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쉽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 책장엔 책들이 별로 없다. 아마도 2009년에 MBA를 끝내고 나서 경영관리 서적이나 인문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요즘 책들은 나에게 발상의 전환점을 제공할 만한 신선한 충격을 주지 못한다. 왜 그럴까? 바로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일뿐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오래간만에 다시 읽으면 새로운 기분이 들까? 이유는 바로 인간의 기억력이 생각보다 짧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행 했던 패션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유행을 타기도 하며 예전엔 비효율적/비인간적인 경영방침이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긴축정책으로 여겨진다. 예전에 알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 버렸고 그런데 필요한 순간이 와서 다시 한번 보니 신선한 충격을 줄때가 많다. 리더쉽에 관한 책에 대해 애기를 하려고 했는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 나가지?

원점으로 돌아온다. 리더쉽에 관한 책이 시중에 정말 많다. 성공하는 리더의 몇가지 습관/법칙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가지고 출판 된다. 참고로 ‘성공하는 리더의 습관’이라는 제목 보다는 ‘성공하는 리더의 10가지 습관’이라는 제목이 좀더 사람들의 호기심과 책을 읽고 싶은 충동심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도 이 10가지 습관을 가지면 성공적인 리더가 될수 있다’라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지기 때문이다. 즉 숫자로 셀수 있는 측정 할수 있고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에 사람들은 좀더 성공 확율이 높고 적용하기 쉽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제목을 ‘성공하는 리더의 180가지 습관’하면 사람들은 관심도와 흥미도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180가지의 습관은 숫자가 너무나 많아 부담이 되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기 때문이다. 역시 많다고 해서 항상 다 좋은것으로 인식 되지는 않는다. 또 애기가 옆으로 샜다.

원점으로 두번째 돌아 온다. 내 책장엔 리더십에 관한 책이 없다. 왜냐하면 난 리더로써의 자격과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부족한 자격과 자질은 책을 읽고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채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쉽게 예를 들어 애기하면 맹도견으로 사용 되는 래브라도를 아무리 훈련 시켜도 독일 세퍼드가 될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개들도 자신의 독특한 능력과 특성이 있는데 사람들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그 리더를 돕는 추종자/협력자들이 있고 그냥 위에서 이끌어주는데로 지시하는데로 따르는 군중들이 있다. 난 지난 35년간을 살아 오면서 느낀점은 난 리더로써의 자질은 부족하지만 리더를 보필하고 돕는 협력자의 자질은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leadership 보다는 followership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 (followership에 대한 애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사람들이 종종 리더쉽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난 이런 질문을 한다 – “당신은 과연 리더의 자격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 사람들의 표현은 별로 좋지 못하다. 이때 다음 질문을 한다 – “당신은 리더쉽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신이 리더가 될 것이라는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리더쉽에 관한 서적을 읽으려고 하는 것일까? 리더가 되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이 리더로써의 자질과 자격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인 검토와 평가가 필요 해서 그런것이지…

혈당이 떨어져서 그런지 오늘 글을 적으면서 집중력이 많이 감퇴 된것 갔다. 간단하게 샌드위치 먹고 오늘 내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다음에 표현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 접어야 겠다.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 그냥 나에겐 다행이다. 난 왕의 덕목은 갖추지 못했어도 왕을 보좌하는 재상의 덕목은 잘 갖추어서. 그래서 난 CEO 자리보다는 CFO 자리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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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빨리 배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몇일 사이에 예린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봤다. 세발 자전거 (정확히 애기하면 네발 자전거이지만)에서 보조 바퀴 2개를 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름데로 자전거를 타는 요령을 배우고 두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시도를 해서 이제는 제법 빠른 속도로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탓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운동신경은 많이 발달 된것 같다.

