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을 초월한 사람…

주일 설교때 진목사님께서 사용하신 예이다. (정확한 단어를 모르겠지만 영어론 normalization이나 equalization이다)

"40대에는 미모의 차이가 없고, 50대에는 지식의 차이가 없고, 60대에는 재산의 차이가 없고, 70대에는 건강의 차이가 없으며, 80대에는 수명에 차이다 없다" 난 위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가 되고 싶다.

40대: 늙어가는 것은 어쩔수 없다. 새로 장가를 가는 것도 아닌데 아내가 보기에 혐오 스럽지 않게 보통의 외모를 유지하고 싶다. 아내외에는 잘 보여야 되는 여자가 없으니 뭐 몸짱 얼짱 만들 필요가 없다. 그리고 호박에 줄을 여러개 긋는다고 하여 수박이 되질 않는다. 난 나의 주재를 알고 외모의 한계를 인지했다.

50대: 난 아직도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MBA를 끝나면 다음엔 병원 경영학을 공부할 것이다. 그 다음은 DBA 즉 경영행정학 박사가 될것이다.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다. 24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책하고는 담싸는 것이 일반이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39살이 되기 전에 50대 중반의 지식층의 수준을 초월하는 것이다.

60대: 재산이 차이가 없다는 것은 즉 젊었을때 노력하고 재산 증식에 힘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미래를 보고 준비하는 안목이 부족하고 게을러 준비치 않았다는 것이다. 난 39살이 되기전에 60대의 상류층들이 소요하는 자산을 모을 것이다.

70대: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 비록 몸은 늙었더라고 정신과 마음 가짐을 젊게 가질 것이다.

80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한 평생을 마감하느니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많은 것을 이루고 세상 사람들에게 길히 기억되며 후세들에게 후하게 평가 받는 영웅이 된다면 비록 몸이 죽고 썩어 없어지더라고 충무로에 세워진 내 동상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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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민이 있는 법 (기린아를 포함)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는 법이다. (나와 기린아를 포함)

특히 남자가 결혼을 하여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며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주야로 번민하고 개척하고 일하는 남자의 모습은 흔한 30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모습니다. (기린아는 30대가 아직 아니다)

책임감과 고민은 정비례이다. 책임감이 무거워 질수록 고민도 깊어지는 법이다. 고민하는 과정중에서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을 택하길 원한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복권에 당첨이 되길 원한다. 아니면 편법을 사용하여 (탈세) 정부 보조금 해택을 최대한 악용(?)하여 빼먹는 사람들. 즉 정공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일들을 직면 했을때 머리를 모래속에 파뭍고서 그냥 모든 일이 자연히 해결 되길 바라는 마음과 자세는 가정을 꾸려 나가는 가장으로써 바람직한 자세는 결코 아니다. 편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융통성’이라는 단어 아래에 자신의 비합리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합리화시켜 나간다. 난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지금 닥쳐 있는 내게 갑작스럽게 닥쳐온 일들 때문에 당황할 필요없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가지고 불안해 할 필요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현명한 자는 그 실수를 통해서 새로움을 깨닮고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자신을 갈고 닥고 수양하는 자이다. 눈앞에 놓인 일들 때문에 갑작스럽게 당황하면서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대충 무마하는 것보다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분석하며 그것에 맞는 적정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린아에게 이렇게 다시 한번 말한다. 난 기린아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기린아의 결정에 무엇이 됬던 간에 난 기린아 편에 서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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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었던 한주…

지난 수요일부터 오늘 (주일) 아침까지 요즘에 유행하는 whooping cough (한국말로 백일해? 백일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중국에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인것 같다.
 
수요일 저녁 스리랑카에서온 손님을 접대하러 Azuma 레스토랑에 가기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파나딘 (아스피린의 일종 그러나 조금더 독한약)을 4알 먹었다. 단순한 진통제이니 목요일부터 점점 아프기 시작했고 토요일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비몽사몽인 상태로 사경을 해맸다.
 
