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en Symphony No. 104 in D major – Part I

1732년 4월 1일, 헝가리의 국경 가까운 시골 Rohrau에서 태어난 프란즈 조셉 하이든의 집안은 그를 포함해서 12형제, 목공을 업으로 하는 집안은 가난 했으나 양친은 모두 낙천적이었고 웃음 소리와 노래 소리가 끊일 날이 없는 행복한 집안이였다.

둘째 아들인 하이든도 물론 가난에 굴하지 않는 낙척전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교육가였던 아버지의 처남이 맡아서 음악 교육을 받게 했고, 8살 때에 빈의 스테판 성당의 아동합창대원이 되었다. 17살때 변성기가 시작 되엇 그 곳을 그만둔 하이든은 빈에서 거리의 악사들의 모임인 세레나드 악단원으로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사회와 세속적인 음악을 체험 했다.

그러다가 어떤 남작가의 바이올린 주자로 고용된 것을 비롯해서 나중에는 헝가리의 귀족 Esterhazy 공작의 궁정악장으로 30년을 봉직 했다. 그 당시의 음악가로서는 가장 안정 되고 영예로운 직업이었다. 그 동안에 그의 작품은 유럽 각지에서 출판 되어 명성을 떨쳤다.

1790년 영주가 세상을 떠나고 궁정악단이 해산 되어 하이든은 비로서 독립된 작곡가로 빈에 영주하기로 했으며 이때 그의 나이는 벌서 57세 – 독립하기엔 많이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모짜르트와 연령을 초월한 우정을 맺은 것도 바로 이때요, 시골에서 올라온 베토벤을 가르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두 번에 걸친 런던 여행도, 그의 명작 ‘천지창조’와 ‘사계’ 그리고 그의 마지막 교향곡 104번 ‘런던’ 교향곡도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이 빈에서 맛본 기쁜 일들이였다.

그리고 명실 그래도 전 유럽의 거장으로 군림한 그는 만천하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1809년 76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수한 그는 바흐가 별세한 1750년 전후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모짜르트의 짦은 인생의 활약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모짜르가 간 뒤에도 18년이나 더 살았다. 그리고 하이든이 죽던 해, 37세의 베토벤은 교향곡 6번 ‘전원’까지 완성한 음악의 수도 빈의 대가였다.

하이든은 교향곡 형식을 완성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물론 그는 교향곡의 창시자는 아니다. 교향곡의 완성까지에는 많은 인재의 노력이 쌓였으나 그 형식을 뛰어난 작품으로 실증해서 정착시킨 것은 역시 하이든이다. 그 정착 과정에서 하이든은 몇가지의 개혁을 했다. 그는 Manheim 악파가 결정한 4악장제를 전승해서 제 3악장에 전아한 무곡형식 미뉴엣을 채택했다. 그리고 1악장은 소나타 형식, 즉 대조적인 조성과 성격을 가진 제 1 테마와 제 2 테마가 소개 되는 제시부, 그리고 테마가 동기적인 발전을 보이는 전개부, 그리고 제 1 테마와 제 2 테마가 돌아오는 재현부로 구성되는 기악형식인데, 하이든은 특히 전개부의 처리를 비약적으로 발전 시켰다. 느린 속도의 제 2 악장에서 하이든은 민요나 동요의 멜로디를 으용해서 친밀감을 주게 했고, 제 3 악장에서는 향토색이 짙은 Landler (독인의 3박자 계총의 민요) 무곡풍을 가미해서 흥을 돋구었다. 제 4 악장은 론도 형긱이 아니면 소나타 형식을 썼는데 성격상으로는 무곡풍의 경쾌하고 명랑한 것으로 피날레의 만족감을 주도록 했다. 이런 모든 형식과 양식의 정착이 모두 하이든의 손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당시 ‘새로운 음악’이던 교향곡이 150편, 현악 4중주 곡이 70편, 그 밖에 거룩한 종교음악로부터 영주의 식사 때마다 연주하는 ‘식탁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수효는 실로 방대하다. ‘인생은 심각하게, 그러나 예술은 즐겁게’라는 전제군주시대의 예술풍조는 작곡가로 하여금 왕후귀족이 식후에 먹는 신선한 과일처럼 음악을 생산케 했던 것이다 – 신성 로마제국, 에스테르하치 카란타의 공작 바울 안톤 각하 밑에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 하이든에게 약간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낙천적인 하이든의 천성은 명랑한 유모어를 금가루처럼 작품에 뿌렸고 그의 풍부한 악상과 실제의 경험에서 얻은 깊은 조예는 그의 작품으로 하여금 무리가 없고 유려한 음악의 흐름과 함께 무한한 친밀감을 주게 하고 있다. ‘파파 하이든’이라고 존경과 사람을 받던 그의 매력 있는 인품이 음악에 그대로 반영이 된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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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tasking only multiplies the probability of multiple failures

