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에서 빈부의 격차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다….

소수의 사회 지도층에게 부가 지나치게 편중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곤궁한 삶을 살고 박탈감에 빠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바로 절대다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싫어서 공산주의로 돌아가고 싶은가?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 자본주의 현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자유경제 자본주의에서 골머리를 쓰고 있는 부분이 바로 사회 복지 제도를 납용하는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숙자들 그리고 만년 백수들이다. 이들이 노숙자의 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들이 놓인 환경을 극복하지 못해 정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통계상으로 대다수의 노숙자들은 노숙 생활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만년 백수도 이렇다. 병들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기본적인 교육과 의사소통을 할수 있다면 저임금 단순 노동직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나름데로 기회 비용을 계산한다 – ‘막노동으로 일해서 버는 돈과 세금 징수 Vs. 정부에서 주는 생계수당’.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고 적은 돈을 버느니 차라리 일을 아주 하지 않고 약간 더 적은 돈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를 펼친다 – 우리 사회의 실업과 빈곤은 이 사회의 시민으로써 모두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경쟁보다는 협동, 효율성보다는 공평과 정의,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해서 시장 경제 질서의 온전환 회복을 추구 함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자는 것이 이상주의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가능할 것일까?

뛰어난 자는 경쟁에서 앞서 간다. 앞서간 자는 first mover advantage라고 하여 먼저 많은 것을 얻게 되고 소유하게 된다. 먼저 경쟁에 앞서 나가기 위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아발전에 투자한다. 선의의 경쟁이랑 다 같이 한방향으로 같이 가자는 것이 아니라 출발선 상에 다 함께 동등하게 서자는 것이다. 먼저 달려 이끄는 자가 있는 반면 뒤 한번 돌아 보지 않고 자기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경주를 하는 그는 먼저 결승점에 도달 할것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 지도층이고 100명중에 1명이 이런 꼴이다. 어째서 우리는 왜 상위 1%를 싫어하고 저주하고 싫어하는 것일까?

빈부의 격차…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모든 것을 소유하고 나누지 않는 부자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출발 선상에 서기전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겨울이 오기전에 양식을 준비하고 집을 준비하지 않은 배짱이와 같지는 않는 자의 잘못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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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루주아의 자녀들을 싫어 하는 이유는…..

부모가 소유한 것이 꼭 자기가 소유한 것처럼 가장 할때가 가장 가증스럽다.

원래 부루주아의 어원은 프랑스부터 시작 되었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두개의 개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은행가, 법률가, 의사등 귀족들을 위해 일하고 평민들에게 존경 받는 이 지도층은 보이지 않는 제 3의 계급을 형성 했으며 프랑스 대혁명 운동을 뒤에서 조정한 장본인들이다.

가끔씩 자수성가라는 4자성어 신물이 날때가 있다. 어금니 한쪽이 닳아 없어질만큼 악과 독기를 품고 여기까지 왔다.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대부분 이민 1.5세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 부모님 그늘에 머문다. 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분가해서 졸업하고 취업한후 결혼까지 부모에게 금전적으로 기댄적이 한번도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 내가 다 스스로 알아서 해결했고 내가 구입한 모든 부동산 투자용 주택들도 부모님이 주신 종자돈 없이 다 내가 스스로 벌어 이루었다. 이것이 내 자신을 대부분 자랑스럽게 하면서 동시에 내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다. 가끔씩 나도 부모님이 재벌이였다면… 나도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훌륭하게 성장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법 아래 내 지친 내 자신을 자극한다.

