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2011년 2월은 좀 밝아 보이는데….

정확하게 이유는 설명 할수 없지만 2011년도 1월 보단 좀 더 밝아 보인다. (회사문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약간의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며 영업부 메니저들이 영역 조정이 되었다. 새로운 세일즈 디렉터가 1월부터 join해서 약간의 변화가 보일것 같은 긍정적인 view를 가지고 있다. 1월달은 대부분 조용한 달이긴 하지만 그래도 새해에 좋은 싸인이 보였으며 그 좋은 신호가 2월초까지 지속 되어서 좋다.

사장님께서 어제 한가지 과제를 주셨다. 아니 많은 과제를 주셨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지시는 바로 이것이였다. 매일 하루 회사에 올때 마다 하루에 $1,000를 절약하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물론 인사조정을 이용한 것이 아닌 지출과 cost를 조정해서 절약을 이루는 것이다.

예전 기억들이 생생히 났다. 거래처 청구서를 일일히 한개씩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어떻게하면 지출을 줄일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해결을 했고 목표를 이루었는지. 기존의 방식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방법을 창조해서 전진해 나아가야 할것이다. 난 할수 있다. 예전에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미래도 그렇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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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은때는…..

가끔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무엇을 지금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헷갈리때가 있다. 때론 알수 없는 불안감이 날 감싸기도 한다. 미래에 발생하지도 않는 있을 이것저것 접목시켜 걱정한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잠을 늦게까지 이루지 못할때 나도 모르게 술한잔으로 마음을 진정 시킨후 잠자리에 들곤 한다.

잘 모르겠다. 내가 예전부터 읽으려고 했던 책이 하나 있다.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책인데 제목은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가 이다. 이 책에서 내가 찾으려고 했던 해답이 있었다. 그러나 첫 몇장을 넘기고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적라나게 표현을 정확하게 하고 정말로 내 스스로가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 시간때 한번 조용히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다. 내가 왜 불안해 하는지. 내가 왜 눈치를 보는지. 내가 왜 걱정을 하고 조급해 하는지. 내가 왜 단기간에 급성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얼만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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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조금 힘든 하루가 되겠지?

아마도 그럴것이다. 월말 결산은 힘들다. 할 일도 많고 한달을 어떻게 경영 했는지 총 검사할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을 반복해서 해왔다. 그것도 똑 같은 방법으로 몇년을. 순간순간 마다 좀더 낳은 방법을 개발하여 적영 시키려고 시도 했지만 머리속에 있던 아이디어는 펜과 종이를 통해서 기록되지 않고 그냥 흘러버린 그냥 한 순간의 좋은 생각처럼 남았을 뿐이다. 정말 아쉽다.

지금 1시간을 투자하면 미래의 100시간이 편안한 것을 알면서 아마도 여태껏 해왔던 방법에 몸이 많이 익숙해져서 새로운 방법 개발과 시도에 몸을 사리는 경향이 많다. 아마도 나이를 먹어서 바꾸고 변화와 도약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냥 안정과 기복이 없는 삶을 나도 모르게 선호하는 것 같다.

2011년도에는 무엇을 할까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몇가지를 해보고 싶긴 한데….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시도하기에는 좀 거리가 먼 계획들도 많이 있다. 아마도 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있지만 단기적인 리턴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실행해야 하는 일들이기에 그냥 시작부터가 주저주저한다.

이런 생각이 날 힘들게 만든다. 똑같은 일, 똑같은 방법. 정해진 테두리안에서 오늘 끝내지 못하면 내일이 온다는 자기합리화적 전재하에 일을 진행한다. 다시 말해 점점 나타해지고 게을러 진다는 것이다. 공자님이 스스로가 무식함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가 유식함을 안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더 한단계 나아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나의 무력한 모습에 조금씩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라다임 쉬프트가 필요한 시기이다. strategic inflection point에 또 한번 다가왔다. 난 영어 공부를 할때 11번의 도약이 필요했다. 내가 뛰어 넘어야 되는 이 관문은 무었인가? 관우가 오관참육을 할때 그는 조승상의 통행증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밀고 나왔다. 그럼 난 어떻게 할까? 밀어부칠까? 아니면 통행증을 기다렸다가 편안히 지나갈까? 만약 후자쪽을 선택했을때의 기회비용 손실은 과연 얼마 일까? 이런 생각이 나를 점점 답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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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인생…

조조는 간웅, 오다 노부나가는 풍운아… 대장금에 나오는 상궁 한명이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인생은 가늘고 길게’ 다시 풀어서 애기하면 그냥 평범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뜻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짧다. 역사서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 바로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 된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자본주의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부는 부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으면서 빈부의 차가 벌어지며 지배계급 그리고 지배 받는 계급이 생긴다. 그러면서 클래스간에 갈등이 생기면서 불만이 점점 쌓여지고 ‘차별 소유’가 아닌 ‘공통 분배’에 촛점을 돌린다. 즉 ‘공산주의’를 동경하게 된다.

