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럼 난 오다 노부나가 or 도요토미 히데요시 or 도쿠가와 이에야스? (Part 1)

도데체 누구지? 다혈질의 오다 노부나가인가 아니면 기회주의자형 도요토미 히데요시인가 아니면 대기만성형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인가?

 

기린아가 일본 역사를 모른다는 전제하에 내가 간단하게 위에 나열된 3명의 일본 영웅들을 설명하겠다.

 

내가 해석하는 위의 삼인은 이렇게 연결이 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에 뛰어 났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장수 보다는 승리를 좌우 시키는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 장수에게 상을 내렸고, 농번기 시절을 기다려 군사의 숫자가 적어진 틈을 타서 적은수의 적을 무찔렀으며, 3연사 조총 부대를 구성해서 장전의 소모가 많은 조총의 단점을 극복했다 (나폴레옹이 사용 했던 line infantry 전술이다). 일본 전국 통일을 눈앞에 둔채 부하 장수의 반역으로 스스로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주 낮은 출신의 장수였지만 겨울의 오다 노부나가의 신을 따뜻하게 하고자 품속의 그의 신을 품어 오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었다. 물론 반역을 일으킨 장수를 일으킨후 오다 노부나가의 뜻을 이어 대의를 품고 일본의 전국 통일을 이룬자이다. 하지만 지방 세력이 아직까지 거새고 많은 장수들의 군사를 거느린 상태로 일본은 언제 내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였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런 다혈질 장수들의 focus 우리나라로 돌려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 기억이 맞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을 (명나라인가?) 친다는 목적으로 우리나라한테 길목을 열어 달라고 했다. 물론 이것을 거절한 덕분에 일본은 공식적으로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순신 장군한테 박살이 났고 보급로가 끊어진 일본은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할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50대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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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황제…

요즈음 많은 생각을 한다. 아마도 서양 음악사를 이해하고자 서양 역사를 많이 보고 공부하게 된다.

그중에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 어젯밤 이것 적을 찾아 봐았다. 그중 3개의 나라가 공통 되는 점을 신기하게도 찾아 냈다 (참고로 역사에 관심을 둔것이 1년전이여서 세계사나 지리는 거의 빵점이다).

독일과 이탈이아 그리고 일본은 민족주의 사상에 젖어 들었다.
1870년인가 아니면 바로 그후인가 3개의 나라는 민족국가로 선언을 했으며, 독일은 자신의 게르만족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 나고 월등한 종족이라 선언해서 다른 백인종, 황인종 그리고 흑인종들은 저질 족속이라 했다. (여기에서 부터 유태인 학살과 집시족들의 학살이 일어났다. 홀로코스트라고 했나?) 그리고 이탈이아의 새로운 지도자 무솔리니는 자신을 로마제국의 후손이라 칭했으며 일본도 마찬가지고 황인종에서 가장 월등한 종족으로 스스로를 칭했다.

이 3개의 나라의 민족주의 정신은 서서히 제국주의 (imperialism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상으로 발전 되면서 예전의 ‘철의 재상’이라고 불렸던 도이칠란드의 비스마르크 처럼 히틀러는 독일제국을 만들길 원했고, 무솔리니는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었으며, 일본은 바로 아시아에서 대일제국을 만들려고 했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민족주의에서 시작하면 제국주의로 바뀌면서 서서이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헛된 망상이 패망을 깉로 인도하는 것일까?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점령한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를 황제로 선언한후 대프랑스 제국을 신설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아쉽게도 그의 꿈은 영국의 넬슨제독에 의해서 트라화가 전투에서 무너졌고, ‘황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그는 무리한 러시아 원정을 시도 했고, 마지막으로 유럽 5대 연합군에 의해서 패배 했다. ‘황제’의 꿈은 자들의 비참한 최후라고 할까나…

