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제력 평가 기준은 바로….

‘당신이 작년에 낸 세금이 얼마인가요?이다.

어제 미친척하고 MGSM 동창회에 초대를 받아서 퇴근후에 잠시 참석을 했다. 시티에 있는 Aurora Bar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단순한 친목의 자리가 아닌 ‘네트워킹’이라는 명문 아래 가식적인/인위적인 인맥형성에 다들 눈이 멀었다.

내가 어제 받은 명함의 갯수를 세어 보니 총 22개였다. 물론 22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 주머니에 있었던 명항의 갯수는 22개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하나 둘씩 체크를 하는데 벼러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 명함 케이스를 주머니에서 꺼내 흔들어 보았다. 소리가 나질 않았다. 이유는 어제 난 그 누구에게도 명함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명함을 사용하는 용도는 딱 두가지이다 (일 때문에 만나는 거래처는 제외) –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한 교류가 필요한 가치 있고 영향력 있고 도움을 주고 받을 사람, 그리고 상대하기 싫어서 그냥 초반에 기선 제압용으로 주는 경우. 이제 나이 먹고 좀 철이 드니까 후자쪽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친환경 정책을 선호하는 사회지도층으로써 난 종이 낭비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2명의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약간의 탐색전을 한 후에 socialising하는 형식적인 대화가 왔다 갔다 하는데 결국은 자기들의 성공담을 거창하게 늘어 놓으며 자기가 MBA를 MGSM에서 마친후에 얼만큼 잘나가지에 대해서 극대적 미화를 시킨다. 난 그냥 그의 눈을 맞추면서 그들의 무용담을 정중하게 들어주는 척 했다. 그들이 나에게 질문을 할 차례다. 물어보는 방법과 문장의 형식과 단어의 선정을 다르지만 결론은 ‘넌 일년에 얼만큼 버냐’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 ‘난 작년에 세금을 6만달러를 ATO에 지불 했다’라고. 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세율에 따른 연봉을 자동적으로 계산 했을 것이다. 그때 그들 주머니에서 명함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들의 태도와 언행이 갑작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치 고급 관리가 암행어사로 감찰 나온자가 국왕임을 알아 냈을때의 표정이라고 할까나…

그리고 난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 매출액에 집중을 한다. 그래서 연봉이 얼마인지 페키자 얼마인지 어떤 특혜를 받는지에 대해서 집중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정직하게 벌고 정직하게 신고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국가에 지불하는 것이 MGSM에서 MBA를 마친 엘리트로써, 모범적 사회 지도층으로써, social responsibility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양심적인 시민으로써, 국가에 세금을 얼만큼 정직하게 지불 했는지가 사람의 경제력 평가 기준으로 사용 되는 것이 더 올바르다’라고…. 내 말을 듣고 동감하면서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쓸쩍 피하는 사람들도 몇명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절세라는 명목 아래 교묘한 탈세를 행함으로 사회지도층의 양심과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회손 시킨 사람들이였을 것이다.

오후 늦게 부활절을 잘 보내라는 이메일이 왔는데 알고보니 어제 만났던 사람들중에 한명이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회계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직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회계사인 자신이 교묘하게 절세를 가정한 탈세를 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서 어제 내가 한 말을 듣고 많은 깨닮음이 있음과 동시에 많이 부끄러웠다고 고백 했다.

난 사람들에게 젊은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애기한다 –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고 정확하게 세금을 내라. 그래야 떳떳하게 돈을 벌고 떳떳하게 쓸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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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강의 준비……

4월 9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멕쿼리 대학교에서 강의가 있다. 학사과정의 3학년들생인데 Global Business Strategy인가… 국제경영전략이라는 과목인데 이제부터 슬슬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할 것인지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기본적인 구조와 핵심 내용을 담은 초본은 강의 결정이 난 그날 저녁에 잡아 놓았다)

나를 두번째 초대하신 교수님께서 (첫번째 강의는 UNSW에서 작년 8월에 있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 모험담(?)과 엑스텔이 스리랑카 지사를 세우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현재 상황과 개선할 점과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 했는지에 중점을 맞추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스리랑카 지사를 세우기까지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하려고 준비중이다 – 그것도 남녀간의 연애를 비유해서 말이다.

첫번째 스페이지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상대편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보여도 무시 하고 그냥 넘어간다. 왜냐하면 마냥 좋아서. 호주의 통신회사중 가장 먼저 스리랑카에 들어와서 외환을 끌어 들어오니 스리랑카 정부는 대환영을 하고 현지 직원들을 고용하는데 시장가격보다 3배나 높은 고임금을 지불 한다고 하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원을 한다. 현지인들은 자신의 경력을 속이면서까지 이력서를 제출하고 피튕기는 경쟁률을 이기고 면접 시험에 초대를 받고 합격한 사람들은 그저 한없이 행복해할 뿐이다.

