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사원이면…. 머리 숙이고 시킨데로 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턴 사원 2명을 고용한지 3주가 됬다. 원래 내 밑에 있었던 인턴은 아닌데 자기의 직속 상관이 외국으로 나간후로 내 밑으로 들어 오게 됬다. 중국에서 유학을 와서 시드니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별 볼일 없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인턴 사원으로 채용 되었다. 남들은 파릇파릇하고 일을 잘 한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일을 시켜 보니까… 전혀 아니다.

우선 직장 생활에서 상사에 대한 표현이 부적절하다. 나에게 쓴 이메일의 내용과 tone 그리고 단어 선정과 표현법을 보니 신경을 쓴 흔적은 보이지만 내가 읽고 난후에 받는 단 한가지 느낌은 바로 ‘대가리에 피도 않마른 새끼가 돌았나?’ 난 이런면에선 용납을 못한다. 그래서 그냥 반격을 했고 한번 밣아 버린다. 그러다가 어디서 이런 만용이 생기는지는 몰라도 다시 한번 반격한다. 그리고 이번엔 일어서지 못하게 철저하게 밣아 버린다.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역시 generation x의 나쁜 습성은 어쩔수가 없구나’.

자료 조사 및 분석을 하나 시켰다. 그런데 회계학의 기본을 무시한채 어디서 줏어 들을 것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전혀 뜻도 이해하기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한 것들을. 순간 열받아서 물어본다. ‘그만. 너 지금 니가 무슨 애기 하는지 알고 지껄이냐 아니면 남이 말한것 그대로 앵무새 같이 반복하냐?’ 그러면 또 반사적인 변명을 시작한다. 그럼 또 나의 반격 ‘첫째, 대꾸하지 마라. 둘째, 대꾸하지 마라. 셋째, 대꾸하지 마라. 넷째, 대꾸하지 마라. 그리고 너의 생각과 너의 의견은 내가 듣고 싶을때 내가 필요할때 애기해라. 물론 내가 너 같은 풋내기에게 조언을 구하면 자결해야지’.

작은 중소기업의 인턴 사원이다. 대기업에서 고용한 엘리트 인턴이 아니다. 그런데 왜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을 할까? 상황 판단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대 평가하고 substantiate되지 않는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온것일까? 물론 대학교에서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는지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기본은 바로 이것이다. ‘묻기 전에 먼저 해답을 찾아라. 모르면 공손하게 물어라. 같은 질문 두번하지 마라. 상사에게 인정 받으려면 시키지 않는 것 하기 전에 시킨것 부터 제대로 마쳐라’. 거참 이것이 사회 생활의 기본 지침 사항인데 어째서 이런것을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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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뒤 끝이 전혀 없다…..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냥 좋다. 실수를 해도 용납한다. 장점만 보이고 단점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며 정중하게 대접한다. 난 그들의 애기에 귀를 기울이고 때론 양보도 하며 타협도 하고 나의 과실이라고 조금이라도 판단이 되면 사과하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존경하는 귀빈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이다.

난 내 마음에 않드는 사람이 실수를 하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판단한다. 그들의 장점이 보이지만 단점을 보완하지 않는 그들의 무능함과 무지함이 더 크게 보인다. 이런자가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갈때 난 구급차를 부르겠지만 더 이상 더 이하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무슨 일이 그들에게 생겼다 해도 난 조금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내 삶에 그들의 존재성이 내가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 마음에 드는자와 들지 않는 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나의 ‘가치’ (value)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슨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장성한 성인인데 감정을 바탕으로 한 편가름을 하겠는가. 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고 이것을 높이 사며 존중해 주는 사람은 나도 같이 그들을 존중해 주며 높여 준다. 반대로 나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능력과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 나를 우습게 알고 나의 인생철학과 경영철학에 무모하게 도전을 하는 자들을 절대로 용납이 않된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내 마음에 드는 자들은 처음에 나에게 조심스럽게 접근 한다. 상대방의 의도와 생각을 먼저 파악하려고 신중히 검토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럽게 기대를 만들 다음 서로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 보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돌다리 두드려 보면서 건너라는 말고 같이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은 나에게 너무 쉽게 접근한다. 예를 들어 오래간만에 봤는데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잘 지내’라고 반말을 찍하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형’이라는 친밀감 넘치는 단어를 쓴다 던지. 이런식으로 경솔하게 처신을 하면 난 딱 한가지 반응을 보인다. ‘니 눈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라고…..

