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삶을 사세요…

종종 듣는 애기다 – “이사님 or 집사님은 드라마 같은 삶을 사세요. 그런 삶을 사는 비결이 뭔가요?” 나의 대답은 언제가 간다명료형 –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세요. 남의 인생의 엑스트라나 조연이 되지 말고요”. 너무 추상적인 대답인가? 그럼 논리적인 접근을 한번 시도해 본다.

난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 예전엔 예쁜 예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는 슬픈 장면이 좋았는데 지금은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좋다. 그리고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한가지 얻는 또 하나의 기쁨은 내용 전개를 대부분 정확하게 짐작 할수 있고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내 삶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내 나름데로 각본을 짠다 – 내가 할수 있는 일, 내가 할수 없는 일, 내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정확한 계획과 분석을 통해서 각본을 만든다. 만드는 물론 내안에서 조정 불가능한 요소들이 있고 생각치 않은 변수들의 발생으로 종종 각본을 수정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재미 있는 것은 각본을 수정 할때는 반드시 내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수정한다. 이러는 과정중에 내 옆에서 중요한 역활을 맏았던 조연인 사람이 갑자기 엑스트라로 사라 질수도 있고, 엑스트라가 아닌 그냥 촬영중에 지나가는 사람과 인연을 맺어 내 인생 드라마에 중용한 위치를 차지 하는 사람도 생긴다.

드라마 같은 삶은 어떤 의미로 드라마에서만 가능 할것 같은 삶을 사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31살 되기 전에 대기업의 재무관리 이사가 되고 3명의 건강하고 귀여운 자녀와 현숙한 아내를 둔 나에겐 이것이 지극히 평범한 일반적인 삶일 뿐이다. 이런 평범한 내용을 드라마에 한 부분에 너무 자세히 묘사하면 진부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난 내 나의에 맞지 않는, 시기에 이른 것들을 이룬다. 예를 들어서 35살에 호주 명문대 강단에 서서 3학년 학사 과정 학생들에게 초대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강의를 한것이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균적 생각을 깨면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꼭 드라마 같은 삶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일드라마가 좀 더 대중적이고 친숙하며 시청율이 높은 편이다. 왜냐하면 신경을 곤두세워서 시청 할 필요도 없고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이에서 일어 나는 갈등과 삼자와의 삼각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일일드라마의 소재는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 평범한 생화를 하는 사람들이 부담감 없이 쉽게 받아 들일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함은 친숙한 느낌과 안정감을 주지만 쉽게 익숙해 지고 친숙이 시간이 지나면 진부함으로 바뀐다. 결국은 평범한 삶은, 즉 수동적이거나 능동덕인 변동과 변화가 없는 삶은 지루해지기 쉽고 신선함과 신비함이 저하된다. 지나치게 기복이 심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부과하는 삶 보다는 자기의 능력안에서 삶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조정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것도 삶의 묘미라 할수 있다.

내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난 평범함에서 얻어 지는 평안함 보다는 굴국 있는 삶에서 얻어지 변화가 더 좋다. 가늘고 길게 그리고 굴곡 없이 너무나도 평단하고 지루하면서 재미 없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바에 차라리 그냥 다른 사람 인생의 정체성도 존재성도 기억 되지 않는 엑스트라로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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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살면서 겪는 끊임 없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냐고?

자신이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된다.

갈등의 요인은 바로 ‘결단성 부족’이다. ‘결단력’이 약한 사람을 보고 ‘우유부단하다’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대부분 우유부단한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책임 회피’이다. 문제가 발생 했을때 ‘나의 과실’이 나닌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외치며 책임 회피를 한다. 이것이 바로 결단력 결핍증의 1차적 증세이다.

그럼 경연자의 관점에서 본 2차적 결단력 결핍증의 증세는 무엇 일까? 바로 결단력이 결여 된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숨기기 위해 남에게 결정을 떠맞긴다. 남에게 결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부담감을 줄이고 책임감을 부여 시키고 권위를 높여 주기 위해서, 그를 사탕발림 작전으로 요리하면서 논리성이 결여된 감정을 바탕으로 결정하게 만든다. 이것이 아주 교묘한 책임 회피법이고 막말로 일이 잘못 됬을때 ‘덤탱이’ 씨우기에 아주 적절한 방법이다.