현대 시대에선 ‘제국’ 혹은 ‘황제’라는 표현은 적합치 않으며 사용되지 않는데. 누가 누구를 통치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며 현대에 이런 과거사를 적용 시켜 실현 시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만약 제국주의를 꿈꾸는 자는 침략자라로 불려질 것이며 민족주의 강조하는 자는 세계와의 단절과 스스로를 고립 시키는 어리석은 자로 불려질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후 나라의 주인은 더이상 왕이 아니며 바로 국민이다.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과 지도자의 운명을 결코 길지 못하다. 이것을  잘아는 내가 어째서 ‘황제’라는 단어를 좋아 할까?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세상을 정복하여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헛된 욕망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일까?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들은 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내가 말하는 ‘황제’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사람들은 ‘황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독재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생겼을때 많은 나라들이 문화 교류와 평화를 누리며 평안한 세월을 보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이런 ‘황제’가 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나라와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고 싶는 것이다. 빌 게이츠 (박사님)이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연설을 것이 기억난다 – 빈부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라는 말 (영어로 하면 멋있는것 같다). 내가 빈부의 차이를 어떻게 혼자서 줄일수 있을까? 아니다 빈부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최소한 누려야 기본적인 조건들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선 존재하지도 않는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 지금 죽어가고 있다. 의무 교육제도를 실행 하지 않는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속에서 헤어 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구원하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회를 제공할수 있다면 ‘독재자’로써의 이미지를 가진 황제가 아니라 ‘만인의 평화와 번영 행복을 추구하는 황제’로 기억 것이다. 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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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기억이 맞다면 라틴어로 Vidi, Veni, Vici인것 같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아니면 6학년 때인가 소풍(?)을 남한 산성 or 북한 산성 or 지리산으로 기억이 있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면 당연히 해야될 것은 바로 글짓기 (아니면 감상문)을 써야 했다.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니였으므로 아주 간단한 글짓기를 작성 해서 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idi, Veni, Vici”

원고지에 이렇게 쓴후 제출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다름 아니라 내가 글짓기 때문이 였다.

선생님께서 꿀밤 (머리통 치기가 적합 할것 같다)을 때리시면서 장난하냐하고 말씀하신 기억이 정색을 하고, ‘장난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나의 표정을 모시고 심각하게 받아 들이시면서 내가 이런 글귀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 보셨다. 그래서 내가 아는데로 율리어스 카이사르 (줄리어스 시져)가 스페인 (예전엔 아마도 에스파냐라고 불렀던것 같은데)을 점령하고 나서 부하가 로마 정부에 어떻게 보고 할까요 물어보니 바로 이말을 전하라 했다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내가 남한 산성인지 북한 산성인지 아니면 지리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폴레옹은 자기의 눈에 들어 오는 땅을 모두 점령 했다. (아마도 모스코는 너무 떨어져 보이지 않아서 러시아 원정에 실패 했는지도 모르나.. 농담) 그래서 나의 눈에 들어온 땅들을 보고 내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율리어스 카이사르를 흉내를 내서 이렇게 글짓기를 해서 제출한 것이다. 선생님께선 나의 뜻을 애기하시고 좀더 나이에 맞는 글을 지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래선 내가 아는 모든 미사여구와 형용사를 사용하여 내가 본것을 모든것이 아름답다고 표현 했으며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는 행복하며….. 기타등등… 거짓말을 줄줄이 썼는데…. 아마 상을 받은것 같다.

그냥 혼란 스럽다. 교회에서 어제 한글학교 학생들이 글짓기를 해서 교회 주차장에 전시했다. 그리고 가장 글한테 별을 붙여준후 가장 많은 별을 받은 학생이 상을 받는 것이였다. 그런데 몇명의 학생들의 글을 보니 나이에 쓸수 있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 정체성 혼란) 사용이 되었다. 그래서 글을 작성한 아이를 불러 ‘넌 단어의 뜻을 아느냐?’라고 물어 보았더니 그의 대답은 ‘전 몰라요. 엄마가 써주었어요’ @#$@#$)@#^#@%*#$% 우와… 이것은 완전 학생 글짓기 대회의 원초적 목적을 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냥 할말을 잊어 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 아니면 극성이라고 할까? 부모가 자식을 숙제를 대신 해주는 시대…. 나로썬 이해가 않된다. 자식의 체면이 문제 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어렸을때 시대와 시기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많이 읽었다. 거기에서 내가 얻은 것은 바로 이것 – 남의 아이디어와 사상을 받아 들인 후에 나에게 적합한 상태로 변화 접목 시킨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인 (post modernist)의 문제점이라고 할까? 남에게 의존하고 (그럼과 동시에 남을 비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남의 것을 받아 들이지도 접목 시키지도 못하는 자들…. 난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사상을 받아 들인후 삶에 적용 시켰다 – 내가 보고, 내가 원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정복하며 이룬다는 것을… 왜 이것을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 학교의 선생이 깨닮지 못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을 이유 없이 체벌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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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개의 모스크를 2년안에 설립한다…. 어 그럼 난 어떻게 하지?

두바이 한인교회의 신철범 목사님께서 오늘 부흥회 마지막 설교를 하셨다. 나에게는 무어라 할까… 흠… 그냥 MBA강의 같다고나 할까?

