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관은 언제 정립이 됬었나?

내가 호주에 온지 만 16년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랭귀지 스쿨 6개월만에 끝내고 고등학교 입학해서 11학년 & 12학년을 끝내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5과목의 낙제와 5년반이라는 세월 끝에 졸업을 해서 년매출 $55 million 되는 6년되는 회사에 CFO가 되었다. 내 아내의 내조와 가족들의 섬김과 사랑이 없었다면 물론 여기까지 올수 없었을 것이다.

조용한 오후에 한잔의 English Breakfast 차와 함께 지긋이 눈을 감고 나의 세계관이 언제 정립이 되었나 생각해 보았다. 현재의 내가 되기 위한 나의 인격 형성과 삶의 자세가 언제 정립이 되었는지 과거로 잠시 돌아가 본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국민학교 6학년이 되기전에 세계관이 정립된 시기 인것 같다.

내가 호주로 이민오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는 서대문구 홍제동이다. 지하철 3호선의 홍제역에서 하차한후 대성병원 방향으로 나오면 작은 서점이 있다. 이름이 기억 나질 않지만 주인 아저씨랑 친했다. 나에게 이문열 교수님이 쓰신 삼국지를 무료로 대여해 주셨고 새로운 만화책이 나오면 구석에 작은 의자를 놔주시고 내가 마음데로 읽을수 있게 해주셨다.

기억이 난다. 내가 주인아저씨한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애기 했을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해 보아야 된다고 하셨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어른들의 세계를 어른이 되기전에 빨리 경험하고 성인이 되어서 남들보다 더 높고 낳은 위치에 설수 있는 책을 찾아 달라고 했다. 주인아저씨가 좀 당황을 하셨는지 다음번에 오면 책을 찾아 놓겠다고 하셨다. 일주일이 지나고 동네 ‘대머리’ 오락실에서 나오다가 잠깐 책방에 들렸다. 주인아저씨가 조심히 책을 꺼내주셨다. 표지엔 ‘Prince’라고 적혀 있었다.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출신의 작가 니콜라스 마키에빌리가 쓴 ‘군주론’이 였다.

국민학교 6학년의 두뇌는 한계가 있다.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소리’가 멋있어서 문장을 외우고 친구들 앞에서 써먹었다. 가끔 복도에서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호통을 치신적도 있다. 그 책의 많은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 말은 기억이 난다. "성공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희생 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나의 생존은 내 적의 파멸을 말한다. 사람들은 결과를 두고 나를 평가하며 실패자만이 과정을 중요히 생각한다"라는 말들…

아직 중학교도 입학하기전에 군주론을 읽은 나는 세계를 보는 관점이 바뀌였고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나의 친구가 될수도 적이 될수도 있음을 깨닮았다. 동시에 나만의 생존을 위해선 내가 강해져야 했으며 나 자신을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수 없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후에 독일의 철할자 프레드릭 니처가 쓴 초인주의 사상과 허무주의 사상을 알게 되었다. 막말로 시기에 적절치 못한 책이 나를 망가 트렸다고 할까?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 이런 책들이 나의 지각을 빨리 깨웠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사상들을 적절히 해석하여 받아 들여 내 자신을 절제, 절도 있게 관리한다면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상들이 100% 옮지 못하다는 것도 알았다. 즉 나만의 세계관은 나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자신을 항상 original thinker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나만의 독특한 창조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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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삶의 자세를 좀 바꾸었거든요”

"내가 삶의 자세를 좀 바꾸었거든요" 내가 종종하는 말이다. 살면서 좀 충격적인 순간을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맞이 할경우, 그리고 자아반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표현을 쓰고 자신을 돌아보고 가다듬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결국 3일을 못간다.

오늘 2010년에 첫출근한 직원들이 나에게 이렇게 애기 했다.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고 상냥하다고. 그리고 난 하루 종일 직장에서 입에 자주 올리는 욕(?)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말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대한 온화한 모습과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작심삼일이고 이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순간 깨닮은 것은 만약 이런 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내가 추구하는 (강마에 같은) 스타일이 만약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가식적으로 나를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명분아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면…

갈등이 생긴다.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피곤하게 그대로 만들어가거나, 내 본 모습을 자유스럽게 드러내던가. 다가 설수 없는 존재 아니면 쉽게 다가설수 있는 존재. 강인하고 차가운 모습 아니면 인자하고 포용력 있는 모습. 정확하고 타협하지 않는 모습 아니면 실수도 하고 적당히 타협 할수 있는 모습. 흑과 백 혹은 북과 남. 극과 극 혹은 도 아니면 모.

한번 삶의 자세를 좀 바꾸어서…. 중간쯔음 자리를 잡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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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는 없다 다만 게으른 여자만 있을 뿐이다..

어느 화장품 회사의 광고 문안으로 기억이 된다. 아니면 내가 얼렁 뚱땅 만들어 낸 말인지…

사람은 가꾸기 나름이다. 오늘 아침을 거하며 먹은후 쇼핑 센터에 나가려고 옷을 입다가 바닦에 떨어진 양말을 줏으려고 했다. 그런데 허리를 굽히고 줍는데 상당히 숨히 막히고 괴로웠다. 왜냐하면 배가 접혀서.. 허허허허.

