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ye for an I….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 Robert Spillane. 아마도 MGSM 경영 행정 대학원에서 최고의 교수님이라고 불려고 과언이 아니다. 이분의 가르침 때문에 난 내 삶의 다른 dimension을 발견하고 내 자신을 한단계 성장 시킬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분이 교재로 사용 하셨던 책을 잠시 찾아 보았다. ‘An Eye for an I – Living Philosophy’. 책의 여러군데를 형광펜으로 마크를 하고 수업는 단어들에 ?표시를 했다. 아마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적어도 3개씩 나온 책이다. 서양 철학 10가지를 설명한 것인데 각 chapter가 꼭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독특한 표현 방법으로 너무나 재미 있게 쓰여진 책이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난 이책에 적혀진 내용 반정도 밖에 이해를 못한다.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알지만 읽고 나서 이해한 내용이 내것이 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완벽하게 이해를 하지 못했고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왜 그럴까? 내 나름데로 내 머리속에 정립된 인생철학관과 충돌이 일으키고 있는 것이 한가지 이유이며 신앙관과 clash가 되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이제 내 자신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이 교수님의 과목을 경청하면서 내 머리속에 이상한 생각과 절제하지 못할 강한 인간적 욕망이 내 마음속에서 용암 같이 넘쳐 흘렀다. 한순간 세계의 역사를 이해 할수 있었고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금 현대 시대까지의 발전사와 인류의 실수와 성공이 내 머리속에 가지런히 정립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과 가치 판단 기준의 유동성이 결려 되었고, 통상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을 가지고 가치평가를 기준을 잡지 않고 절대적 가치 평가 기준을 적용 시켜서 상대편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그것을 공격하고 내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기회주의자적 사고와 교활함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옴을 알게 되었다. 이런 순간 내 자신이 혐오 스럽거나 간웅적 기질에 내 자신에게 실망을 했다기 보다는 나의 이런 잠재적인 능력을 알게 됨으로 너무나도 기뻤다.

난 이 말을 믿는다. 칼이 의사 손에 들리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메스가 되는 것이고 조폭의 손에 들리면 사람을 상하게 혹은 죽이는 흉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도구도 어떤 목적에 어떻게 사용 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바로 내속에 잠재 되었던 뛰어난 능력들이 표면적으로 들어 났을때 이것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달라짐을 아니 심히 걱정을 하진 않았다.

역시 국민학교 5학년때 읽었던 마키아벨리의 영웅론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내 속에 뿌리 깊게 감추어져 있었고 이것이 싹을 트고 자라기 위해서 MBA에서 얻은 지식과 다양한 사회 경험 및 서양 경영 철학관이 비료로 작용을 해서 이렇게 내가 자랐음을 세삼스러게 느꼈다. 잠시 돌아 본다. 나의 성장 과정의 속도는 꼭 조조가 마초와 싸움면서 하룻밤에 얼음성을 지은것 같은 느낌이였다. 하지만 봄이 되면 얼음은 녹는다. 이 얼음이 녹으면 성도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면 이 성이 무너지기 전에 난 돌로 더 높은 성을 쌓아야 된다. 이제 base는 만들었다. 이제 벽돌을 하나 둘씩 올려야 한다. 차근 차근… 이럴때 기린아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데 이 자식은 성탄절 잘 보내라는 겉치레 문자 메세지도 없고 크리스마스 선물 아니면 카드 한장 없다. 그냥 실망스러울 뿐이다. 나도 사람이니 얼마나 아쉬운지. 특히 내가 기대를 했던 기린아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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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보세요… 선교는요 기독교인으로써 당연히 해야 될 책임입니다’. 가끔씩 교회에서 그리고 호주 교회에 출석하는 젊은 청년들을 처음 보고 말문이 트여질려는 순간에 내가 주로 던지는 질문이다. ‘인생의 목표가 뭡니까?’ 그럼 대부분의 대답이 ‘하나님의 뜻데로 사는 겁니다’ 혹은 ‘선교하는 겁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 다음부턴 대화가 진행이 되질 않는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 될 일들 자기 인생의 최고 목표 처럼, 학생이 신분이면 학업에 열중하고, 부모를 모신자는 효도하고, 가장은 가정에 충실하고, 회사 임원은 회사 경영에 힘쓰는 것등이 모두것이 자신이 맡은 임무에 책임을 지고 이행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선교의 사명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이것을 마냥 대의 인것 처럼 자신 있게 애기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냥 한숨이 나올뿐이다.

