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로 다시 귀국….

처제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시드니로 귀국했다. 오래간만에 기린아를 만났고 동생도 봤다. 둘다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해 보였다.
 
27kg가 넘는 짐을 부치는데도 아무런 문제 없었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을 하니 customs 직원이 나를 불렀다. 아마도 영어 못하는 동양 유학생이 자신있게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한번 태클를 걸려는 것 같았다. 신고할 물건이 있느냐라는 대답에 군대 스타일로 간단 명료하게 대답하고 입국 신고서에 CFO라는 타이틀을 보고 친절히 다른 문을 통해서 나가라 했다. 녹색의 도장을 받은 입국 신고서를 제출하지 문을 열어주면서 나가라 했다. 내 짐은 아무런 x-ray 스캔도 받지 않았다. 그 문을 통과하니 난 바로 arrival에 나왔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 문을 통하여 누가 나오나 보았다. 2분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Immigration을 통과해 짐을 찾고 arrival까지 나오는데 총 소유 시간은 15분이 되질 못했다.
 
다시 호주다. 비록 한국에서 태어 났지만 호주가 나에겐 제 2의 고향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회사로 출근하는 나의 모습이 약간 비참하기도 했지만 하버브리지를 지나가면서 높은 하늘을 보니 이런 씁씁한 기분은 멀리 날라가 버렸다.
 
아 그리고 한국의 아파트 주소를 이제 외워야 한다 –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 1동 신성 미소지움 아파트 102동 901호… 왜냐하면 이곳이 내가 한국에 가면 있을 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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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업종의 비극적 실태….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와인 한잔 하시겠습니까?….
 
접대용 멘트, 꼭두각시 같이 교육에서 배운 것을 대풀이 하는것 뿐이다. 균일화와 uniformity를 강조하고 standarisation을 강조하는 서비스 업종들… 정말 슬프다. 왜냐 진실성과 신실성이 결핍 됬기 때문이다.
 
MBA에서 이런 공부를 한것이 기억 난다. 서비스 업체들이 고객을 왕으로 모시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기계적으로 직원들을 교육 시키고 어떤 상황에선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하는지 case by case로 준비를 하지만, 이런 과정중에서 결핍 되는 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고객의 취향은 다양하다. 자라온 환경과 교육의 수준, 사회적 위치, 경제력, 종교, 정말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같이 여행하는 승객들에게 항공사의 좋은 인상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당연이 자신들이 배운 standarisation의 밖에 존재하는 고객의 성질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시드니에서 인천으로 가는 중 내 앞에 앉아 있는 채식주이의자인 독일 커플들이 앉아 있었다.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 목소리가 많이 올라갔고 그들을 서브한 스튜디어스가 고생이 여간 말이 아니였다. 경험도 적었고 특히 영어면에서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참다 못해 나의 재치와 유머를 사용해서 위기를 모면하고 말 많은 독일 커플들이 인천에 도착 할때까지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 스튜디어스가 미안했는지 ‘손님께서 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무었을 도와 드리면 될까요?’ 그래서 와인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비지니스 클라스에 가서 백포도주 한잔과 적포도주 한잔을 가져 왔다. 그리고 ‘맛있게 드십시요’라고 애기했다. 표정을 보면 도움을 받은 그녀는 다른 인사를 하고 싶지만 교육상엔 이런 상황을 배운적이 없으니 접대용 멘트 밖에 할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래서 또 한번 시험 해 보았다. ‘내 딸이 3살인데 얼마전 비행기에서 언니들이 머리에 한 머리띠를 가지고 싶다고 하네요. 아가씨것을 주실수 없을까요?’ 얼마나 황당했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3초간 대꾸를 못했을까? 그래서 이렇게 애기 했다. ‘이런 상황은 교육 않받았죠? 그럼 이렇게 애기하면 되요. 손님. 죄송합니다. 이것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기내 면세품엔 여러가지 상품이 있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상품이 있으것 같습니다. 제가 찾는데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고요. 놀린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내가 인천까지 도착하는데 신경을 많이 써주었고 한국에 도착한후 나를 보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생님’이라고…..
 