그냥 은근히 도전 받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1,700개의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2년안에 건축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의 국가들은 아랍쪽에 있으며 아랍에 있는 국가들은 석유 자원으로 돈을 번다. 결국은 경제적인 지원이 되니까 1,700개의 모스크가 2년안에 건축된 것일까?

순간 생각했다. 그럼 1,700개의 이슬람교 모스크를 어떻게 할까? 개신교 교회당으로 구입을 할까? 아니면 나도 2년안에 1,700개의 교회당을 지을까?

이런 천문학적 숫자의 교회당 (지금 내가 있는 수준에서)을 짓기 위해서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만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만약 이런것이 있다면 과연 무었이며 현대의 전도와 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준비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구관이 명관이 아닌 말도 있지만 아비 만한 자식 없다는 말고 있음과 동시에 스승의 실력은 스승을 초월한 제자로 부터 증명된 말이 있다. 단순한 경제력인가 아니면 비젼인가? 아니면 지역 사회의 환경과 색깔에 맞는 맞춤 전도와 선교인다.

많이 복잡하다. 인도의 1만명의 노예를 ‘기린아’와 해방 시키기로 했고 또 1,700개의 교회당을 지어야 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건축도 한번 배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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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does not change…

어제 밤에 한국에 있는 ‘기린아’와 잠시 통화를 했다. 한국에 간지 2년이 된것 같다. 의료폐기물 처리 회사인데 규모도 꽤 크고 안정 됬으며 이제 상장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 시스템에 잘 적응해서 30살이 되기도 전에 부장 자리에 앉아서 잘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여러가지를 애기하던 중에 나에게 왜 요즘에 블로그를 쓰지 않냐고 물어 봤다.
 
이번해 3월부터 5월까지 참 지옥 (가보지 못했고 갈 계획도 없지만)과 흡사한 짧은 세월이였다. 왠지 모르게 많은 일들이 생기고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나쁜 일들) 이것을 처리하기 위한 직원들의 손발과 마음이 맞지 않아 비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해서 쓸데 없는 자원 낭비와 시간 낭비,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불신과 책임 회피등 내부적인 문제를 푸는데 골치를 썩은 지난 3달간이였다. 그러는 과정중 몸도 잘 돌보지 않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난 블로그를 쓰면서 생각 정리를 하곤 한다)을 가지지 못한 난 오늘에 풀지 못한 일들을 억지로 내일로 미루면서 문제가 스스로 없어지길 바라는 만역한 기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상당히 비겁하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처리 방법인데…)
 
그래서 ‘기린아’와 약속을 했다. 앞으로 365일간, 2010년 6월 1일부터 시작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블로그를 쓰기로 했다. 뭐라고 할까 그냥 나 자신과 하는 약속을 남을 핑계를 데고 합리화 시킨 격이라 할까? 아무튼 좋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속에 있는 내용을 하나씩 정리해 놓고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작성한 다음 하루에 하나씩 올릴까? (효율적인 방법론인데 약간 비겁한 기분이 든다)
 
퇴근하기 전에 내가 쓸 글들을 몇개 읽어본다. 참 신기한 것은 내 인생 철학관과 세계관이 아직까지 변함 없는 것이다. 나의 대의를 모르는 자들은 ‘허풍이 심하다’, ‘철이 덜 들었다’, ‘건방지다’, ‘교만하다’, 기타등등으로 표현하겠지만 난 이런 다양한 표현들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높고 멀리나는 독수리를 보고 질투하는 오리들의 소음이라고 할까?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이제 나이 33살이 되는데 이 오리 저 오리 기분 맞추어 주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남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무난한 삶, 방어적인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느다. 내 인생에 중반 지점에 다달은 내가 남의 눈치 보면서 utiliterian rule을 적용한 삶은 뭐랄까…. 나폴레옹이 이런 삶의 자세를 가졌다면 어떻게 32살에 이집트 원정을 성공 시켰을까….
 
다시 한번 깨닮게 된다. 난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도 않는다. 내가 환경에 맞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맞고 융화 되게 내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 어 그럼 어떻게 살지? 방법은 간단하다. 주변 환경에 맞추어서 날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뜻에 맞게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한말이다) 난 내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될것이다. 난 내 주의의 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될것이다. (여태껏 그렇게 해 왔고) 주어진 환경을 바꾸지 못해 현실과 타협하는 패배자의 길을 난 걷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전상 후퇴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 Something does not change…. that is myself who has no understanding of the word ‘compromi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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