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만 할까?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 지출을 줄여서 저축하자.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 근검절약 할수 있는 부분은 하되, 돈을 아낀다는 명분 아래 좋은 추억을 만들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이다. 내 의동생이 한 말이다. 만약 $1,000의 돈을 내고 함께 저녁을 먹고 인생 일대의 최고의 소중한 만남을 오래동안 기억할수 있고 이것이 인생을 사는데 힘이 된다면 이 돈은 아깝지 않다고. 그리고 한달을 라면만 먹고 대신 살수 있다고. Monetary value 보다는 sentimental한 value를 좀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가 바로 이것이다. 난 이것에 동의 한다. 왜냐하면 난 낭만적으로 삶을 사니까.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 삶은 이것이다. 내가 원하고 가지고 싶고 베풀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을 전부다 하기에는 현재 수입이 적으므로 어떻게 하면 수입을 늘리고 어떻게 하면 불필요하는 지출을 없애는 문제에 집중하고 계획안을 세운다. 쉽게 말해서 난 top-down이 아닌 bottom-up approach를 사용한다. 지출 항목을 먼저 정하고 이것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확하게 forecast를 한후에 이것을 감당하기 위한 수입에 15%를 buffer 잡아서 목표로 한다. 그래서 내가 연평균 수입 성장률 17%를 지난 6년간 기록할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어디에 쓰기 위해서 얼마의 돈이 필요하니 얼마나 쉽지 않은가.

이제 허리띠만 졸라매서 지출을 줄이는 낡은 사고 방식의 시대를 가지기에는 시대가 너무 발전 했다. 스스로 이익창출의 기회를 찾고 절약을 하고 단순히 monetary value에 driven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낭만과 추억을 만들고 즐기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필요가 있다. 너무나 배부른 소리인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발전 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자신의 영향력과 value를 개발함으로 해서 좀 더 많은 것을 누릴수 있도록 사는 특권은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연으로 다가오지 않는 ‘기회’이다. 난 이런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맞이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오늘도 전진한다. (가끔씩 피곤해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적은 리스트, 내가 해야 되고 이루어야 될 항목들이 적혀 있는 리스트, 그리고 내가 배풀어야 되는 것들이 적힌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 tick box가 하나 둘씩 없어지는 것을 볼때 난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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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시기상조… 아니면 너무 처음부터 김치국 부터 마시는 것은 아닐찌…..

내가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한번 결정된 일은 신중하게 정밀하게 계획과 실행안을 세워 끝까지 밀고 나가서 내가 원했던 결과를 얻는 것이다. (정밀한 분선, 과감한 결정 그리고 신속한 실행) 그런데 요즘은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는데 마치 결정이 된 가정하에 많은 계획을 세운다. 이런것을 보고 꼭 복권 당첨이 되지 않았는데 당첨이 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살지 미리 계획부터 세워 놓는것 같다.

내가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이 내가 기대 했던것 보다 빨리 다가왔다. 내가 맨손으로 일구어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이 필요한 일들이 반이상 미리 이루어져서 나의 contribution을 원하는 일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다가옴을 난 안다. 물론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반드시 오는 것을 잘 알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획들을 미리 앞날을 보면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즈음에 내가 너무 미리 김치국 부터 마시는 그런 느낌이 든다. 좀더 정확하게 애기하면 난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기회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내가 deserve하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기회들, 그리고 나의 욕심에 의해서 이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갈망….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지는 것 같은 느낌….

다시 한번 위치 점검을 해봐야한다. 아마도 나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 이후부터 과거와는 달이 많은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전보다 더 많이 기고만장해진것은 사실이다. 뻣뻣햇던 목은 좀더 굳어 졌으며 남들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고 가지고 이룬것이 많다고 자부하여 내 스스로 정신적 귀족주의에 뭍혀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sooner rather than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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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매일 올린 사장님….

