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자가 되어라…

부활절 연합성회 주일 설교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다 – 꿈을 꾸는 자가 되어라.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설교였다.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 꿈을 꾸는 자들이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꿈을 꾸지 않는 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즉 난 꿈을 꾸고 있으니 성공의 가망성이 조금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꿈도 꿈 나름이다. 내 마음속에서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꿈은 야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즉 내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꿈은 올바른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 반대로 하나님께 중심을 맞추고 꿈을 꾸는 자에게는 비젼을 주신다.

난 아직도 내 삶에 내가 먼저인것 같다. 죽기전에 소유하고 싶은 너무 많은 물질들. 기독교인이 정직하고 깨끗한 경영을 해서 사회에 환언하고 남은 이익으로 내가 정직하게 누리는 것을 대의명분으로 가졌다. 그런데 생각해 봐라. 가진것이 있다는 나누어 주고 서로의 화목과 화합 그리고 발전을 도모해야 되는데, GulfStream의 개인전용 비행기나 Ferrai F430 같은 자동차를 가지고 싶고, 매일 저녁 마다 1985년도산 로마니 꽁띠를 녹차 마시듯 마시려는 나의 생각과 자세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만약 내가 위의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하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 버린다고 했는데, 내가 즐기고 행복한 동안 남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한잔의 로마니 꽁띠로부터 호화로운 꽃향내를 즐길수 있겠는가?

세계관을 다시 정립해 보고 싶다. 내 자신의 부귀영화인지 아니면 세계의 화목과 평화인지. 어떤 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며 어떤 꿈을 꾸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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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행복하게 만듬으로써 내가 행복해 진다.

토요일 저녁 부활절 연합성회에서 들은 설교를 한줄로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다. ‘축복의 통로 – 남을 행복하게 만듬으로써 내가 행복해 진다’.

서목사님께서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셨다. 아내가 예수를 영접함으로해서 남편이 복을 받고 남편이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아내가 복을 받는다. 즉 예수님을 믿고 내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나를 축복해 통로로 사용하셔서 내주의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내가 여기까지 성장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복을 받고 여기까지 왔다. 즉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여기까지 온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내가 기도하지 않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 주의에 보면 복을 받은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까. 후회와 함께 내 자신을 돌아본다.

앞만 보면서 돈과 명예와 권력 그리고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나의 삶. 사회에서 성공하는 기독교인이 덕을 쌓을수 있다는 명분아래 세상적인 것들과 융화되며 기독교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나의 모습. 참으로 부끄럽다.

얼굴은 웃음이 사라지고, 생존과 성공을 위한 나의 모습에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따뜻함과 온화함 모습은 소리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내가 어찌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수 있을까? 이런 나를 통하여 어찌하여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질수 있을까? 남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내가 어찌하여 그들을 통해 행복을 얻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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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are born to lead and rule? 정말로 그럴까?

정치인들이 흔이 사용하는 말이다. We are born to rule. 처음엔 난 이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사람은 노력을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수 있다고 믿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상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노력하면 누구든지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더이상은 아닌것 같다.
 
잘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한사람을 창조하실 때마다 심오한 계획과 오묘한 섬리가 있음을 난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똥깨를 잘 훈련시키면 아마도 독일 세퍼트 같이 짖을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훈련된 똥깨를 최전선에 투입시키지 않고 경찰견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었일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격도 싸고 유지비도 적게 들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일까?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선택 받은자’ 아름답고 향기로운 버건디 와인을 담을수 있는 우아하고 투명한 리델의 크리스탈 글라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간장 종지 같은 사람이 있다. 불공평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세상에 미남 미녀만 있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수 없고, 이 세상에 행복만이 존재하면 눈물과 슬픔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난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선택을 받은 자인가? 내가 살아온 32년의 파란만장한 삶, 많은 훈련과 교육, 고난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32살의 나이에 전문경영인의 반열에 첫발을 정식으로 내 디닌 나를 전문경영인이 되게 선택하신 것일까? 내 운명은 경영인인가? 정답은 내가 어떻게 아나?
 
창조주의 섭리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었인지 난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냐고? 사람에게 운명이 있다면 이것을 벗어나려는 나의 미련한 발버둥이 아니냐고? (내 기억에 이 애기를 한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기억이 난다)
 
난 운명 (fate)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아이디어가 싫기 때문이다. (내가 한말이 아니라 메트릭스에 나오는 니오가 한말) 그런데 난 fate를 믿는다. 내 운명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고 내 마음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맞기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앵 그럼 그게 뭐야? 난 나름 사람과 다를바가 없는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맏기지만 난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모른다. 그래서 난 나에게 주어진 능력과 자원, 재주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나의 목표와 방법론이 잘못 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든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교정하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난 나른 사람들과 틀린점이다. 남들은 맹목적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맏깁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이렇게 한다. ‘저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인하여 내가 주의 뜻을 알지 못하오니, 전 주님께서 저를 통해서 이루실 그뜻을 보여 주실때가지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하여 제 나른데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오니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An ordinary man blindly follows his destiny. However, a real man who does his best until his destinty reveals to him. (당연히 난 후자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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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2살… 아직 다 이룬 것이 아니다.

