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완벽한 조화는?

미술관에서 선을 보면 시간 낭비를 않해도 된다. 걸음 걸이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수 있고, 그림 보는 안목 보면 교양 수준 보이고, 미술관에 어울릴지 클럽에 어울릴 사람일지 알수 있고, 향수 취향이 노골적인지 우회적인지 알수 있기 때문에. 시크릿 가든 1회에 김주원과 윤슬이 미술관에서 선을 볼때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다.

갑자기 왜 이 대화 내용이 생각 났는지 잘 모르겠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 출근을 하지 않고 날 좋은 날 집에서 2시간의 낮잠과 진한 커피 때문인지 오래간만에 대낮부터 몽상에 잠시 빠져봤다. 아마도 예전에 일어 보았던 다양한 경영서적을 뒤지면서 사회 지도층에 대한 책임과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지 – 프랑스어로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에 대해 적은 글들을 몇개 읽어 보면서 남자라면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서 자신을 자유자재로 변신 가능해야 된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 몇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사회에서이다. 바로 자기가 몸을 담고 일하는 조직안팍에서의 위치이다. 조직에서 직함은 그 사람의 책임과 명성 그리고 능력을 나타낸다. 대부분 높은 위치와 높은 연봉은 대부분 정비례이다. 그렇다고 해서 높은 위치와 높은 인격은 꼭 정비례는 아니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겸비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향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전부 미치지는 않는다.

두번째는 가정이다.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꼭 성공하고 인정 받는 것은 아니다. 또 사회에서 잘한다고 해서 가정에서도 그 만큼 잘하지도 않는다. 가정에선 존경 받고 사랑 받는 자식들의 아버지와 한 여자의 남편일지는 모르나 밖에서는 정체성과 존재성, 그리고 영향력이 거의 없는 그런 사람 일수도 있다. 충과 효는 공존 할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라에 충성하는 자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함과 같이 사회에서 활동량이 많을 수록 가저에서 덜 충실 할수 있다.

세번째는 교회이다. 수직관계과 나와 하나님이라면 수평관계는 성도와의 교제이다. 사회 생활 잘한다고 해서 신앙 생활 잘한다는 보장 없다. 가정에 충실하다고 해서 신앙 생활 잘한다는 보장 없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신앙 생활 잘하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회와 가정에서 둘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더욱더 없다.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교회, 꼭 로마의 삼두정치 같은 느낌이다. 아니면 촉나라의 사신으로 등지가 오나라로 파견 되어 이릉전투 이후에 끝어진 두 나라의 국교를 재성립 시키고자 방문 했을때 손권이 등지를 위협하고자 기름을 담아 끓인 가마의 다리도 세개이다. 카메라를 세워 고정 시키는 tripod도 다리가 3개다. 즉 3가지가 합리적인 조화를 이룸으로서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한쪽에만 치우치면 오히려 두개를 잃을수 있다. 두가지를 지키려고 집착하려는 순간 소홀해진 다른 한가지 때문에 쓰러지게 된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밸런스는 과연 무었일까? (5초 동안의 침묵에서 벌써 머리속에 청사진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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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의 노이즈 마켓팅….

오늘 몇명의 직원들과 오후에 업무 정리를 하면서 차를 잠깐 마시면서 애기를 했다. 그중 한명이 최근에 있었는 삼성과 애플의 법정 케이스를 애기 했다. 그러면서 재판 때문에 든 비용과 시간 및 자원이 삼성전자 순이익의 몇%를 차지하며 이것은 절대적 낭비라고 침을 튀기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냥 눈을 지긋히 감고 조용히 몇분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시작 했다. 네가 방금 애기한것은 1차원적, 즉 지극히 평범한 분석일뿐이다. 2차원적 각도에서 본 이 법정 케이스는 삼성과 애플이 계획적으로 진행한 노이즈 마켓팅 전략이라고…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확히 얼마동안 삼성과 애플이 머리를 맛대고 싸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켓팅의 기본이 무엇인가? 바로 brand recognition이다. 두개의 회사는 이점에서 성공 했다. 왜냐고? 바로 세계의 이목이 바로 삼성과 애플에게 집중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과 동시에 사람들은 기다리고 지켜 보았다. 누가 과연 이길 건이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회사의 제품을 구입할것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여기서 보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바로 삼성과 애플 이외에는 다른 브랜드의 존재성이 멀어져간다는 것이다. IDC라는 기관에서 통계를 낸것을 본적이 있다. 삼성과 애플이 법정에서 싸우고 있을때 다른 모발폰 생산 업체들 (모토롤라, 노키아, HTC)의 매출이 올랐을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어부지리’ 전략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로 삼성과 애플의 시장 점유률은 상승했고 다른 모발폰 생산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시너지의 효과가 바로 ‘고객의 로얄티’이다. 자신이 선호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입함으로 그 회사에 대한 애착심과 소속감이 생기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성과 애플의 노이즈 마켓팅이다.