공산주의란 우산 아래에선 누구나 동등하고 공평하게 나눈다. 그러나 문제점은 개인의 노력과 그것에 대한 리턴은 정비례가 아니끼 때문에 차별화를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므로 결국엔 경제력 퇴보 혹은 제자리 걸음을 하게 만는다. 그리고 생산량 및 분배 과정과 양을 결정하는 지도층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부정 부패 때문에 하계층의 사람들은 점점 힘들어 지는 것이다.

정답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단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 transition period에 존재하는 사회주의가 있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석어 놓았다고나 할까? 사회주의에선 각 개인의 인권을 중요시 한다. 그래서 빈곤한자의 최저 인권을 보호한다. 특별한 지도층을 위한 사회제도가 개발 되었다기보다는 평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사회제도가 더 개발 되었다고 보면 된다. 다야한 복지 제도 – 실업자 수당, 연금, 보험, 기타 등등. 잠깐…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 정부가 돈이 필요한다. 정부가 그런데 돈을 어떻게 벌지? 당연히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그런데 가난한 자는 세금을 적게 내고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그럼 부자들의 세금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인데. 지나치게 발달한 사회복지제도에 의해서 많은 평민들이 직업을 찾지 않고 정부가 먹여 살려주는데로 그냥 산다면 결과적으로 그 사회는 발전은 고사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가 동시에 상류층에 대한 반발이 거세질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울타리를 열어 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양육강식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강한자는 강한자와 무리를 이루고 약한자를 먹어 버리고 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성장한다. 쉽게 말해 자유경제에선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론 지나친 부분은 정부에서 통제를 한다) 과정에서 경제 성장을 촉진시킨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지배층 계급이 생기며 중산층 하층 계급이 생긴다. 또 이런 계급 형성과 빈부차에 지친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선호하게 되면서… 역사는 돌고 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쪽으로 샜다. 중요한 것은 한 시대를 주름 잡는 영웅은 바로 이런 transition period에 나타나 이것을 촉진 시키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이다. 조조는 군웅할거때에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했고 오다는 전국 시대때 일본 통일의 기반을 마련 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후에 끊임 없는 타국의 침공과 가난에 쪼달린 시대에 혁신적인 지도자를 기대할때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나에겐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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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난 이제 그런것 잘 모르고 않해. 이제 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나를 잘아는 사람은 내가 일기말고 (그리고 블로그 말고) 예전에 썼던 명부가 하나 있음을 알것이다. 바로 ‘살생부’이다. 좀 섬뜻한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쓴 명부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살생부 (한자의 뜻을 풀이하지 않고)는 나로 나보다 더 낳은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자, 즉 나보다 뛰어 나다고 판단 되는 그 사람의 행적과 시기를 기록한다. 그 다음 그를 초월한 다음에 그 사람의 이름을 지운다. 즉 다시 말해 그의 존재성은 나에게 별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를 자극 시키고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이름이 전부 내 살생부에서 지워졌다. 즉 다시 말해서 나를 더 성장하도록 자극을 주고, 미래객체지향주의적으로 삶을 살도록 나를 drive하는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대학교를 마치고 난 후에 그 살생부를 태워 버렸다. 순간 내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짓을 해서 내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않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말해 살생부를 기록하는 과정중, 나는 어느 한 사람을 우러러 본다 던지, 존경한거나 선망의 대상을 기록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나보다 더 낳은 일을 이루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증오하고 나의 경쟁 상대로 삼아 그보다 더 낳아지게 주야로 노력 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에 대한 시기 및 질투 그리고 자존심이 바로 내 자신을 더욱더 성장 시키는 연료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연료는 이상하게도 폭발력은 강하지만 지구력이 적었다. 장기전으로 한 사람을 목표로 삼고 꾸준히 노력해서 따라 잡는 것이 아니라, 순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여 따른 성공을 이루는 것이 첫번째 목표인 것이다.

일종의 복수극이라고 할수 있겠지…. 나보다 더 낳은 자를 용납하지 못하고 내가 그보다 더 많아야 된다는 생각이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복수도 귀찮고 (더 이상 복수할 사람도 없고) 아마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것이 아닐찌. 내 살생부에 기록 되었다가 지워진 모든 사람들께 감사한다. 그들 때문에 난 여기까지 왔다. 그들의 자극에 의해서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다. 내 살생부에 기록된 사람들이 모두 기억 난다면 그들의 이름을 다른 명부에 한번 적어보고 싶다. 바로 ‘활생부’에… 내가 그들에게 나를 이만큼 성장 할수 있도록 자극을 준 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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