결과적으로 난 뒤 끝이 전혀 없다.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끝까지 간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쭈욱 똑같이 간다. 난 결코 그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흑과 백이 분명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기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거기서 끝낸다. 왜냐하면 난 누구를 지속적으로 미워하고 저주할 시간적 및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다. 아 그리고 이렇게 누굴 미워하려면 그들이 존재성이 먼저 인식이 되야 되는데.. 내 삶에 존재성과 정체성이 없는 자들을 어떻게 미워 할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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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좋아 하는 일) Vs. 잘하는 일 (해야 되는 일)

난 이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좋아 하는 일, 즉 다시 말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관현악단 경영이다. 최고의 연주자와 최고의 지휘자로 구성된 관현악단이 아니라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연주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로써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 집중해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 하는 통상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갖춘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단원들이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고 음악에 몰두 할수 있는 정도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연습 시간에 투자된 시간을 레슨비로 전환 한것에 1.65배 정도를 추가). 그리고 정직하고 깨끗한 로비 활동을 통한 정부에서 지급된 보조금 확보와 클래식 애호가들의 취향을 맞춘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얻어진 티켓 수익금과 donation을 통해서 운영 자본금을 마련하여 음악에만 몰두하는 그런 오케스트라 경영을 한번 해보고 싶다. 죽기전에 반드시.

반대로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었인가? 바로 재무관리이다. 난 과거의 회계기록을 보고 잘못된 점과 잘된점을 한눈에 파악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에 더 낳은 가치 창출을 위한 기획을 만들고 검토하는 일을 잘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지금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서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는 하지만 이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이유는 내가 어느 industry에 있냐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잘하는 일, 바로 재무관리자로써의 능력과 자질 및 경험이 풍부하다. 이것을 사용하고 싶은 industry에 들어가서 날개를 펴야 되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되는 일인데….. 정말 고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경제적 가치 창출 (연봉)이 지금 하는 일보다 아주 현저하게 낮다. 그래서 갈등이 내 안에 항상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 가족들이 누렸다 경제적 풍족함의 레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여러가지 방안책을 세워 보았는데 아직 좀 검토중인 상황이 너무나 많다. 이런 것을 보고 진격할 계획은 2가지 있는데 퇴로는 10개 이상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것을 지나친 방어주의적 사고라고 하는데 이같은 상황은 나의 능력과 경험에 대한 자신감 상실에서 오는 것으로써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기도’, 자본주의 사회적 관점으로는 ‘금전적 수익률’이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도 겹치는 부분이 만드시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어떤것을 취하고 잃어 버릴지…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시기가 나에게 다가옴을 하루가 다르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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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에서 필요악인 거짓말…..

어제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를 The Star에서 했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theme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나에게는 별로 무의미한 그냥 통상적인 행사일뿐이다.

직원들에게는 마냥 좋을 것이다. 도박을 하라고 카지노 칩스를 몇개 받는다. (물론 난 받자마자 현금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술 한잔을 마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취중진담이라하니 술에 취한 직원들의 태도와 자세 및 사상들을 알아 낼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짧은 파티 드레스를 입고 (어떤 여자에는 검은색 팬티가 은근히 들어나는 드레스를 입었다) 하이일을 신고 진하게 화장을 하고 bar를 활보하니 술에 취한 남자 직원들에게는 은근한 눈요기가 됬음을 안다. 나야 그냥 피곤한 몸을 편한 의자에 기대에 옆에 와서 앉는 형식적으로 말을 주고 받을뿐 나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다. 이때 어김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사장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그가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거래처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회사의 생존과 직원들의 생계를 보장 한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말이다. 아마도 사장님은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장님의 속뜻을 알고 같이 맞장구를 쳐서 경영에 도움을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는 한가지 견해와 다른 한가지는 내가 이렇게 속임수를 써서 지난 몇해를 회사를 생존 시켰는데 너는 이런 것을 모르고 회사가 건실하다고 믿어온 나의 naive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 스스로 감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모른다. 내 눈에 회사의 경영 방침에 있어서 비지니스 모델에 있어서 얼마나 헛점과 계선할 점이 많은지…. 그러면서 고개 숙여 사장님의 계획과 결정에 묵묵히 긍정적으로 동의하는 내가 그의 눈에는 한참 어리고 경험 부족에 지혜롭지 않는 그런 자로만 보이는 것일까? 그에겐 내가 아직도 꼭두각시 같은, 자신이 조정하기 쉬운 그런 자로만 보이는 것일까?