아름다운 말도 사랑이 없고 진실성과 신실성이 없다면 그것은 차가운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냥 향없는 예쁜 색깔의 향수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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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예의의 한계는…. 측정하기 정말 쉽다…

한국에 도착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청량리를 향하는데 생긴 것이다. 공항을 바로 떠나기전에 운전사가 버스를 멈추고 승객의 자리를 검사하면서 안전밸트를 착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난 버릇데로 승차하자마자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운전기사가 지나 갈땐 다들 착용하는 척 하면서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니 다들 은근 슬쩍 풀었다. 귀찮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운전사의 말을 이렇게 개가 짖는 것 처럼 무시하는 사람들…. 자신의 안전에 대한 고려, 운전사의 지시에 대한 존중… 이런 것은 더러워진 청계천 물어 씻겨 버렸나???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코노미는 자리도 접고 만약 앞사람이 의자를 뒤로 젖히면 나의 활동 공간이 적어 진다. 그래서 음식을 서브 하는 과정중엔 당연히 예의상 (상식과 규칙은 잠시 잊어버리고) 의자를 올려 주어야 하는데… 그냥 뒷사람은 배려하지 않고 의자를 뒤로 젖힌채 밥을 먹는다. 스튜디어스가 와서 의자를 세워 달라고 해서 세운후 자리를 뜨니 ‘오빠 나 불편해’ 하면서 의자를 다시 뒤로 젖혔다. 뜨거운 미역국이 코로 넘어갈 위험한 위기를 간신히 피했다. 그래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애기 했다. ‘당신은 자기 편암한 밖에 추구 할지 모릅니까? 당신이 의자 뒤에 있는 사람이 식사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까?’ 내가 눈에 좀 힘이 들어가서 겁을 먹었는지는 모른다. 황급히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 하면서 의자를 올렸다. 결국 그녀는 의자를 그 후로 다시는 의자를 뒤로 젖히지 못한채 8시간 넘게 밤을 지세우며 시드니에 도착했다. 자기만의 안락을 추구하는 몰상식한 인간은 이정도의 고생은 당연히 격어 봐야한다.
 
비행기 안에서 또 흔히 있는 일이다. 화장실이 만약 사용중이라면 불이 켜진다. 불이 꺼지면 화장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은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고 기다린다. 서는 장소는 바로 직원들이 음식을 나르는 복도 그리고 작업 공간이다. 이것은 업무 장애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불편을 끼친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 변비는 않생기나?
 
시드니로 오는데 신혼부부 옆에 앉았다. 호주로 신혼 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나야 가볍게 간단하게 여행을 하니 내가 앉은 자리의 짐칸엔 내 작은 컴퓨터 가방만 있었다. 그런데 이 신혼부는 자기들의 많은 짐들을 내 가방의 위치를 마음데로 바꾸고 (자기 짐들을 넣기 위해) 자기들 집을 내 가방위에 올려 놓았다. 입국서 작성하기 위해서 내 가방을 빼려 하는데 도저히 불가능 했다. 그래서 신혼부부의 남편에게 이렇게 애기 했다 ‘당신들 짐에 내 가방이 깔렸으니 당신의 짐을 치우 도록 하게’. (머리에 피도 않마르고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비릿네 나는 풋내기였으기 굳이 존대할 필요는 없었음) 성급하게 짐을 치우고 난 내 가방을 찾은후 자리에 앉으니 눈치 있는 남자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하면서 사과를 하는데… 여자는 완전히 안면 까고 대꾸도 없어서… 그냥 ‘남의 짐이 있으면 당연히 양해와 허락을 구한후 짐의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상식이며 예의입니다.’ 그래도 그 가스나는 대꾸도 없어서…. 나중에 입국 신고서를 쓰는데 잘 모르니까 갑자기 날 보고 (내 호주 여권을 봤음) ‘저 이것 어떻게 쓰죠?’ 뭐 예의가 없는 사람하고 말을 석고 싶지 않아서 그냥 이렇게 성의 없게 대답했다. ‘어떻게 쓰는지 아는데 당신에겐 가르쳐 주고 싶진 않네요. 스튜디어스에게 물어보시죠?’
 