지도자의 능력은 위급한 상황에서 드러난다. 평상시에는 친절하고 다가가기 쉽고 온화해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면 쉽게 흔들리고 감정적 반응과 대응책을 보이면서 자신이 스스로 최전방에 서서 총대를 메고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방에 서서 두려움에 휩싸인 직원들과 자신감 상실이 된 메니져들을 뒤에서 지휘한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 본지 너무 오래 되서 기억이 잘 않나는데 병자호란때 10만의 청나라 군사를 저지할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가서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고자 했던 인조의 모습과 같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기전에 병조판서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한 선조와 신료들은 7년 동안 왜구의 침략에 시달려야 됬고, 그것을 교훈으로 삶아 병력 증강과 무기 개발,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와의 균형적인 무역관계를 유지해서 현명하게 대처를 했다면 단 2개월 만에 국왕이 무릎을 꿇고 두 왕자 부부와 200명이 청나라로 포로가 되는 굴욕을 당한다. 이렇케 삶에 어려운 순간이 왔을때 리더들은 두가지를 두고 고민해야 된다 – 자신을 희생하고 다수를 살리는지 아니면 자신을 생존하기 위해서 다수를 희생 시켜야 되는지. 어느 순간 부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자신이 살기 위해 남들이 스스로 희생하게 조작하는 것이 리더쉽의 묘미 혹은 예술이라고 양의 탈을 쓰고 뒤에서 희죽거리는 늑대 같은 지도자들이 수두룩하다.

나도 살면서 이런 갈등을 많이 겪는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남을 희생 시키고 남을 깍아 내리고 남을 모함해야 되는 순간.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올때마다 지금까지 난 잘 이겨냈다. 불의에 대한 완강한 저항을 할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을땐 잠시 몸을 낮추고 피한다. 그리고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 소리 없이 차분하게. 그리고 나 보다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경청하는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 되고 생존하기 위한 아이디어 공유와 동기 부여 및 각성의 계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감정적인 대응책에서 논리적인 대응책이 나오고, 정치적 권모술수를 부려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에 대한 증오가 서서히 이해와 관용으로 바뀐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난 점점 성장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며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고초를 겪으면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날 죽이지 못하면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말이 현실화가 된다. 그러면서 군자가 지녀야 될 최고의 성품중에 하나인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바로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스스로 분석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의로운 사고와 윤리관이 바로 삶을 살면서 겪는 끊임 없는 갈등을 극복할수 있는 상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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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uzzle – 난 주도형 or 사교형 or 안정형 or 신중형

그런데 위의 네가지의 성격을 고루 갖춘자는 어째서 정신분열자로 하는 것일까?

사람은 자신의 성격에 대해 심리 테스트를 할때 두가지 답을 가지고 고민한다. 한가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싫어하는 본 모습/성격이고 다른 한가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습/성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성격과 자기의 이상적인 모습을 섞어서 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 테스트의 큰 오류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형용사를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이런 테스트를 하고 결과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도 판단/선택의 오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어진다. 그 이유는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진심인지 거짓말인지 구분 할 능력이 떨어지도록 많은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얻어진 권모술수가 몸에 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편의 비위를 잘 맞추고 눈치가 좋은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말을 잘해서 상대편의 비위를 맞추는데 뛰어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갈등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내가 진심을 말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상대편이 원하는 말을 내가 일부러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한 구별 능력이 점점 퇴보가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과 상대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하고 다양한 환경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반사적으로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 상황을 대처해서 상대편에게 호감을 얻고 신뢰를 주는지에 대해 배우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럴때 내가 하는 말이 그냥 각복에 짜여져 있는데로 상황에 맞게 자연적으로 나오는 접대용 멘트인지 아니면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인지에 대한 분별력은 투명한 알콜과 투명한 물을 섞어 놓고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해 보라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내가 말하고 싶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 온다면 뛰어난 능력자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 맞추어서 때론 내 자신을 주도형으로 변신 시키거나 사교형, 안정형 혹은 신중형으로 자유자재 변신을 해서 적응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사람은 그 날의 기분과 상태와 다른 요소에 따라서 테스트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것이다. (예전에 내가 테스트 했을 때는 거의 100% 주도형인데 이번 테스트 했을 때는 80% 신중형으로 나왔다. 그 이유는 내가 요즘 2주 동안 회사 회계 기록을 검토 했기 때문이 어느 때와는 달리 정교하고 세밀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난 이런 심리/성격 테스트에 대한 결과는 신용하는 편은 아니다. 일반론적 접근에선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애기이지만 난 일반적인 평범함이 아닌 독특한 차별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4가지의 다향한 디멘션을 자유자재로 커버하고 변신 가능한 능력자를 자신이 그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해서 정신분열자로 낙인을 찍는 것은 아마도…… 오리가 독수리를 보고 너는 왜 수영을 못하니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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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를 던지는데도 방법이 있다.

