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담병 –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

갑자기 옛날 예화가 생각이 났다. 바로 중국전국시대때 진나라와 조나라 군대가 대치중이였다. 이때 진나라의 재상 범수가 한 계책을 내놓은데 이것은 바로 ‘진나라 군사들은 조나라 장군 염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괄을 더 두려워한다’라는 소문이다. 이에 염파는 파면 되고 조괄이 장군이 되어 40만 대군을 지휘하게 된다.

조괄이 장군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어렸을때부터 병법을 통달한 그이지만 실전 경험 부족하고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조괄은 장군으로 임명 되었고 자신이 배운 병법대로 병사들과 참모들의 불평 불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병사를 배치했다. 그때 적군에 의해 보급로가 끊껴지고 40만 대군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마지막 시도로 조괄이 군대를 직접 이끌고 포위망을 뚫으려 시도 했으니 너무 허무하게 화살에 맞고 목숨을 잃었다. 진나라는 당시 이 40만명의 포로를 먹여 살린 양식이 없어 그들을 그냥 산채로 매장했다.

이때 생긴 4자성어가 바로 ‘지상담병’이다. 즉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뜻이다.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위기와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험은 지식을 탁월한 지혜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병법에 뛰어 났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해 가정에서 패한 제갈량의 제자 마속, 실전 경험 없는 하후연의 아들 하후무들이 아주 좋은 예이다.

어떤 일을 겪어 본다는 것은 삶의 자산을 쌓는 일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그리고 젊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던 좀더 능숙하고 효율적인 대처를 할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 없는 도전과 경험이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된다. 니체가 말했듯이 이것이 당신을 죽이지만 않으면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살아 남은 자는 적응력과 생존력이 향상 된는 것이다. 삶의 순감나다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 이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이런 기회를 내가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극복함으로 이 경험이 지식에서 지혜로 바뀌는 계기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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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씨의 Korea-Australia Friendship Concert 감상 후기

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머리속에서 사라지기전에 기록을 남겨야지.

우선 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씨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오늘 공연에서 연주한 첼리스트와 (반주자가 아닌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난 음대를 졸업하지 않았고 그냥 단순한 클래식 애호가로써 그리고 내가 스스로 습득한 서양 음악사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내 느낌과 생각을 적어 본다.

첫번째 곡은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 3번이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몬테베르디를 한번 만나고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빨리 다습하고 고전시대 음악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들었던 곡이 바로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이였다. 총 6개의 무반주곡은 7개의 악장 (아니면 ‘부’)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이 곡들을 연주한 음반 (도이치그라마폰과 로스트로포비치)을 어렵게 구했지만 두번 이상을 듣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 바로 로맨틱 시대의 음악에서 느낄수 있는 애수, 낭만, 서정적 요소들이 없고 각지고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음색과 연주법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첼리스트 Julian Smiles의 연주를 듣고 딱 느낀 느낌은 바로 ‘느끼하다’였다. 지나친 비브라토, 템포 루바토 그리고 다이나믹이 바로크 음악의 특색을 완전히 소멸 시켰다. 내가 아는 바하의 무반주곡은 연주회용이라기 보다는 첼로 연주법의 교본으로써 사용 된다고 알았는데 (피아노의 체르니 같이)… 만약 바하가 오늘 공연장에서 이 연주를 들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 보였을지 상당히 궁금하다.

두번째 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이였다. 피아니스트 Hoang Pham이 나와서 간략하게 이 곡에 대해서 소개 하는데 이 곡에 4악장이 있다고 설명 했다. 정확히 애기하면 ‘part’라는 단어를 사용 했지만… 이 곡은 명백히 3악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2악장에서 끝어 지는 부분을 마치 아타카로 연결해서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4악장이라고 착각 할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실내악엔 관심이 없어서 이 곡에 대해선 특별한 애착이 가질 않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1악장에 끝나자 박수를 치기 시작 했다.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의 매너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직 멀었다.