2013년의 마지막 날에 올린 글에 대한 몇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중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멀티 태스킹이 그렇게 나쁜가요?’라는 것이며 이것에 대해 좀더 elaborate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금요일 아침 약간 한가한 틈을 타서 머리속에 생각 나는 것을 두서 생각치 않고 거침 없이 한번 적어 본다.

1995년 Windows 95가 처음 나왔을때 나는 컴퓨터의 멀티 태스킹의 능력은 CPU의 속도와 memory 용량에 의해서 좌우 된다는 것을 알고 ‘만약 멀티 태스킹의 한계를 초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 질까’라는 짖굿은 호기심이 발동 했고 난생 처음으로 ‘blue screen of death’라는 것을 보았고, 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과감하게 reset 버튼을 누른후 초기화를 시키는 것이다. 이런 초기화 작업시에 저장 되지 않은 데이타들은 손실이 되고 모든 프로그램들은 종료 된다. 여기서 컴퓨터가 하는 멀티 태스킹과 인간의 두뇌에 큰 두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은 컴퓨터 같이 진정한 멀티 태스킹이 절대로 불가능하고 두번째는 컴퓨터 같이 진정한 초기화 작업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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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진정한 멀티 태스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본다. 예를 들어 CPU의 용량이 100인데 한개의 task가 지정 되고 이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resource는 25라면 CPU는 25%를 할당해 주고 나머지 75%는 reserve가 된다. 만약 추가 작업 5개가 지정 되고 작업에 필요한 resource가 15라면 CPU는 75%의 남음 resource를 5 조각으로 공평히 나누어 할당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CPU는 6개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 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sequential process (한개의 작업이 끝나면 다음 작업으로 옮겨짐)가 아닌 simultaneous process인것이다 (여러개의 작업이 한꺼번에 진행 됨). 그런데 인간의 두뇌로 과연 이런 simulatenous process가 가능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들 보다 멀티 태스킹 능력이 뛰어 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끔 운전중에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하는 여자를 본적이 있으며, 다림질을 하며 전화를 받고 또 요리를 병행하는 능숙한 가정 주부를 연상한다. 샤워를 하면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양치질을 하며 머리를 감는 모습도 연상하고, 모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애들 도시락을 준비하고 책가방을 챙겨주는 엄마의 모습도 연상한다. 그런데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진정으로 여러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동시 병행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업과 작업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함으로 마치 여러가지 일을 병행 하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정답니다. 여러 작업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할때 적응력이 빠르고 집중력이 높으면 멀티 태스킹의 능력이 높아 보이고 또 생산력이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가지를 일을 하다가 기다리는 동안 다른 작업으로 옮겨 일을 진행 해서 ideal time을 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컴퓨터 같이 동시 병행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인간의 두되는 한번에 한가지에 집중을 해야지 최고의 효율을 얻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이상을 같이 병행 할경우 집중력이 떨어지며 그로인해 생산석이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작업과 작업 사이 이동 속도가 빠르다. 바로 작업 이동시 적응력과 집중력이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작업과 작업 사이 변환 속도가 느리다. 다시 말해 흐름이 한번 깨지면 좀처럼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하는데 시간이 올리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high volume but less complex한 작업을 시키면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data mining과 filtering등 분석을 위한 기초 자료 분석 준비에 적합하다. 후자의 경우는 low volume but highly complex한 작업을 시키면 효율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복잡한 문제 해결 및 대응책 준비에 적합하다. 전자의 경우는 속전속결로 얼마만큼 많은 양의 일을 짧을 시간에 종결 시켰을때 만족감을 얻고, 후자의 경우는 일의 양보다는 그 일의 quality에 더 focus를 맞춘다. 전자에게 복잡한 일을 주면 흐름이 깨지고 후자가에 자질구래한 일을 주면 흐름이 깨진다. 즉 작업과 작업 사이 변환 속도의 차이를 고려 해서 현명한 task allocation이 요구 된다.