지난주 목요일 사장님께서 4년동안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블로그에 1,460개의 글을 올리셨다. 사장님의 경영관과 마켓의 변화와 시장 예측에 대한 글을 주로 쓰시며, 기분이 별로 않좋으실때 쓰는 글을 읽으면 상스러운 욕만 들어 가지 않을뿐 가슴에 비수를 꽂는것 같은 날카롭고 섬뜻한 표현이 가끔씩 나를 아찔하게 만든다 (7년동안 옆에서 모셨는데도 아직도 적응이 않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한다. 매일 아침에 같은 시간에 나도 내 머리속에 있는 잡다한 생각, 나만의 인생관, 경영관, 세계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과 내가 이룬 것들을 바탕으로 하루에 한번씩 365일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불가능할까? 왜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 거리가 줄테니? 그것은 아닐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루 하루 삶이 나에게 새로운 도약을 기회를 제공하며 어제가 오늘 같이 않고 오늘이 내일 같이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야기 거리가 없어 질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 블로그를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7월달에 850명을 돌파 했다는 것이다. 난 이 850명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이들이 왜 내 블로그를 읽는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글이 재수가 없고 내 사상이 불순하고 내가 싫다면 굳이 와서 여러개의 글을 읽고 갈 이유는 없다. 만약 블로그를 읽고 긍정적으로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정보와 사상, 그리고 인생철학관 위주로 글을 쓰고, 남과 나의 견해의 차이로 일어난 마찰과 대립에 대한 나의 분노나 공격적 코멘트는 앞으로 피해야 될것 같다. 나의 좋은 점 많을 보여 준다는 취지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단점들을 배워서 자기도 모르게 습득할까 심히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어휘구사력은 좀더 controversial하기 때문에 역설적 사고에 매력을 느끼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에겐 악영향을 끼칠수도 있으니까.

내가 직원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다. Choose your next words very carefully because that might be your last words. Perhaps it is a time for me to choose my own words carefully aft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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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가지전에 내가 꼭 준비하는 것은……

첫째, 어디에서 몇시에 공연이 주중에 하는지 주일에 하는지 그리고 낮에 공연이 있는지 밤에 공연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을 한다. 그래야만 공연을 위해서 컨디션을 조절한다. 개인적으로 금요일 저녁에 있는 공연을 좋아한다. 한주의 바쁜 일과를 마친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세계와 현실과의 dislocation을 경험할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공연에 102% 몰두 할수 있는 날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전날에 과음이나 과로는 절대 피한다. ‘생음악’의 한음 한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최고의 집중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지 분석한다. 왜냐하면 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선 그 곡이 작곡 될 작곡가의 배경과 작곡 당시의 환경을 알아야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다른 베토벤의 교향곡과 비교해 보아서 조금 더 생기가 넘치고 발랄하다. 사실 이곡은 베토벤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온천에서 요양을 하면서 작곡을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자신의 우울증을 회복하기 위해서 도와준 정신과 의사를 위해서 작곡 했기 때문에 이 곡은 우울함과 향수적 요소가 많이 포함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작곡 배경 (지리와 역사 포함)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셋째, 그 공연을 연주할 솔로이스트, 지휘자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분석한다. 같은 곡을 같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해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곡의 색채가 바뀔수 있다. 예를 들어 카라얀과 알바도는 베를린필에서 상임 지휘자로 있었지만 두 사람의 색깔은 정말 다르다. 카라얀은 권위적이고 강하며 남성적인 색채를 가졌고 알바도는 좀더 여성스럽고 섬세함과 자유함을 허락하는 색채를 가졌다. 독일의 유명한 관현악단은 기계와 같이 정말 정밀하고 정확한 음을 내지만 뭐라고 할까 약간 절제된 미를 느낄수 있으며 답답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고, 프랑스 관현악단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테크닉이 좀더 부드럽고 다르기 때문에 좀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을 잘 표현 한다. 그리고 협주곡을 연주 할 경우 솔로이스트에 대한 분석을 한다. 연주자 마다 개성이 있고 어느 시대의 음악을 선호하고 어느 작곡가의 음악을 주로 연주 했는지를 알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요즘에 떠 오르는 피아니스트 랑랑은 협주곡 보다는 프란즈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곡을 좀더 감미롭게 표현하며,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필리페 콜랑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런던필은 다른 유럽의 오케스트라와는 달이 상업적인 면이 강해 contemporary한 곡도 연주한 적이 많다. 그와 반면 베를린필이나 비엔나필은 장인정신과 정통성을 추구하는 관현악단으로 유명하며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교해 보아서 좀더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넷째, 자기가 좋아하는 레파투어를 선택하고 공연 날짜와 시간을 정한 후에 반드시 해야 될것이 있다. 바로 사전 답사다. 즉 공연을 참관하기 전에 그 날 연주할 곡을 적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5번이상 들어 보아야 한다. 내가 즐겨하는 사전 답사 방법은 이러하다. Sir Charles Mackerras가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억 된다) 이끄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내가 좋아하는 국민악파 음악가 안토니오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만약 내가 관람할 공연이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난 체코필이 연주한 음반을 구해서 이것을 standard로 잡는다. 그리고 지금 Sir Simon Rattle이 상임지휘자로 있는 베를린필이 요하네스 브람스의 연주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한다. 그럼 당연히 브람스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라면 베를린필이 standard로 잡고 benchmarking을 한다.