몸이 아프니 모든것이 귀찮고 짜증이 가득해서 단순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했다. (아내하고 애들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하지 못한 일들 (월말 결산)이 산더미 같이 쌓여 초조함이 나를 공격해 왔다. 또 이번주 화요일부터 MBA수업이 다시 시작한다. 또 내 책상엔 미쳐 정리하지 못한 서류들과 읽어보지 못한 정보지들이 산더니 같이 쌓여 나를 또 초조하게 했다.
 
오장원에 5번째 (아니면 6번째?) 북벌을 나간 제갈량의 심정이였을까? 모든것을 자기가 주관하여 통솔했다. 제상은 세사에 친숙치 않다라는 말을 무너뜨린체로. 금요일 저녁 신집사님을 뵙고 짧게 애기하는 과정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후계자를 키워야 한다’라고. 내 주의에 있는 자들을 생각해 본다. (회사내에서) 인물이 없다. 내가 보는 큰 뜻을 이해하고 나와 같이 동행하며 자아개발에 힘쓰고 단순히 직장을 일자리로 생각치 않고 자기의 삶으로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전진하려는 자… 이런자가 있다면 내가 나의 모든것을 맏긴다면 (아니 그것은 거짓말이고 아마 4분의 1정도) 나도 며칠을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에 몰두 할수 있을텐데. 아마도 나의 희망사항이겠지.
 
오늘도 아픈 몸을 추스리며 교회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예배후에 회사에 가서 마무리할 여러가지 일들을 정리해 본다. 나의 3월의 마지막 주일을 이렇게 보내는 나, 꼭 오장원에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외로움과 적막감이 나를 차갑게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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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개는 찾지 않는 법

‘미녀는 괴로워’에 나오는 한상준 (이름이 맞나?)역을 맏은 주진모가 아미 (Amy)에게 한 말이다 – 난 집 나간 개는 않찾는다.
 
조직 (깡패 집단을 애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모임을 갖는 공동체를 뜻함)에 한번 가입하고 책임을 부여 받으면 그 조직을 떠나기 전까지 맏은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정상인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조직에서 사라지고 윗사람 (지도자)에게 한마디의 상의나 애기 없이 자기 마음데로 다른 조직으로 옮긴후 제삼자를 통해서 통보하는 것은 어느 나라 문화인지 예법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연히 이 사람은 1977년 이후에 태어 났다. 그러니 이 모양이지)
 
또 이런 자를 놓지 못하고 미련을 가진 지도자들은 집나간 불쌍한 영혼이라는 감상적인 명목아래 그에게 전화를 하고 안부를 확인하다. 이것을 또 무시한 그 예의도 의리도 없는 이 남자는 전화 연락을 기피하고 숨어 버린다. 주인이 싫어 집을 나간 개를 쫓는 주인이나, 주인 배신 때리고 나간 개나 피장파장이다. 한쪽은 잡으려하고 한쪽은 도망가려 하는데 얼마나 비생산적인 사이클인가.
 
난 어렸을때 천하평정을 논했고 나만의 영웅론을 성립했다. 나름대로 국민학교 6학년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을 지고 내 스스로 개척해야 됨을 깨달았고, 내가 나의 생존을 위해 남을 속일순 있어도 남이 나를 속이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냥 때에 맞지 않게 어려운 책들을 읽어서 지나치게 조숙해졌다고나 할까?) 하물며 나같은 정상인도 어렸을때 생존법을 깨달았는데, 하물며 이제 유학생활 2년 넘게 하고 (부모님이 학비랑 생활비 다 내주고) 편안하게 유학생활하면서 (공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쉽다) 무슨 걱정 근심이 많아서 잠수를 하고 대인과의 관계를 기피하고 혼자 힘든척 고독한척 하는 유학생들을 보면 정말 사치스러운 걱정을 하는 것 같다.
 
비싼돈 드려서 호주에서 공부하려고 왔으면 죽으라 공부하고 빨리 졸업한후 호주에서 정착을 하던지 한국으로 돌아가 기반을 마련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학생의 신분으로써 당연히 해야될 공부를 멀리하고 부가적인 활동 (예: 교회에서 친교 중심의 아주 영양가 빵점인 모임)에 지나친 집중 (아니 집착이 더 적당한 단어)이 쓸데 없는 대인관계를 만들고 삶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든다.
 
