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차이는… 극복이 않되거든요…

‘고객님을 위해서 좋은 투자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아무개 펀드 메니저인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이런 전화를 상당히 많이 받는다. 그러면 난 이렇게 물어 본다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현재 자산은 얼마 입니까?’ 만약 머뭇 거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냥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는다. 만약 그 아무개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이 얼마라고 애기 했는데 만약 그 금액이 내가 소유한 자산보다 적다면 난 그냥 당신에게 조언을 받을 것이 더 없다라고 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조언을 해줄수 있는 자는 나랑 비교해 보았을때 나보다 더 낳아야 되기 때문.

난 항상 동등한 상태에서 비교를 한다. 사과 대 사과 아니면 오렌지 대 오렌지.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나랑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과의 신앙관과 신앙심을 비교한다. 난 평신도이니 내가 영적 리더자인 목사나 다른 사역자와 신앙관과 신앙심을 비교하면 동등한 평가가 이루어 질수가 없다. 난 재무관리자인데 디자이너와 내 디자인 실력을 비교한다면 동등한 평가가 이루어 질수가 없다. 난 아름답고 향기로운 와인을 담는 글라스인데 내 투명한 잔에 간장 종지에 있는 간장을 담아 버리면 그것도 동등한 평가가 이루어 질수가 없다.

동등한 위치, 즉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위치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만을 지나치게 고집을 하면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는 과정 이상한 이질감이 형성 되면서 서로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서로를 멀리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남들과 함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애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에서 애기한데로 사과 대 사과가 아니끼 때문이다. 내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엘리트사상에 젖어서 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난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스케일의 명목을 남들에게 굳이 애기해서 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 보다는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몇몇에게 시도를 해보았지만….. 극복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느꼈다 –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되 나의 세계관을 누구에게 주입 시키지도 동의하게 시도 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난 독특하니까. 난 특별하니까. 난 오리새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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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독교인이면 다 마음에 들고 코드가 맞고 말이 통하냐? 완전뻥..

‘아무개가 어느 교회 집사래 그리고 또 아무개는 어느 교회의 장로래’…. 기독교인들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난 시드니 주안 교회 서리집사로 소개 받고 싶지 않다. 난 조후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 받고 싶다. 나의 이름안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이루었는지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집사’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는 이유는 바로 집사라는 감투 아래에 나에 진정한 칼라가 희석 되기 때문이며 나의 정체성이 왜곡 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써의 성실함, 자상함, 온화함, 그리고 사랑과 관용 및 자비와 은혜로써 사람들을 대하고 만인을 품을 만한 포용력을 가진 자로 인식이 되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난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집사’라는 타이틀안에는 위에 나열한 이런 인위적 이미지가 저절로 생성된다.

난 성실하다. 자상하진 않다. 온화한 것보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다. 사랑은 경영에 필요한 한 도구로 인식 할때도 있다. 자비는 은혜를 알고 빚을 갚을수 있는 의리 있는 자에게만 배푸는 특권이며, 만인을 품지 않고 내 인생에 필요한 인재들만 추출하여 교육하고 내 사람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나이며 이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집사’라는 타이틀 아래 아름답게 성스럽게 가식적으로 포장 되고 싶지 않다.

이래서 난 같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코드가 맞지 않는 다는 말을 한것이다. 서로의 개성과 배경, 학벌, 명예, 세계관, 인맥, 경제력, 취미, 특기, 개성, 성격등이 모든 다른데 어찌 ‘기독교’인 이라는 종교인의 명목아래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돕고 이해하려 드는지 이해가 않된다. 그러면서 융화 되지 않는 나를 보고 날라리 성도라는 우산 아래에 가려 버린다.

결국은 기독교인 이라고 다 서로가 사랑하고 이해하고 감싸는 것이 아니다. 자기랑 이해타산 관계가 맞고 코드가 맞고 수준이 맞는 상대를 골라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다 당연한 인간의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가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그들을 보면 그냥 인상이 나도 모르게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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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상실…..

