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혹시 안철수씨가 같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이런 칭찬을 지인들에게 받은지 오늘까지 정확히 6번이다. 매번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 주머니를 털면 먼지가 많이 나온다 (비리가 많다);
2) 내 옷장속에 숨겨둔 해골이 많다 (비밀이 많다);
3) 난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까지 욕먹을 짓을 많이 했고 또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4) 의리에 지나치게 치우쳐 공정한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한다;
5) 도가 아니면 모 혹은 흑이 아니면 백, 즉 이분법적사고 인해 정치인들 같이 중립적인 입장을 지킬줄 모른다.
6) 다혈질의 성격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을 종종 경험하며 순간마다 무력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한국 뉴스를 안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상황은 잘모른다. 이번주에 (호주) 선거가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다. 어쨋든 선거철에 자주 듣는 내용은 X후보다 Y후보의 과실을 들추어 내면서 부도덕성과 인격&인품을 들먹이곤 한다.

이 세상에서 실수 안하는 사람 없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욕 한번 안해본 사람 없고 욕 한번도 들어 보지 안한 사람도 없다. 주머니 털면 당연히 먼지가 나게 마련이다. 과거의 과실이 정치인과 경영인의 자질을 따지는 잣대가 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과 정부들은 문을 닫아야 할것이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통해서 배울것은 단 한가지 – 교훈이다. 현재가 중요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사람이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할수 있는지, 즉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난 잘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나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더 잘 파악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거룩한 부담감? 난 그런거 잘 모른다. 누구랑 비교 되는것 좋지도 싫지도 않다. 난 그냥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P.S. 알고보니 안철수씨랑 나랑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골프를 칠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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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숙명여대 공연을 보고 오면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작곡한 미국의 작곡가겸 지휘자인 레나드 번스타인이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한 나라의 국민 문화 수준을 알려면 클래식 공연 관람 자세를 보면 알수 있다”라는 말. 만약 번스타인이 살아서 오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면 시드니에 사는 한국 교민의 문화 수준은 거의 바닦이였을 것이라고….

그전에 곡에 대한 감상을 잠깐 먼저 적어본다 (이러면서 나의 분노를 삭힌다). 첫번째 곡은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여서 빠르고 경쾌하고 규칙적인 리듬감을 잘 살리고 웅장함을 살리면 되는 곡이였다. 첫무대의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데 손색이 없는 곡이였다 (만약 내가 선호하는 베토벤의 Coriolan 서곡 했으면 분위기가 참 암담 했을것이다). 두번째 곡은 멘델스죤의 더블 콘체르토 (바이올린과 피아노) in D minor 였는데…. 순간 왜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2번 다 대중성이 떨어지고 사랑 받지 못하는지 알것 같았다. 뭐라고 할까 멘델스죤의 피아노 부분은 그냥 성의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지도 아름답지도 신선하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오케스트레이션과 (바이올린 & 피아노) 너무나 비교가 되니 순간 ‘이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를 오케스트레이션에 접목을 시킨 것인지 아니면 교향곡 작곡하다 심심해서 시도를 했는지’ 헷갈렸다. 가끔식 하이든의 첼로 콘체르트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정 맞게 방방 뛰는 느낌) 고전적인 음색이 강한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푸치니와 베르디의 멜로디는 참 언제들어도 아름답다. 마지막 곡인 러시아 5인방, 글라주노프, 프로코피에프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스승, 해군 출신이면서 작곡가가 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였다.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술탄의 왕비로써 1,001일 동안 남편에게 재미 있는 애기를 들려 주어서 목숨을 보존 했다고 한다. (표제는 나와 별로 상관이 없고) 연주를 들으면서 놀랐다. 역시 프랑스는 관현악의 대가 헥터 베를로이즈가 있고 러시아에는 림스키-코르사코브가 있다는 말이 맞았다. 더 놀란 것은 이런 대곡을 숙명여대생들이 연주를 할수 있다는 것이 대단 했다. 작곡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어떤 느낌으로 이 곡을 표현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나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연주한 것을 들었을때 느껴지는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부분이 간혹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아는 시드니콘 학생중에는 뛰어난 연주자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몇명 연주자의 테크닉은 내가 아는 음악가들 (음대 재학중)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뿐만 아니라 현악 파트는 월등히 뛰어 났다.