기억이 났다. 대학교 2학년데 농구에 미쳐서 하루에 4시간씩 연습하고 1시간씩 weight room에서 트레이닝을 한 기억이 났다. 팀원들이 내 배를 보면 wash board 즉 빨래판 같다고 애기를 하곤했다.

‘왕년엔 내가 이랬거든’이란 말은 중요치 않다. 내가 예전엔 어떴는지 몰라도 지금은 예전같이 않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 학업과 일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몸무게를 제어보니 아이고 72kg이 넘었다. 키가 165cm 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이정도의 몸무게는 ‘비만’이 분명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한심하네….

호박에 줄을 잘 그으면 먼 거리에선 수박으로 보일수 있고, 여자라면 일찍 일어나 얼굴에 분칠하면 봐줄만 하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뚱뚱한 남자는 미련해 보인다. 뚱뚱한 남자는 자신을 관리 하지 못한 사람이다. 뚱뚱한 남자는 자신을 관리 할 시간도 마련하지도 못하는 무능력한 자이다. 난 이런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오늘 부터 새롭게 한번 시작해볼것이다.

P.S. 근래서 ‘사장님 같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풀이를 해보니… 나보고 뚱뚱하다라는 말을 고상하게 한것 같다. 이런… 욕이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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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나에겐 그냥 새로운 달력일뿐…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했다. 시간 맞추어서 참석치 못하고 요즘 세대 사람들, 성전에서 모자를 깊게 쓰고 온 자들, 술집에 나가는 듯한 옷차림을 한 자들, 이런 사람들 안에서 에어콘도 작동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3시간이나 진득히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참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왜 2009년 12월 31일 오후 11시59분이 되면 사람들이 흥분한다. 모두다 시계를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한다. 그리고 자정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흥분의 도가니에서 빠져 소리를 지른다.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미친것이 아닐까?’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 무엇을 배운다 등 여러가지 계획안을 가지고 나온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신년초에 이런 반응을 보일까? 단순히 달력이 바뀌는 것뿐인데… 어제의 호박 같은 내가 달력이 바뀌고 마음을 바뀌었다고 하여 수박을 되는 것일까? 어제는 나태 했지만 오늘은 새해니까 순식간에 달라질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인간의 무지함에 의한 막연한 기대인가 아니면 쓸데 없는 망상인가?

난 2009년 12월 31일의 내 모습과 2010년 1월 1일의 내 모습과 차이가 없다. 32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다. 즉 32번 새로운 달력을 뜯었다. 매번 새로운 각오가 결심으로 새해를 출발을 하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못한다. 그래선 난 예전에 생각을 바꾸었다. 새롭게 다가오는 내일이 나에겐 더 신선하고 새롭다. 무슨 이유는 한 해가 바뀌길 바라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루려고 하는가? 그리고 왜 매번 이번해에는 한것이 없다라고 푸념을 쓸데없이 늘어 놓는가?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자. 오늘 같은 내일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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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불변은 없다’라는 말뿐…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애기한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뿐이다라고.

사람들은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도 한다. 내 생각엔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 같다. 그렇다면 이 ‘행복한 사람 = 자신의 결정에 후회 하지 않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매사에 논리 정연한 분석과 상황 판단을 근거로 가장 적합한 시기에 그리고 효율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인가? 다시 말해 100번의 결정을 내릴때 100번 모두다 완벽한 결과를 같는 사람일까? 정말 이렇게 완벽하게 선택을 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자신에 내린 결정에 대해선 후회나 반성 혹은 분석 조차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일까?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역사는 돌고 또 돈다. 하나님의 진리는 불변하지만 나머지는 변한다.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상황에 따라 변함이 당연할 뿐이다. 만약 매번 똑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은 결정을 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 흐름이 dynamic한데도 완벽한 선택을 통해서 최고의 효율을 얻을수 있을까? 즉 시기와 상황에 따라 원리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거나 준비하고 계획데로 대처하는 방법 밖에 없다. 
난 항상 이렇게 해왔다 (업무상에만 적용). 만약 내가 선택을 해야 된다고 A라는 옵션을 선택해서 기대 했던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B라는 대응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A에서 B로 넘어가는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너무 빨리 성급하게 다른 옵션을 선택하거나 너무 늦게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경우 전력을 가다듬고 다음의 전투를 준비하는 작전상 후퇴가 되는 것이다. 미련하게 외골수로 변하는 주변의 요소들을 무시한체 같은 방법과 같은 방향으로 진격할 경우 더 많은 손해를 볼수 있는것이다. 과거엔 정공법이 통했지만 현재에 통하지 않을수도 있으며 구관이 명관이 될수도 있지만 신관이 더 낳을수도 있는것이다.
하루 하루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그리고 난 내가 내린 결정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항상 contingency plans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너무나 많은 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한가지 방법만 준비한 것도 결코 올바르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지 적절한지 이제 서서히 감히 잡혀 가는것 같다. 이러는 과정중 난 가끔씩 내 자신이 불쌍해 지는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능수능란한 권모술수… 이러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린다. 역시 이 세상엔 불변하는 것은 없다. 나또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 위해서 하루에 몇번씩 변하고 또 변한다. 나 조차 불변하지 못함을 세삼 깨닮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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