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웃을 돌보라…..고 하기 전에 니 스스로나 잘해.

어제 오후 설교 말씀을 한 문장으로 간다하게 요약을 하면 이렇게 된다 – “내 목구멍만 생각하지 말고 주의의 가난한 이웃도 챙겨라”.

시티교회에 청년들이 많다. 그중 죽은 사람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하루 한끼 먹으면서 3가지 일을 하면서 영양실조와 과로로 죽은 자들. 한국으로 돌아가려는데 공항까지 가는데 돈이 없는 사람들. 한밤중에 집에서 쫓겨나서 오고 갈때 없는 자들.

왜 이런 자들이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쓸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서 스스로를 죽음의 지경까지 몰고간 것이다. 이해가 잘 않가나? 돈이 없으면 남에게 빌리면 된다. 빌려줄 사람이 없나? 그럼 유대 관계를 어따위로 했고 신용이 얼마나 없으면 남들이 한끼 먹을 돈도 빌려 주지 않는가? 정말 주의에 친구가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고 돈을 빌려줄 사람이 없다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면 된다. 판자에 자신의 설명을 적고 납짝 엎드려 구걸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하나 두개씩 던저 준다. 그리고 맥도날드 근처에 있으면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들을 구할수 있다. 이것이 그렇게 어렵나?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애기 할수 있나? 난 노숙자들이랑 살아 봤고, 거지가 되서 길거리에서 동냥해 봤고,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쥐약이 뭍은 악을 먹고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쌀쌀한 초겨울에 신문지만 덮고 자본적도 있다. 하루종일 노가다 일해서 하루를 연명한 적도 있고, 1,200원짜리 국밥을 먹으면서 뚝배기에 묻어 있는 그릇을 혀로 핧아서 먹은적도 있고, 음식점에서 반찬 그만 먹으로라고 하면서 쫓겨 난적도 있고 3주동안 사과와 물, 그리고 비타민만 먹고 산적도 있다. 학교를 다닐때 차비가 없어서 한 여름에 하루에 6km로 씩 2주동안 걸어다닌 적도 있다.

나도 고생 많이 해봤다. 그때마다 배운것이 있다. 날 죽이지 않으면 난 좀더 강해질 뿐이라고. 나만의 생존을 위해선 자존심도 필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 자신의 생존에 먼저 집중한 다음,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도 늦지 않다. 배는 고픈데 배 고프지 않는척 하는 것은 쓸데없는 자손심을 내세운 어리석음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린 배도 채우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데 남의 배를 신경쓰는 것은 가식이다.

목사님 말씀 하신 것 중에서 음식 한끼 때우는 것이 다 똑같다고 했다. 아니 틀리다. 비록 다른 종류가 입으로 들어가도 나올땐 똑같이 나올줄 모르나, 난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난 사치 스럽게 살 것이다. 난 내가 번 돈으로 남을 구제하고 나야지만이 내가 두발 뻗고 자는 그런 사람 아니다. 난 내 잠자리가 먼저 편해야 되고 난 내 배가 먼저 불러야 된다. 난 내가 좋은 집에서 먼저 살아야 되고 좋은 자동차 그리고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어야 된다. 이것이 결코 이기적인 생각이다. 아니다. 난 내가 할 일, 그리고 해야 될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기본적인 요건이고 난 이것을 충족해야 될 의무가 있다. 이것이 다른 평민들보다 높다고 하여 내가 이기적인 놈, 안하무인한 놈으로 불려져도 난 상관 없다. 니들이 그렇게 질투하고 시기 할때 난 점점 너희들에게 멀어져 가면서 나를 향한 너희들의 저주가 허공에서 너희에서 돌아오는 메아리로 들릴테니까…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물질만능주의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수 없지만 대부분의 것은 해결이 된다… 당연하지…

이렇게 애기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바로 돈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수 없다는 전제를 만든다. 그런데 부자는 그렇지 않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 할수 없음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것을 돈으로 손쉽게 좀더 효율적으로 해결 할수가 있다.

난 돈으로 대부분의 것을 손쉽게 해결할수 있는 위치에 있고 싶다. 앞으로 6년 남았다. 40살이 되기전에 난 내 인생 후반전의 모든 foundation을 마련할 것이다. 2011년도에 내가 가져야 할 물질들을 쭈욱 적어 보았다.

남이 보았을땐 아마도 사치로 보일수 있다. 사치의 정의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무능력으로 가지지 못하는 것을 남이 가진 것은 사치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도 가지고 있으면 필수품이다. 난 내가 앞으로 가지고 소유할 것들이 남들의 눈에 사치품으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비칠것이다. 그날이 멀지 않고 점점 나에게 가까워 짐을 난 매일 느낀다.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나에게 조언을 해줄수 있는 자의 조건은 바로 나로부터 존경 받는자…

생각해 보니 나로부터 존경 받는자의 숫자가… 흠 상당히 적네…

조금 더 풀어서 애길 해 보면 이렇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보다 더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해본 것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보다 더 훌륭한 인품과 인격을 소유 했다고 말할수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보다 교양이 있고 품위가 있으며 현명 하다고 더더욱 할수 없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생물학적으로 먼저 태어났다는 그 이유 만으로 나에게 훈계하는 tone로 애기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지랄’이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외골수가 되어 가는지, 나만의 주장이 강해지는지 잘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더 이상 나이가 상대방 보다 적다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공손한척, 모르는척, 바보인척, 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동의하면서, ‘예의 바르다’는 통상적인 표현아래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일은 더 이상하고 싶지 않다.