내 주의엔 재벌은 아니지만 부유한 집안의 자재들이 있다. 사촌들중에도 있고 대학교때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 난 그들을 바라 볼때 극단적 비판주의자 관점에서 본다. 일부러 내 자신에게 이렇게 애기한다 – ‘그들은 그냥 부모가 이루어 놓은 기업에 기생충 같이 붙어 피를 빨아 먹는 존재 일뿐이며 그들은 그냥 부모가 지어 놓은 집 지키는 강아지 수준이라고’. 물론 내 극단적사고가 100% 들어 맞지는 않음을 아주 잘안다. 그러나 내가 아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것을 자기의 것처럼 자랑하고 부모의 재산이 자신의 재산인 마냥 내세 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의 능력을 잘 분석해보면 그들은 부모가 이룬 것들을 스스로 노력해서 이룰만한 능력이 없다. 다시 말해 부모가 다 지어준 먹음직스럽게 생긴 하얀 쌀밥을 가지고 자신이 지은 마냥 뽑내는 것이 꼴보기가 싫다. 그리고 나같이 바둥바둥 사는 자수성가형을 보고 인생을 피곤하게 산다고 하며 즐길줄 모른다고 한다.

내가 보는 나의 재산은 이렇다.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법적으로 내가 주인이며 내가 마음데로 할수 있음을 말한다. 아직 부모가 소유한 재산의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은 자식의 것이 아니며, 자식의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하나 자식 마음데로 처분을 못한다면 이것은 부모의 것이다. 부모한테 물려 받을 재산을 계산에 두고 언제 상속을 받을지 걱정하고 계획하는 부루주아의 자녀들…. 갑자기 용가리가 된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태어 났고 호주에 와서 대학교 마치고 영주권을 획득하고 한국에 돌아가 결혼을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호주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은 이유는 결혼한 남편의 시부모님의 재산 상속을 받을때 문제가 있을까봐 호주 시민권을 일부러 획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것을 전재로 두고 결혼한 조건부 결혼… 이것을 선경지명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한 여자의 재산 상속을 위한 영특함이라고 해야 되나….. 그냥 아침부터 좀 우울해진다. 이런 종자들과 내가 associate해야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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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복습하면서 Part III…..

누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간혹 한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럼 난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사마의이다.

나관중의 왜곡된 시각으로 제갈량에게 매번 패하기만 하는 인물로 묘사 되지만…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면 ‘제갈량이 북벌을 5번 시도 했는데 5번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실패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대답은 바로 ‘사마의’이다. 그런데 제갈량의 5번 북벌을 실패하게 만든 사마의가 어찌 제갈량에게 매번 지기만 하는 일개 장수로만 묘사되는 것일까? 당시 중국에선 충과 효 그리고 의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사마의 같은 기회주의자는 불충불의한 자로 인식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깍아 내림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반문하는 자들이 더러있다. 군량 조달의 어려움 그리고 내분등을 핑계로 삼는다. 군량 조달이 어려움을 알고 무리하게 북벌을 시도한 어리석음의 책임이 제갈량에 있고 또 내부 분열 (군량을 조달하는 상서령 이엄과의 껄끄러움 관계 그리고 그의 부하 구안의 배반)을 제대로 막지 않은채로 북벌을 무리하게 시도한 책임이 제갈량에게 있는 것이다. 집안이 평화롭지 않고 씨끄러운데 어찌 바깥 일을 제대로 충실히 행할수 있을지….

