서양 철학을 정리한후 동양철학과 접목 시켜 나만의 고유 경영 철학을 정리했다. 상업에선 절대진리란 없음을 안다. 즉 외골수의 독단과 독선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팔수도 있다. 즉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아쉽게도 30살을 넘겨서야 나만의 경영철학 사상을 정립함이 한심하고 한참 뛰떨어진 느낌도 든다. 과거는 중요치 않고 놓친 기회를 가지고 후회함은 시간 낭비이다. 이제서라도 완벽하게 준비된 나 자신을 다시 점검해 앞으로 거침 없는 전진을 시도할 것이다.
 
3. 정식으로 CFO로 이사진에 임명이 된 후에 3번째 가진 이사회를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다. 경제적으로 침제된 시장에서 인텔이 사용하는 CCIS (counter-cyclical investment strategy)를 바탕으로 하여 남들이 움추리고 뒷걸음칠때 새로운 기회를 찾고 그것을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가지고 여러가지 계획안과 현재 진행되는 있는 프로젝트의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한후 완벽한 대응책 (상책, 중책, 하책)을 준비했다. 사장님 내외분의 흡족한 표정과 한마디의 최고의 칭찬 "내가 너를 이만큼 가르치고 키운 보람이 있구나"라는 말을 들었을때, 난 내 몸의 피곤함을 뒷전으로 한 후 오늘도 일에 몰두한다.
 
내 사촌 동생이 이렇게 애기했다. "형, 너무 많이 그리고 빨리 가지마요. 내가 쫓아 가기가 힘들잖아요". 난 이렇게 애기했다. "난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성자하고 있다. 단, 네가 뒤쳐진 것이다. 내 그림자라고 잡고 싶으면 몇배 노력해라. 물론 그림자 밣기도 쉽진 않을것이다".
 
내가 계획한 모든 일들이 하나 둘씩 이루어 지고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 7년 남았다. 7년안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건다. 39살에 나의 새로운 삶의 막을 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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