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 누가 그래?

아버지 학교 참석 했을때 받은 질문 중에 하나이다.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난 솔직하게 대답 했다. ‘자식 농사를 실패한 부모들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비겁한 핑계라고 생각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썰렁 했다. 아니 분명히 나한테 내 생각을 물었으니 당연히 내 생각을 거침 없이 애기 한것 뿐이데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완전히 또라이(?) 같이 처다 보던데….

자식 농사가 제대로 않되는 이유는 바로 자기 뜻에 어긋나게 자랐다는 것이다. 왜 어긋 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식들이 부모들이 꾸는 꿈을 같이 공감 할수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한 아버지와 한 아들이 있다. 아버지는 자식이 의사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아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에게 의사가 되야 된다는 명분은 바로 아버지의 계획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나이에 이른 사람에게 ‘부모의 계획’이라는 명분을 충족 시키고자 부모의 말을 듣고 곧이 곧대로 하는 시대는 지나 갔다. 이경우 바로 자식 농사에 실패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계획에 어긋 났으니까.

또 다른 아버지와 한 아들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란다. 아버진 의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으로 할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직업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고 아들을 항상 가르쳤다. 아버진 이 세상에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서 불쌍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고 가르쳤다. 아버진 그 아들이 의사가 되어서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고 환자의 가족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항상 당부 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병원을 만들 준비를 한다. 이렇게 대의명분을 세워주고 이것의 깊은 뜻을 이해한 아들은 당연히 스스로 학업에 열중해 의대를 들어가서 의사가 된다.

이 두 부모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는 자식을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여겼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가 필요하고 사회에 도움을 줄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자식의 꿈을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식과 같은 꿈을 꾸면서 자식과 함께 미래를 준비했다. 용은 뱀의 새끼를 낳지 않고 호랑인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내 자식들의 나의 피를 반정도 가졌다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관의 성립 다른 애들보다 더 빠를 것으로 예상이 된다.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 라는 이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좋은 밭고 밑거름 그리고 물을 제공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부모로써 할수 있는 한계이다. 나머지는 하늘에 달렸다.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은 내가 마음데로 할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인도함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support, 하들에 guidance,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식 농사는 결정된다. 난 내가 할수 있는 한 다 한다. 나머진 하늘에 달렸다. 하나님이 들으시면 기뻐할 꿈을 꾸는 자녀에게 어찌하여 하늘의 guidance가 없을수가 있으랴. 이 자녀를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는데 어찌하여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라는 망언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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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면 그냥 시킨데로 해라…..

새로운 인턴 사원 두명이 들어 왔다. 아직 이력서를 제대로 검토를 하진 않았지만 목소리며 말하는 스타일을 보니 아직 철이 덜 들고 혈기왕성한것은 느껴졌다. 앞으로 2주후부터는 내 밑에서 수련(?)을 쌓아야 되는 입장이니 자기 나름데로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눈도장을 찍히고 싶어서 않달이 났다. 물론 난 그런 그의 노력에 눈길도 주지도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스타일은 바로 한번 반응을 보여 주면 기고만장해서 기어 오르는 스타일이니까…..

오늘 아주 간단한 작업 지시를 했다.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가 지시한 일을 제대로 종결짓지 못할 것도 알았다. 내가 원하는 반응은 아주 간단하다. 주어진 과제를 제 시간에 제대로 해결 하지 못한 자는 그냥 ‘잘못했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딱 이 세가지 말뿐이다. 그런데 이 놈이 돌았나….. 이것 저것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전 이렇게 이해 했는데요’ 그리고 ‘그런 말씀 않하셨는데요’라는 말들을 주절이 주절이 늘어 놓는데…. 순간 뚜껑이 열렸다. 그래서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애기 했다 (나의 낮은 ‘라’톤의 목소리는 영어로 말할때 특히 공포감을 조성한다) “Who the fuck do you think you are talking to?” 그때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냥 10초간 그의 눈은 째려보고 내 자리로 돌아 왔다. 아마도 그는 오후 4시간 이상을 이상한 상상과 함께 정말 괴롭게 보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여러개의 시나리오을 쓰면서 어떻게 대응 할지 어떻게 애기 할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스스로 고민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미래지향적사고’. 영어로 애기하면 What if A, then I do B (만약 A 상황이 벌어진다면 B로 대처한다). 쉽게 말해 가상 현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미래에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 이것을 배웠으며 이것은 MBA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실전만을 통해서 배울수 있다.

