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견디는 삶도 도전하는 삶만큼 위대하다”

라는 말은 내가 사회생활  3년차들에게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책명과 저자명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첫해는 정신없이 보낸다. 실수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배운다. 더 이상 부모님께 용돈 달라고 손 벌리지 않아도 되고 지겨운 편의점 알바와 이별하고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된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회생활 2년차가 되면 이제 노하우가 생긴다. 시행 착오를 통해서 얻었던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일할때 실수도 적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첫해보다는 올라간다. 나도 모르게 점점 자신감이 넘친다. 출퇴근 할때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유리창에 비추어 볼때 그리고 동창들에게 자신의 사회생활 ‘무용담’을 근사하게 풀어 놓고 지난주에 발급 받은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세상을 얻은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사회생활 3년차가 되면 회의감 때문에 힘들어진다. 예전엔 실력과 성실함으로 승부수라 생각 했는데 나보다 일을 못하던 입사 동기가 상사에게 더 이쁨을 받고 자기보다 먼저 승진할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젠 더 이상 실력과 성실함만으로는 사회생활에서 결코 승자가 되지 못함을 깨닳고 뒤늦게 정치력을 키우려 하지만 자신은 마치 바둑판에서 이미 죽은 바둑돌 같은 느낌이 들면서 지난 2년 동안 으쓱해진 어깨가 나도 모르게 움추려 든다.

여기서 회의감이라는 씨앗이 척박한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며 자책감이라는 꽃이 핀다. 왜 내가 이 직업을 선택 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졸업을 했으니 빨리 취직을 해야 부모님께서 덜 걱정하시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 직업을 성급하게 선택한 것은 아닌지 혹은 이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된다. 이 직업이 정말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인지 아니면 내 발목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모든 선택이 올바르지 못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책감의 꽃이 지면 두가지중 한개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는 자괴감이라는 열매이며 다른 열매는 자기성찰의 열매이다. 내가 사회생활 3년차에게 ‘일상을 견디는 삶도 도전하는 삶만큼 위대하다’라는 말은 자기성찰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일종의 비료이다. 직업을 얻고 나서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만약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때 하면 된다. 내 선택이 옳고 그름을 탓하기엔 이미 늦었다. 선택에 의한 결과를 대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내 스스로 지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의 자기의 사회생활이 무의미 하다고 자책 할 필요가 없다. 만약 지난 3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런 고민을 통한 자기 성찰을 할 기회조차 부여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을 견디지 못해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비겁한 차선책이 될수도 있다. 끝없이 고민하고 견더야 한다. 그럼 지금보다 더욱더 견고해지고 강해질것이다. 지난 3년이란 세월이 아깝다고 무의미 하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목표와 방향을 다시 수정 할수 있는 시간이 바로 청춘의 고유한 자본이기 때문이다.

Posted in 나의 경영관/인생관 | Leave a comment

“젊은이들이여 꿈과 열정을 가져라”…..

라는 메세지를 담은 강연 비디오를 보라고 내게 보내주면 두번 생각하지 않고 delete 버튼을 꾸욱 눌러서 삭제하며 누군가 페북에서 ‘체인지 그라운드’나 ‘열정에 기름붓기’ 포스팅을 공유하면 화면에서 사라지게 한다. 내가 왜 이러는지 사회생활 2년차인 후배에게 설명을 한것을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했다.

‘꿈’과 ‘열정’이라는 단어는 성공한 리더의 강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꿈’ 대신 ‘목표’와 ‘이상’이라고 하기도 하며 ‘열정’ 대신 ‘패션’ 혹은 ‘드라이브’라고도 한다. 좋은 말이고 동기를 부여 하는데 자극적인 단어들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은 최근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수가 있다.

‘꿈’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서 당장 시작해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호주에서 3년재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고 일년 연봉이 $54,869 넘으면 학자금 대출 받은것을 갚아 나가는 것은 극히 정상적이며 당연한 과정이다. ‘꿈’이라는 단어 때문에 남들이 다하는 정상적인 과정에서 벗어 나려고 하며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려 한다. 그런 과정에서 현실 도피하거나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오늘 제대로 밭을 일구지 못하면 내일 수확할 곡식은 없음을 기억해야 된다. ‘꿈’은 아직 미숙하고 준비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에게 달콤한 솜사탕 같다. 핑크색에 큰 솜사탕은 달콤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결코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데서 멀어지게 한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아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적용 되지 않지만 어영부영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에겐 자신의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게 되며 그 순간부터 삶의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직장에 대한 애정이 식고 생산성도 효율성이 저하 되고 자기에 맞는 새로운 일을 찾고 잦은 이직을 하면서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열정’이 바로 이런 악순환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열정’이라는 단어가 항상 ‘꿈’과 수반 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난 13년 동안 한 회사에서 스타트업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저 싫지 않았고 잘할 자신이 있었고, 또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16년의 사회 생활에서 깨닮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먹고사는 생계유지 문제가 꿈보다 우선이다”라는 것이다. 생계유지가 안되는데 내가 꾸는 ‘꿈’은 ‘망상’이 되고 ‘열정’은 ‘오기’가 된다. 이런 사람들에겐 ‘꿈’은 더이상 실현 가능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그냥 ‘판타지’가 될 뿐이다.

