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이 아빠~ (어…. 이상하네) – Part 3

내가 자룡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보인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능력과 대의를 가진 아들로. 그것은 아비에게서 주어진 것이며 물려 받은 것이다. 자룡의 아빠로 기억 되고 싶지 않다. 조후혁의 아들은 자룡임이 기억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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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이 아빠~ (어…. 이상하네) – Part 2

별것 아닌 가지고 내가 신경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2 (이번주 주일날 33살이 된다) 때까지 나많의 독특한 인격 정체성 확립에 많은 노력을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세상은 변한것 같다. 예전엔 영웅의 자식을 칭할때 누구의 아들이라고 했다. 예를들어 아비의 이름이 먼저 불리어 졌으며 아들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이젠 아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고 아들이 이름이 먼저 불려지고 아비는 자식의 피객체가 되어진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남유럽 사람들 같이 됬는가? 북유럽 사람들은 아직도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고 양육할 의무가 있지만 자식은 분명히 부모 아래이며 자식을 결코 신같이 받들지도 않는다. 부모 많의 시간이 있고 인격 존중이라는 관용아래 자식과 타협하는 과정중에 부모의 권의 자존감을 서서히 무너져 간다. 이렇게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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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이 아빠~ (어…. 이상하네) – Part 1

결혼을 하면 여자의 남편이 되고, 아기를 낳으면 아버지가 되고 가정의 가장이 된다이런 과정중에 나를 부르는 칭호가 많이 변화됨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렇다.

 

브랜든씨, 브랜든 집사님, 조후혁 집사님, 예린이 아빠, 운이 아빠, 조이사, 조사장, 조선생님 (아마 이게 다인것 같다)

 

주로 브랜든씨라는 칭호는 나랑 동갑인 사람이 이렇게 부르고 ( 동갑인 사람도 주의에 있어도 친분을 쌓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거의 사용 되지 않는다), ‘브랜든 집사님부터 운이 아빠까지는 대부분 교회에서 친분을 쌓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칭호이며, ‘조이사부터 조선생님 나보다 나이가 많치만 나의 가치를 인정한 저명 있는 사회인들 (: 대학교수님들) 주로 사용하는 호칭이다. 개인적으로 후자쪽을 좋아 한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와서 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들어나는 것보다 백천 조씨의 가문을 대표하고 밀양 손씨 가문을 대표하는 , 그리고 주영이의 남편 예린이와 자룡이의 아버지로써 나의 정체성이 인식 되는 쪽이 강해지는 같다. 아마도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간의 교제가 많아지고 하니 칭호가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것 같다.

 

은근히 화가 날때가 있다. 나에겐 조후혁이란 이름이 있고 (빛나는 제후 (i.e.  귀족 출신의 영주)) 나의 가치와 능력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나의 이름이다. 어찌하여 나의 이름이 나의 자식들에서 희석이 되는 것인지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은 없어지고 자식들에게 내가 흡수가 되는지…. 많이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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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럼 난 오다 노부나가 or 도요토미 히데요시 or 도쿠가와 이에야스? (Part 3)

그런 도대체 누구일까? 다혈질의 노부나가? 기회주의장형 히데요시? 대기만성형 이에야스? 누구도 아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3명의 영웅의 성격을 비교하는 아주 좋은 예가 있다. 한마리의 새가 있다. 한마리 새를 울리기 위해서 위의 영웅들은 어떻게 할까?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를 보고 참지 못해서 그냥 단칼에 배어 죽여 버린후 새의 마직막 비명을 듣고 만족할 것이다.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하기 위에서 옆에서 재롱을 피울것이다. 이에야스는 그냥 새가 언젠가는 울겠지 라는 자세로 그냥 마냥 기다릴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떻게 것인가? 죽이지도, 재롱도 피우지 않고, 더군다나 무작정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한마리의 새를 찾아 새의 옆에 두고 짝을 찾은 새들이 스스로 즐겁게 울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후혁은 일본의 통일을 기반을 마련하고 이룬 영웅들보다 자신이 뛰어남을 믿는다.

 

P.S. 같은 글을 3개로 나눈 이유는 MSN에서 내가 쓴 글의 양이 너무 많다고 해서 부득이 3 파트로 나눈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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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럼 난 오다 노부나가 or 도요토미 히데요시 or 도쿠가와 이에야스? (Part 2)

여기까진 누구나 아는 내용인가? 그럼 대기만성형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번 볼까나…. 권력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섭외한후 (아니 아직 힘이 없어 잠시 고개를 숙였다고 할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후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옆에서 보좌하는 명분을 가진후 (아마도 자기의 (굉장한 추녀라는 소문) 히데요리에게 시집을 보냈으면 장인어른이 됬고) 히데요리 반대파를 차근차근 무너 뜨린후 (히데요리가 쇼군의 자리에 올랐을때 10살이 않된것으로 기억됨) 나중에 히데요리를 공식적으로 제거할 명분을 세운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히데요시를 추모하는 절을 세우는데 거기에 글귀를 트집을 잡은 다음에 속임수를 써서 성을 무너 뜨린다. 어떻게 성을 무너 뜨린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주의에 있는 강들을 매꾸어 함락 시켰나? 어쨋든 이것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드디어 일본 천하 통일을 이룬다.

 

다혈질 노부나가는 40대에 부하에게 살해 됬고 기회주의자형 히데요시는 50 말에 병사했고 대기만성형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70살까지 장수한 것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스타일은 때를 기다려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길 기다리는 이라는 이치를 중시했다.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지 말고 흐름을 타고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대처형이였다. 반대로 노부나가는 시대의 흐름을 스스로 만든 사람이라 하겠으며 히대요시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라는 말이 적합한 기회주의자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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