3번째 곡은 마세네의 타이네스 명상곡. 난 잘 모르겠다. 이곡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했는지, 연습을 정말 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리 관객의 호응도와 반응을 고려 한다고 하지만 이 곡은 템포를 빠르게 잡으면 우와하고 애절한 선율을 낼수가 없다. 즉 템포를 빠르게 하면 작곡가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 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애절하고 처량한 음색을 내어서 가슴을 웅클하게 만들어야 되는 이곡이 아주 천박한 동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 음에서 레가토로 가늘고 길게 오랬동안 음을 내야 되는데 활의 위치가 틀려서 활을 두번켜는 동안 하모닉스 주법에 장애를 주어 음정이 틀려 버렸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직원조차 이렇게 말했다 ‘난 음대를 나오지 않아서 모르지만 실수를 많이 한것 같은데’라고. 클래식 초보자가 이 미묘한 어색함을 눈치 챘다면 내 귀에는 어떻게 들렸을까?

4번째 곡은 브람스의 헝가리 댄스 1번. 말하기 조차가 싫다. 곡의 난의도 높은지는 모르겠으나 세가지는 느꼈다. 아직 손이 덜 풀리고 긴장해서 이 곡을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했던지, 악보의 편곡이 별로 좋지 못했든지, 아니면 연습을 두번만 했든지….

5번째와 6번째 곡은 쇼팽의 야상곡과 프란즈 리스트의 Poetique 3번이였다. 원래 피아노곡이여서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면 어떻게 들를까 궁급 했는데 오히려 피아노의 음색 보다는 바이올린의 음색이 더 잘 어울릴것 같다는 착각이 들정도로 긴장의 묘미와 함께 차분하고 신중한 음색이 매력적이였다. 여기서 2부 순서에서 처음 박수를 쳤다.

7번째 곡은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흔히 들을수 있는 클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이였다. 곡이 난이도 높지 않고 평범한 곡임으로 그리 신경을 쓰고 듣지 않았다. 그냥 클래식 애호가라고 스스로를 들어내고 싶을데 흔히 인용 되는 곡이다. 그냥 나에겐 바이엘 상권 같은 곡일 뿐이다.

8번째 곡은 영화음악의 대가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쉰들러 리스트의 OST였다. 이 영화를 않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이 음악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사용 되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선율이 기억 난다. 영화를 한번 보고 다시 들어 보고 싶다. 그때 어떤 감동이 올지 정말 궁금하다.

마지막곡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알려진 Waxman의 카멘 환상곡이다. 조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나오는 명선율을 뽑아서 편곡된 곡인데 연주중에 다양한 바이올린 주법이 나오고 템포가 일반적으로 빠르고 또 다양한 연주법이 필요한 곡이지만…. 혼자 속으로 생각 했다. 별로 피아노와 맞추어 보지 않는 느낌? 호흡이 어긋나는 느낌 혹은 피아노가 반주의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동등한 개념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부분에선 totally out of sync인 부분도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 했던 곡은 아마도 ‘아리랑’이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짧은 단선율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다른 곡들보다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 한것 같다 (곡의 난의도에 비해서). 피아니스트는 앵콜곡으로 쇼팽 야상곡 작품번호 9번의 2번을 연주 했는데 너무나도 성의 없게 연주를 했다. 오죽하면 와이프가 내 연주가 훨씬 뛰어 나다는 애기까지 했을까.

역시 꽁짜로 간 공연은 감동이 적다. 돈 주지 않고 빌린 씨디 복사한 씨디의 음악은 감동이 적다. 그리고 꽁짜표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수준 또한 높지 않다. 그래서 난 일년에 적어도 6번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공연을 와이프랑 꼭 본다. 이렇게 실내악 수준의 스케일 음악은 더 이상 귀에 들어 오질 않는다고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11월 말에 공연이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이다. 시드니에서 초연이라고 한다. 한 티켓에 $100가 넘는다. 어떤 사람은 사치 혹은 허영이라고 할지 모르나 난 공연을 보고 억대의 감동을 느낀다. 대중적인 레파투어, 울림이 좋은 공연장, 편안한 의자, 아내와의 데이트를 할수 있는 기타등등의 조건들이 충족 되면서 공연에 대한 은근한 기대가 높았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마도 다음번에 교민사회에서 주최하는 ‘무료’ 공연 관람 여부는 아주 심사숙고 할것이다.