지난 금요일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였다. 사장님과 함께 시드니의 최고 레스토랑 중에 하나인 Becasse에 가서 최고의 점심 식사를 했다. 2000년도산의 돔 페리뇽은 Becasse의 환상적인 프랑스 음식과 완벽한 마리아주를 이루었다.
 
훌륭한 음식과 와인, 그리고 존경하는 사장님과 함께 하는 점심 식사는 항상 최고다. 말로 표현 할수가 없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식사는 정말 특별 했다. 왜냐하면 드디어 정식으로 재무관리이사 (Chief Financial Officer)로 임명을 받고 주주총회에 참석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으며,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받았다. 아주 쉽게 애기하면 32살에 최고경영자인 CEO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전문 경영인으로 임명된 것이다.
 
비록 연매출 40밀리언에 60명 이하의 직원들을 거느린 5년밖에 않된 작은 통신 회사이지만, 32살에 재무관리이사로 임명을 받고 주주들과 같이 배당금을 받고 투표권이 있는 위치에 오른 내 자신을 볼때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비양 (겸손)은 모든 덕목의 기본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내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고 나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것은 기독교 인으로 덕이 되질 않는다.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살피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마음속으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구분 할수 있지만 머리속에선 내 자신을 뛰어남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기서 생기는 나의 갈등을 통해서 내 자신이 좀더 성숙해 지는 것 같다.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이민 1.5세로써 남들보다 부단히 노력하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절대로 멈출순 없다. 난 쉬지 않고 전진한다. 앞만 보면서 달린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삶을 보면서 ‘피곤해 보인다’ 혹은 ‘인생을 즐기지 못한다’라고 한다. 나에 대한 제 삼자의 판단,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나도 나름대로 인생을 즐긴다. 어떻께? 전력 질주하여 남들을 앞서고 놀라게 한 후, 난 선두에서서 나를 허둥지둥 쫓아오는 자들을 볼때 인생의 즐거움을 느낀다. 요즘은 아쉽게도 내가 뒤를 보면 아무도 없다. 이럴땐 앞을 보면서 달리면 된다. 왜냐하면 내 앞에 분명히 누군가 먼저 달리고 있다. 그들을 한 사람씩 초월하는 즐거운, 이것이 내가 인생을 즐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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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지함…

오늘 나의 13번째 MBA 수업이 시작 되었다. 과목의 이름은 Foundations of Management Thought이다.
 
정말 흥미로운 과목이다. 고대 시대 (BC 400까지 간다)부터 현대까지간다. 10명의 서양의 철학자들의 애기가 나오며,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이 나온다.
 
오늘 첫 수업은 그리스 철학자 (아니면 시인에 더 가까운) Homer의 Heroism (영웅론)에 관한 내용이였다. 참고로 난 Homer에 대한 책을 국민학교 6학년때 읽었으며 내 기억이 맞다면 영웅론의 기본은 (1) 위치 (roles); (2) 규칙 (rules); (3) 상급 (rewards)를 기반으로 한 전사들의 사상과 생각하는 방법론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내 기억은 거의 정확했다. (국민학생이 읽은 책은 아니였다. 아마도 유식하게 보일려고 여러번 읽은 기억은 있다)
 
그런데 한가지 후회를 했다. 18살에 호주에 이민와서 6개월만에 12개월 랭귀지 코스를 마치고 특차로 버컴힐 셀렉티브에 들어가고 1년 반만에 대학교를 입학하고 CFO가 되기 전까지 난 나의 영어 실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 나의 또래에 경영에 필요한 상업상의 글들을 나보다 잘쓰고 영향력 있게 연설하는 능력을 가진자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수업을 듣고 나니 난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아마도 거의 60살이 되신것 같다. 그의 언어구사 능력은 내가 모시는 사장님의 수준과 거의 흡사하다. 아니 표현 방법면에선 사장님보다 조금 뛰어난것 같다. 난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내용에 흥미를 얻은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화려한 화술에 혼을 빼겼다. 나도 분명히 그런 표현을 기회가 되면 쓸수 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진 못했다. 평범하지 않는 단어 선정, 재미있는 문장 구성은 나를 매혹 시킴과 동시에 나의 한계를 느겼다. 갈길이 멀었다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뛰어 다니는 벼룩과 비교해 내가 메뚜기인것이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가? 기껏해야 땅을 뛰어 다니는 작은 곤충일뿐. 넓게 보고 세상을 나는 독수리가 되기 위해서 나의 갈길은 또 한층 높아지고 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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