만약 자신의 결정이 올바르고 떴떴하다면 어찌하여 오는 연락을 기피하는 것일까? 이런 행동은 즉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고 비겁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정신 나간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해온것이 참 한심하다. 또 이런 사람을 뒤치닥 거리하고 내가 입 아프게 애기한것도 정말 시간 낭비에 정력 낭비다. 또 이런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내 자신도 한심하고 시간 낭비 인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보았을때의 선입견과 시간이 지나 그를 알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한 내용이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그는 순발력이 있을지 모르나 그에게는 지속성, 지구력이 없다는 것이다. 즉 아주 쉽게 말하면 ‘한결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역시 한결 같지 않은 자를 멀리한 나의 결정은 또 하나의 현명한 선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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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은 괜찮으세요? 그럼 왜? 내가 짤린줄 알았어?

‘집사님은 괜찮으세요? 저희 회사에 있는 메니저 급들중에 높은 사람  14명이 넘께 짤렸거든요’.
 
아마도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기분이 좋은 것은 내가 ‘높은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 (농담)
 
Management에 있는 사람들이 불경기에 직장에서 쫓겨 나가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력 부족’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성장하고 잘 나갈때는 대충 말로 때워도 넘어 갈수 있지만, 불경기때에는 ‘숫자’가 뭐든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불경기에 자연히 들어나는 경영과실의 결과는 꼭 여포의 창 방천화극을 비단으로 감싸는 격이다. 즉 언젠가는 들어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메니저들은 ‘strategic management’에 중점을 둔다. 회사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과 실행안이 아닌 추상적인 계획안을 애기한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 학교는 최다수의 한국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하자. 만약 불경기라하면 목표는 이렇게 아마도 바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무조건 현상유지이다’. 라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바로 궁극적인 목표가 생겼다면 이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정밀한 실행안을 준비하여, 실행, 감독, 분석, 개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빛 좋은 개살구 같이 추상적이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메니져들은 불경기에 이런 필요가 없다. 불경기기에 필요한 것은 (비지니스마다 틀리다) ‘절약과 현상유지’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선 높은 메니져보다는 슈퍼바이져급들, 즉 회사의 운영 상황를 안과 밖으로 잘 아는 사람들이 빛을 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적에 따라 낭비가 줄고 효율성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럼 나는 왜 안전할까? 왜냐하면 회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니까 (자화자찬 again). 아니 좀더 감상적으로 애기 한다면 사장님 내외분은 나를 ‘장남’으로 여기신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기대는 듬직한 첫째 아들. 아비의 뜻을 절대 거역치 않고 아비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인 마냥 사는 나. (사장님이 밖에 나가 점심을 드시지 않으면 나도 나가서 먹지 않고, 만약 나가서 드시면 회사 걱정 아니하시고 편안히 드시고 오시도록 회사에 남는 나의 성실함) 이것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인 CEO와 끊을수 없는 관계를 존속 시킨다.
 
물론 비지니스는 인정에 매이면 않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정과 자비는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끊을수 없는 관계를 발전 및 유지 시키기 위해선 실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CEO가 원하는 중요한 정보는 언제든지 머리속에 암기하고 3개월 이전의 데이타는 4초안에 추출하게 가능하며 만약 분석이 필요한 데이타는 4분안에 필터링을 한후에 보고한다. 그리고 최상책, 상책, 중책, 하책, 최하책, 5가지의 책략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정확한 분석은 꼭 겨냥하는 목표의 성격과 거리에 따라 다른 종류의 총과 탄알을 준비하는 것이다. CEO는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즉 실력 없이는 신뢰도 쌓을수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섬기는 회사의 미래가 걱정이 되고 나도 32살의 나이에 명예 퇴직을 당할까 궁금하다면 다음의 사장님의 블로그를 보라. 그리고 빌딩의 한 층을 사기 위한 나의 끝없는 헌신과 노력은 사장님께서 높이 평가하신다. 그러니 그 누구도 나에게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설령 내가 내 직장을 잃어 버린다고 해도 난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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