다시 뚜껑 열린 모드로 돌아간다. 세상에 태어나서 연주중에 기침소리를 이만큼 많이 들어본 적이 처음이다. 연주중에 플래시 터지면서 사진찍는 공연 처음 봤다. 박스석에 앉아서 아래층이 다 보이는데 연주중에 전화기 꺼내서 문자질 하는 놈/년들이 허다했다. 더 기가막힌 것은 연주중에 모발폰이 두번 올렸다. 그중에서 한명은 그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고….. 프로 사진작가도 아니고 모발폰에 붙어 있는 사진으로 어두운 배경을 두고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지도 않는데 왜 그것을 연주중에 찍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않된다. 그리고 더 열받는 것은….. 마지막 곡은 4악장으로 구성 되어 있으니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말라고 한글로 안내 방송까지 했는데 2악장 끝나고 박수 소리가 났다. 프로그램에 악장과 악장 사이를 아타카 (연결)해서 연주 한다는 말도 없었는데…. 정말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세상에…. 무식하게 교향곡 (참고로 셰에라자드는 정확히 말하면 symphony가 아니라 symphonic suite이다) 4악장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치다니…. 지휘자가 박수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무식하게 치는 관객… 아 정말 싫다. 난 공연 관람하기전에 셰에라자드를 그래도 7번 들었고 지휘자 총보를 보지 않고 곡에 대한 해석 자료도 제대로 읽지 않고 공연을 관람한 내 자신이 관객으로써 클래식 애호가로써 자격 상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쨋든 대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이지만 실력은 월등했다. 연습도 상당히 많이 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공연을 저질의 관객들로 인해서 가치가 하락 된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별로다. 내가 만약 무대에 섰던 연주자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시드니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고 교양이 없다’ 라고…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 놓는 보고 와이프가 한 말은 바로… ‘올챙이가 개구리 시절을 생각 못하는 구나’… 나도 한때 클래식을 몰랐었을때가 있었다는… 그것은 불과 3년전인데 말이다.

P.S. 누가 나에게 이렇게 애기했다. 클래식의 공연 예절과 관례가 좀더 서민적이였으면 좋겠다고. 관객이 지켜야 될 예절은 딱 하나 – 지휘자가 연주자가 음악에 몰두해서 최고의 연주를 할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관객으로써의 반드시 준수해야될 책임과 의무이다 라고… 관례상 한 작곡가의 한 곡이 끝나기 전까지는 박수를 치면 않되는 관례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저하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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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를 보니… 그래도 미래가 약간은 보이네…

8월 6일 월요일 UNSW 대학교에 초청강사로 초대 받아 국제경영전략 과목중 Porter’s Five Forces에 대한 강의를 했다. 졸업을 코앞에 둔 졸업생들이니 바짝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긴장의 미학도 첨가를 했다. 가끔씩 웃기기도 했고 자신의 무지함과 무식함에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시험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애기를 듣고 강의실을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눈을 부라리며 집중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과목을 지원하는 튜터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강의 마치고 인사를 하러 내려온 학생들도 몇명 있었다. 결과적으로 첫 강의 테잎은 성공적으로 끊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특히 동양 학생들. 아마도 1.5세인 내가 짧은 시간안에 영어를 습득하고 주류사회에 진출하여 성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자극과 도전을 주었을것이다. 그들에게 말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성적은 사회에서 누구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빠르게 시작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출발선을 떠나 경주를 하는 과정중에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방향을 점검하고 주변 환경과 방향을 다시 재검토하고 수정하는 기회를 가지라 권유했다. 자신만의 이익과 번영과 안정과 화목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경영인이 되지 말고 지역사회를 생각하고 이 세상에 평화와 화목을 도모하게 하는 그런 이상적인 지도자들이 되라고 권유했다. 그들이 내 메세지의 깊이를 전부 이해하고 받아 들이고 소화시키기에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몽과 각성의 계기는 일찍 올수록 좋다. 그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 했다면 난 그것에 만족한다.

앞줄에 앉은 학생들의 표정이 기억이 난다. 특히 내 정중앙에 앉아 있었던 동양 학생. 아마도 중국인이라고 생각 되는데 그는 나와 눈이 어긋나는 순간이 없었다. 나 그 학생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성공할 영웅은 눈빛부터 틀리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눈빛은 그 어느 학생들과도 달랐다. 만약 그 학생이 내 강의 듣고 혁식적인 시도를 할 동기부여를 받았다면 내 1시간 30분의 강의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제 알겠다. 서교수님께서 다시 태어나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나도 가르치고 싶은 욕망이 이제 슬슬 생긴다. 학문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계몽과 각성을 촉구하는 inspirational한 그런 경영자가 되고 싶다. 단순히 주주만의 이익만을 충족 시키는 경영자가 아닌 직원들과 지역 사회와 더 낳아가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 불평등, 불균등, 빈부의차를 줄이고 가장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경영자의 모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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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대피트 그리고 소피트