다섯번째, 듣는 것으로는 만족이 되질 않는다. 난 악보를 구입한다. 그것도 지휘자용 악보 (full score)를.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 음악을 5번 들을때 악보를 보면서 꼭 3번을 듣는다. 어느 악기가 어느 순간에 어떤 선율을 내는지 알아내는 이런 묘미가 바로 나를 자극시킨다. 어느 정도 익숙해 지면 어느 때에 어떤 악기가 어떤 음을 내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공연을 관란 할때 다음에 어떤 악기가 어떤 음을 어떤 마디에서 낼지 먼저 알고 그 파트로 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참고로 난 얼마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관람하러 갔을때 이곡을 72번 들었고 지휘자용 악보를 17번 보았다. 2악장 연주를 하는데 콘서트마스터가 박자를 놓쳐서 그랬는지 다른 연주자들보다 한박자 늦게 들어 가는 것을 보고 순간 아찔했다.

여섯번째, 내가 앉고 싶은 자리를 정해서 내 돈을 주고 예매한다. 남이 주어서 가는 공연은 애착심이 떨어진다. 인터넷에서 대충 받아서 듣는 음악과 내 돈주고 사서 듣는 음악은 감동 자체가 틀리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의 위치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다. 예를 들어 피아노 협주곡 일때는 솔로이스트의 연주에 더 집중이 되니 왼쪽 앞자리를 예약한다. 음악은 visual art는 아니지만 솔로이스트의 카덴자 부분을 숨죽이면서 손을 꼭 쥐고 바라보는 그 순간은 바로 현실과의 단절이 되는 황홀한 경험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휘자의 바톤 테크닉을 좀더 잘 보고 싶다면 합창단 석에 앉는다 (단 금관쪽에 가까이 앉으면 상당히 괴롭다. 왜냐하면 현악 파트의 소리가 프렌치 호른에 먹혀 버리기 때문에). 차분하고 묵직한 음에 마음을 가라 앉히고 싶을땐 첼로와 더블 베이스 사이에 앉는다. 바이올린이 방방 뜰때 마다 묵직하게 자리를 잡아주는 위사람 같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렇게 음악에 따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좌석을 적절하게 예매하면 음악에 좀더 몰두하고 즐길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연에 입고 갈 의상을 결정한다. 자신을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것은 작곡가에 대한 하나의 예의의 표시다. 중요한 자리에 자신의 경건함과 예의를 갖추기 위해선 정장을 입고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이런 날 평상시에 입지 않았던 옷더 꺼내 입고 멋도 한번 부려 본다. 물론 공연장 가는 길에는 그날 연주할 음악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아마도 최고의 공연이 될것이다.

다음에 참석할 공연은 무엇이더라… 브람스 교향곡 1번,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생각만해도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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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유명한 이유는….