반대로 피아노 연습을 한번 생각해봤다. 같은 반 친구도 똑같이 피아노를 치는데 두손으로 제법 친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했는데 예린이 보다 더 잘친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예린이와 운이랑 같이 들으면 운이가 더 반응이 빠른 편이다. 예린이는 자기가 들은 멜로디를 음을 잡아서 건반을 쳐보곤한다. 그러나 예린이는 피아노 앞에선 집요한 집중력은 찾아 보기 어렵다. 결론은 예린이는 달리고 뛰는 야외 활동을 더 즐긴다. 좀더 쉽게 애기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때 더 빨리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한가지가 있다. 바로 그 한가지는 조직안에서 영향력이 없는 일년도채 되지 않는 신입사원인데 대기업에서 일했다는 것을 바탕으로 현재 회사의 시스템과 과정 문제를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고 평가를 한다. 문제점 파악은 책에서 나온 일반론적 관점에서 분석을 했으며 해결책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 아닌 그냥 추상적 이상주의에서 파생된 그냥 ‘바라는 것’에서 끝났다. 그리고 자신이 조직안에서 사람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가졌다고 착각을 하고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데 지도자로써 영햐력과 능력이 있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그런것처럼 행동한다. 이 사람을 봤을때 삼국지에 나온 인물 한명이 생각난다. 바로 가정 전투에서 패해 첫북벌을 물거품으로 만든 마속이다. (그런데 또 애기가 이쪽으로 새어 버렸을까).

앞으로 조직안에 많은 변화가 있을것이다. 내가 하던 중요한 일을 아랫 사람에게 넘기고 그 담당자를 교육 시켜야 되는데 여러가지 방법론을 생각해 봤다. 내 방식데로 메뉴얼을 만들어서 그냥 기계처럼 실행하고 더 계발하고 발전한 기회를 제공치 아니하고 여태것 사용했던 기존의 방식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나중엔 변화를 억제할수 있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목표만 주고 방법을 알아서 하게 하는 자유분방 박목형일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100까지를 꼭 가르쳐 주어야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메뉴얼 가지고 그대로 쫓아하게 만들던 목표를 주고 알아서 하게 만들던지 이들의 효율성과 충성심과 능륙을 올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 그것은 바로 피드백이다. 쉽게 말하면 지도자의 반응이다.

피드백 (feedback)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내용 (content) 보다는 반응 속도 (response time)이다. 긍정적이고 빠른 피드백은 교육에 큰 효과를 준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순한 일방통행 교육 방법인 training이나 teaching아니라 피드백을 통해서 스스로 깨닮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에 새로 연구중인 바로 ‘교육의 자기 구조화 시스템이다. ‘자기 구조화 시스템’은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것과 알고 싶은것을 주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에 따라 대응을 한다. 다시 말해 일방통행인 주입식 교육은 수동적인 teaching이며, 자기주도방식의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배우고 그러함으로 빨리 습득해서 내것으로 많는다. 즉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서 ‘스스로 깨우치고 배우는 능동적 사고’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선 철없는 어린애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관심분야에는 집중하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경제적 책임을 저야 하는 의무를 시행하기 위해선 자기가 좋아하는 관심 분야를 해야 되는데 만약 이것이 돈이 되는 거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을 해야 된다. 바로 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선택에 대한 위로과 격려를 받기 위해선 동료과 회포를 부는 같은 술자리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피드백을 정확고 분명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알리는 것이다.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나이도 들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름데로 나도 주의 사람들에게로 부터 피드백을 즐긴다. 그래야 반응하는 동안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하고 나중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된다. 자식들에게 부모로써 해줄수 있는 것은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애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빨리 찾아네는 것이다.

수동적인 가르침 (teaching)이 아니라 배움 (learning)이라는 ‘자기 주도 방식의
교육’으로 교육의 사고가 크게 옮겨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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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도 요기 베어 같이 털털하고, 뽈록하게 튀어 나온 배 때문에 허리 둘레는 두리뭉실하고, 수염은 제대로 깍지 않은 상태에서 덥수룩하고, 머리는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편한 펑퍼짐한 옷차림에, 얼굴은 달덩이 같다. 쉽게 말해서 부담감은 존재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고 편한 이미지가 바로 중년의 아버지 모습인것 같다.

난 간혹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이런 애기를 듣곤 한다 – ‘총각인줄만 알았다’ or ‘애가 3명인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or ’35살이라고 전혀 믿어지지가 않는다’. 순간 이런 애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젊어 보이고 품절된 상품 (유부남)인데 미혼 같다라는 말에 내 상품성 가치가 아직도 하락하지 않았다라는 묘한 생각 (혹은 망상)에 야릇한 생각이 5초 동안 들면서 다시 제정신 차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 ‘계속 이렇게 쭈욱 가자’. 그런데 계속 쭈욱 무엇을 어떻게?