사마의는 제갈량의 최대의 약점을 알았다. 바로 군량이다. 시간이 소모 되면 군량이 소모 되며 군량이 없으면 사기가 떨어진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제대로 싸울수 없으면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사마의는 이렇게 방어에 집중해서 촉군이 스스로 물러갈 때를 기다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마의의 자세를 보고 겁장이 혹은 비겁자라고 애기를 하는데 손자께서도 싸워서 성을 취하는 것이 가장 하책이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셨다. 사마의는 싸우지 않고 제갈량을 이긴 것이다. 간혹 제갈량의 도발에 이끌려서 싸움을 걸었다 매번 참패한 것으로 나관중은 기록을 했지만 사실은 삼국지 정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제갈량과의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사마의가 제갈량 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그의 정치력이다. 조조가 죽과 위황제가 된 조비의 오른팔이였지만 그는 항상 조씨 귀족들에게 견재를 당했다. 조비가 죽고 조예가 황제가 된 후에 조진과 조휴에게 견재를 받았고 모함을 당했다. 그때 마다 사마의는 몸을 낮추고 숨기며 화를 피해 갔고 자신에게 기회가 올때까지 치욕을 참고 기다렸다. 나관중은 사마의가 조씨 귀족들에게 당한 능멸을 자세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조예가 등극하고 스스로 변방으로 부임을 청한 것으로 보아 조정 안에서의 권력 싸움이 얼마나 심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갈량이 아들이 있었다. 제갈첨이였다. 아내 황월영이 늦게 낳은 아들인데 등애가 면죽관을 침공 했을때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전투 중에 자결한 것으로 기억 된다. 만약 자기 칼에 자신의 목숨을 끝을 용기가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고 군사를 재정비하여 방어를 했어야 했다. 절개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목숨을 소홀히 함이 과연 난세에 충과 의를 지킨다고 할수 있을 것인가. (방금 기억이 났는데 제갈교를 양자로 얻었다) 사마의를 보자. 사마소와 사마사 같은 뛰어난 아들을 가졌다. 평균 수명이 50살이였던 그때에 그가 살아서 천하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그는 자신의 야망을 이어 받아 이룰수 있는 두명의 뛰어난 아들을 대신 키웠던 것이다. 이것이 사마의의 선견지명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후세에 촉나라를 붙들어 이끌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다. 자신의 피붙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인재 발굴과 양성 및 교육 그리고 번영에 기반을 마련한 사마의가 승자임이 분명하다.

사마의는 수없이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분함을 이기지 못해서 자진하지 않았다. 난세에 자신의 목숨을 끊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 보았자 현실적으로 아무런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자 반간계에 빠진 어리석은 군주 유선의 부름을 받고 성도로 귀환 했다. 선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왕실 제건을 이룰수 있는 순간이 목전에 왔는데 그는 어리석게도 충의를 빌미로 회군을 했다. 제갈량은 관습에 얽매여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맹달이 반란을 도모 할때 조정에 고하지 않고 군사를 조예의 허락 없이 일으켜서 반란군을 처리 했다. 선처결후보고가 나라를 살린 것이다. 내가 만약 제갈량이 였다면 장안까지 진격하고 아니면 낙양까지 더 나아가 중원을 평정함으로써 자신의 무고함을 대신 보여줄것이다.

결과 중심적 사고로 본다면 제갈량의 노력은 아무런 결실 없는 부지한 것이였다. 사마의는 달랐다. 자신이 스스로 기업을 세울수 없는 상황에 몸을 낮추고 시기를 기다려 남이 이룬 기업을 한번에 빼았고 순식간의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 두 아들을 잘 양육하여 천하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자신의 손자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마의가 모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아니 남이 만든 기반을 사용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것이다. 이것을 기업 경영의 관점으로 본다면 CEO를 잃어 버린 튼튼한 기업을 헐값에 사서 회사명을 고치고 경영진을 자기의 측근으로 바꾸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적 관점으로 본다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을 잡는 구테타라고 할까. 이탈리아의 ‘두체’ 무솔리니가 파시시스트 당이 정권을 잡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기회주의자라고 불려도 좋고 간특한 효웅이라고 불려도 좋다.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 받는 현실이다. 이루기 위해선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하고 많은 인재들을 부릴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의였다. 충, 효, 의가 하찮은 추상명사로 인식 되고 이 단어들의 진실된 가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이런것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적 사고는 성공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성공하지 못하고 시도만 하면서 애석하게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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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복습하면서 Part II…..

삼국지하면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이로 시작 되고 최고의 책략가 제갈량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들은 나관중에 의해서 사실에서 과장으로 과도하게 영웅화적 묘사와 포장이 된 인물들이다.