두번째 스테이지는 결혼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 했지만 수습 기간이 6개월이다. 6개월안에 좋은 실적을 남기지 못하면 회사측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해고가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6개월 동안 몸과 마음을 바닫혀서 충성을 다한다.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며, 점심 시간에 눈치를 보고 나가지 않고 책상에서 밥을 먹는다. 위에서 관심을 보여주면 그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사기가 올라간다. 작은 실수에도 괴로워하고 동료가 상사에게 인정을 받을때 배아퍼한다. 주어진 업무 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일부러 일을 찾고 배우려 스스로 노력한다.

세번째 스테이지는 신혼기간이다. 이제 수습 기간을 마쳤고 결혼해 성공했다. 세상이 다 내껏 같다. 사랑해서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삶이 솜사탕 같이 달콤하다면 외국 기업에서 높은 임금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마치 세상이 내껏 같으며 높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한다. 결혼 전에는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했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좀더 생산적으로 체계적으로 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직의 효율성을 더 향상 시킬수 있을까, 그리고 상사와의 마찰이 생길때 그들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수긍을 한다.

네번째 스테이지는 서로에 대해서 왠만큼 파악한 결혼 3년후이다. 이때부터 잦은 싸움이 일어난다. 치약을 짜서 쓰는데 어째서 중간부터 쓰냐 왜 아래서부터 쓰냐라는 것에서부터 이런 사소한 다툼이 시작이 된다. 예전엔 잘록했던 허리가 언제 드럼통 같이 통자로 됬고 빨래판 같았던 그의 배가 이제는 부프른 풍성 같이 됬다. 신혼 때는 부엌에서 솔선수범해서 설겆이도 해주고 청소도 했는데 이제는 집에 오면 왼손엔 채녈을 조정하는 리모트콘트롤을 다른 오른손에는 맥주를 들었다. 예전엔 모든것이 핑크빛 같이 아름답고 좋았는데 이제는 더이상 아니다. 천재 같고 배우 같이 생긴줄만 알았던 그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바로 조직안에 허와 실을 확실히 파악 했고, 예전 같이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자 하는 이유,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생각하려는 자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번째는 이혼 당하기 싫어서 그냥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만을 실행하는 것이다. 남자는 돈을 벌어서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쓰고, 여자는 주부로써 최소한의 의무만을 실행하는 것이다. 예전엔 메뉴가 프랑스 레스토랑의 계절별로 메뉴가 바뀌듯이 했는데 이제는 그냥 신김치와 손많이 가지 않는 믿반찬 몇개랑 재활용하는 국뿐이다. 예전에 알콩달콩 했던 대화의 양은 점점 줄어 들고 하고 싶은 말, 해야 되는 말만 한다. 직원들은 그냥 해고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하고 무슨 일이 잘못 되어서 자기들에게 책임 추궁에 대비하기 위해서 자기 합리화와 방어에 집중을 하게 되면, 현재 시스템을 좀더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보다는 그냥 기존의 시스템을 보수하려는 추종 세력으로 변질 되며 변화를 기피하게 된다.

그럼 6번째 스테이지는 무엇 일까? 그냥 해고 (이혼)를 시킴으로써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 (경영에선 strategic inflection point라고 하던가)을 맞아서 다른 레벨로 업그레이드가 될수 있을까? (예: 전화로 고객 상담하는 직책에서 관리자로써 승진하는 기회) 지금 생각해보니 6번째 스테이지 속한 사람들이 많이 있네… 이혼 아니면 다른 삶을 위한 새로운 재시도…. 새로운 재시도를 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과연 좀더 상업적으로 효율적인 결정일까?

(위에 것 같이 초본을 잡아 놓은 것을 다시 읽어보는데… 좀더 정리를 해야 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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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과 구두를 닦을때…..