35년을 살면서 단 한순간도 배움의 고삐를 늦추어 본적이 없다. 무언가를 해야 되고 집중해야 되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머리속에 집어 넣고 배운 것과 사용한 것은 반복 복습과 사용으로 내 것으로 다시 한번 다져 놓는다. 예습하는 과정에선 새로운 흥미를 얻게 되고 복습을 통해서 예전에 깨우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끝없이 자기계발에 힘쓰고 지금 있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전진하면 나도 모르게 젊음과 열정을 유지 하게 된다. 쉽게 애기하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사람’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알고 같이 속도를 맞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 될것은 아무래도 비주얼쪽이다. 키가 165cm에 몸무게는 70kg. 아무리 평균치 근육량을 초과 했다고 해서 복부비만을 무시할 시기가 더 이상 아니다. 나이 먹으면 몸이 나고 어쩔수 없이 살이 찐다고 한다. 아마도 신진대사의 속도가 예전과 비교해 보아서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운동하고 몸매를 가꾸어야한다. 잘못하면 30대 중반에 요기 베어 같이 펑퍼지고 후덜해 보이고 풍만감을 주는 매력과 신비함 빵점의 평범한 가장/남편/아버지로 전락 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로써, 가장으로써 그리고 남편으로써 어떤 모습으로 서야 되는지 고민 되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알고는 있지만 이것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또 삼각대 사고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복잡해진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 처럼 꾸준히 자아계발에 힘쓰고 (이번해에는 어떤 공부를 할까 완전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꾸준히 운동해서 64kg까지 줄이는 것이 내 목표이다. 그래서 재단사에게 박시후가 청담동 앨리스에서 입었던 양복 두벌 사진을 가지고 가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할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가을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정기검진 다시 받고 원장님께서 칭찬을 들을 것이다 – ‘살 아주 짤 뺐어요’라고.

이제 한시간을 시속 6km로 걷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속 6.5km에 2시간 걷기에 오늘부터 도전한다. 소비 해야될 칼로리는 4자리인 1,000 칼로리이다. 난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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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초기화의 다른 해석

얼마전에 인생은 컴퓨터 처럼 리셋 버튼을 누름으로서 재부팅을 하거나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운영시스템을 새롭게 설치해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초기화 작업이 불가능하다 했고, 이렇게 하려는 인간의 소망은 책임 회피를 하려는 나약한 자의 의미 없는 망상일 뿐이라고…. 그런데 나의 블로그를 읽는 지인께서 인생 초기화에 대한 다른 각도의 해석을 보내주셨다. 나에게 나른 사고의 각도와 방향을 제시해주신 그 분께 감사드리고 보내 주신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리셋은 과거를 지우는 초기화 작업이 아닌 과거 경험을 살려 성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리셋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 단순히 과거의 것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이것을 한차원 높게 생각을 하면 리셋은 옛것의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론 되돌아 갈수도 없지만)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려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 삶에 이런 리셋의 순간이 언제인가? 간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예로는 엘리트 코스를 밣으면서 사회지도층 반열에 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한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서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십년동안 재무관리자로 있다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음대에 들어가서 작곡을 공부한다. 이런것이 바로 인생의 리셋이다 – 바로 새로운 출발.

이렇게 인생에 리셋을 하기 위해서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익숙함’과 ‘두려움’이다. 익숙함은 과거에 했던 일과 환경 프로세스에 대한 친근감과 편안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시작을 할 경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재까지 누린 익숙삼과 편안함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스트레스가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extend된것이 있다. 바로 ‘공포감’이다. 그 공포감은 바로 내가 가지고, 내가 배우고, 내가 이루고, 내가 얻은 (경제력, 인맥, 학연, 재산등)것을 순식간에 잊어 버린다는 것에서 시작 된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는 것을 잊어 버리거나 망가질 경우에 의기소침과 자아연민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심할 경우 제기불가능이나 자폐증까지 갈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관론적 사고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과거에서 단절되지도 않는 리셋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임시다리)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을 사용함으로써 전문성의 향상과 자신감 상승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려는 것에 대한 열망은 줄어 든다. 이제는 전력 질주가 아닌 여유로움을 찾고 편해지기 싶기 때문이다. 이때 세익스피어가 한 말이 생각난다 – 경험이란 헤아릴수 없는 값을 치른 보물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때 사람들은 초기화를 원한다. 그런 회피적 사고는 잠시 옆에다 비껴 두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더 하면 어떨까? 그럼 이번 문제를 극복하면서 없은 고귀한 경험은 미래에 비슷하거나 같은 상황이 닥칠때 이것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젊었을땐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경험은 미래에 다가 오는 위기 순간을 순발력 있고 적절히 대응 할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제공 하는 요소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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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선…..

