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앨리스가 오늘 끝나네…

난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기린아는 분명 제외)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용건만 간다히 애기하고 마무리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는 거의 없다. 항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 리스트를 검토하고 무엇을 제대로 했는지 검사를 한다. 내가 해야 되는 일, 자아 개발에 연관된 시간 관리와 투자는 철저하다. 그러니 항상 정해진 시간과 구역안에서만 활동하니 여유라고는 찾아 보기 힘든 모습으로 인식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잠자리 들기 전에 소녀시대의 뮤직 비디오를 본다던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애기를 하면 굉장히 믿을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선입견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오늘 밤 청담동 앨리스의 마지막 회가 방영 된다. 지금 기다리고 언제 웹사이트에 올라 오는지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문근영이 한세경의 역을 맡는 것이 실수였다라고 궁시렁 궁시렁 하는데 난 차승조와 한세경의 관계와 드라마의 진행 보다는 차승조의 캐릭터에 더 관심이 많다 (거기엔 차승조의 정장 패션도 포함된다). 왜냐고? 난 재벌집 아들이 아니고 뒤에서 나를 봐준 사람도 없고 더군다나 내가 그린 그림을 3만유로에 몰래 사준 아버지도 없다. 그냥 차승조가 프랑스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고 기반을 마련해서 한국 지점의 회장으로 파견 되는, 월급쟁이로써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모습에 난 그냥 매료 됬다. 그리고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못한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이 됬고 1회에 자신의 아버지인 차일날 회장에서 엿먹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대리만족과 희열을 느꼈고, 자신의 옛 여자 서윤주에게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나 복수하는 모습에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나도 성격 파탄인가 보다). 어쨌든 자수성가의 최고의 example의 차승조 그리고 경영인으로써 최고의 패션을 선보이는 차승조는 적어도 2013년 1월달에는 나에게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최고의 영웅이였다. 그리고 청담동 앨리스 때문에 하루에 꼭 한시간씩 걸었다.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보면서 빠른 속도로 한시간을 걸어 600칼로리를 소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도 박시후가 주연 있였다는 공주의 남자를 한번 시작해 볼까 한다.

지금 청담동 앨리가 혹시 올라 왔나 찾아 봤는데 아직 업로드가 되지 않았다. 결말은 어땟을까? 혹시 타미홍이랑 한세경 그리고 차승조와 서연주가 연결 되지 않을까? 이렇게 애기한 나를 보고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나에게 온 집안 식구들이 핀잔을 주었다 (난 타미홍이 좋은데….쩝….)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나의 이용가치는 과연 얼마 정도?

나에게 접근 하는 사람의 종류는 3가지로 구분 된다. 하나는 정말 순수한 동기로 나를 알고 친분을 쌓으려는 사람이고, 두번째는 나에게 부탁을 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이고, 세번째는 나보다 모든면에서 월등히 뛰어난데 나에게 부탁을 하려는 사람이다.

첫번째는 긍정적인 동기를 가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자신을 낮춘다는 비굴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도 가끔씩 어떤 사람이 궁금할때가 있다. 그럼 난 서슴 없이 가서 인사를 하고 말을 건내고 내 자신을 정중하게 소개를 한다. 이렇게 나에게 접근 하는 사람과는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 할수 있다. 두번째는 대부분 ‘은혜’라는 단어를 빌미로 혹은 ‘교회 집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상황 판단 사고력을 저하 시키고 편법을 정당화 시키고 자신이 마치 선행을 행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선 난 은혜라는 것은 믿지 않고 정당한 공정 거래를 선호한다. 나에게 부탁을 하고 얻을 것이 있으면 나도 상대편에게 동등하게 내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에 대한 댓가를 받는다. 그래야 서로 떳떳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좀 특별한 케이스다. 여러면에서 분석을 한 결과 지금 내가 이 사람에게 결코 도움이 될 위치도 아니고 권력도 돈도 인맥도 없는데 어찌해서 이 사람이 나에게 접근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가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가? 자기들은 내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접근하고 또 내가 부탁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즉 내가 자비를 베푸는 입장이고 그는 물리적인 tangible한 것을 얻지만 나에겐 실속은 없지만 뭔가 기분을 좋게 만드는 intangible한것을 얻게 된다. 여기서 얻게 되는 intagible한 것이 뭐냐면… 예를 들어 설명하면 내가 연예인 친구가 있는데 그와 친분이 있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옌애인이 된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나?