올해 모교에서 모교 학부생을 위해 특강하면서 ‘꿈’과 ‘열정’에 대해서 이렇게 애기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꿈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일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꿈을 포기한 사람은 더욱더 아니다. 그리고 꿈이 있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 환경은 밥그릇 (생계유지)을 잘 지켰고 멀어졌던 판타지였던 꿈을 현실화를 시켰다. 꿈과 열정이라는 단어에 현혹 되지 말라. 대신 목표와 실력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만약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싫지 않고 잘 할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훌륭한 목표고 꿈이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라.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그에겐 평생 꿈인지도 모르니까.”

 

Posted in 나의 경영관/인생관 | Leave a comment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그리고 돈 잘 버는 일

중에 어떤 일을 해야 될까요?”라는 질문은 졸업을 목전에 앞둔 학부생들이 가장 많이 한다. 2012년 8월 University of NSW에서 첫강의를 마치고 받은 첫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이 마지막해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준비를 하려는데 어떤 일을 선택해야 될까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그리고 돈 잘 버는 일중 어떤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권한다. 그래야 능률이 오르고 오래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좋아한다고 능률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좋아 하는데 잘하지 못하면 능률이 떨어지고 그럼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다. 바로 ‘잘하는 일’을 할 경우에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잘하는 일’을 권한다. 이전에 설명한것 같이 ‘잘하는 일’을 할 경우에 능률이 오르며 또 오랫동안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하는 일’을 해도 돈을 잘 벌지 못하면 오래동안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직업이란 생계유지를 위한 필수 경제활동이며 ‘잘하는 일’이 충분한 소득을 만들수 없을때 그 일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돈 잘버는 일’이 정답이라 한다. 자본주의에서 사는 우리에겐 직업이란 생계유지를 위한 필수 경제활동이다. 그런데 돈은 잘버는데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경우 서서히 만족감이 떨어지면서 생산력과 효율성이 저하 되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학생들에겐 어떤 대답을 주었을까?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일을 하면 자연히 그 일이 좋아지게 됩니다. 그런 직장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며 처음엔 동의를 하지 않기도 한다. 내가 이런 대답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어디에서 (somewhere)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somewhere는 그들이 원하는 곳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경영학과를 졸업한 학부생이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철강수출업무를 맏고 싶어한다. 회사측에선 지원자가 적성과 선호하는 부서를 고려하겠지만 최종결정은 조직의 입장에서 만들어진다. 즉 회사의 입장이 지원자의 입장보다 우선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철강수출업무에 관심이 있는 지원자는 섬유생산쪽에 적성이 더 맞고 인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부서에 배정을 받는다. 즉 첫 사회진출에서 자기가 원하는 조건 100%을 충족 시키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렇게 ‘어디에선가’ 시작한 사회초년생은 사회의 달콤함과 쓴맛을 보게 된다. 만약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게 되고 또 돈을 많이 벌게 되는 일이라면 자연히 그 일을 좋아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파생 효과가 있다. 바로 그것을 ‘여유’라고 부른다. 이렇게 여유가 생기면 주변을 돌아 볼수 있고 자기가 못해본것을 시도도 할수 있으며 다양한 것을 경험 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반면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은 실수가 잦고 능률이 떨어지며 그것에 대한 댓가로 높은 보수를 받지 못한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 될 수록 일에 대한 거부감과 후회가 깊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파생 효과가 있다. 바로 그것을 ‘자괴감’이다. 이렇게 자괴감이 생기면 주변을 돌아 볼수 있는 여유도 없고 새로운 시도는 커녕 현상유지도 버거워 한다.

사회생활에서 ‘선택’이란 ‘여유’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자기가 맏은 일을 잘 수행하고 그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으면 보람을 느끼게 되고 또 그 일에 대한 애착도 느끼게 된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꼭 하세요’라는 말은 수십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어느 정도 안정권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 되는 말이다. 사회초년생에게 ‘잘해서 돈 잘버는 일을 선택’하고 난 후에 여유가 생길때 ‘좋아하는 일, 그러면서 잘하고 돈을 잘버는 일을 찾는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인것 같다.