유비는 서촉이라는 곳에 인재가 부족하다하여 지나친 인본주의로 사람들을 정으로 대했다. 대표적인 예로 유비는 이엄과 제갈량 사이를 완하 시키지 못해서 나중에 북벌이 실패하는 원인 요소를 제공하게 되며, 대의와 명분 그리고 실리를 추구하기 보다는 동생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동오 정벌을 나서지만 실패하고 막대한 군력 손실을 입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리석고 무식한 자식을 두었다. ‘아두’라고 부르기 보다는 ‘아둔’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만한 역사서에 기록될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관우는 한가지 고칠수 없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오만’이라는 병이다. 관우 위에는 유비 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오합지졸이라고 여겼다. 육손의 재주와 능력이 주유, 노숙, 여몽에 못지 않을 만큼 뛰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고 문관 출신에 공이 없고 명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한 관우는 형주의 방어를 소홀히 해서 북벌의 기반이 되는 형주땅을 잊어 버리고 잡혀 죽게 된다.

장비는 무용 많이 뛰어 날 뿐이다. 책에서 간간히 그의 지혜로움이 과장 되게 들어나는 곳이 있지만 그는 그냥 용맹함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자였다. 예를 들어 큰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 부하 장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내부 배신자에게 목이 달아났다는 것은 그가 얼만큼 성격이 더럽고 포악 했으며 상벌이 분명치 않고 군대를 이끌 자질이 부족함 사람임을 증명해 준다.

제갈량은 무리한 북벌을 다섯번 시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과로사로 죽어서 오장원에 뭍혔다. 사람들은 ‘오장원에 지는 별’이라는 아름답고 애석한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그의 죽음을 추모했지만 나 소용 없는 것이였다. 그는 자신의 뒤를 제대로 이을 만한 인재를 마련해 놓지도 않았다. 강유에게 병법서를 물려준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강유는 9번이나 무리한 북벌을 시도했고 국력을 쇠퇴시켰고 촉의 멸망으로 이끌었다. 제갈량에게 받은 병법서를 사용하여 촉의 험란한 길과 관문을 사용해서 천연적 지리 조건을 사용해서 방어를 하고 내실을 튼튼히 하고 동오와 화목하고 위를 견제를 하면서 위의 분열을 기다리면서 (그러면서 유선이 빨리 요절하고) 한실 부흥을 도모 했음이 현명한 선택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애석하고 또 어리석게 죽은 인문들을 보면서 아쉬워하고 슬퍼하는지 난 모르겠다. 그들의 시작이 미비했고 과정이 힘들었고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들이 이룬 열매는 아무것도 없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그들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을 이루고 얻으면서 오만해져 갔다. 그리고 대의명분이라는 이 4가지 단어 아래 자신에게 올가미를 씨우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불가능하고 무모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강한 것은 부러지게 되어 있다. 상황과 시대 그리고 시기에 맞게 유연성 사고를 가지고 처신해야 된다. 이것이 바로 최후의 승자 사마의가 지향하는 객체지향주의적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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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복습하면서 Part I…..

오래간만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최근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서 책장 한곳을 비워 꽂아 놓았다. 그중에서 우연히 눈에 띤 책이 한권 있었다. 바로 중국 작가 슈모가 지은 ‘비지니스 손자병법’이였다. 나에겐 이제 그저 상식 수준이 되어버린 내용을 담은 기본 지침서 정도라고 할까. 읽으면서 꼼꼼히 체크를 한 부분을 보면서 옛 기억을 회상 했다. 그중에 삼국지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적힌 부분을 찾았다. 바로 제갈량이 왜 한실 부흥을 실패하고 아쉽게도 오장원에 지는 별로 남았는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견해를 적은 부분이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나도 한번 복습을 해본다.

제갈량이 한실 왕조 부흥에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방법론이 대해 많이 논한다. 예를 들어 형주를 중심으로 하여 북벌을 시도하지 않은 점, 장안 공략을 위한 위연의 전략을 듣지 않은 점, 동오 정벌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점등을 애기하곤 한다. 이런 방법론들에는 제갈량의 잘못한 principle이 내포되어 있다. 바로 잘못된 인사정책 때문이다.

