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하면서 항상 듣는 곡이 바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 아마도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한 서해경 교수님의 연주가 머리속에 오래 남아 이 곡을 좋아하게 된것 같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박해림씨의 추천으로 Alfred Brendel과 현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 Simon Rattle 그리고 비엔나 필과 협연한 귀한 앨범을 구해 이곡에 대한 관심은 점점 깊어져간것 같다.
거대한 구도와 당당한 위용과 화려한 거장적 기교로 인간정신의 찬란한 승리를 기록한 피아노 협주곡 중의 ‘황제’ – 이 곡에 대해서 ‘황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작곡자는 아랑곳없는 사실이지만 이 작품의 당당한 악풍은 불굴의 인간혼을 상징한다.
몇년도인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아마도 독일의 서부 지방 카셀의 지배자가 된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는 베토벤을 궁정악장에 초청하고 싶다는 교섭이 왔다. 일생 연금을 지불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으나 두 달이 못 가서 사태는 급전 되었다. 나폴레옹이 꿈꾸는 세계정복 앞에 농민의 희생으로 된 방어진은 모래둑과 같았고, 황족과 귀족들은 모부 빈을 버리고 피난 했다. 폐허처럼 황량해진 빈은 물가가 날로 오르고 점령군의 세금만이 날이 갈수록 가혹해졌다. 베토벤의 연금 계약도 한낱 휴지가 되고 말았고 해가 바뀌고 가을이 되어도 뛰기만 하는 물가로 생활고는 해소할 길이 없었다. 베토벤이 일대의 걸작인 ‘황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것은 이렇게 세상의 되어 가는 꼴이 육체와 정신을 뒤흔들어 놓은 혼란 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는 조금도 값싼 영탄이나 황폐감, 패배감 같은 것이 없고 웅대하고, 찬란하고, 당당하다는 것은 굴할 줄 모르는 인간 정신의 승리임이 분명하다.
‘황제’ 피아노 협주곡은 우선 벽두부터 상식을 깨뜨리고 솔로 피아노의 웅대한 카덴자로 시작해서 전곡의 규모를 예상케 한다. 그리고 관례대로 한다면 1악장이 끝날 무렵에 독주자가 즉흥하기로 된 카덴자를 폐지하고 짧은 솔로 파트를 남겼다. 이것은 전에 없었던 독창적인 계혁이였다. 뿐만 아니라 휴식 없이 계속 연주되는 2악장과 3악장의 관계도 3악장의 테마를 미리 2악장 마지막에 단편적으로 배치해 두었다가 동기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3악장 또한 론도 형식의 상식인 경쾌한 기분을 버리고 웅건한 스케일의 개선가와 같은 슬기로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