그럼 이제 두번째 토픽으로 가본다 – 과연 컴퓨터 같이 초기화 작업 (reset)이 가능 할 것인가? 컴퓨터는 reset 버튼을 누르고 제가동을 하면 백지 상태로 돌아온다.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 할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한번 부하가 걸리면 생산성은 정밀도는 바닦으로 곤두박질 하고 생산성 저하는 물론이고 사기가 저하 된다. 아쉽게도 인간에게는 컴퓨터 같이 reset 버튼이 없다. 인간이 초기화로 돌아가기 위해선 reset 버튼이 아닌 e를 뺀 rest가 필요하다.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을 해야 되는데 회복기는 어느정도 심하게 부하게 걸렸는지에 따라 결정 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지친 몸은 회복이 될지는 몰라도 한번 부하가 걸린 두뇌는 방어적이고 폐쇠적이 될수가 있으며 조금만 일의 양의 늘어 날 경우 스트레스성 반응이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상태를 흔히 burn-out이라고 하며 이런 over-utilization status에 도달하면 컴퓨터 같이 자연스럽게 shut down을 되지 않고 감정적인 반응에서 파생된 파괴적인 반응이나 행동이 조직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기고 한다.

난 오랫 동안 멀티 태스킹을 지향 하지 않았다. 난 항상 simultaneous process가 아닌 순차적 사고를 지향 해왔다 – Once task A is done, move onto task B and so on. 이렇게 애기하는 나의 to-do-list를 본 직원이 아주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질문을 했다 – ‘어째서 해야 될일 리스트에 작업이 많이 쓰여 있나요?’ 노트를 보여 주면서 자세히 읽어 보라고 했고 그는 무언가를 깨우친 밝은 표정이였다 – 바로 내 노트에는 오늘에 내가 해야 될 일 바로 단 한가지만이 적혀 있고, 정해진 그 한가지 목표를 위해 내가 순차적으로 진행 해야 될 sequential event와 milestone을 정해 놓은 것이다. 바로 큰 목표, 나를 성공으로 이끌 목표를 한가지 정해 놓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을 단계별로 논리정연하게 열거해서 한 step씩 이루어 나갈때 성취감을 얻도록 유도하는 것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사용한 방법이다. 한번에 하나씩 차분하게 집중해서 전진하는 것. 내 삶에 멀티 태스킹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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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한장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pessimistic하고 cynical한 view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view임을 난 지난 37년간 믿어 왔다.