그 나라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면 된다.

내가 호주에 1994년도 6월달에 도착하고 나서 남들과 같이 많은 문화적 갈등을 격었다 – 한국의 문화는 이런데 왜 호주에선 이러는 것일까. 불만도 많았고 불평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멋대로 내게 편한데로 내게 유익한데로 각 나라의 문화를 도입시켜 이용한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철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머리가 커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각 나라의 좋은 문화와 예절은 지키고 접목 시켜서 이민 1.5세로써의 나만의 독특한 개성 창출 시키고 호감이 가는 좋은 이미지를 오래 동안 남기는데 비교적 성공한 편이다.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선 남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 됬다. 물론 마키아빌리의 군주론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다.

호주에 살면서 많은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을 보았다. 내 목구멍이 포도청이여서 나의 생존과 성장에 집중해야 되는 시기엔 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내 머리속에 유독 기억이 나는 한명의 사람이 있다 –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시드니에 1년 동안 온 학생이였는데 내게 ‘호주 영어는 발음이 촌스러워서 영어로써 배울 가치가 없다’라고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속으로 이렇게 반응 했다 – ‘자신이 영어를 빨리 습득하지 못하는 핑계를 이렇게 하는 아주 비겁한 사람이다’라고. 그리고 내가 읽은 책에서 나온 내용을 인용하여 각성 할 기회를 제공하려 했으나 시간 낭비임을 깨닮고 그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단절 시켰다. 마키아빌리는 이탈리아의 최연소 외교관이였다. 유럽 대륙에 여러나라가 옹기종기 붙어 있어도 각 나라마다 독특한 개성과 문화 그리고 법을 가지고 있었다. 육로로 비교적 이동이 쉬웠던 이유로 이민자의 유동인구가 비교적 높은편이였고 다른 나라에게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개척 해나가는 과정중에 일어난 문제와 송사를 마키아빌리는 다루었다고 한다. 그때 마키아빌리의 서신에 내포된 심오한 메세지는 이렇다 – ‘만약 당신이 주어진 환경을 바꿀 힘과 능력과 위치에 있지 않다면 불평불만을 늘어 놓지 말고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최근에 호주에 이민오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현재 호주 시스템에 대한 잘못된 점을 많이 듣게 된다. 물론 한국과 비교해 보아서 고객중심의 사고가 덜 하다. 한국과 비교해 보아서 일의 진행 속도가 느린편이다. 한국과 비교해 보아서 의료 시스템이 허접해 보이고 검사를 받는데도 너무나 오래 걸린다. 나도 그들의 의견이 타당성이 있고 일부는 동의한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한가지 있다. 나를 포함 해서 그들은 이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고칠 능력도 돈도 권력도 없다. 그리고 그들과 나를 구분하는 점이 한가지 있다. 나는 불평 불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 불만을 구구절절 늘어 놓는다. 과연 몇 사람의 불평불만의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향하는 목표를 수정 시킬수 있는 것인가? 만약 바꾸고 싶다면 권력 있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됬어야지 왜 그냥 군중에 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왜 스스로 이상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현인으로 미화 시키는 것일까….

호주에서 산지 만 19년이 되었다. 내가 이민 1.5세로 생존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비결은 단 한가지 – 나 혼자 밀려오는 파도를 몸으로 막을 수도 없고 물결의 흐름을 바꿀수도 없다. 파도가 오면 그 파도의 높이와 흐름을 읽고서 몸을 파도에 맞기에 타는 것이다. 그래야지 어떻게 재방을 쌓고 방파제를 쌓아서 거친 파도를 막을수 있을지 알기 때문이다. 썩은 선비는 정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비판만 할 뿐 바꿀 능력은 없는 자이다. 군자는 정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비판함과 동시에 그 잘못된 정책을 바꿀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는 것이다. 만약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기 힘들다면 아마도 그 나라를 떠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을 떠난 호주로 이민 온 이유중에 한가지가 대부분 한국의 특정 문화가 싫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한 나라의 문화가 싫어 다른 나라에 왔는데 그 나라의 문화가 또 싫다면…. 이런것을 보고 infinite dilema 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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