경영에서 필요악인 거짓말…. 전쟁에서 남을 이기기 위해서 ‘의’라는 추상명사에 자신을 치장하고 그 뒤에는 응흄한 계획을 숨기고 상대편이 헛점을 보일때를 기다려 이익을 취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남을 희생 시키고… 불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비지니스 모델과 과한 비지니스 expansion을 추진하면서 이것이 꼭 회사를 위한 것처럼 미화 시키는 경영자들의 모습을 볼때마다 난 가끔식 ‘MBA하지 말고 그냥 평범한 말단 사원으로 마음 편하게 가늘고 길게 살것을 그랬나?’라는 생각이 일년에 몇번씩 들곤 한다. 그러면서 다시 내 생각을 제정립한다. 내가 왜 이렇게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난 이렇게 경영하면 않되다’라는 경영철학을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난 이 폐단을 깰것이다. ‘경영에서 거짓말은 necessary evil’이다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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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am (A 특공대)에 나오는 대장의 이름이 한니발인데…..

한니발이 사실 누구인지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로마 역사를 모르는 직원들을 위해서 10분 정도 로마와 카르타고에 대해 애기를 해주었다. 해전에 능한 카르타고 육지전에 능한 로마는 서로 앙숙이였다. 카르타고는 지리적으로 지금의 Malta에 위치 했다. 바로 시칠리아 섬을 가운데 두고 이태리아 노려 보는(?)는 위치에 있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읆는다고 했으니 몇해를 걸쳐 카르타고의 해군에게 매번 패하기만 했던 로마가 드디어 카르타코를 크게 무찌르고 지겨운 20년 전쟁에서 승리한다. 카르타고는 그때부터 로마에게 간섭을 받고 불평등조약을 맺게 된다. 그때 카르타고의 유명한 장군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그의 아들을 신전에 데리고 가서 카르타고의 신에게 맹세를 하게 한다. 너의 생명과 생애를 바쳐서 로마를 멸망 시키겠다고. 나로 그 신전에 나아간 아들이 한니발이다. 로마의 감시를 피해 복수를 칼을 간 한니발은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로마가 초조해진 때를 맞추어서 지금의 스페인에서 로마로 진격을 시작한다. 여기서 로마의 예상을 꺽고 두 산맥을 넘는다. 바로 그 산맥중에 하나가 알프스 산맥이였고 로마는 한니날이 이곳을 결코 넘지 못할것이라 예상을 꺽고 로마의 뒷통수를 쳤다. (뒷날 나폴에옹이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를 침공하는 데 좋은 보기가 된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신세가 된 로마는 포기하지 않고 한니발과 결전을 벌이지만 아쉽게도 패하고 만다. 이때 한니발은 한쪽 눈을 병으로 잃게 되며 로마는 군대를 나누어 한니발의 모국인 카르타고를 향해 침공을 시도한다. 로마 정벌을 바로 코앞에 두었던 한니발은 눈물을 흘릴수 있는 눈이 하나밖에 없다며 한탄을 한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로마와 결전을 벌이는데.. 15년간 로마 원정에 지친 한니발의 군대는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에게 패하고 한니발은 뒷날 울분을 못 이겨 스스로 자결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한니발도 꿈을 이루지 못한 애석한 영웅과에 속한 흘러간 인물중에 하나일뿐이다.

내가 왜 한니발을 영웅과에 속한 흘러간 애석한 위인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그리고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 장본인은 왜 영웅으로 인정 되지 않는 것일까? 그는 로마 정벌을 목표로 삼고 복수의 칼을 갈아 로마 정벌을 주도 했지만 자기의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사람을 더욱더 영웅화를 시키고 추모하며 왜 더 아시워 하는지 모르겠다. 제갈량을 한번 보자. 5번이나 북벌을 무리하게 시도 했고 과로사로 오장원에서 죽었다. 한나라 황실 부흥에 힘썻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어리석은 군주를 의리라는 명분아래 섬겼다. 갈기갈기 찢어진 나라들을 통일 시켜 하나가 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어진 지도자가 되는 것이 난세의 최고 목표였다. 이것을 이룬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이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사마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애석하게 아무것도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 제갈량을 영웅화 하고 애석해 하는 것일까? 그는 그의 후사를 이을 만한 인재양성도 실패 했다. 강유는 9번이나 북벌을 시도해서 국력을 소모 했고, 마속은 자기 재주를 믿고 잘난체 하다가 가정을 뺐겨서 1차 북벌 시도는 물거품이 됬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를 두었고 뛰어난 손자 사마염을 두었고 그가 결국 삼국을 통일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마의를 기회주의자, 간신, 역신 그리고 제갈량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하는 그런 우매한 자로 깍아 내리는지…..

난 영웅의 기질은 가졌고 가진 꿈은 이루지 못하고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왜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2%로 부족한 사람들을 영웅화 시키려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영웅의 조건중에 하나가 ‘애석한 실패’가 어째서 리스트에 포함이 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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