Posted in 나의 경영관/인생관 | Leave a comment

“일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되는 일이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미국 34대 대통령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명장이였던 아이젠하워의 명언이다. 그런데 영어로는 원래 “Plans are worthless but planning is everything”이라고 적는다. 번역에 차이가 있지만 어쨋든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함은 틀림이 없다.

직장생활 만 15년 동안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서류가 있다면 그것은 계약서와 계획서가 읽는 것이다. 계약서를 읽을 때는 공급자로써의 의무, 권리 그리고 소비자로써의 의무, 권리를 밸런스 있게 맞추고, 만약 문제발생시에 적용되는 해결방안과 그것에 대한 책임 및 보상에 대해 정확히 숙지하면 별 문제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서들은 좀더 섬세해지고 구체적이 되며 완벽해진다. 왜냐하면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손해를 한번 크게 보고 나면 다음번 계약서에는 이 부분을 반드시 수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서 (혹은 기획안)를 읽을때는 다르다. 계획서는 ‘성공 할것이다’라는 전제로 작성이 되며 성공 했을때 얻을 이익에 대해 (때론 지나치게) 강조를 한다. 반면 실패 했을때 얻어질 손실은 ‘risk assessment’라는 타이틀 아래 몇줄 적는다. 그러면서 실패할 가능성과 요소들을 지적하면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어찌 시작하기도 전에 안될 걱정부터 한다’ 혹은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했는데 어떻게 실패할수 있는가?’라고 대답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계획을 잘 했으니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믿음이다.

내가 지난 만 13년 동안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낀것중에 하나가 바로 ‘튼튼한 계획서가 성공을 절대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된 계획서 없이 진행해도 성공한 케이스도 생각보다 많았고, 빈틈없어 보이는 계획서를 가지고 계획대로 진행 했음에도 불고하고 실패한 케이스도 허다했다. 다시 돌아보니 (with hindsight) 왜 실패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계획서가 부실했거나 잘못된것 보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때의 대처능력부족’이였다.

문제 발생시 ‘나는 완변하게 예상 했는데 어째서 예상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지?’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주변환경을 돌아보고 예상치 못한 변수를 찾고 그것에 대한 대응책 마련보다는 자신의 예상이 왜 틀렸는지에 대한 변명 혹은 핑계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방어를 고집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책임전가를 시도하면서 홀로 생존하기에 바쁘다. 그러니 시작한 프로젝트는 삐걱삐걱 거리다 결국 실패로 끝나거나, 얻은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 학업중인 대학생들도 이런 비슷한 문제를 껵는다. 시험준비를 위해서 배운 내용을 꼼꼼히 체크하고 족보 (past papers)를 구하고 예상문제를 여러번 풀어본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중에 시험을 망친이들도 종종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예상했던 문제들이 나오지 않은 경우’ 혹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온경우’에 적절히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연륜’과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한 허술한 계획서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꼼꼼한 계획서는 survivorship bias에 빠지게 한다. 계획에 어긋날때 진행에 오류가 발생 했을때 적절히 대처할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Posted in 나의 경영관/인생관 | Leave a comment

오늘 아침 호텔 레스토랑 직원과 나눈 대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5년전 돌아가신 사장님의 기일을 기억하는 의미로 검은 양복과 검은색 넥타이 그리고 하얀색 와이셔츠를 다림질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내 손에는 2개의 아이템이 있다. 하나는 메모장과 펜, 다른 하나는 약통이다. 출장오면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기 때문에 꼭 영양제를 시간 맞추어서 복용을 한다.

분수대와 인공호수가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Berocca 비타민 알약을 냉수에 넣고 녹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 연하게 준비된 차를 가져온 레스토랑 메니져가 내게 말을 건다. ‘고객님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레스토랑 직원들이 궁금해 하는데 답을 가르쳐 주세요’라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웃으면서 그들의 생각을 말해 보라고 했다.

‘한국인은 아닐것 같다. 왜냐하면 폴로 셔츠를 입고 옷깃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은 아닐것 같다. 왜냐하면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은 아닐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싱가폴인은 아닐것 같다. 왜냐하면 싱가폴인들은 대부분 거만하고 직원들에게 상냥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에’
‘말레이지아인 혹은 인도네시아인은 아닐것 같다. 왜냐하면 피부가 너무 하얗기 때문에’

이렇게 재미 있게 설명하는 레스토랑 메니저에게 ‘나는 호주에 거주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이라고 답했더니 그 메니저가 놀라면서 ‘푸른 바다의 전설’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면서 자기 모발폰에 저장된 전지현 사진들을 보여 주기 시작한데….. 만약 계단을 내려가던 중국 아주머니께서 넘어지지 않으셨다면 나는 아마도 편하게 아침식사를 못했을것 같다.

Posted in 나의 경영관/인생관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