포스트 모던니즘에 사는 우리들에겐 주인의식이 상당히 부족하다.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내가 왕이고 주인이며 내게 이익 없으면 두손 놓아 버리고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간다. 쉽게 애기하면 나에게 득이 있으면 삼키고 득이 않되면 내뱄는다. 나로 이것이 현대인들의 아주 슬픈 자화상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즉히 자연적이고 당연한 자본주의 사회의 실태임이 분명하다. 물질에 의하여 주인을 배반하고 또 물질을 사용하여 주인은 (고용주) 종들을 부린다. 충성심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아주 슬픈 현실이다. 과연 이런 사회를 살아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의리, 정, 은혜, 충성을 모르고 돈의 액수와 경제적인 조건에 의해서 주인을 회사를 자기가 속한 집단을 속옷 갈아 입듯이 갈아치우는 이런 비정한 현실안에 과연 의리, 정, 은혜, 충성을 알고 지키려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인재들을 어떻게 찾고 교육을 시키며 내 사람으로 만들수 있을까? 이런 자들이 절대 존대하지 않는다면 이렇지 못한 자들과 함께 대의를 이룰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아무도 의지하지 못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이해타산으로 연결된 관계라면 과연 이런 관계가 정말 영원히 존재 할수 있을까?

나에게 100만 대군은 필요가 없다. 나에겐 100만 대군을 나 대신 이끌수 있는 뛰어난 장수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것은 물질인가? 아니면 리더쉽인가? 아니면 실력인가? 공포나 위엄으로 상대를 압도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온정주의를 사용해서 모든 사람을 다 품을 것인가?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토하고 늙고 힘이 빠지며 기억력도 나빠지며 점점 퇴보하기 마련이다. 이런 자가 어찌 지금 막 날고 뛰는 자들을 당해 낼수 있을까?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섬기려 할 것인가? 많은 질문들이 내 귀를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나를 참 복잡하게 만든다. 이른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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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음악의 세계로 몰입….

내일이면 내가 주문한 음악 교제가 도착한다. 난 학원을 다닐 시간도 없고 누구에게 배울 시간도 없다. 내가 항상 했던데로 독학이 나에겐 최고의 교육 방법임이 분명하다.

이제 내 귀는 클래식에 많이 익숙해졌다. 서양 음악사도 바로크부터 현대 음악 문턱까지 도달했다. 다음 스텝은 바로 서양음악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돕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해서 현대 음악까지 다시 오는 것이다. 대충 대충 이것 저것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식으로 애피타이져부터 메인 그리고 치즈 다음 디져트 맨 마지막 콘약으로 마무리 하는것이다.

방금전 정치적 희생물이 된 한국이 나은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씨에 대한 글을 읽었다. 반공산 정권에 대한 정책으로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만약 그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독일에서 보냈다면… 얼만큼 주옥 같은 작품이 나왔을까 그리고 서양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많은 업적을 이루고 많은 인재를 양성 시켜 조국을 자랑스럽게 했을텐데… 이런 아쉬움에 휩싸인다.

난 예술적 감각 부족으로 인해서 난 굳이 연주자가 될수도 없으며 연주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하지만 악보를 제대로 읽고 편곡을 할수 있는 그런 위치까지 올라가고 싶은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론 할수 있는 그런 위치…

서양 음악사도 알고, 왠만한 클래식은 알고, 와인은 냄새와 빛깔만 봐도 어느 포도 품종인지 감이 잡히고 이제 유럽 지리와 서양 미술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흠… 2011년은 내 자신의 가치 (교양 wise)를 아마도 최고로 높힐수 있는 해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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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3월은….

왠지 상당히 복잡하고 힘든 달이 될것 같은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왜냐 할일이 많거든.

2월달은 잘 모르게 은근히 들뜬 달.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사장님 회사를 팔 계획이 좀더 적극적으로 진행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연세도 많이 드시고 하니 아마도 이제 인생의 말로를 마감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일지도.

내 계획 (혹은 계략)은 이렇다. 회사가 팔리는 그 날까지 비비고 존재 한다는것. 너무 치사한가? 회사 설립 부터 지금까지 왔다. 많은 것을 보고 격었으며 우여골적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기분이 나쁘고 어떤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명분 때문에 여태까지 공든 탑을 순식간에 무너 드릴순 없지. 크크크.

하루살이 같이 바둥바둥 살때고 있고 개선장군 같이 살때도 있고 산속의 절에 사는 스님 같이 깊은 명상빠져 살때도 있으며 세상이 다 내껏 같은 황제의 포부를 가지고 살때도 있다. 들쑥 날쑥. 크크크. 괜찮다. 나도 사람이고 그러니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 있을 막연할 일을 가지고 가끔씩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부질 없는 꿈. 실현 가능성 있고 준비된 내가 가질수 있고 이룰수 있는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해 쉬지 말고 노력하는 내가 내일도 숨쉬며 존재한다면… 그냥 걱정 말고 힘차게 전진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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