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난 공부를 더 해야되…

지난주 금요일에 작은 책자를 받았다. 제목은 The Great Courses였다. 쉽게 애기하면 여러가지 코스들을 대학교 수준의 lecture 스타일로 시청하는 것이다. 수학, 철학, 예술 그리고 역사에 대한 다양한 코스를 제공 했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 했고 내가 시청하고 싶은 과목들이 많았다. 그중 와인과 음악 그리고 유럽 역사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오늘 저녁 집에 와서 이 책자를 잘 검토한후에 몇가지를 선택해서 시청 할 예정이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보다는 (너무 많이 아니까) 내가 습득한 지식이 확실한지 아닌지를 다른 방법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러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가지고 지식의 정확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보충할 부분과 수정할 부분을 분류 한후 정확하게 내것으로 만든다. 이러는 과정을 통해서 난 스스로의 성장함을 느낀다.

나에게 이런 기회 제공을 해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난 보르도 와인을 즐긴다고 했을때 난 이것이 무었인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8개월사이에 600종류의 다양한 와인을 마셔 보았고 로버트 파커 주니어가 쓴 보르도 와인 책을 두번이나 정독했다 (참고로 두께는 8cm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르는 부류) 나에게 이런 feedback을 하곤 한다. 내가 배움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남을 무시하고 지식을 뽑내며 잘난체 하기 위해서라고.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할수 있는지.. 나에겐 이런 해석은 이렇게 해석이 된다. 자신이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반응. 웃기고 있네. 억울하면 출세하고 성장하고 싶으면 잠 줄이고 노력하면 될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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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ary form의 인생…

어젯밤 잠시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 나에게 국민학교때 애길 했는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그 나이에 이런 심오한 말을 이해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 정말 지당한 말이다. 예 아니면 아니요, 행복 아니면 불행, 성공 아니면 실패, 이익 아니면 손해, 지배 하는자 아니면 지배 받는자, 강자 아니면 약자, 사랑 아니면 미움…. 아마도 반나절은 나열 할수 있을것 같다.

바로 인생은 binary form이다. X 아니면 Y를 선택하는 순간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러는 과정에서 우린 수업는 후회를 한다. 예를 들어 잘못된 선택한 대한 후회를 하거나 혹은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자기의 위치에 대한 후회이다. 여기서 양육강식의 생존법이 적용 된다. 바로 강한자는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할수 있지만 약한자는 강한자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 밖에 할수 없다. 이것이 실용적 현실적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먹히거나 먹거나….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보다 남의 이익을 위해 이용 당하는 입장에 있다면 당신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그냥 나에게 다가온 현실을 인정하고 주저 않는가? 아니면 억울하면 출사하라는 말을 믿고 지배 받는 계급에서 지배하는 계급이 될려고 노력할 것이다. 후자쪽이 유리하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명의 강한자가 한명의 약한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강한자는 약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자기에게 최고의 유익이 돌아올 선택 옵션을 약자에게 주는 것이다. 즉 약자가 무었을 선택하던 강자는 win-win situation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약한자가 강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중에 그는 양육강식의 원리를 이해하게 될것이며 그런 과정중 자신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시할 능력과 안목이 생기게 된다. 즉 강자가 A나 B를 선택하라고 기회를 준다는 그는 C나 혹은 D 아니면 A-나 혹은 B-를 제시 할수 있으며 강자를 설득할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뺏고 뺏으며 더 뺏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10을 주면 10을 받고 빼론 내가 10주면 5를 먼저 받고 나머지는 나중에 받고….. 결국은 많이 가진자, 많이 배운자, 많이 경험하고 지혜로운 자가 인생에 선택권이 많다. 이런자….난 벌써 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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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코드가 맞는 자를 찾긴 정말 어렵지….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 중에 하나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고 누군가 나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면 그도 나와 같은 영웅으로 간주된다.

영웅이라는 웅장한 단어. 남들 귀에는 그냥 교만방자한 그런 단어로 들릴줄 모르나 나에게는 좀 다르다. 나에게 영웅이라는 큰 뜻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꾸준히 전진하는 사람을 말한다. 누구나 이렇게 산다고 호언장담 할줄 모르나 이렇게 사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냥 시대의 흐름과 대세에 따라 직면한 현실을 그냥 직시하고 타협하면서 산다고 할까… 즉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생명력이 부족하고 피동적인 삶을 사는 자는 즉 영웅이라 할수 없다.

내 주의엔 몇명의 영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애석하게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과실도 물론 있겠고 주어진 환경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렇다. 날개가 아직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런 자들의 날개를 마르게 한후 성장하고 훨훨 날개 해주고 싶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도와주는 격이라 할까. 이렇게 되기 위해선 ‘코드’의 교감 및 형성이 아주 중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치 평가를 할때의 기준의 척도가 비슷하나고나 할까?

내가 말하는 코드는 바로 이것 –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삶을 추구하는 자세.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성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꿈을 하나씩 이루어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나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주 불행한 현실은 이런자가 내 주의에 아마도…. 3명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렇다. 물론 내가 정의한 ‘코드’는 바로 내 자신의 기준으로 만든것이다. 이기적인것일까? 결코 아니다. 그런데 가끔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코드를 약간 느슨하게 만들면 내 주의엔 사람들이 더 많아 질까? 양보다는 질인가?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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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우니 마음도 가벼워 진다?