P.S. 피아니스트가 앵콜 곡으로 쇼팽의 야상곡 작품 번호 9번의 2번을 연주 했는데… 토하고 싶었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를 해서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호응도를 고려해서 작곡가의 의도와 원곡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대중들 앞에서 쇼맨십을 보여주기 위한 음악은 작곡가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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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에 있는 공연 예습…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씨의 공연이 이번주 수요일 저녁 7시30분 City Recital Hall Angel에 있다. 개인적으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콘서트 홀보다 엔젤 플레이스를 선호한다. 난 음악인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엔젤 플레이스가 울림이 더 좋고 섬세한 소리까지 잘 퍼진다. 다시 말해 연주자가 실수를 하면 티가 팍팍 난다는 뜻이다.

클래식 공연전에 어김 없이 하는 것은 바로 레파투어 예습이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 없어도 공연때 연주될 곡들은 꼭 한번씩은 들어본다. 레파투어를 한번 살펴 본다.

1) Cello Suite No. 3 in C Major, BWV 1009 – Sarabande & Gigue
세상에.. 첫곡이 첼로 무반주 곡이라니…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바하는 무반주 첼로 곡을 6개를 작곡 했다 (아마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도 6개를 작곡한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현대 첼로 연주의 교본이 되었고 바하의 첼로 무반주곡하면 떠오르는 첼리시트 파블로 카잘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들은 전부 7부로 (아니면 7악장이라고 해야 되나?) 구성 되어 있다. 틀릴것을 각오하고 한번 정리해본다 – Prelude (프릴류드)는 대부분의 4/4박자의 전주곡; Allemande (알르망드)는 2/4박자의 독일풍의 춤곡; Curante (쿠랑드)는 2/4박자의 프랑스 고전 춤곡; Sarabande (사라반느)는 3/4박자의 스페인의 고전 춤곡; Menuet (미뉴엣)은 왈츠 보다는 약간 빠른 매끄러운 궁정 무곡; Gigue (지그)는 6/8박자의 영국의 춤국으로 기억 된다. 아마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녹음한 앨범을 딱 한번 듣고 다시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아 그리고 바하의 음악엔 Op. (Opus = 작품 번호)가 아닌 BWV가 붙는다. 이것은 일종의 바하의 악보들에게만 붙는 serial number 같은 것이다.

2) Piano Trio No. 1 in B Major, Op. 8 by Brahms
난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2번과 4번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과 헝가리안 댄스만을 듣는다. 아마도 브람스의 sophisticate하고 complex한 화성과 선율에 비교해 보아서 그의 실내악 작품들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애들 장난 같다고 할까? 꼭 멘델스죤이 피아노 협주곡 두개를 성의 없이 대충 심심해서 작곡한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총 3악장으로 구성 되어 있는 피아노 트리오 – 공연때 분명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무식한 관객들이 있을것으로 반드시 예상 된다. 잠깐.. 일악장이 15분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브람스가 피아노 트리오를 2개만 작곡한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다.

3) Meditation from Thais by Jules Massenet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나 포레 혹은 드뷔시 같이 유명한 작곡가는 아닌데 타이네스 명상곡은 영화에도 나오고 갸냘프고 예리한 선율 (하모닉스 주법)이 상당히 자극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마세네가 작곡한 오페라가 뭐더라… 마약 중독에 부귀영화를 쫓따가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한 여자에 대한 내용인데.. 시드니에서 2년전에 공연 했는데.. 맞다.. ‘마농’.