이용 당하는 것이 과연 기분이 나쁜 것일까? 만약 이런 과정에서도 내가 무엇을 얻는다면 이것은 상부상조하는 공정거래 상황이 아닐까? 이용을 당하는 자는 을이고 바로 약자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비굴해 지는 것일까? 이용 당하는 내가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나도 얻을수 있는 것이 분명 있고 그것이 또 나에게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고 미래에 더 많은 부가 가치 창출의 기회 제공 요소가 된다면…. 이것이 과연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것일까?

참고로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용 당한다’라는 것은 ‘being abused by’가 아니라 ‘my abilities are being utilized by others’의 개념으로 애기하는 것이다. 전자는 내가 얻는 것이 아무것도 것도 상태로 절처하게 이용 당하는 것이고 후자는 나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 되며 미래에 더 많은 것을 얻을 기회 제공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런 애기를 했다. 서로 속고 속이며 속아주는 것이 사회 생활이고 이것이 반복의 연속이 바로 삶이라고… 이 말의 의미를 난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그것도 나를 낳아 준 부모에게서… 모르는게 약이다 특히 어렸을때는 말이다.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짜고 치는 고스돕에서 이기는 방법은….

상대편이 일부러 지는 순간에 승리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살다보면 권력자들이 미리 짜놓은 각본의 한 부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를 맡았던 사장이 갑자기 별세를 하고, 그 순간 부사장은 회사의 존속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자신이 스스로 사장이 되고 기존의 폐단을 고치려는 혁신적인 시도를 하다가 돌아가신 사장님의 아들과 부인에게 저지를 당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의욕은 점점 상실 된다. 자신의 위치가 위태하다는 것을 느낀 사장은 측근들을 만들려고 외부에서 사람을 들여 오거나 기존의 직원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한다. 이러는 동안 사장은 회사 경영에 집중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자기가 소유한 주식 보호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진행 상황에 불만을 품은 돌아가신 사장님의 부인은 자신의 오빠를 외부에서 불러 들인후에 ‘고문관’이라는 명목으로 사장의 견제 세력으로 만든다. 이때 눈치 빠른 직원은 자신의 생존권을 보존하기 위해서 가끔씩 양다리 걸어 보기도 하고 이쪽저쪽에 아부하면서 양쪽에게다 점수를 따려고 노력한다. 이런 눈치 빠른 종자들의 시도는 겉으로는 융통성 있고 지혜로워 보이지만 이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이렇게 뻔할뻔자의 각본에 의해 진행 되는 상황에서는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키고 상황 관찰을 하되 그 어느쪽에도 기울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소신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이렇게 미리 짜고 치는 고스돕에선 나의 임기응변이 그들에게는 기대하지 않은 별로 반갑지 않은 변수로 작용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돕 같은 사회 생활에서 승부수를 걸려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어떤 편을 선택하면 이것은 어느 한쪽에는 충성이요 어느 한쪽에는 배신으로 보인다. 운이 좋게 충성을 바친 쪽이 권력을 쥐면 처음엔 그를 중용 할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이 배신 할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배려한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충성을 바친 쪽이 패하고 다른 편이 권력을 쥐면 이는 간신배로 인식이 되어 눈밖에 나게 된다. 두 편이 서로 치열 하게 싸울때에 미리 줄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같이 싸우면 한쪽이 이겨도 많은 상처를 입고 지치게 된다. 이때를 기다려 스스로 승자를 지원 하던지 아니면 부름을 받을때까지 기다리면 ‘겁쟁이’라고 불려질수는 있지만 ‘배신자’라는 오명은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겁쟁이는 배신을 할수 없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어떻게 처신 했냐고? 난 인문과학에 관한 서적을 어렸을 때부터 일찍 접하고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힘의 균형에 대한 직감이 많이 발달 됬다. 대세의 흐름을 보고 미리 줄을 서고 먹성을 깔고 앉는 것 보다는 차라리 승자쪽이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때 내 자신의 보여주는 것이다. 손자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신규 세력의 특성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면 그가 혁신적으로 시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수 있다. 정권 교체가 일어나는 그 순간, 그 혁신적인 시도를 지지하고 실행에 필요한 준비를 해 놓으면, 나에게 선경지명이 있고 경솔하지 않고 신중하며, 또 대세의 흐름을 보는 안목과 뛰어난 식견을 가진 자로 인식하게 된다.