귀가 먹어서? 유명한 교향곡을 많이 작곡해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음악가에게 청력을 상실 한다는 것을 음악을 포기 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음악가들 중에서 (특히 작곡가를 포함) 청력을 베토벤 같이 상실 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 국민악파에 속한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이다. 그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계속 작곡을 했다. 청력 상실은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결코 멈출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연주자들이 난청 때문에 고생을 한다) 그럼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 베토벤이 유명한 것인가? 대답은 ‘아니요’이다.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작곡 했다. 후기 낭만 전까지는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음악에 표제를 붙이는 경우가 적었다.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을 예로 들어보자. 3번은 ‘영웅’, 5번은 ‘운명’, 6번은 ‘전원’ 그리고 9번은 ‘합창’이다. 그럼 왜 다른 교향곡들은 표제가 없지? 예를 들어 7번 교향곡은 표제가 없다. 지휘자용 full score를 보면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라고 기록 되어 있다. 작품 번호 92번 라장조로 작곡된 교향곡 번호 7번이라는 뜻이다. 왜 이곡엔 표제가 없을까? 작곡가들이 인위적으로 표제를 붙이는 것일까 아니면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음악의 상업성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표제를 붙이는 것일까? 그럼 표제를 많이 붙인 교향곡을 작곡했기 때문에 베토벤이 유명한 것일까? 그럼 베토벤의 스승이고 모자르트의 친구인 하이든을 보자. 106개의 많은 표제를 가진 교향곡을 작곡 했다 (특히 104번 London은 나의 favourite이다0.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의 숫자에 적어도 11배에 해당된 숫자이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좋아하는 표제를 가진 곡들을 작곡 한 베토벤이기 때문에 유명한 것인가? 대답은 ‘아니요’다.

베토벤은 어렸을때 극성스러운 아버지 때문에 엄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와 반대가 되는 경우는 바로 멘델스죤일 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술과 철학 법 그리고 음악을 교육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최고의 엘리트 길을 거치면서 성장한 전적 부루조아 스타일의 작곡가 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라이프리치 게반트하우스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 했다. 카라얀과는 다르게 스스로 오케스트라와 종신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게반트하우스 쪽에서 종신 계약을 요청했다. 불우하고 어두운 과거를 가진 베토벤, 밝고 부유한 과거를 가진 멘델스죤. 두 사람의 음악은 색깔이 틀리지만 두 사람다 훌륭한 음악을 작곡한 것은 절대 부정할수 없다. 즉 훌륭한 작곡가들은 불우한 과거를 가졌다는 이유를 사용하여 자신의 업적을 높이고 가치를 상승 시키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들려지는 것은 그가 작곡한 음악 일뿐이다. 관객들은 작곡가의 열약한 환경에 대한 설명을 듣기 원하지 않는다. 비발디는 영양 실조로 죽었고, 슈베르트도 장티푸스 때문에 31살때 요절 했고, 로쉬니는 극장 반조로 먹고 살았다. 이렇게 불우한 과거를 가진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악조건들을 뛰어 넘고 많은 훌륭한 음악을 작곡 했다. 그렇게 때문에 불우한 과거와 악조건을 가지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서 베토벤이 유명한가? 대답은 ‘아니요’다.

그럼 베토벤이 유명한 이유는 진정 무었인가? 바로 ‘고전시대’와 ‘낭만시대’의 다리를 연결해 주는 역활을 한 작곡가 이기 때문이다. 세가지 곡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고전시대의 거장이며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의 곡들을 한번 들어 보자. 규칙적이고 꼭 앞뒤가 꼭 막힌 그런 음악으로 느껴진다. 베토벤의 초기 음악도 마찬 가지이다. 교향곡 1번, 2번 그리고 4번을 눈 감고 들어 보면 하이든의 색체가 느껴지며 여김 없는 고전파 음악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에로이카)를 들어보면 전혀 다른 색채감을 느낀다. 바로 이곡이 기존의 고전파 형식을 버리고 낭만 시대의 문을 여는 첫시도이면 새로운 도약을 한 곡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보자. 3번은 꼭 모자르트 음악을 듣는것 같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은쟁방에 구슬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느낌이다. 5번 ‘황제’를 들어보면 인간이 숨죽이면서 간직하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끌어네는 역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어본다. 인간의 목소리를 제일 처음으로 instrumentalize를 시킨 혁신적 시도이다. (이것에 말러는 영향을 받아 그의 교향곡 절반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다) 베토벤의 유명한 이유는 바라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영향력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베토벤의 혁신적인 시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낭만파의 시대는 좀 더 늦게 왔을 것이며 훌륭한 곡들이 많이 작곡 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존의 관례를 깨고 새롭고 혁신적인 도약을 시도하여 성공 시켜 많은 후세대들을 위한 foundation을 만들어 준것이 베토벤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임이 분명하다.

결론 나도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세운 foundation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가 새롭고 좀더 이상적이고 바른 삶을 사는 사회를 많드는 것… 이런 사람으로 난 기억되고 싶고 이런 이유로 난 유명해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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