4) Consolation Penesee Poetique No 3 by Liszt
프란즈 리스트는 헝가리 출생의 뛰어난 피아니스트. 내가 잘 사용하는 예제 – 하이든은 베토벤의 스승, 베토벤의 제자는 체르니, 리스트의 스승이 바로 체르니, 현대 음악에 다리를 놓은 리차드 바그너는 리스트의 사위. (리스트 딸의 이름이 코스모스인가 코시마인가?) 리스트는 베토벤 교향곡 9개를 전부 피아노 한대로 바꾼 것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piano transcription). 리스트는 나중에 결혼 문제로 수도승이 되고 종교 음악에 집중하게 된것으로 안다. 기존의 교향곡 형식에서 벗어나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서 유명하다. 어쨋든 이곡은 들어 봤는데 머리속에 멜로디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5) Hungarian Dance No 1 by Brahms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는 총 21개로 구성 되어 있고 6번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1번은 피아노로도 많이 바꾸어서 연주 되기도 하는데 바이올린 한대와 피아노의 반주 만으로 어떤 음악이 표현 될까 정말 기대 된다.

6) Nocturne in C Sharp Minor B49 by Chopin
쇼팽… 피아노의 시인. 폴란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피를 가진 작곡가/피아니스트. 피아노의 발전에 의해 그의 피아노 음악은 빛을 본다. 쇼팽이 에튜트 (연습곡) 24개를 작곡 했고 (Op. 10에 12개 Op. 25에 12개), 4개의 발라드, 2개의 피아노 협주곡… 더 이상 기억이 않난다. 개인적으로 쇼팽의 야상곡 Op. 9의 2번을 가장 좋아한다. 제목을 보아선 아마도 이 곡은 영화 The Pianist에 폭격을 받는 순간에 라디오 녹음실에서 연주한 곡인것 같다. 내 머리속에 남았던 선율은 애절함 혹은 한이 맺힌 그런 슬픈 음색이다.

7) Liebesfreud and Liebesleid by Kreisler
백화점에 가면 가장 많이 사용 되는 바이올린 소품 – 오스트리아 출생의 작곡가겸 및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사라사테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 된것으로 안다.

8) Schindler’s List by John Williams
미국 작곡가 – 아마도 지휘자로 카라얀이 가장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작곡가로써 가장 많은 부귀영화를 누린 작곡가는 바로 존 일리엄스이다. 그가 작곡한 OST는 정말 많다. 스타워즈, 게이샤의 추억, 인디아나존스, 해리 포터, 인공지능, 마이노리티 리포트, 쥬라식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 그냥 할 말이 없다. 헐….

9) Carmen Fantasy by Franz Waxman
독일에서 출생 했지만 미국 국적을 가진 작곡가 (아니면 반대인가?) 어쨋든 이 작곡가는 12개의 영화 음악 부분에서 오스카 노미네이션을 받았다. 그가 작곡한 (혹은 편집 / 편곡) 곡들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카멘 환상곡이 아닌가 싶다. 조지 비제의 오페라 카멘 (내용이 창녀와 군인을 다룬 아주 지저분한 내용으로 기억 되는데)의 명선율을 편곡해서 만든 곳이 바로 카멘 환상곡이다. 아 맞다! 사라사테도 카멘 환상곡을 작곡 했다. 이 곡은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다빌레의 마지막 편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 라장조 작품 번호 92번 연주하기 전에 치야기키가 지휘하고 라이징스타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미스트레스인 키요라가 솔로이스트로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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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단체를 대표로 참석 했을 경우….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만약 그럴경우 자신이 소속해 있는 단체의 명성에 흠짐을 내고 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오늘 예배 시간에 시작부터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서 쉴세 없이 문자질에 몰두하는 두명의 여자 대학생, 그리고 찬양 할때 멍하니 이곳저곳 바라보면서 붕어 흉내 조차 내지 않는 두명의 여자 대학생, 그리고 뒷자리에서 설교 할때 계속 수군거리고 잡소리 하는 여자 대학생 세명. 카카오톡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여자 대학생은 설교 시간에 교묘한 고개 각도를 유지하고 머리 카락으로 면상을 효과적으로 가려 자신이 설교 시간에 자는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새신자 소개를 하는데 ‘안산 대학교’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하고 축복송을 부르는데 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냥 시드니에 와서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뻔 했는데… 한 나라의 장래를 보려면 대학생들의 수준을 보면 안다고 했는데.. 이들을 보니 적어도 대한민국에 안산 이라는 동네의 미래를 별로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다.