인생은 어짜피 짜고 치는 고스돕이다. 상대편이 어떤 패를 가졌는지는 투시안이 아닌 이상 알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돕의 주인공들은 자기들이 짜고 치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밀고 땡기고 일부러 몇번 지기도 한다. 짜고 치는 고스돕은 2명 이상의 상대가 있다. 이들의 패를 모르는데 무모하게 승률이 적은 정면 승부를 걸면 나에게 그것이 마지막이 될수도 있다. 비겁 할수도 있다. 그러나 비겁한 자가 살아 남는 시대이기도 하다. 만약 각본에 이번에 내가 이길 순간이면 기분 좋게 이기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훌륭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조연도 필요하고 대역도 엑스트라도 필요하다. 권력자들이 짜아 놓은 각본에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그들에겐 필요하다. 아마도 내가 여태컷 생존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것이 바로 각본에 나오는 권력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위의 글은 내가 일주일전에 써 놓은 글이다. 오늘 일요일 저녁에 적어 놓은 글들을 수정하는 과정정에 이 글을 읽어보니….. 프랜스포머 2 영화가 기억난다. 메가트론의 부하인 Starscream의 말이 생각 났다 “겁쟁이가 때로는 살아 납니다”라고…

Posted in Uncategorized | 1 Comment

내가 국민학교때 성적표를 기억해 보면…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부터 중학교 때까지 성적표는 점수와 수, 우, 미, 양, 가로 나왔다. 그냥 오래간만에 궁금해서 수, 우, 미, 양, 가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다.

‘수’는 빼어날 수, ‘정말 우수하다’라는 뜻이다.
‘우’는 넉넉할 우, ‘우수하다’라는 뜻이다.
‘미’는 아름다울 미, ‘좋다’라는 뜻이다.
‘양’은 어질 양, ‘괜찮다’라는 뜻이다.
‘가’는 옳을 가, ‘가능다라’라는 뜻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9년이라는 교육 기간 동안 9분의 다른 담임 선생님 중에서 단 한명도 성적표에 수, 우, 미, 양, 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 분이 없었다. 그냥 수는 최고이고 가는 최악이라고 했고 수가 많은 애들은 칭찬을 받고 가가 많은 애들은 무지막지하게 혼났다. 왜 선생님은 이것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수’는 좋은 것이고 ‘가’는 나쁜것이라고만 강조를 했을까.

조금전에 국민학교 동창(?)들이 기억이 났다. 방학전에 성적표를 받을때 교실 분위기는 참 도살장 문앞에 서 있는 소와 돼지들의 임시 저장소 같은 느낌이였다. 성적표를 선생님께서 하나씩 나누어 줄때 아이들의 표정은 완전 굳어진다. 그리고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받은 애들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선생님께 성적표를 고쳐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엄마한테 보여주면 혼난다고. 또 개학일에 부모님의 사인을 받은 성적표를 반드시 제출 해야 됬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무진장 맞은 것으로 기억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였다. 성적표를 받으면 덥썩 겁부터 먹었다.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고 아빠가 성적표를 보시고 혼낼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 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전산실에 몰래 잠입을 해서 성적표를 프린트 하는 종이를 구해서 도트 메트릭스 프린트를 구해서 성적표를 위조한 기억이 난다. 일부 학생들과 형들에게 부탁을 받고 성적표를 기술적으로 위조한 사건이 기억이 난다.

