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Fredrick Handel (1685 – 1759)

어제 밤 심심해서 오래간만에 예전에 구입한 Classical Destinations DVD를 시청 했다. 유명한 작곡가들의 출생지와 활동한 지역들을 음악과 장엄한 배경과 함께 설명을 하는 아주 유익한 드라마이다. 무엇보다 재미 있는 것을 이것을 시청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악가의 배경에 대해서 배울수가 있다. 어젯밤에는 Classical Destination II의 첫번째 다큐멘타리를 보았다. 독일 출생이지만 영국에서 활동을 한 바로크 시대의 거장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다. (독일말로 하면 게으로그 프리드히크 한델이라고 하던가?)

헨델이 태어난 고향의 독일의 한 공장 Halle이다. 이곳은 소금을 다량 생산하는 곳으로 지금은 화학약품 생산에 가장 활발한 곳이다. 여기서 재미 있는 것은 헨델의 고향과 모자르트의 고향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모자르트가 태어난 곳은 Saltzburg (한국 말로 ‘짤쯔브르크’) in Austria, 번역을 하면 ‘소금으로 만든 성’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세계 최고의 지휘자 Herbert von Karajan도 Saltzburg에서 태어났다.

헨델은 성장하면서 오르간 연주를 잘 했다고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 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하는 헨델이 태어 나고 나서 1달 후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네에서 태어 났고, 바하가 먼저 ‘Our Dear Lady’라는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자로 오디션을 보았는데 떨어 졌고 헨델은 합격 했다고 한다. 아 그리고 이 교회에서 마틴 루터가 설교를 했다고 한다.

헨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서 법대에 입학 했다고 한다. 어… 음악가 중에서 법을 공부한 사람이 두명이 갑자기 생각난다. 하나는 낭만시대의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은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멘델스존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정식으로 음악, 미술, 역사, 지리, 법, 그리고 정치를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언을 따른 헨델이지만 그는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17살이 되던 해에 그는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지만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계약직으로 1년동안 반주자로 생활 했는데 제계약에 성사가 않된 것으로 안다) 21살이 되던 해에 이태리로 여행을 떠나 여기서 오페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그후 그는 영국의 런던으로 가서 정착을 하면서 첫(?) 오페라를 작곡한다 – 이 곡의 이름이 Almira인가 Leonardo인가 잘 기억이 않나는데 어쨌든 이 곳을 작곡하는데 헨델은 약 14일을 소모 했으며 첫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받아 연간 200파운드의 연금을 죽을때까지 받게 된다. 뭐라고 할까… 이 시기에 영국 사람들은 오페라에 대해 굉장한 환상을 가졌고 그리고 이태리에서 오페라의 기법을 배워서 영국에 도입 시킨 헨델이 환대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다. (막말로 타이밍이 정말 죽였다)

오페라를 작곡하고 난 후에 Water Music를 작곡 했는데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또 한층 받아 연금이 200파운드에서 400파운드로 인상 됬으며 42세가 되는데 해에 그는 영국 시민권을 획드하게 된다. 아마가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헨델은 영국 음악가로 강조를 하고 독일 사람들은 독일 작곡가로 간주를 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또 재미 있는 애기가 있다. 오페라의 흥행을 위해서 헨델은 소프라노를 이태리에서 수입(?)을 한다. 여기서 Her Majesty Theatre 상임 소프라노와 (기록상 그녀는 외모는 떨어졌지만 헨델의 vocal writing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소화를 했다고 한다) 마찰이 생겨서 공연중에 두 소프라노가 싸우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이 공연을 관람하던 공주가 이 장면을 보면서 헨델의 인지도와 인기도는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 아마 이 문제를 계기로 헨델은 오페라 보다는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고 여기서 세계의 대작 ‘메시아’가 단 3주만에 작곡되며 56세가 되던해서 처음 런던에 연주된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나 헨델은 메시아의 첫 공연을 런던에서 마친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간다. 이때 더블린은 음악이 런던 만큼 발전되지는 않았지만 연극/희극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헨델의 음악은 더블린 사람들에게 대환영이였다. 여기서 헨델의 메시야 오라토리오가 두번째로 연주가 되는데 각각 다른 교회의 성가대를 모아 연습을 했는데 어느 교회에서 연주회를 가질것이냐는 의견 충돌을 현명하게 피하기 위해 헨델은 중립적인 장소인 Smock Alley라는 곳에서 연주회를 갔는다. 여기서 그의 뛰어난 정치적 수완에 한번 감탄한다.

헨델의 공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연을 통해서 얻은 모든 수익금을 그는 병원에 기부 했다. 그가 후원한 첫 병원의 이름은 Mercer’s Hospital이며 이곳에서면 매년 마다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한다. 그의 공적을 높게 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헨델은 자신의 곡을 모든 병원과 교회에 기증을 했다.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 저작권을 지키면서 더 많은 돈을 벌릴수 있었던 그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맞지 않는 선택을 한것이다. 가난한 자를 돕고 구제하고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병원에 그는 기부했다.

후의 헨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영국 시민들의 귀감이 되어 King George II는 메시아 오라토리오의 할렐루야 합창 부분에선 왕을 포함한 모든 영국 시민들이 자리에 일어나게 법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다고 한다. 1753년에 그는 실명을 했고 1759년에 그는 자기 침대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메시야 오라토리오는 런던의 뮤직이라고 불려지고 그느 훌륭한고 실신한 기독교인으로 기록 됬고 기록 되었다. 헨델의 죽은후 100년후에서야 또 하나의 음악가를 탄생한다. 에드워드 엘가 그리고 벤자민 브리튼… 아마도 영국은 많은 음악가가 나오지 않아서 헨델을 영국인이라고 더 강하게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크크크. 어쨋든…. 헨델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경영인의 자질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분명하다. 음악 그리고 병원….. 갑자기 바로크 음악이 좋아지네….

About Brendon Cho

조후혁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1994년 18살때 호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고 2002년 통계학과를 졸업 한후 통신 회사 Exetel에 2004년 사원으로 입사, 2009년 최고재무관리자 (CFO)로 임명 그리고 2010년 MGSM에서 MBA를 수료 했고 지금 내부 감사장 (Head of Veracity)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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