나를 업신 여기면 나도 그를 업신 여길 것이며, 나를 존중하면 나도 그를 존중할 것이다. 나를 낮은 수준으로 대접하면 나도 그를 낮게 대접할 것이며, 나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에게 나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융통성이 없다, 고지식하다, 건방지다, 예의가 없다, 버르장머리가 없다라는 반응은 바로 나의 의견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한 무지한 자들의 반항일 뿐이다. 웃기는 사실은 이런 자들이 내 얼굴에 대어 놓고 애기는 못하면서 오합지졸들과 모여서 수군거릴 뿐이다.

내가 존경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것을 가질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그럼 내가 그를 이용한다는 것인가? 아니. 난 의리를 지킨다. 나의 능력을 향상 시키는 사람은 은혜를 내가 꼭 갚는다. 그가 상상하지 못한 그 이상의 기대치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주의에 다시 생각해 보니….. 한명도 없네. (나이 많은 사람중에서 말이다).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성탄절 전야에 내 심기를 감히 불편하게 하다니….

어젯 밤에 전화가 왔다. 내 마음데로 내 역량 안에서 아주 적절하게 처리한 일을 가지고 ‘지도자의 권리에 대한 대적과 월권’이라는 명목 아래 내 자존심을 감히 건드렸다. 물론 내가 소속된 집단의 리더라고 해서 상황 판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나의 능력과 존재성을 무시한다면 나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다. 내 나이 33살이다. 남들보다 많은 사회 경험을 했고, 연매출 호주 달러 55밀리언의 6번째로 큰 전문통신회사의 CFO 최고재무관리이사이다. 내 아래엔 100명의 직원이 있고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 글 한문장 한문장의 회사의 이윤의 폭을 좌지우지 한다. 호주에서 최고이며 세계에서 20위에 안에 드는 경영행정대학원 MGSM에서 MBA를 수업료 한푼 내지 않고 졸업했다. 호주 상류층의 문화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귀족 문화를 배웠다. 난 내 스스로가 뛰어나다 해서 관료주의나 엘리트 사상에 젖어 지내는 쓸데 없는 짓은 않한다. 그냥 나에겐 목표가 있고 전진이 있을 뿐이다. 결과로 난 남들보다 많이 이루었고 많이 이루고 있으며 많이 소유했다.

이런 나에게 기껏해야 호주 서민층의 사람들과 사소한 일을 결정하는 과정중에 지도자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나에게 더 이상 이일을 맡기지 못한다고 협박을 하다니. 그것도 정확한 내용 파악과 분석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말이다. 정말 가소롭다.

난 평범하지 않다. 항상 할 일이 많고 바쁘다. 기껏해야 병아리 잡는 문제를 가지고 사무라이 대도와 같은 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겸허이 받아 들이면 된다. 그런데 자기는 기껏해야 과일 깍는 과도 정도인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감히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다니…

아마 나에게 원인 제공을 한 이자는 밤잠을 설쳤겠지만 난 잠을 아주 편히 잤다. 난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쓰는 소인배가 아니니까. 난 나의 자존심을 어리석게 건딘 사람보단 내가 스케일 더 크니까.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

그냥 없는척, 모르는척, 바보인척….

“Ignorance is bliss” I think this was said by Cypher from the Matrix movie. He was having a dinner with the agent Smith.

그냥 가끔씩 모르는 것이 약일 경우가 있다. 너무나 많이 알면 머리가 아프다. 왜냐하면 이것 저것 계산하고 생각할것이 많으니까. 많이 알수록 변수가 많아진다. 변수가 많아 질수록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서 위험률과 성공률 그리고 그것에 대한 return이 다르다. 언제든 최선의 선택을 고집하는 나에게 상책, 중책 그리고 하책을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중에서 난 많은 고민을 한다. 수업이 갈등하고 수업이 주저한다. 그러는 과정중에서 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냉정한 자세를 보인다. 그러면서 그 어느 누군가와 같이 마음 조리며 걱정하고 또 고민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한없는 후회를 한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하면서 넘어가고, 바보인척 넘어가는 가는 ‘관용’과 ‘이해’ 혹은 ‘화합’과 ‘조화’라는 화려한 미사여구의 그늘 아래 나의 정체성을 서서히 숨긴다. 스스로를 구별화 시키려 노력하는 나, 나만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하려는 나의 노력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나만의 색깔, 나만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과정중에서 난 높은 고지에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난 사람을 찾는다. 나와 함께 이 높은 정상에 같이 올라가서 천하를 얻어 같이 나누자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없다. 뜻과 마음이 합하는 사람이 없다. 왜 내 주변에는 그냥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평범한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는 그 시도가 너무 비굴하지 않는가? 난 난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현실과 타협하고 난 이렇게 그냥 가늘고 길게 살것이라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는 나…. 독수리가 오리들과 너무 오랜 시간을 같이 있으면 나도 언젠가는 오리처럼 수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가지고 있는 큰 날개가 오히려 작은 연못가에서 헤엄칠때 거추장 스럽진 않을지.. 오히려 내가 현재와 타협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융화’되는 과정을 저지하려는 나의 어리석은 시도 인지 아니면 나도 오리인데 스스로 독수리인척 하는 것인지… 나의 헛된 꿈과 야망이 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제 2011년이 다가온다. 새로운 해를 맡이 해서 내가 한가지 더 이상 않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오리들에게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라는 동경의 마음을 심어주지 않을것이다. 나혼자 날아갈것이다. 이 세상은 넓고 넓다. 이 넓은 하늘에 다른 독수리가 있을 것이다. 그들과 이 넓은 하늘을 같이 날고 싶다. 아니 난 큰 날개를 가지고도 아직 높이 날지 않고 그냥 주의를 돌아보면서 스스로 도약을 시도를 억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스스로 바보인척, 없는척, 모르는척 하지 말자. 그냥 날자. 아주 멀리 그리고 아주 높이.

Posted in Uncategorized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