바로 적어도 5번 ‘why’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된다. 그러면 대부분 물음표로 시작하여 어떤 답을 찾을때 느낌표로 끝날때 난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에 생긴 문제를 예로 삼아 5why 법칙에 대해 설명한 비디오가 갑자기 기억이 났다. 예를 설명하기전에 내가 기억한 토마스 제퍼슨에 대한 기억을 정리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고 2대 대통령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3대 대통령으로 취임된 제퍼슨의 위대한 업적중에 한가지가 바로 자유와 평등, 바로 미국의 건국 이상위에 독립선언문을 최초로 작성 했다. 아마 제퍼슨이 상원위원이였을때 미국에 달러로 통화를 통합 시킨것으로 기억이 나긴 하는데… 제퍼슨은 재선에서 이겼고 8년동안의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당시 프랑스 대혁명의 잔해와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인해 국제긴장에 휩쓸리지 않고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펴서 미국의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다. 그외에것은….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는데.

어쨋든 토마스 제퍼슨의 기념관에 대한 예를 시작한다. 이 기념관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골머리를 썩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돌기둥들의 부식 때문이였다. 전문가들은 저자극 세제를 사용해서 부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을 대응안으로 내 놓았지만 관리자는 다른 각도로 접근을 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 했다.

1) 어째서 기념관을 자주 이렇게 세재로 청소를 해야 되는가? 바로 비둘기때의 배설물 때문이다.
2) 어째서 비둘기때가 기념관에 때를 지어 오고 배설물을 남기는가? 바로 기념관에 있는 많은 거미들 때문이다.
3) 어째서 많은 거미때가 기념관에 있는 것일까? 바로 나방을 잡아 먹기 때문이다.
4) 어째서 많은 나방때가 기념관에 모이는 것일까? 바로 기념관에 설치된 조명이 나방을 모여들게 하는 것이다.
5) 그럼 만약 조명을 없애거나 조명을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면 나방의 숫자가 줄면서 거미의 숫자가 줄고 자연히 비둘기의 숫자가 줄 것이며 비둘기가 배설하는 오물의 양도 줄을 것이며 배설물이 적어지면 청소할 빈도수가 줄을 것이며 결국엔 이것이 돌의 부식률을 줄일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사고임이 분명하다. 겉에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대응책을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대응책을 나오게 하기 위해 원인제공을 한 요소가 무엇이며 이 원인제공의 출발점은 어디서 부터 시작 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병을 치료하는 원리와 갔다. 곯아 터지는 상처를 대일 밴드로 대충 붙히고 응급처지를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병의 근원을 찾아서 고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때 올바른 처방임이 분명하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나쁜 결과를 푸념을 늘어 놓고 잘못된 시스템과 어째서 이런 나쁜 결과를 얻게 됬는지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기에 빠쁘다. 이럴 시간이 있다면 나쁜 결과를 얻게 기회를 제공한 그 원초적 요소인지를 찾아야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부분의 실패의 원인은 주의 환경이나 부적절한 시스템이나 운이 없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과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오늘도 매순간마다 나에게 이런 물음표를 던지다 – “어째서 난 이것 밖에 않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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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사람들이 가장 갈등을 격는 부분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인간관계’라고 말은 한다.