기린아와 나는 초심으로 돌아간다 – 쉽게 애기하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상기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기린아를 만났다. 나에 대한 외곡된 선인겹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월남국수, 순두부찌개 혹은 라면 종류의 서민형(?)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애기를 종종 들은적이 있다. 더군다나 기린아와 함께 하는 식탁은 파란색 지니러니의 참치 대뱃살과 돔 페리뇽 샴페인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난 기린아의 집에서 인스탄트 전복죽과 라면 그리고 김밥을 맛좋은 저가의 와인과 함께 종종 즐긴다. 지난 일요일에도 우린 에핑에 있는 순두부 집에 가서 삼계탕과 골뱅이무침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 왔다. 역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랑 무엇을 먹고 마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회사에서 기린아에게 제공된 차안에 커다란 다림판을 봤다. 예전에 책에서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 한 남자의 정서를 알고 싶다면 그가 와이셔츠에 잡힌 선을 보면 된다는 애기 – 기린아의 와이셔츠는 구김 없고 항상 깨끗하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이렇게 애기 했다.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매번 초심으로 돌아간다’라고. 자기가 첫 직장을 2006년도에 평사원으로 입사 한후에 회사내에서 인정 받고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했고, 파격적인 연봉인상을 위해 경력을 최대한 단 기간에 쌓고 다른 회사로 일년에 한번씩 이동하는 전략을 세운 애기를 했다. (한 회사에서 2년이상 머무는 자는 별볼일 없다라고 했는데 물론 나에겐 해당 되지 않는 코멘트) 그는 다림질 하면서 이렇게 회상의 기회를 가지고 자신을 가다듬는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떨까? 난 기린아 같이 선을 잡고 다림질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서서하는 steam을 사용하니까. 기술적으로 선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난 구두를 닦을때 초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올챙이였던 시절을 생각한다. 맥도날드에서 고기 뒤집던 순간, 페인트 칠하고 쇼핑 센터 카트를 운반하던 순간, 수퍼마켓에서 새벽에 물건 채워 넣었던 순간, 2004년 5월달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 했던 순간등을 생각하며 2009년 4월달에 재무관리이사로 임명 받은 순간을 생각하면 어느새 내가 즐겨 신는 세켤레의 구두를 반짝 거리게 닦았다. 그리고 구두들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정리를 하면서 이렇게 내 자신에게 애기한다 – ‘지금 상태에서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것은 미래에게 내가 더 큰 가치창출에 대한 자신과 능력이 없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비겁한 자기 합리화이다’라고…..

재벌집 자식이 아니고서야 위에서 부터 시작하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학벌, 혈연, 지연, 경력과 실력을 모두 가지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특출난 인재들은 남들보다 적은 투자로 짧은 시간안에 많은 것을 이루는 것뿐 그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만약 내가 (기린아 포함) 천재가 아니라면 그러나 평균이상이라면, 남들보다 많은 것을 단시간안에 많이 경험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난 스스로 배워야 한다. 누군가가 내게 주지 않는 다면 난 그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것으로 만들어야 된다. 대주주가 배당금을 가장 많이 받듯이 많이 투자한자가 많은 결실을 얻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희생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얻고 큰 것을 얻으려면 작은 것을 버려야 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작은 실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것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도 필요하고 큰 실패도 인정하고 덤덤하게 넘어가는 포부도 필요하다.

어젯밤 와이셔츠를 7개를 한꺼번에 다렸다. 그리고 구두 두켤레를 닦았다. 그리고 어느때와 같이 다짐했다 – ‘오늘이 어제 보다는 멋있고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멋있는 날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고 목표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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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시기에 생기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나도 이젠 잘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숨죽이고 몸을 낮추고 기회를 엿보는 것밖에는…..

지난 13개월 동안의 허수아비 왕을 세운 위나라는 이제 슬슬 다음의 정권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조조의 둘째 부인의 오빠를 위왕으로 세우려고 계획중이다. 현재 허수아비 왕을 평화롭게(?) 폐위 시키기 위해서 그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하사하여 그가 반란의 마음을 품지 못하게 준비중이며, 새로운 왕은 신진세력을 외부로 부터 끌어 들이는 준비를 소리 없이 실행중이다. 그중 한가지가 자신의 첩을 보자관으로 삼고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벼슬 자리를 내려서 그들과 비밀리에 금전적인 뒷거래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짜고 치는 포커판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한 내가 현재 할수 있는 것은 딱한가지 – 바로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웃으면서 때론 진지하게 정권교체에 박자를 맞추어 주고 지원 사격을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이유는 바로 살아남기 위해서다. 적토마와 방천화극을 가진 여포가 아니고서야 100명을 혼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개벼슬아치가 한 나라의 정책을 바꿀수 없으며, 더군다나 정의와 진리라는 명분만을 앞세운 백면서생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미비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힘도, 권력도, 돈도 없는 평범한 직원이 정권교체로부터 파생된 잘못된 폐단을 질타 한다고 하면 그자는 파직이 될것이며 그 조직에서 제거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죽어선 아무 것도 할수 없으니 잠시 몸을 사려 피한후에 다음의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현명한 처사다.