순간 생각 했다. 삼성의 회계사들은 애플에게 지불한 벌금과 재판에 사용된 모든 비용을 어떻게 classify를 할까? 단순히 penalty나 legal fees로 구분 할까? 아마도 marketing expenses for new acquisitions으로 구분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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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경로 의존성은….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 기업에겐 독약과도 같은 것이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습관 – 경로 의존성. 회의 때에 번번히 나오는 식상한 발언이 바로 ‘여태껏 이렇게 해왔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냥 그대로 하자’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기존의 일처리에 대한 분석이나 개선방안을 찾을 기회조차 거부한다. 그들에게 변화는 아마도 자신의 과실과 허물을 들추어내는 행위로 여겨질것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깨닮아야 되는 것은 바로 ‘변화’의 긍정적 정의이다. 변화란 과거의 습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습관 대신에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planning 회의에서 종종 사용하는 예제이다. 언제까지 항상 애벌래로 있을 것인다.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 번데기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저항감도 생기도 반발심도 생기고 과정도 힘들과 괴롭겠지만 이것에 대한 결과는 바닦을 느릿느릿 기는 애벌래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하늘을 훨훨 마음껏 날수 있게 날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작심삼일… 대부분 그냥 옛습관으로 돌아간다. 기존에 일을 기존에 했던 방식으로 계속 한다. 나이 먹으면서 나도 점점 이 category에 속해지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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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른 변화는 필요한 것이지만…..

너무 잦은 변화는 불안정과 손실을 가져온다. 지금 상황이 그러하다.

독재자가 죽고 나니 순간 평화가 찾아 온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 빈공간을 메꾸는 3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독재자의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자, 즉 독재가의 가족이나 측근들이다. 두번째는 개혁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폐단과 악습을 폐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혁신적인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개혁파들이다. 세번째는 그냥 구경꾼들이다. 어떤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알면서도 선택하지 않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간에 붙을지 쓸게에 붙을지 준비하는 자들이다.

대부분 보수파와 개혁파가 대립을 한다. 그런 과정중에 생산력과 효율성을 저하된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경영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보수파는 독재재가 과거에 세운 공치사하고 그의 방법이 올바르고 이것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다른 한쪽인 개혁파는 독재자의 과실을 들추어 내고 경영 철학의 변화와 방법론 그리고 현재 시스템의 폐단과 취약점을 들추어 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마음은 점점 닫히고 화합과 이해관계에선 멀어지고 남의 말을 듣지도 수용하지도 하는 또 다른 두명의 독재자가 자연스럽게 형성 된다.