방학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성적표 때문에 방학에 놀게 되는지 학원에 보내 지는지 출입 금지를 당하는지 정해졌다. 방학전에 받은 성적표는 그 해 방학의 행복도를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본다. 수우미양가의 원리는 어디서 부터 나온 것인지. 이것이 진정한 본질과 목적은 무엇일까? 가를 받은 학생도 발전 가능성이 있고 용기를 주고 더 성장하고 노력할수 있도록 이끄는 선생님은 없었고 그냥 단순히 이것을 성공의 잣대로 사용해서 그들에게 학구열에 찬물을 끼얻고 용기와 의욕마져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 하지 않았나 한다.

어째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수만을 강조 했을까? 최고가 되어야 한다. 군중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한다.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 당한다. 일등이 아니면 잊혀진다. 금메달 가치가 있고 은메달과 동메달은 가치가 없다. 군림하지 않는 자는 군림을 당한다 라는 이런 극단적 2분법적 생각…. 지나친 성공지향주의…. 이것의 종점은 과연 어디인가.. .끊이 없는 전진과 개발과 노력인가? 그럼 여기서 찾을수 있는 여유은 무엇인가? 이른 아침부터 출근전에 머리가 아주 아프기 시작한다.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남자의 사회 진출의 첫 단추는 바로….

처음 직장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첫 직장을 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랬다.

이제 기억이 난다. 대학교 다닐때 3종류의 학생들이 있었다. 공부 엄청 잘하고 졸업이전에 대기업 공채를 통해서 미리 고용 계약서에 서명한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대부분이 졸업생들이 겪는 취업 스트레스는 생소한 것이며 졸업하고 나서 비교적 순조롭게 사회진출을 시작한다.

두번째 종류의 학생이 있다. 아마도 내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 입학 첫해는 갈팡질팡하면서 방황도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대충 산다. 고등학교때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핑계로 음주가무를 즐긴다. 그러면서 학업엔 소홀히하게 되고 낙제도 많이 하게 되고 미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심각한 고민 끝에 제정신 차리고 다시 시작한다. 1학년과 2학년 과목은 성적이 엉망이지만 3학년 과목은 비교적 괜찮다. 그리고 불량 학생이라는 인상을 없애기 위해서 공부는 파트 타임으로 하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사무직에서 이것저것 잡일을 도맏아 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대한다. 그러면서 눈치도 늘고 사람들 상대하는 노하우도 생긴다. 어느 정도 정치적 수완도 생기고 생존하기 위한 권모술수도 자연히 늘게 된다.

세번째 종류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다. 학점은 별로 중요케 생각치 않고 그냥 패스만 받고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대충 노력 하지 않고 공부한다. 아니 노력은 하는데 시험을 잘 보는 요령을 몰라 시험만 볼때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하기가 가장 힘든 케이스가 바로 이 세번째 부류이다.