나를 추종하는 예전의 직원들은 많이 떠났다. 새로운 직원들은 예전 직원들이 같이 가깝게 대하지 않는다. 가끔씩 이런 추억을 회상한다. 내 밑에 있는 직속 직원들은 아니지만 두명을 부른다. 그리고 ‘명령’한다. 너희둘, 지금 당장 Milsons Point에 있는 A라는 곳에서 B라는 것을 집어 오도록. 그럼 두명은 토도 달지 않고 그냥 뛰어간다. 그리고 돌아오면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려 보낸다. 그들은 내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물론 궁금하겠지만 그들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Understanding is not a requisite of cooperation’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선 그 명령의 진의를 알 필요가 없다’라는 뜻이다. 좀더 쉽게 애기하면 그냥 ‘시킨데로 해라’라는 간단한 표현.

이런 사람들 주의에서 가끔씩 본다. ‘제 생각은 이런데요’, ‘전 이렇게 애기 했는데요’, ‘제 마음은 이런데요’ 기타 등등. ‘제 생각은 이런데요’라고 말하는 자에게 난 간단하게 대답한다 ‘난 네 생각 물어 본적 없고 네 생각이 필요하는 내가 물어 볼테니 그때 말해라’. ‘전 이렇게 애기 했는데요’라는 말하는 자에겐 난 간단하게 대답한다. ‘내 지시를 네 마음대로 편하게 해석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너의 과실이다’. ‘제 마음은 이런데요’라고 말하는 자에겐 난 간단하게 대답한다. ‘내가 너 보다 회사에서 오래 일했고 너 보다 더 많은 녹을 받는데 내가 너 보다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너 만큼 못하다는 생각의 원천은 도대체 어니냐?’

그냥 나를 신뢰한다면 나의 실력과 능력을 인정하고 의지 한다면 나의 인격의 깊이를 안다면, 내가 뭐라고 할때 그냥 입 꽈악 다물고 그냥 시킨데로 하면서 쫓아 오면 된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한후에 뒤를 돌아 보면 내가 어떤 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속도로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알게 될것이다. 그러면서 입에서 나오는 첫 감탄사는 ‘아하’ 바로 이것이였구나 라는 말. 난 이렇게 아무말 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와준 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자들이 꼭 나에게 되돌아와서 내가 주었던 가름침에 감사한다고 애기한다. 난 이런 자들이 좋다. 이런 자들이 내 주의에 하나 둘씩 날이 갈수록 늘어가니 내가 결코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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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추억을 살수는 없어도 돈으로 추억을 만들수는 있다.

오늘 저녁에 애들이 시크릿 가든의 OST중 김범수가 부른 ‘나타나’라는 노래를 듣고 싶어 해서 드라마를 찾아 틀어 보았다. 현빈의 비서와 하지원의 친구가 연애를 하는 과정중에 여자가 직장을 그만 두는 상황에 놓였을때 남자도 의리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직장을 그만 둔다고 애길 했더니… 여자 왈 ‘사랑이 쌀을 사주냐’라는 말…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성 있는 말이다. 사랑만으로는 살아 남을수 없다.

처음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준다는 것 만으로 세상을 얻은 것 같고 행복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언제가는 물질적 제약을 받게 된다. 뭐라고 할까 신혼 초기에는 금전적인 고민에 둔감 해진다고 할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번째로 결혼식이다. 처음엔 조촐하게 가족끼리 모여서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나중에 친구들과 결혼 생활 애기 하면서 서로에게 자기 결혼식 앨범을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게 된다. 여기서 덩달아 따라오는 것은 어떤 선물을 가족끼리 주고 받았냐는 것도 문제가 된다. 누구 집 엄마는 명품 가방에 다이아몬드 반지 몇 캐럿 애기가 나오면 인간의 본능은 어쩔수 없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지 않을수가 없다.

둘째는 신혼여행지이다. 어디서 얼마 동안 어느 호텔에서 있었냐는 것이다. 신혼 부부들이 만나면 뻔히 하는 애기이다. ‘난 몰디브 갔다 왔다’ 혹은 나는 유럽 여행 갔다’등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지냈으며 좋은 시간을 보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해보인다.