내가 어렸을때 이런 애기를 참 많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자식으로써 잘못하면 부모가 나때문에 욕을 먹는다는 말. 이것이 현대 교육학에서는 자식들에게 협박(?)이 될수가 있고 자신의 존재성과 가치가 부모의 기대에 대한 부흥도로 결정이 된다는 강박관념이 성장기의 자녀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수 있다 라는 애기를 많이 한다. 난 이것을 주장한 학자가 누구인지 모르나 아마도 이런 협박(?) 받고 자라지 않는 자들의 결정체가 오늘 내가 본 안산 대학교 학생들이다.

우린 포스트 모던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극단적 개인주의의 파생체가 바로 포스트 모던니즘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기분에 맞으면 된다. 절대 진리는 없고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타인의 불편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여기서 더욱더 무서운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된점 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계몽과 각성의 기회를 심어줄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이것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라고? 어째서? 비판만에서 시작해서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면 비판 조차 하지 말라고 애기한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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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잘 풀릴꺼야….

요즘 세대가 지향하는 지도자의 자질중에서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가 포함 된다는 것은 국민학생도 다 아는 애기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은 조직의 직원들은 모른다 – 때론 지도자의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문제점과 그것에 대한 위험성을 희석 시키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을…. 이런것을 보고 눈가리고 아옹한다고 그러던가 아니면 폭풍이 불어 오는데 모래속에 대가리를 쳐박고 있다고 하나….

어제 퇴근하기전에 회사에서 월말 술자리가 있었다. 업무를 5시에 마치고 술과 안주를 책상에 놓고 여러 직원들이 마시면서 웃으면서 수다를 떤다. 사장이 잠깐 연설을 하는데 완전 뻥이다. 직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되고 경각심을 주는 그런 내용 보다는 표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일에만 애기를 했다. 다시 말해 현재 회사의 상태가 얼마나 어렵고 위태로운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부채를 갚고 꼼꼼하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점에 대해서 자기가 다 영광을 독차지 했다. 연설이 끝나고 난 인생을 쓰고 내 책상으로 돌아와 감사 업무 때문에 밀린 일들을 급하기 마무리하고 완전히 무엇을 씹은 얼굴을 하고 아무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고 회사를 6시경에 나왔다. 아마도 그 누군가가 내 얼굴을 봤다면 수류탄을 가지고 자폭할만큼 살벌 했을 것이다. 집에와서 이메일을 보니 회장님이 주말에 쉬라는 형식상 인사의 글을 보냈다. 그냥 쓴 웃을 짓고 지나쳤다.

항상 모든 일이 다 잘풀리지 않는다. 그 어느 누구에도 만사형통은 없다. 인생엔 항상 굴곡이 있다. 평화스러운 날이 있는가 하면 폭풍이 몰아치는 날고 있고 배부르로 따뜻한 날이 있는가하면 배고프고 추운 날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가져야 될 자세는 바로 – 힘들된 상황을 극복해서 좋은 결과를 얻자는 소망과 노력이고 잘나는 상황에서는 자기자신의 위치 점검과 겸손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방어적 자세이다. 그런데 일년에 600억이나 되는 회사의 경영자가 현재 회사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점을 인식을 하면서도 그냥 막연한 ‘상황이 좀더 낳아질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지금 눈앞에 놓인 상황에게서 시선을 잠시 땐다. 이것이 과연 긍정적인 자세인가 아니면 겁쟁이의 무책임한 자세인가?

난 잘 모르겠다. 상황이 힘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이고 최대한 자동화를 시킨다.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좀더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 되도록 개선한다. 만약 회사에 득이 되지 않는 비지니스 유닛이 있으면 과감히 버리고 거기에 쏟은 에너지를 좀더 생산적인 다른 곳으로 전환한다. 누가 이것을 모르나? 다 안다. 그런데 알고서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이 걸림돌을 제거할수 없다. 그럼 회사를 원상궤도에 올리기 위한 나의 노고에 태클을 거는 이 걸림돌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 그런다고 다른 절이 과연 더 낳을까? 거기서 거길 것이다. 그러면 중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중으로 더 이상 남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절에 들어가려면 중이 되어야 하는데 더 이상 중이 아니면 절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변신을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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