내 자신을 이렇게 위로한다 – ‘만약 내가 갈아 놓은 칼날 위에 내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성적인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고, 자존심은 내 책상 3번째 서랍 구석에 쳐밖아 놓고, 그냥 흐름을 따라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것이다’라고. 그러면서 난 뒷말을 이렇게 흐린다 – ‘사마의는 조씨 가문을 4대째 섬겼고 나중에 막판 뒤집기로 한방에 승부를 냈다’라고. 작년 2월에 돌아가신 위왕, 그리고 그 뒤를 이른 임시 방편의 허수아비 위왕, 그리고 돌아가신 위왕의 두번째 부인의 오빠까지 따리면 이제 3대째 섬기는 것이 된다. 그럼 4대째는 누구일까? 4대째 위왕이 나오기 전에 위나라는 촉나라나 오나라에게 흡수 되지는 않을까….. 그럼 나도 관중과 같이 되는 것일까? 비루한자, 변절하는 자, 기회주의자, 그리고 충성치 못한자… 어떤 소리를 들어도 좋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한번에 뒤집으면 된다. 그리고 그 날이 반드시 온다. 아니 그 날을 난 찾을 것이고 그 날이 내게 오기전에 내가 그 날을 향해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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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와 내가 베푼 은혜를 갚을 그릇이 되지 않는 자에게는…..

내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내 꿈을 애기하면 이것은 ‘인생 목표’가 아닌 허울, 욕심, 허풍, 허세로 해석이 되고, 내가 베푼 은혜를 갚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면 나중엔 ‘은혜’가 아닌 약점, 구실, 발목, 쥐약으로 해석이 된다.

내가 오래전엔 나의 꿈을 잘 공유 했다. 병원 경영과 오케스트라 후원등에 대한 나의 계획을 애기하면서 나랑 비슷한 인생관과 목표 및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랑 비슷한 인생관과 목표를 가진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럼과 동시에 내 꿈의 스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내 꿈을 실현 불가능한, 그냥 허울뿐인 허상으로 전락 시키고 말았다.

난 어느때 부턴가 은혜라는 단어를 싫어하게 됬다. 아마도 은혜를 베푼 사람 두명에게 결국엔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첫번째 케이스는 학비 지원이였다. 학비를 일정 기간내에 지불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 되는 긴급한 상황을 맞이 해서 무이자 그리고 상환기한이 없는 그리고 상황이 낳아지면 조금씩 갚아 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었는데….. 물론 나에겐 그냥 고급 와인을 곁들인 화려한 저녁 식사 두끼에 해당 되는 돈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생각이 있고 은혜를 안다면 성의를 보인다는 입장에서 적어도 한달에 $100 상환을 꼬박꼬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을… 함흥차사다. 생각을 하면 생각이 나는 일이지만 굳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생각 할 필요가 없는 나에겐 아주 사소한 일이다. 내가 어수룩하게 사람을 너무 믿어서 잘못된 결정으로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이나, 내가 사람을 보는 내 평가기준이 흐려졌다던가에 대에 자존심이 상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인간 관계에서 은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케이스여서 기분이 언짠은것 뿐이다. 두번째 케이스는 동반자 비자에 대한 보증인을 서주는 것이였다. 어쨋든 내가 보증인의 자격이 되어서 보증인이 됬고 character reference를 손수 작성했다. 물론 비자가 나왔고 둘은 애기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서 살고 있다. 후에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남편과 인생관의 차이에서 발생된 방법론의 clash와 잦은 의견 충돌과 오해 요지가 많이 생기면서 그가 먼저 거리를 두고 나를 피하다가 이제는 봐도 안면을 생판까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젊은 나이에 일찍 출세하고 나니 천상천하안하무인유아독존폼생폼사불꽃독설의 trademark가 자연스럽게 되어 버린것이 이질감 생성의 주요 원인이 될수 있다. 물론 내 인생의 그의 존재성 가치는 0%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길거리에서 피흘리며 생사를 왔다갔다 하는 순산이 아니라면 난 그를 도울 의향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난 은혜를 모르는 인간을 개보다 못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큰 마음 먹고 세번째 ‘은혜’를 배풀고 있다. 아니 ‘은혜’라는 단어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과 희생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포함이 되니 내가 베푸는 것은 정확히 애기하면 ‘은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난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지속적인 성장과 그를 이곳까지 이끌어준 나의 존재성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죽을때까지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드디어 두명을 만났다. 그들과 멀리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 오성과 한음의 우정 같이,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김도진, 임태산, 최윤, 이정록의 변함 없는 의리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산 증인이 되고 싶다. 1명만 더 모으면 ‘아무개 4인방’ 할수 있을것 같은데….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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