그럼 3번째 그룹은 누구인가. 이것이 꼭 프랑스 대혁명 같은가? 귀족파와 서민파 – 그둘이 갈등을 비밀리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작하고 이익을 취한 부루조아. 그럼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이라는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일반직원이나 중간 메니저들이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생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들에겐 하루 아침에 직장이 없어지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 보다는 생존력을 높여주는 ‘눈치’가 더 필요하다. 위에 있는 권력가들의 존재성과 힘을 상징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바로 아래 사람들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는 능력이다. 개혁파와 보수파는 당연히 이 3번째 그룹을 사용하여 자신의 선택과 분석이 맞다는 것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이것저것 시킨다. 꼭 주방에 쉐프가 두명인것처럼. 한명은 계란으로 반죽을 하라 하고 한명은 우유를 넣어 반죽하라 한다. 예전에 줄리어스 카이사르도 3두 정치를 시도 했지만 그것도 오래 존속 되지 못했다. 두개의 독재 그룹이 상황에 따른 변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지나치게 강조함은 생산성을 저하 시키고 불안감을 고조 시킨다. 몸은 한개, 머리 하나, 팔은 두개, 다리도 두개인 한 사람. 아무리 한명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수 없는데,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여러가지 업무를 과중하게 부과하고, 그리고 부과된 업무가 모순 되는 것이 많고 중복 작업이 많을 경우, 그리고 이것에 대한 임금 인상도 없고 시스템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점점 지쳐간다.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인의 장비도 훈련도도 아닌 사기이다. 사기가 낮은 군대는 전투력도 떨어지고 승률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독재자중 한명이 이런 애길 했다 – ‘기업 경영을 유연하고 변화에 능동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일반론적 개념으로 보면 당연히 맞는 애기이지만…. 어찌 이 말이 내게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자기합리화로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가 추구하는 변화는…. 자신만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자기 아비한테 배운것은 비겁한 권모술수와 돈지랄하는 것밖에 배운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랭이 않찢어지고 장단 맞추는 나의 능숙함에 가끔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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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懷疑)주의자들 때문에 회의(會議)를 망친다……

지난 8년 동안, 정확히 애기하면 2012년 1월 31일까지 내가 참석한 회사내 회의의 불변하는 공통점이 한가지가 있다 – 바로 ‘일방통행’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온 회의 장면을 보면 대부분 회의의 본질이 상실된 그냥 윗상사가 아랫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을 분담하는 업무 지시면에서 끝났다. 아마도 사람들은 회의의 질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수는 어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는지 아니면 무식해서 모르는것있지 모르겠다.

난 내 부하 직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두가지 종류로 반드시 나눈다. 한가지는 회의 (meeting)이며 다른 한가지는 작업 지시 (execution planning)이다. 두가지를 난 절대로 같은 방에서 하지 않는다. 회의를 할때는 동그란 타원형 책상이 있는 방에서 애기한다. 왜그러냐고? 한가지 예를 들어 본다.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을 두 종류의 테이블에 앉게 한다. 하나는 동그란 정원형 테이블이고 다른 하나는 각이 진 정사각형 테이블이다. 같은 메뉴와 와인을 주문 했는데 사람들은 동그란 테이블에서 좀더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고 밝은 분위기의 대화가 오가는 반면 각진 정사각형 테이블에선 좀더 경직되고 사무적이고 격식을 차린 대화가 오고 갔다. Floor space utilization 관점으로 보면 동그란 테이블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면 동그란 테이블이 매출을 더 올린다. 원래 사람들은 단순해서 기분이 좋으면 자기 주머니 사정 챙기지 않고 와인부터 따고 보는 기분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난 어떤 일을 기획하고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meeting때에는 항상 동그란 테이블에서 한다. 그래야 서로 정감이 더 가고 솔직한 의견 교환과 수용 및 절충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ecution planning때에는 각진 직사각형 테이블이 있는 board room으로 간다. 그리고 테이블 머리에 꼭 앉고 작업 지시를 내릴 직원들은 내 양쪽에 앉힌다. 그리고 현재 이루어야 될 목표와 시간 그리고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 생기는 최악의 사태 그리고 목표를 이루었을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 정확히 설명한다. 그리고 작업 지시를 한다. 지시한 작업을 정확히 이해 했는지 자신의 말로 다시 반복하게 한다. 그리고 타이밍의 중요성과 팀웍을 중요함을 강조하고 고조된 순간에서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게 분위기를 만는다. 그리고 간혹 과정을 체크하고 에로 사항이 있으면 점검하고 서로 도와준다. 분명한 목표를 정해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자신이 스스로 방법을 연구하고 접목 시키게 한다. 항상 두발 정도 떨어져서 지켜 본다. 한발 되는 거리에 있으면 간섭 같고, 세발 되는 거리 이상 있으면 버림 받은 느낀이 든다.

오늘의 회의는 모임일 때, 모임 보다는 만남일때, 만남 보다는 어울림일 때, 활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회의가 가장 의상적이다. 이런 이상적인 회의(會議)의 자화상이 조직내의 권위주의적 회의(懷疑)주의자들 때문에 변색 되고 있는데… 이런 조직안에 8년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된 폐단을 과연 어떻게 없애고 개선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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