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p between CFO and CEO

어느 경영 잡지에서 이런 애기를 읽어 본 적이 있다 – ‘CFO가 CEO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CFO와 CEO의 사이는 정말 크다’.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이점을 아주 새삼스럽게 느꼈다 – 연륜과 경험이 문제가 되지만 (사장님은 65살이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관,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이다. 바로 CFO와 CEO 차이는 바로 경영자의 세계관의 크기와 방향 및 깊이이다.

난 천부적으로 집안살림 (나만의 재무관리의 다른 명침이다)에 탁월한 재주를 가짐을 않다. 좋은 기억력, 정확성, 순발력을 사용해서 CEO가 내가 분석한 타켓을 골라 당아쇠만 당기게 하면 된다.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난 현재 상황 및 주어진 환경 요소들을 정확하게 분석하여정리 할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겐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없다. 즉 사업이 망하지 않고 유지는 가능하나 성장은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 CFO와 CEO의 사이를 줄일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만약 나에게 이 자리를 물려줄 의향이 있다면 그가 내가 배우길 원하는 그것은 바로 무었일까? MBA 만으로는 당근히 뭔가 부족하다. 이 부족한 2%는 과연 무었일까? 아 정말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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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 대가를 치루지 않는 꿈

난 도대체 어떤 대가를 지불 해야지만 내 꿈을 이룰수 있을까? 전병욱 목사님이 쓰신 ‘새벽 무릎’의 나오는 대목이다 – "대가를 치루지 않는 꿈은 개꿈이다’라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프로젝 오케스트라의 공연날 복직한 강건우에게도 이런 비슷한 애기를 한것 같다 – "그게 어떻게 니 꿈이야? 그냥 하늘에 떠 있는 별이지? 만질수도 가질수도 없는 별"이라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참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사회에선 경영인으로써 가정에선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완벽하게 역활을 소화해 내려면 과연 내가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혹시 내가 이 두가지것을 완벽하게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 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면..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할까? 한가지를 소홀히 한다하여 다른 한가지를 완벽하게 control 할수 있을까? 두가지를 잡으려다 두가지 다 놓치는 경우는 있지 않을까? 내가 추구하는 내자신의 부가가치 향상을 위하 나의 노력, 만약에 이것이 헛되고 내 인생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MBA를 마치고 DBA를 포기 할 것인가? 병원 경영만을 위한 코스를 선택할까? 아니면 서양 음악사를 배울것인가? 아니면 첼로를 할 것인가? 다른것들 다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반을 다시 마련할까? 예전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지고 싶은데 가질수 있는 것이 제한 되어 있었다. 이제는 경우가 틀리다. 내가 가질수 있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원하고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이 넓어진 선택들을 많이 수용할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 어찌 슬픈일인가.

그러나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난 잘안다. 내가 이 선택을 함으로해서 나에게 돌아올 이익이 그 어떠한 것보다 값지고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더 큰 한개를 가지기 위해서 다양한 작은 것들을 포기하는 내가 된다. 경영상의 원리중 diversification에 비록 어긋 나긴 하지만… 이럴땐 이런 속담이 기억난다 – "모르는게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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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어째서 중원 공략을 형주를 거점으로 하지 않았을까…. 전통성을 지키려는 아둔함 때문에….

삼국시대 성립전에 유방이 세운 한왕조의 수도는 낙양이 아니라 장안이였다. 나중에 수도는 낙양으로 옮겨졌으며 조맹덕이 이각과 곽사의 난으로부터 헌제를 구한후 허창으로 천도를 했다. 다시 말해 장안은 서천에 가깝고 허창은 형주에서 가깝다. 한실 부흥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일은 황제가 있는 허도를 점령하고 천자를 보좌한는 것이다. 만약 서천을 공격의 거점을 잡았다면 허창으로 가기까지 많은 곳을 거쳐야 한다. 서천과 장안을 있는 한중을 먼저 점령해야 하며 옛수도인 장안을 점령한후 2개의 관문을 통과해 낙양을 점령하고 허창에 이를수 있다. 멀리 돌아가는 격이다’. 하지만 만약 형주를 공격의 거점을 잡는 다는 그대로 엎어지면 코닫는 거리다. 그런데 제갈량은 아주 무식하게 중원 공략의 거점을 형주로 두지 않고 한중으로 잡았을까? 바로 정통성 고집했기 때문이다.