예전에 읽었던 심리학 책을 펴 봤다. 저자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제목은… 세상에 어떻게 제목도 기억이 나질 않지? 치매인가… 어쨋든 그냥 쉽게 읽고 넘어 갈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니라 심리학 관점으로 분석을 한,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가 않되는 그런 책이다. (처음엔 번역이 잘 되지 못한줄 알았다) 그 책에서 재미 있는 부분중에 한가지가 바로 ‘남이 나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받아 들이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비록 저자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마도 나랑 비슷한 사상과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은 분명했다. 이부분에서 특히 그의 해석과 나의 해석은 거의 동일 했다.

A와 B는 친분이 있다. A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고 B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고 오지랖이 넓다. 얼마전 B와 C는 서로 만나 A에 대한 애기를 했고, C와 친분이 없는 A는 B를 통해서 C가 가지고 있는 A에 대한 견해를 듣게 된다. 그런데 듣게 된 애기는 별로 좋지 못하다. 이때 A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 난 이렇게 반응 할것이다.

1) 우선 C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C에게 직접 물어 본다고 B의 의견을 물어 본다. 만약 B가 노발대발하면 B는 신용 할수 있는 자가 아니니 그때부터 관계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대부분 조직에서 중요한 역활이 주어지지 않아 한가하고 시간이 남아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여유를 가진 비생산적을 삶을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은 루머와 조작극 그리고 이간질을 잘 시키는 편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비밀로 해달라’ 혹은 ‘너에게만 말한다’ 혹은 ‘솔직히 애기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런 B는 그냥 상종을 않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2) B의 동의하에 C에게 직접 물어 본다. 만약 C가 자신이 말한 내용을 부정 한다면 그는 상종 가치가 없는 겁쟁이이다. 만약 C가 자신이 말한 내용을 인정 한다면 그의 사회적 위치, 명성, 학벌, 경력, 경제력, 가정사, 출생 배경과 성장 과정을 검토한다. 왜냐고? 만약 C가 당신에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조언을 했다면, 그 조언의 legitimacy와 validity를 뒷받침 할수 있는 절대적 요소들이 바로 위의 것들이다. 다시 말해 C가 조언을 할 위치에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만약 C가 이런 절대 요소들을 갖추지 못하고, 즉 나보다 낳은 위치에 있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노파심이라는 추상명사에 가려진 ‘헛소리’일 뿐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현명하거나 지혜로운것도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적다고 해서 그의 식견이 부족하다고 여겨서도 아니 된다. 객관적인 상대평가를 통한 C의 분석이 이루어진 후에 C의 가치가 판단이 되면 그 후에 조언을 받아 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내 주의에 사람들의 feedback 하나하나 꼭 반응하면 정말 피곤하다. 연애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데 무슨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의 실력과 정체성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쉽게 반응하지도 요동하지도 아니한다. 인생은 정말 짧다. 하루 하루가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하루를 내 인생에 별로 영양가/영향력 없는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것은 비생상적인 행위다. 인생에서 두명의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있을순 있어도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명은 갑이고 한명은 을이다. 을은 지배 받는 자이고 약자이다. 이런자가 경솔하게 갑의 심기를 건디려서 좋을 것이 한가지도 없다. 상대편의 잘못을 면상에서 지적 할수 없다면 그냥 침묵을 지켜야. 만약 면상에서 할 용기가 있다면 하라. 하지만 그 후에 일을 수습할 능력이 없으면 침묵을 지켜라. 갑은 을의 이런 경솔함을 관대히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불만이 있다면 제 3자에게 털어 놓지 마라. 당신의 불만을 털어 놓는 그 사람은 B는 당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며, B보다 너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는 A에게 B는 C의 과실을 실토하면서 A에게 신뢰를 얻으려 할것이다. 결론은 B와 C의 사이에서 놀아나고 반응하는 어리석은 A가 되지 말고 만약 영양가 없는 내용이라면 그냥 듣지도 말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라. 이것이 살면서 가장 많이 격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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