추상적인 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체화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획안과 timetable이 있어야 한다. 이런것은 establish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마냥 아무개가 되어서 아무것을 할껍니다 라고 애기하면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내 입장에선 그냥 암담하다. 난 한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파악하는 것은 미숙하지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술력은 잘 알아본다. 이것이 7년반 동안 습득한 경영방법중에 하나이다. 직원들이 기술적인 장점만을 보고 그것을 사용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 회사안에서 인재관리의 첫벗째 항목이다. 이런 기준점으로 젊은 청년들을 보면 그냥 미래가 잘 않보인다. 내가 진정 원하는 대답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화려한 미래의 계획도 아니다. 그리고 과거에 이루어 놓은 업적도 아니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은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자세일것이다.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현재에 닥친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내일 모레에 벌어질 일들을 어떻게 알고 계획하고 대비를 할수 있을까…. 아직까지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현재 저는 X라는 일을 하고 있고 Y라는 위치에 Z이라는 시간안에 다다르기 위해서 현재 ABC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목표는 Y의 위치에 도달하면 제정립을 할것입니다’. 이런 인재를 과연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이런 기린아가 내 주의에는 없다. 난 이제서야 제갈량의 고민을 알것같다. 인재가 없는 촉의 땅에서 그의 외로운 북벌 시도… 인재 발굴…. 아무리 돌아 보아도 기린아의 재목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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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 드릴께요…..

무슨 않좋은 일이 있다고 애기하면 반사적 표현으로 ‘기도해 드릴께요’가 백발백중 나온다. 그렇게 반응이 나오면 그냥 시큰둥하다. 왜냐하면 나에겐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통상적인 접대용 멘트이니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러함으로 내가 존경하는 일부 특별 계층의 사람들은 나에게 이 지극히 평범한 접대용 멘트 ‘기도해 드릴께요’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기독교인들이다. 그럼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가 얕고 성숙도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그건을 아니다. 이들은 능력 있는 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풀어 설명을 하면 이렇다.

나같이 많은 경험을 해보고 상대적으로 비교해 사회적 진출이 빠른 사람일 경우 일과 관련된 문제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자기 계획 되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이 진행 되는 과정중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이 만약 자기 능력안에 조정이 되는 부하직원들이라면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만약 내 능력 밖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면 종종 화를 내게 된다. 이러는 순간 난 감정 적이 된다. 그러면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고 문제를 대처할 방법과 방향 제시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가 된다. 이런 순간에 내가 필요한 것은 ‘기도해 드릴께요’가 아니라 ‘내게 문제점을 한번 애기해봐. 들어줄께.’라는 대답이다. 이 대답이 어째서 ‘기도해 드릴게요’ 보다 더 효과적이냐고? 멍청하긴…

난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일은 순서와 서열이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고 과정이 있고 목표가 있다. 이런것을 하나 둘씩 실마리를 풀어 나갈려면 가끔식 내가 해온 과정과 앞으로 해야 될일들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 남에게 이것을 구두로 애기하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잘못된점을 찾아 낼수가 있으며 보안점과 수정안을 찾아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쓴 글을 내 자신이 듣게 소리내어 읽음으로 해서 내가 쓴 글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독백의 효과이다. ‘내게 애기 해봐’라고 말하는 자들이 본질적인 의도는 내 애기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 주기 보다는 내가 내 자신에게 스스로 애기함을 통해서 내 스스로 문제점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기도해 드릴께요’라는 접대용 멘트는 나에게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라는 심리학 책이 있다. 남들이 고민을 애기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불만을 표현 그리고 동정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이 심란하고 이러하니 네가 내 애기를 듣고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내 편좀 들어주어라’라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에게 ‘기도해 드릴께요’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답변이 아닐까? 아니면 이것이 기독교 version의 “I don’t care”를 좀더 듣기 좋게 표현한 것일까?