신년 계획안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은 2013년에 제대로 실행 하지 못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그 내용들을 유심히 보면 2012년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보고서 안에는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그럴싸한 표현이 번지르르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난 이런 feedback을 항상 한다 – ‘작년에도 제대로 실행치 않고 계속 미루던 일을 달력 한장 바뀐다고 과연 제대로 할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애기하는 근거 발상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 건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라는 말을 앞세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난 그냥 살짝 미소를 짓고 대화를 단절한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난 이것을 ‘fool’s hope’라고 부른다. ‘할수 있다’ 혹은 ‘하겠다’는 의지는 일의 시발점이 됨과 동시에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self-assessment의 능력을 약화 시킨다. 예를 들어 현재 나의 physical condition과 limitation을 무시하고 20대들이 하는 격한 운동을 과도하게 시도하면 관절에 무리가 오고 부상을 입을 위혐이 있다. 자신의 물리적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실현 가능성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accomplish하면서 성취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초월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마치 자기 자신이 수퍼맨이 된것 같은 착각속에 빠져 지내면 자연히 burn out이 되고 지치게 되어 있다. 100% utilization이 productivity와 efficiency를 극대화 시킨다는 착각속에 자기 자신을 혹사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달력에 자기가 무엇을 할것인지 빽빽히 기록한다. 급한 일, 중요한 일, 해야 되는 일 그리고 할수 있는 일들을 combine해서 적는다. 지나친 등로주의 사고는 기록하는 과정중에서 벌써 성취감을 얻지만 시간이 지나면 to-do-list에 적힌 방대한 양에 숨이 막혀 좌절하고 쉽게 포기한다. 많을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착각속에 많은 사람들은 빠져있다. 인생에 별로 영향력 없는 사소한 일들에 tick을 하고 줄을 긋는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 직장에 출근해서 오늘의 내가 해야 될 일들을 다 마쳤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항상 성공 한다는 보장은 없다. 성공과 직결된 일만 목표로 정하고 어떻게 언제까지 이루어야 된다고 머리속에 기억하면 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계획하고 한꺼번에 이루려고 한다. 난 이것을 멀티 태스킹 증후군이라고 한다. 아마도 마이크로 소프트 윈도우즈 3.1이 release 되고 새로 생긴 신종 언어가 바로 multi-tasking일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마치 멀티 태스킹이 경영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될 prime quality중에 하나라고 믿어 왔다. 원래 멀티 태스킹의 정의는 컴퓨터의 CPU가 시스템의 resource를 작업량에 맞게 할당 해서 여러개의 작업을 동시에 실행 함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가 정말 멀티 태스킹을 컴퓨터 같이 소화 가능할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인간이 하는 멀티 태스킹은 단순히 작업 A에서 작업 B로 전환하는 것이며 작업과 작업 사이의 전환 시간이 짧고 작업의 숫자가 많을때 멀티 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 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 할때 라디오를 듣고 머리를 감으며 양치질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에서 일어 나는 일들은 이렇게 습관에 의해 자동적으로 실행 되는 일들이 아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획 해야 되면 방해를 받으면 흐름이 깨지고 그 흐름을 타기 위해선 다시 집중 해야 된다. 그래서 난 예전부터 멀티 태스킹을 지지 하지 않았다.

그럼 위에서 나온 단어 ‘습관’을 한번 생각 해본다. 신년 계획이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통계적으로 보면 작심삼일을 effective period는 10.2일이다. 결국 큰 마음 먹고 계획한 일들은 10일 정도 되면 steam이 빠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성공적인 습관을 가지려면 적어도 66일에서 많게는 90일 동안 꾸준히 하라는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인 시도에서 불변하는 습관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겠다는 그리고 할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는 신체적 제약 때문에 무너지고 또 많은 것을 한꺼번에 계획하고 실행 함으로써 에너지 소모와 집중력 하락으로 결국은 두손 두발을 놓게 되는 것이 신년계획 증후군이다.

사람들이 나의 신년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 보면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 ‘Do what I can’. 그러면서 좀더 구체화 해달라고 말하면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 Don’t do more than what I can’. 너무나 단순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것 같을지 몰라도 결과가 증명 해준다. 100가지를 계획하고 90개를 fail하고 10개만을 성취해서 10%의 승율을 올리는 것보다는 10가지를 계획하고 10개를 완벽하게 이루어서 100%의 승율을 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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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하는데 연령과 사회적 위치라는 제한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난 없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들의 관점으로 나의 기부 동기와 경제적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때 이런 오해가 발생함을 알았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머리속에 생각다는데로 적어 본다.

나를 오랫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은 내가 얼만큼 이성적인 지출과 감성적인 지출를 밸런스 있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명분이 분명하고 동기가 올바른 일인데 금전적 제한 때문에 행사 운영에 지장이 있을때 나는 내 능력 안에서 그 부족한 것을 기쁘게 채워준다 – 바로 이것이 이성적인 지출이다. 가끔씩 기린아와 만나 그간의 영웅담을 나눌때 흥을 돋구고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귀한 비싼 샴페인을 열기도 한다. 돈으로 추억을 살수는 없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이 소중한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면 그 소비는 내게는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이다 – 바로 이것이 감성적인 지출이다.

원래 연말과 연초에는 교회에서 행사가 많다. 그중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바로 여름성경학교이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봤을때 수련회나 단기 선교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금이다. 예를 들어 자금이 없으면 수련회 장소 대여가 불가능 할것이고, 자금이 없어 교통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선교지 방문은 불가능해진다. 자금의 한계에 부딪힐때 일반적인 대응안은 경비를 줄이는 것이며 이러는 과정중에 행사의 quality가 떨어지고 담당자들의 사기가 저하 되어서 행사의 본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교회측과 학부형들이 지원을 한다고 해도 가끔씩 생각치 못한 곳에서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면, 내가 잘하는 것이 바로 이 ‘구멍’을 매꾸는 것이다.