형주를 예로 들어보자. 형주를 다스리는 사람은 유비의 의형제 관우였다. 관우의 무공이 뛰어남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촉나라의 북벌을 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북으로는 허창과 가깝고 동쪽으로는 오나라를 있었다. 제갈량이 관우에게 당부를 하길 북에서 위나라 공격하면 방어하고 오나라와는 화목을 유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관우는 천상천하유아독존안하무인이였다. 그는 동오를 우습게 봤다. 여몽은 경계를 했지만 육손은 우습게 여겼고 형주 방어를 소홀히 한탓에 형주를 뺏기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이 과연 관우의 실수였는가?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이문열씨가 쓴 소설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을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제갈량은 항상 관우를 견제를 했는데 유비의 제 2인자가 되기 위해서 일부러 관우를 죽게 한것은 아닐까?’ 아니면 ‘제갈량은 관우가 패전 했을때 맹달과 유봉에게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게 일부러 손을 쓴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이것은 제갈량의 절대적 과실이였다. 형주에는 관우 같은 오만한 자를 앉게 하는 것이 아니였다. 문무를 겸비한 충신 조운을 배치해서 북의 침공을 막고 동과 화목을 이룰수 있는 겸손하고 신중한자가 필요 했던 것이다. 물론 유비의 둘째 의동생이니 체면을 봐서 형주땅을 다스리게 했다라고 해도 제갈량은 반대를 하고 더 적합한 인재를 형주를 지키게 하고 서촉 원정이 끝나고 바로 형주로 돌아와 수비에 힘쓰고 관우는 다른 요충지를 지키게 했어야 했다.

장안 침공을 예로 들어보자. 제갈량은 위연의 무공이 뛰어남을 알았지만 반골이 있고 불충함을 알고 그를 경계 했으며 그의 능력을 높이 사지 않았다. 위연 같은 자는 단순해서 인정해 주고 상을 주고 칭찬을 해주면 목숨바쳐 싸울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위연이 제갈량과 함께 첫북벌에 나섯을때 그는 장안 공략을 위해 (지역 이름이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양동작전을 펴고 시간을 끄느니 차라리 기습공격으로 장안을 공략하자고 했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세심한 (가끔씩 소심하다는 표현이 적합 할 때도 있다) 성격의 소유자가 이런 무모한 도박을 할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갈량이 위연의 방법을 ‘불확실한 위험요소’ 때문에 단순히 거절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방법이 위연에게서 나왔다는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진격 진로가 자신의 수제자 마속에게서 나왔다면 제갈량은 그자리에서 받아 들이지는 않아도 고려해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어리석음이였다. 자신이 불충하다고 믿는 자의 말은 받아 들이지 않고 그 불충함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자를 다스릴줄 몰랐다. 결국 그는 용맹한 장수 위연을 마대를 통해 제거 시키게 했다. 제갈량이 죽자마자 내분이 일어 남은 그가 인사관리에 결코 뛰어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인사관리 애기가 나오면 마속 애기를 빼 놓을수가 없다. 첫북벌이 실패의 요인은 사마의의 부임도 아니고 바로 가정 전투였다. 가정은 촉군의 목구멍 같이 중요한 곳이였고 이곳이 함락 되면 촉군의 첫 북벌은 물거품이 될만큼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 신참인 마속을 보낸 것이다. 제갈량 수제자로 병법을 배웠지만 자신이 직접 군사를 통솔해서 전투를 한적이 없는 초보자였다. 이런 사람을 가정에 보낸 것은 제갈량의 치명적 실수였다. 제갈량이 이곳에 보낼 장수는 단순히 길목에 진을 치고 위군의 진군을 저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마속은 자신의 용병술을 자랑하고자 산위에 진을 치고 부장 왕평의 조언을 세번이나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결국 식수 부족에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촉군은 대부분 위군에게 항복하고 무참히 패하고 만다. 만약 이 곳에 조자룡 같은 장수를 보냈다면 아마도 첫 북벌은 아마도 장안까지 성공하지 않았을까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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