얼마전 설교 준비를 하는 과정중 유럽 역사 정리해 놓은 것을 보았다. 아니다 다를까 나폴레옹에 관한 내용이었다. 덮으려는 순간 두개의 단어 두개가 눈에 들어 왔다 – ‘소피트’와 ‘대피트’였다. 아니 이것이 뭔가? 노트를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나폴레옹의 세력이 급속히 쇠퇴 하게 만든 두가지 요인이 있다. 한가지는 한 겨울에 러시아 정벌을 시도 한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Trafalgar에서 참패였다. 무리한 러시아 정벌 시도는 만인이 다 아는 애기니 생략한다. 참고로 나폴레옹의 초상화중 백마를 타고 진격을 명령하는 모습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없다’라는 표제로 유명하다. 이 초상화는 이태리 원정때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쫓아서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그린 초상화이다 (카르타고가 로마를 공략하려고 할때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영국의 Trafalgar 해전은 임진왜란때 한산도 대첩과 흡사하다. 넬슨 제독이 나폴레옹 함대를 전멸 시키고 또 ‘적군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넬슨 제독의 말도 유명하다. 어쨋든 이 넬슨 제독이 승리하기 위해서 천리밖에서 전략을 만들고 전쟁을 준비한 영국 수상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소피트’ William Pitt the Younger이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건설의 야욕에 제동을 가하고 6개의 연합군을 조성해 나폴레옹을 항복 시킨 영국 수상 소피트 – 그때 그의 나이는 바로 28살… (세상에 난 여태까지 뭐하고 살았지???)

소피트의 임기 기간은 258일정도였다. 즉 1년도 채우지 못한것이다. 그는 47세때 죽었다. 그리고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한가지 – 어렸을때부터 지병이 있었는데 아마도 만성 위궤양인데 그때 당시의 의술로는 치료 불가능이였다. 어쨋든 소피트의 아버지가 바로 대피트. 그도 역시 영국의 수상이였다. 참 영국은 국가의 위기가 닥칠때 훌륭한 수상들을 많이 배출해넸다. 대피트와 소피트 그리고 세계 2차대전때 독일을 항복시킨 윈스턴 처치힐… 정말 부럽다.

애석하게도 대피트에 대한 자료는 내가 정리를 잘 해놓지 않았다. 하지만 대피트 소피트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라는 속담을 영국식으로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예임은 분명하다. 내가 잘쓰는 표현은 ‘용은 뱀의 새끼를 낳지 않고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이다. 이번 기회에 나도 언어순화와 발전을 한번 시켜볼까? 나의 경우는 어떻게 되지? 대피트는 William Pitt the Elder이고 소피트는 William Pitt the Younger인데… Brendon Cho the Elder 그리고 Brendon Cho the Younger? 그러면 아들 이름을 바꾸어야 되나? 아니면 한명을 더 낳을까? 고민이 된다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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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당신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 ‘기독교인으로써 망신당하고 싶지 않아서’. 이 대답을 해석하기에는 두가지 각도가 사용 된다. 하나는 교회안에서 같은 교인으로써의 관점과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세상적인 관점이다. 먼저 후자쪽부터 살펴본다.

운전중에 사고가 나면 대부분 운전자의 과실로 본다. 예를 들어 Ferrari F430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나면 자동차의 상태나 quality를 문제삼지 않지 대부분 운전자의 실수로 인정된다. 하지만 종교인은 다르다. 예를 들어 9-11테러 사건 때문에 무슬림들은 평화 파괴주의자로 전락했다. 싱가폴에 있는 시티 하베스트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기 아내의 가수 활동을 위해서 11밀리언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교회돈을 사적인 목적에 사용해서 구속 당했고 그 덕뿐에 기독교는 또 개독교로 전락해버렸다. 다시 말해 한 종교인이 잘못함으로 종교 전채가 욕을 먹는 것이다. 쉽게 말하는 자식이 잘못하면 자식들이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욕을 먹고 더 낳아가 가문 전체가 ‘피는 못속이는군’쪽으로 전락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밖에서는 더욱더 신경쓰고 자기 관리에 힘쓰며 소속된 조직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범이 되도록 노력한다. 내가 잘못하면 개독교인으로 전락을 하고 기독교의 명성에 흠 잡히게 할 것이고 내가 잘하면 기독교의 명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외곡된 편견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 – ‘기독교인이니까 잘해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안에서는 스토리가 좀 달라진다. 왜냐하면 난 밖에서의 모습을 교회안으로 그대로 가지고 온다. 억지로 웃고 착한척 인자한척 겸손한척 하는 것을 난 그냥 간단히 ‘가식’이라고 부른다. 어찌하여 주일이 되면 주님안에서 다 같은 형제고 자매이니 서로 사랑으로 품으며 이해하고 베풀고 섬기기를 권장하면서 세상밖에 나가면 이렇게 하는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하여 남들도 나같다고 하는 것은 모순인가? 글쎄….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다. 역사를 보면 알수 있듯이 성인군자라고 불리는 많은 지도자들도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들의 결정과 행동이 다른 각도로 분석 되고 해석 되며 받아들여질 뿐이다.

갑자기 애기가 다른 곳에 흐르려고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결론은 이것이다. 난 교회안에서 같은 성도들에게서 욕을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세상에선 세상 사람들에게 개독교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다. 남들이 권모술수를 써서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취하려 하지만 난 희생과 신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성공의 길로 이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는 모르나 이런 기대는 가지고 있다 – ‘그래도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낳고 다를 것이다’라는 은근한 기대. 난 이 기대를 저버리고 않는 것이 바로 나를 성공하게 만드는 비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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