누가 나에게 이런 애길 했다. ‘너무 힘들어요. 뒤에서 수근 거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새끼들 누굽니까? 내가 인천 앞바다 썰물 일때 10미터 파서 뭍어 버릴까요? 그럼 시체도 못 찾을텐데’. 이것이 기독교적인 대답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해보자. 대화는 쌍방 통행이다. 상대편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에 합당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동정의 한표를 던져 보자. 쓸데 없이 중립적인 입장을 고집하면서 ‘기도해 드릴께요’라는 미사여구 난발하지 말자. 이 말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보자 ‘기도 진짜 합니까? 자기 말에 책임 지십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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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자의 5대 로망중에 한가지 – 중국의 책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중국 고전 12편’은 시간 날때마다 한번씩 읽기 정말 좋은 책이다. 중국 고서 12편의 핵심을 뽑아서 만든 요약집이다. 내용을 읽어 보면 정말 이제는 나에게 더 이상 신기하지 않는 concept, 다시 말해 이제는 나에게 상식 수준으로 되어 버린 내용들이다.

오늘 아침 컴퓨터 앞에서 밥을 먹으면서 다음의 글귀를 읽었다. 예부터 천자에게 간언하는 좋은 신하가 일곱 있으면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에게 간하는 어진 신하가 다섯 있으면 국란이 일어나도 나라를 잃지 아니하고, 영주에게 간하는 충복이 셋만 있으면 그 주인이 도리에서 벗어나더라도 영토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씩 고민한다. 난 주인에게 간언을 하는 충신인지 아니면 내가 살길을 도모하기 위한 간신배의 세치의 혀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 된다. 현명한 신하와 총명한 신하의 차이는 같은 말을 해도 적절한 시기를 맞추어서 주인께 보고를 한다고 했다. What보다는 When을 맞추어야 한다. 나쁜 소식을 언제 어떻게 전달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책을 마련 할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맞추어서 주인께 고해 위기를 극복해야 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식 나쁜 소식을 듣기 좋게, 심각한 문제도 긍정적으로 해결 할수 있는 방향과 함께 보고를 한다. 이런 과정과 행위가 나에겐 어떨땐 간신배의 소행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남의 눈치를 보고 섬긴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더 이상 굴욕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에게 더 화가 나는것 같다. 언제까지 고개를 숙이고 주인 아래의 신하의 역확을 해야 되는 것일까? 재상이면 뭐하는가? 왕이 아니인데…. 내 위에 나를 지배하는 자가 존속을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될것인가… 이것이 2012년도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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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 조회수 하루 303회… 최고 기록….

가끔식 놀랜다. 내 블로그에 와서 글을 일고 가는 사람의 평균 숫자가 이번 달에는 하루 평균 40회가 될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지난 9월달에 조회수가 1500번을 넘긴것으로 기억 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내 블로그를 읽는 것일까?

예전에 나를 아는 어떤 한 사람이 이런 애기를 했다. ‘블로그에 적힌 내용이 너무 공격적이고 자극적이며 반기독교적 사상을 담고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혐오감을 줄수도 있는 내용이 많다’라고. 그래서 난 이렇게 답변을 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나만의 공간이며, 내 블로그를 읽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3명이며 난 그들을 위해서 나의 짧은 식견과 지식 및 경험을 토대로 내 생각을 마음데로 아무런 제약 없이 적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내 블로그를 적힌 글을 좋아 하지 않는 다면 그냥 읽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난 이 그들을 당신의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니 당신이 나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할 필요도 공유할 필요도 없으며 당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난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시간도 없다.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If you don’t like what you read, then simply f___k off’.

역시 인생은 모든면에서 대립적 관계를 유지 한다. 행복과 불행, 가난함과 부유함, 성공과 실패.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이런 애기를 했다. ‘당신의 글을 읽으면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감추고 싶은 내면적으로 숨겨진 마음을 빙빙 돌려서 애기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애기하는 용기가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줍니다’라는 말을.

참 신기하다. 같은 글들을 읽는 사람들이 한명은 긍정적으로 다른 한명은 비판적으로 바라보다니… 이것이 나의 위치이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럴땐 영어가 더 편하다. If you don’t like what you are reading, then it is obvious to me that this is a wrong place for you to be hence my suggestion is to go and find yourself something useful other than reading my blog. For those who enjoy reading my blog, I thank you but please be mindful that this is a place where I simply and openly disclose my thoughts and views with a very, very skewed / polarised mind of mine. In other words, there is no reason for anyone to necessarily agree with anything that I have said. However, if you have found anything useful, then please extract and take them in your best interest but I doubt that you will find that 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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