셋째, 신혼여행에서 돌아 올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다. 아무게는 여행 오면서 몸에 좋은 녹용에 꿀에 홍삼에 기타등등. 여기서 가족들에게 점수가 얼마큼 좋게 매겨지는지 결정이 된다. 둘이서 아무리 좋은 시간을 가졌어도 사람의 마음이 ‘외국에 갔다오면 어떤 선물 사왔을까’하는 것이 정상이다. 애들을 봐라. 아빠가 외국에 갔다오면 아빠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빠의 여행 가방에 어떤 선물이 들어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 다음은 말 않해도 뻔하다. 전세를 얻어 주었는지, 집을 사게 종자돈을 마련해 주었는지. 자동차는 무엇을 타고 다니는지. 그리고 애기가 생긴 후에는 애기에게 어떤 명품 옷을 입히는지 그리고 어떤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는지… 자본주의의 산물 이 지긋지긋한 상대평가는 정말로 끝이 없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스스로 누구에게 비교를 하지 않아도 남들에게 자연히 비교가 되는 상황이 온다. 그럴때 자신이 초라해 지고 금전적인 제약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싸우기도 하며 민간해져서 부부생활에 악형향을 끼치기도 한다. 즉 돈이 없으면 쌀통에 쌀이 없고 배가 고프면 행복이 창밖으로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나간 추억을 백화점 상품 진열대에서 뽑아 돈주고 살수는 없지만 추억을 만들기 위해선 돈은 상당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 나에게도 그렇다. 어느 누구와 어떤 좋은 와인과 함께 어떤 요리를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같이 먹은것이 추억으로 남든다. 그 상황을 기억하면서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떤 꿈을 나누었는지 상세히 기억이 난다. 매일 먹는 음식보다 일생에 한번 경험해 보기 어려운 진귀한 것을 접했을때 기억에 남듯이 돈이 이런 것을 경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서 같이 살면 됬지’라는 일차원적 사고를 가지고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비록 가진것은 많이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둘이 synergy 효과를 발휘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많은 것을 얻는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차원적 신혼 사고 인것 같다. (난 이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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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꿈들은 어떻게 다 이룰려고 합니까?

간혹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들의 질문안에 내포된 다른 의미는 바로 ‘당신이 말한 이 모든 것들을 당신 시대에 이룰 가망성은 적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한된 시간안에 이루기 힘들다’라는 전제를 먼저 내세웠다는 뜻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들에게 난 항상 속으로 이렇게 애기한다 ‘봉황의 뜻을 작은 참새가 어찌 알겠느뇨’.

얼마전 오래전에 여러번 읽었던 삼국지에 중요한 대목을 적어 놓은 것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그중에서 사마의와 조조가 함께 대화 했던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인데 바로 제갈량이 말한 천하삼분의 계획과 흡사한 내용이였다. 그때 사마의는 조조에게 앞으로 10년은 더 기다려야 된다고 애기를 했다. 여기서 조조는 이렇게 애기를 했다. ‘인간의 수명은 아무도 모른다. 10년안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중국 통일이 가능한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다음 세대 아니면 그 다음 세대가 통일을 할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 놓고 내가 품은 대의를 같이 품게 하는 것이다’. 사마의도 같은 생각이였다. 자기의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를 잘 가르쳤고 결국은 그의 손자 사마염이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 난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할것이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도 다른 사람보다 늦었다. 이렇게 기하학적인 속도로 성장을 과연 얼마동안 지탱할수 있을지도 잘 모른다. 이런 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인재 발굴과 양성 및 교육과 훈련이다. 물론 여기에 내 자녀들도 포함된다.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혁신적인 인생철학관과 세계관을 심어 주고 그리고 동시에 미래객체지향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주의에 두고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리고 내가 이루려던 꿈이 존속 된다면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꿈들은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시도하는 것은 바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꿈꾸는 것을 주의에 있는 기린아들과 공유하면서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꿈들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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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발전 가능성은?

아마도 무한 한것 같다. 왜냐고? 싱가폴 처럼 되려고 하니까? 미친 시도? 아니다. 분명 가능성이 있다.

우선 지리적 위치를 생각해 보았다. 싱가폴과 멀지 않다. 비행기로 3시간 30분. 싱가폴은 항구와 공항 그리고 통신의 요충지 있다. 그럼과 동시에 최근에 많은 문제가 되는 ‘해적’들의 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 그리고 항구와 공항의 park비용에 따라서 오일의 가격과 물건의 가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렇게 할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싱가폴의 지리적인 위치를 이용한 독점 경영이다. 싱가폴 같이 이렇게 짧은 시간안에 이런 항구 시설과 공항을 만든 나라도 없으며 이것을 통한 이익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dark horse 반드시 존재하는 법. 그것이 바로 스리랑카이다.

신문을 읽었다. 지금 콜롬보에 항구를 짔고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에서 자본금을 보태고 있다. 공항의 시설도 하루가 다르게 점점 낳아지고 있다. 내가 2달전에 왔을때랑 차원이 틀리다. 몸과 눈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스리랑카와 싱가폴의 공통점은 바로 영어이다. 두 나라다 영어를 사용한다.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개발 도산국에 반열에 허우적 거리며 섰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본다면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닌가 싶다.

월요일 출근하면 은행에 찾아가서 은행 구좌를 하나 열것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할수 있는 투자 조건을 알아 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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