한달 정도 다이어트를 해서 무려 10kg를 뺀적이 있다. 72kg이였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가 다시 65kg이 됬다. 요즈음 아침마다 하루도 걸르지 않고 꾸준히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 펴기를 25회씩 제대로 하니 복근도 점점 붙고 삼두박근과 가슴에 근육이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내 나이 33살에 아이가 둘인 아빠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인 내가 몸매를 가꾸는 목적은 단순히 자신의 건강 관리와 함께 노동력이 필요한 집안 일들을 잘해나가기 위해서 이다. (내가 이 나이에 이 상황에 예쁘게 가꿀 이유가 별로 없지. 바람을 필 계획이 아닌 이상 말이다)

꼭 이 말이 맞다. 몸이 가벼워 지니까 마음도 가벼워 진다. 행동도 빠르게 움직이고 배가 쏘옥 들어간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 기분도 좋아 진다. 예전엔 몸에 따악 맞았던 양복이 어느세 많은 여분이 남아 좀 커보이는 느낌을 받는다.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현빈 같이 몸에 따악 붙는 은색 양복을 맞춤 양복으로 한번 해볼까 하는데 그냥 웃고 넘어간다. 폼생폼사를 즐겼던 내 인생은 이제 한물 갔잖아.

살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 지면서 마음도 가벼워 지니 머리속엔 창조적인 여러가지 생각이 나온다. 신이 난다. 우물안에 개구리 같이 같은 자리에서 만족하면서 안일한 생각을 가끔씩 가졌던 나에게 이상하게도 앞으로 더 나아가서 정복할 지경의 범위가 확실히 보이고 점점 넓어 졌음을 안다.

그냥 이번 기회에 63kg이하고 신나게 더 빼볼 예정이다. 하루 45분씩의 빠른 속도의 걸음으로 칼로리를 신나게 태우고 운동하면서 신나게 클래식을 들으며 (슈베르트 교향곡 5번의 1악장이 좋을것 같다) 좀더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볼려고 한다.

신나게 살자. 삶의 자세를 좀 바꾸어서. 내일이 없을 거라는 공포와 스트레스로 나를 감싸면서 오늘을 지나치게 충실하는 것보다 더 밝은 기회가 내일 온다는 더 큰 기대감으로 오늘을 살아 볼까? 허허허. 설마 이렇게 가다가 낙관론적 낭만주의자가 되진 않겠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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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상 후퇴…. 이것도 하나의 전략이지….

방금전에 사촌동생과 전화를 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작전상 후퇴를 결심 했다고 들었다. 신중하게 검토 했다고 믿고 자신의 결정에 후회 없음을 난 믿는다.

‘시작 한것을 매듭짓지 못하는 것은 천하의 비웃음을 산다’라고 제갈량이 말했다. 남만정벌에서 등갑군과 맞서다 패배한 것을 보고 행군교위 여개가 성도로 퇴각을 권했을때 이렇게 대답을 한것이다. 그리고 등갑군을 화공으로 전멸 시킨후 3만명의 목숨을 앚아간후 제갈량이 눈물을 흘릴때 조운이 옆에서 제갈량의 말을 인용해 위로한 적이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시작한 것을 매듭짓지 못하는 경우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수도 있다 (특히 남자는) 하지만 누구에게 실패와 좌절이라는 관문이 있으며 이것을 극복하고 통과하면서 스스로를 성장 시킨다. 시작한 것을 매듭짓지 못하고 다른 길을 택해 좀더 좋은 결과를 얻는 다면 이것은 작전상 후퇴로 간주된다. 만약 시작한 것을 매듭짓지 못하고 다른 길을 택한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이것은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혹은 시기가 적합치 않았을수도 있다. 만약 이런 결과를 초래 한다고 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고 후회를 하거나 남을 탓하면 이것은 남자라 할수 없다.

삶은 많은 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다리도 두둘며 건널 조심성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때론 과감하게 기동력을 사용하여 속전속결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때론 차분하게 참고 기회를 기다리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삶의 지혜는 바로 어느 사항에 어떤 전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많은 선택을 적절한 시기에 할수 있는 우선권을 자신에게 두기 위해선 바로 자신을 준비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순간 작전상 후퇴에 고개가 숙여 질수도 있다. 자존심이 상할것이다. 창피 하기도 할것이며 부모님께 죄송스럽다는 생각도 들것이다. 하지만 순간 무너진 자존심에 기분 나빠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미래의 더 큰 리턴을 위한 오늘의 결정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라.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미래를 위한 계획안을 세우라. 그리고 실행 하는데 집중하라. 이것이 네가 할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네가 자랑스럽고, 만약 남들이 너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음을 걱정 한다면 그들의 이름을 나에게 말해 살생부에 기록하도록 한다. 그리고 너의 위대한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소인배들이 네 앞에 고개를 숙이게 내가 대신 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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