첫번째는 엘리트로써 엘리트 교육과 훈련을 받고 순조롭게 성장하고 두번째는 산전수전공중전 겪으면서 터특한 노하우와 처세술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처음은 힘들었지만 졸업하고 나서 비교적 안정권에 빨리 도입하는 케이스이다. 마지막 세번째가 취업 스트레를 가장 많이 받는 이유는 바로 면접 시험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한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선 두가지 순서가 있다. 한가지는 서류 심사이고 두번째는 필기 시험이며 마지막으로 면접 시험이다. 서류 심사는 비교적 표준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자격 미달이던지 아니면 정말 초보자가 하는 실수 (증명사진을 첨부하지 않았다든지 혹은 철자법이 엉망이라던지)를 범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학벌이 있으면 우선은 통과 되는 편이다. 필기 시험도 예전 같이 어렵지 않다. 전설의 답안지나 벼락치기 코스, 상식사전등 취업을 위한 참고 서적이 정말 많다. 한국인들은 암기성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탓에 그냥 외우면 그래도 중간은 넘을수 있다. 하지막 최후의 난관이 바로 면접 시험이다. 면접관들 앞에서 자신을 광고하기 위해서 연습도 많이 하고 웅변 학원도 가서 코치도 받는다. 자신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비교적 연습 한데로 잘 했다고 생각 했는데….. 어째서 떨어지는 것일까? 바로 그 이유는 면접관에 대한 분석과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매년 대학교 졸업식에 초대를 받는 한명의 초청 강사가 있다. 명성이 높은 사회 지도층인데 이 사람의 졸업식 연설은 대학생들에게 정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생각의 여운을 남기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초청 강사가 동네 유치원에 가서 자신이 항상 대학교 졸업식때 사용한 원고로 유치원 졸업식 축사를 했다가 하면…. 유치원생들은 아마도 몇분 지나지 않아 멘붕 상태에 빠질 것이다. 즉 가장 훌륭한 연설자는 단상에 서기전에 단상 아래 객석에 앉아 있는 청충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수준과 눈높이 맞추고 연설 도중에 생기는 이질감이나 저항력를 관중의 반응을 보고 임기응변으로 눈높이를 올렸다 낮추었다 하는 것이다. 면접도 이것과 똑 같은 원리이다.

면접 시험을 잘 볼수 있게 가이드하는 책들을 보면 하나 같이 면접자로써 갖추어야 될 것들에 강조를 많이 한다. 그러나 그 어느책도 적라나게 면접관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자리에 앉고 30초안에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왜 책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두가지 – 사람은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대응하라 라는 정확한 대응책을 제시하고 그것이 맞지 않았을 경우 독자의 질타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는 도덕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들어내기 원하지만 상대편을 파악하고 상대편이 듣고 싶고 원하는 답을 말하게 훈련을 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적 사고를 가진 뱀같이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두번째 종류인 사람 – 바로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어 본 사람이 직장도 잘 옮기고 빨리 승진하고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는 것일까? 이들이 세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아주 쉽게 애기하면 ‘눈치’가 없기 때문이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왜 고생을 많이 했냐고 물어 본다면 대답은 바로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실수 했을때 수습하는 것을 배웠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해야 되는 지도 배우고 다음엔 어떻게 실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배우게 된다. 실수를 통해서 얻고 터득한 매우 값진 것들이 아주 많다. 그중에 한가지가 바로 ‘눈치’이다. 이 눈치는 책에서도 배울수 없고 돈주고 살수도 없는 것이다. ‘눈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서 그들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과 때론 배신과 질투, 모함과 격려 그리고 (남을) 이용하고 (남에게) 도용 당함으로써 배우게 되는 것이다. 많이 고생한 사람은 사람을 잘 본다는 말이 있다. 그말은 즉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대충 그들의 공통점을 종합해서 정리를 해서 그룹을 만들면 어느 정도 상대편이 누구인지 어느 종자(?)인지 얼굴 보고 대충 말 몇마디 나누면 바로 파악이 대고 내가 내린 직감적이면서도 논리적인 분석의 성공율은 그래도 50%는 넘게 된다. 바로 ‘눈치’가 좋은 사람이 면접관의 특성과 습성 그리고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면접에서 합격율을 높이는 것이다.

상대편이 누구인가에 따라 전략이 바뀌는 것은 기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상대편을 알기전에 내 자신을 먼저 알면 상대편이 보이고 내 자신의 거울에 비추어지면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될지 전략 구상과 실행이 여기서부터 시작 되는 것이다. 면접보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전 기회주의자 같이 면접관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제 자신을 솔직히 들어 낼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난 이렇게 애기하고 싶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위치에 있는 남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을 것을 배풀고 많은 경험과 인맥을 가진 사회 지도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갑’이고 ‘갑’에게 고용 해달라고 청한 당신은 바로 ‘을’입니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양육강식의 논리에 역행을 하면 과연 남자의 사회 진출의 첫 단추라고 하는 첫 입사에서 자신의 주장만을 펴서 면접관의 눈밖에 나서 불합격 된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손해일까요?라고….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