내가 건방지고 버릇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정상이고 내가 미친놈인가? 만약 전자쪽이라면 이것은 예의를 모르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치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의 나에 언행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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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의 자유 – 4시간…

집사림이 애들을 데리고 한국에 놀러간지 2주가 사알짝 넘었다.
 
오늘 어머니 집에가서 저녁을 먹고 이것 저것 애기 하는 과정중에 집에서 혼자만의 자유함을 누려보니 좋지 않냐고 물어 보았다. 그래서 난 내가 자유를 느끼기 위해선 그냥 4시간 정도 혼자 있으면 된다고.
 
예전에 21살이 되기전에 집에서 쫓겨나 혼자서 자취를 한 세월이 7년정도 된다. 그러는 과정 집안 살림 하는것 요리하는 것 나만의 생존을 위해선 다 깨우쳤다. 그런데 갑자기 홀아비가 되기 예전 같이 살림을 하기 보다는 그냥 하루를 대충 대충 넘긴다.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도 준비해가지 않은체…
 
남들이 이런 애기를 많이 한다. 애들하고 같이 놀고 가족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고. 내 생각엔 예린이 엄마는 애들을 키우면서 내가 개인적인 일들에 집중할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한 덕에 내가 굳이 홀아비의 자유를 느낄수 있는 시간이 고작 4시간이였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을 비효울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며, 비효율적인 사용은 즉 계획성이 부족한 것이고, 계획성 상실은 바로 논리적 사고 부족, 결과적으로 생산적은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 그럼 당연히 않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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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내 기억이 맞다면 줄리어스 시저 (라틴어로는 카이사르였나?)가 에스파냐 (지금의 스페인)을 정복하고 나서 로마에 승전의 소식을 전달 할때 사용했던 구절이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5시경에 인천 공항에 도착 했다. 공항 리무진 버스 (5번 출구에서 6002번인가?)를 타고 청량리로 향했다. 어느 곳을 정확하게 지나 갔는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 하지만 (버스 안에서 롯데와 두산의 야구 경기는 기억이 난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난 것은 기억 난다. 경복궁의 대문, 세종대왕의 동상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나란히 일열로 보이는 모습은 과연 장관이였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 대왕의 동상 사이가 은근히 불안하게 멀었다. 순간 이 사이를 메꿀수 있는 좋은 생각이 났다. 바로 이곳의 대한 민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영웅의 동상을 올려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 누구긴… 바로 나지.. 크크크. 이런 상상을 하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바로 그 다음 로마의 줄리어스 씨저와 폼베이우스 장군 그리고 이름이 기억이 않나는 장군, 바로 이 세사람이 모여 이룬 것이 유명한 삼두정치이다.
 
카이사르 (씨저보다 난 이 발음이 좋다)는 명석하고 총명했으며, 폼베이우스 장군은 미남에 인기가 많았고, 다른 장군은 돈이 많았다. 물론 세명의 영웅은 공존할수 없다하여 나중에 카이사르만 남아 로마를 지배했다. (양아들 부루터스에게 죽임을 당한 애긴 나중에 하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처제가 결혼을 하고 내게도 형님 형님 부르는 동생이 생긴다면 나도 힘과 뜻을 합하여 삼두정치를 해볼수 있지 않으까? 크크크크크.
 
아쉽게도 가족과 단 3일만에 이별하고 일요일 저녁 호주로 귀국하긴 했지만, 조국을 다시 방문해서 내가 나중에 내 동상이 세워질 곳을 미리 사전 답사하고 와서 기분이 참 좋고 생산성 있는 여행이라 생각 된다. 그럼 난 이렇게 애기해야 되나? 왔노라, 보았노라, 세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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