 

기억이 맞다면 제갈량을 4 북벌정벌을 시도한 후에 과로사로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웠다. 당시 내정을 맞고 있는 비위는 승상인 제갈량에게 굳이 기산으로 나아가길 고집하냐고 물었다. 그때 제갈량은 한왕조의 성립한 과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장안을 점령했는지 설명했다. 무지한 이가 그냥 듣기에는 역사에 사용 되었던 정공법을 고집하는 제갈량이 위대하게 보였을지 모르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왕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수도가 바뀌었으니까 500년전에 사용한 정공법이 먹힐 일이 없다. 그런데 제갈량은 방법을 고집했고, 제자인 기린아 강유도 9번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북벌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서 음악과 한번 연결해 보았다. 고전시대에는 공연장은 지금의 오페라 하우스 같이 크지 않았다. 소규모의 실내악단으로도 좋은 효과를 낼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많은 관객을 소유할수 있는 공연장과 과학적인 음악시설들이 갖추어 이때에 바로크 시대엔 X명으로 오케스트라가 구성되었으니 전통을 살려서 똑같이 하자고 한다면 당연히 예전에 느꼈던 웅장함을 느낄수 없을 것이다.

 

나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전통성과 정통성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현대판 음악은 깊이가 없는 primitive modern junk라고 간주한다. 현대판 경영방식은 우유부단함과 주체성 상실 그리고 지나친 포용과 배려에 중심을 맞춘다. 그리고 현대판 흐름에 맞추어 가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고 애기 할때,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자가 성공하는 자라 말한다. 하지만 나의 이렇게 지나친 전통성과 정통성에 대한 촛점이 내가 항시 말하는 미래객체지향주의적 사고방식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된다.

 

만약 내가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도해서 9 실패 한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전통성을 지키다가 사라진 시대의 아쉬운 영웅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외골수로 달걀고 바위치기를 시도한 미련한 졸장부로 평가를 받을 것인가….  이제 중원의 공략 거점을 아무래도 형주로 바꾸어야 시기가 온것 같다.

 

바로 한중은 자신을 믿고 출발하는 지점이고, 바로 형주는 하나님을 믿고 출발하는 지점이다. 한중을 지나 장안을 점령 했지만 이상 나만의 힘으로 중원 평정은 불가능한것 같다. 다시 전세를 가다듬고 다시 새롭게 형주에서 출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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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접해 보아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았다. 첫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 두번째 곡은 프랑스 작곡가인 라벨의 피아노 콘체르토였다. (곡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이였다. 개인적으로 바로크시대 그리고 고전시대의 음악을 선호하는 나는 낭만파의 음악은 가슴에 와닿질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인 서희태 교수님이 쓴 책을 읽었다. 카라얀이 38년간 있었던 베를린필, 빈필, 뉴욕필, 그리고 런던필이 세계 4대 오케스트라라고… 난생 처음 가보는 클래식 공연의 시작은 런던필과 함께 했다. 즉 최고를 접할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애기했다. 최고가 가지려면 최고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이제 겨우 클래식 세계에 첫 발을 디딪은 내가 세계 4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으니 당연히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오케스트라의 standard는 결정이 되었다. 처음부터 정상에서 시작 할순 없지만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정해진 것이다. 이제 이 목표를 향해서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내가 지휘자가 되어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금전적인 구애를 받지 않고 마음껏 즐겁게 연주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자가 되고 싶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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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옛날에 잘 나갔어… 그런데 지금은? 너 뭐냐?

"나 왕년에 잘 나갔어" –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과는 난 관계를 멀리하는 편이다. 내 분석은 다음과 갔다.

자신이 과거에 이루어 놓은 업적 – 당연히 중요하고 가치 있다. 하지만 만약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이 과거의 이룬 업적보다 가치가 낮다면 이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나랑 나이가 같은 사람이 있다. 예전에 상당히 잘나갔던 유명한 오페라가 가수였다고 한다. 그의 꿈은 오페라 가수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페라 가수가 아니다. 그는 오페라하고 전혀 관계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예전에 오페라 가수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다. 반면 예전엔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더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존심이 상하진 않을까? 어째서 과거에 이룬 업적엔 집중하면서 현실에 직면한 문제들은 넘어서 더 유명한 오페가 가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현실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도 없고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한채로 과거의 업적을 가지고 무능력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까? 만약 과거에 산물의 그늘 아래 자신의 몸을 담아 스스로 미래객체지향주의적 삶을 포기하고 현실만족주의로 전락하는 것일까?

내 결론은 이렇다. 만약 Alderfer’s ERG motivation theory – ‘frustration to regression process’ to seek more to fulfill your needs and desire such as existence needs; relatedness needs; and growth needs를 공부했다면, 당연히 미래객체지향주의적 삶을 살기를 원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Maslow와 Druker 교수님들이 말씀하신것처럼 ‘동물과 다를바가 없다’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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