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 for Piano, Chorus and Orchestra in C Minor, Op. 80 by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라인 강가의 본 (Bonn)에서 출생한 독일의 고전시대의 3대 작곡가 중 한명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요한 때문에 베토벤은 불우한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아들의 천재적 소질을 과시해서 한 몫 보려던 요한은 베토벤을 4살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고 9살 때에는 강제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지만 모자르트 같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비범한 재능을 본의 귀족들에게 인정 받아 그는 문화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로 음악 수업을 떠날 수 있었다.

베토벤이 17살이 되던 해에 그가 흠모 하던 모자르트를 만나게 되었고 20살이 때는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즈 죠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을 처음 맞났다. 그는 베토벤의 재주를 인정하여 자신의 제자로 받아 들였지만 느긋하고 여유 있는 성격의 하이든과 다혈질에 급한 성격의 베토벤은 성격 차이로 인해서 사제지간의 사이를 오래 유지 하지 못했다. 베토벤은 스승을 당시 비엔나에서 뛰어난 이론가로 알려져 있던 알브레히츠베르거(Albrechtsberger)로 바꾸었으며, 모자르트의 숙적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살리에르 (Antonio Salieri)에게서 성악곡 작곡을 배우게 된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 교향곡’을 들어 봤을 것이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악기화 시켜 교향곡에 삽입하여 ‘합창’이라는 표제가 붙었다. 베토벤의 불우의 명작인 ‘합창 교향곡’은 낭만 시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말러 (Gustav Mahler)는 10개의 교향곡을 작곡 했는데 그중에 5곡이 인성이 들어 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교향곡 8번은 성악가와 연주자가 1천명이 동원 된어야 해서 ‘천인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얻었다.

‘합창 교향곡’은 오스트리아의 짤즈부르크 (Salzburg) 출신의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에게도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다. 당시 CD (compact disc)의 용량은 최대 60분이였는데 연주 시간이 1시간 10분인 ‘합창 교향곡’을 한장의 CD에 담고자 카라얀은 당시 기술자들과 협력하여 용량을 60분에서 74분까지 늘리는 성공해서 한장의 CD에 녹음 할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악에 인성을 첨가한 베토벤의 혁신적인 시도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절대로 아니였다. 베토벤이 깊이 공감하고 애독 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장시 환희의 송가를 작곡 할 의도를 품었던 것은 1793년 베토벤이 23살 때였으니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기 31년 전에 이미 그 밀알을 뿌린 것이며, 베토벤이 처음으로 기악과 성악의 융합을 결심하고 처음 시도한 작품이 바로 ’합창 환상곡’이다.

1810년에 완성된 이 ‘합창 환상곡’은 단일 악장으로 완성도와 중량감이 떨어 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는 작품이지만 베토벤의 창작 활동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곡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 시키려는 소위 시험 작품이였고, 이 작품에서 확실한 자신감을 얻은 그는 14년 후인 1824년에 ‘합창 교향곡’을 완성 시킨다.

There are many stories about Ludwig van Beethoven – a pupil of Franz Joseph Hayden and a friend of Wolfgang Amadeus Mozart; unfortunate childhood because of his ambitious father; fearless self-righteous vituperator; suffering from severe hearing loss from 26; symbolizing the triumphant human victory against all odds and adversity; bridging Classical era and Romantic era, and so on. It would be correct to say that Mozart was a musical prodigy while Beethoven was an ordinary person with quite musical talent yet backed up by profound exertion.

If you are a big fan of classical music, then at least once you would have heard Beethoven’s last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which was completed 1824 when Beethoven was 54 years old. This is universally considered to be among Beethoven’s greatest works and commonly known as the “Choral Symphony” because this was the first innovative work of ‘instrumentalizing’ human’s voice and the main composition work was done between Autumn 1822 and 1824. Does this make Johannes Brahms look so bad because he actually took about 21 years to complete his 1st symphony in C minor, Op. 68? No, it does not because in fact Beethoven took 31 years to complete his 9th symphony. Most importantly he ‘experimented’ the instrumentalization of human voice in 1810 with Fantasia for Piano, Chorus and Orchestra in C minor, Op. 80 which is commonly known as “Choral Fantasy”.

It is true that masterpieces just do not happen overnight. Beethoven was inspired by a poem written by Friedrich Schiller, “Ode to Joy” when he was 23 years old. He had this idea of integrate human’s voice with Schiller’s poem as lyrics into an instrumental music in a non-opera form and this was how “Choral Fantasy” was created. People may argue that this piece lacks in depth and completeness but there is no doubt that Beethoven planted “Choral Fantasy” as a seedling to have “Choral Symphony” as a fruit and it didn’t happen overnight but only happened 14 years later.

His revolutionary work indeed changed the course of Western music history – diverting away from Classical formalism to Romantic expressionism because nobody ever thought of breaking the conventional structure of symphony by assimilating human’s voice in a choral form in his time. Undoubtedly if there was no “Choral Fantasy”, it could mean no “Choral Symphony”.

About Brendon Cho

조후혁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1994년 18살때 호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고 2002년 통계학과를 졸업 한후 통신 회사 Exetel에 2004년 사원으로 입사, 2009년 최고재무관리자 (CFO)로 임명 그리고 2010년 MGSM에서 MBA를 수료 했고 지금 내부 감사장 (Head of Veracity)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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