이런 좋은 의도로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고, 최대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하고 실행/준비하고 난 후에 모자른 자금 사정을 나에게 애기하면 내 능력 안에서 매꿔 주기로 약속을 했다. 이렇게 파생 되는 효과는 담당자들의 사기 증진 및 책임감 상승이며 그로 인해 행사의 진행이 원만 해지고 수련회의 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동시에 다른 학부형들 앞에 모범이 되며 그들의 동참 해야 되는 것이 좋겠다는 동기 부여도 제공 된다. 이런 올바른 명분을 가진 나에게 늦은밤 한 사역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런 경제적 후원은 나이 많이 드신 교회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하시는 건데 아직 젊으신 집사님이 하시는 것은 좀 보기 이상 할수도 있고, 또 이렇게 자주 후원을 하면 와이프가 좋아 하지 않을수도 있다’라고….

내가 대학교에 초청 강사로 초대를 받을때 항상 학생들에게 마지막에 강조하는 것이 있다 – ‘bring the balance to inequality and inequity’. 이 말의 의미를 아주 알아 듣기 쉽게 번역을 하면 ‘너 혼자 잘먹고 잘살려는 생각은 버려라’이다. 많이 벌고 배운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은 사회지도층이 더 낳은 미래를 위한 후학 교육 및 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 것이 당연함인데 , 다름 아닌 영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행사에 솔선수범하여 기쁘게 후원하겠다는 나의 깊은 뜻을 모르고 ‘나의가 어리다’ 그렇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다니…. 그리고 우리 가정의 경제적 총 책임자는 나이며, 내가 음주가무와 주색잡기나 도박에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고,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공식적인 행사에 기부하는 것을 보고 싫어 할 와이프가 절대로 아니며, 그런 후진 안목을 가진 여자와 결혼 할 졸장부가 아닌 나를 보고 ‘후원을 자주 하면 와이프가 좋아 하지 않을수도 있다’라는 전제의 바탕은 근거와 출처는 어디서 왔는지 잘모르겠다.

어떤 이들의 나의 순수한 동기안에 음흉한 계책이 있다는 왜곡된 해석을 사람들은 종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행사 때 내가 기부하는 목적은 나의 주가 가치 상승을 위함이라고….. 내가 진정 내 주가 가치 상승을 원한다면 5천달러를 시드니 시립 교향 악단에 기부를 하면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공연 관람을 온 많은 교양 있는 사회 지도층에 내 이름을 알리게 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콘서트 홀에 2,500석이 있고 일년에 150번의 공연이 있는데 그중 70%가 프로그램 노트의 기부자 명단을 본다면 일변에 내 이름이 262,500번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이고, 공연장에 들어 오는 사람들이 전광판에 소개 된 기부자 명단을 한번씩 보고 들어 온다면 내 이름은 375,000번 사람들에게 expose 될것이다. 또한 시드니 시립 교향 악단이 주최하는 자선 행사에 초대 되고 음악인들과 정치인들간의 교류로 인한 신분 상승과 사회적 인지도 상승의 효과를 얻게 된다.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내가 크고 멋있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작고 좁은 길을 택한 나의 진정한 의도가 제멋대로 해석 된것이 좀 황당 할뿐이다.

갑자기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이 생각 난다 – ‘내가 가지고 있으면 생필품 남이 가지고 있으면 사치품’. 그럼 이번 토픽에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내가 기부하면 순수한 헌납이고 남이 하면 돈지랄. 젊었을때 많이 벌지만 배풀지 않고 구두쇠 같이 살고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몰랐다가 나이 먹고 장로나 권사 됬다고 지갑을 흔쾌히 열어 과연 돈을 제대로 쓸수 있을것 같은가? 그래서 난 항상 내 자신에게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 ‘내 특기는 돈벌기 그리고 취미는 돈쓰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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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교적 쉽게 시작 할수 있는 요식업


오래전에 이곳저곳 레스토랑 리뷰를 무명으로 쓴적이 몇번이 있어서 그런지 난 레스토랑 운영자들과 쉐프들가 잘 어울리는 편이다. 항상 레스토랑을 처음 방문하고 나면 요리에 대한 느낌과 맛, 인테리어와 조명 및 시설 그리고 서비스에 대해 내 생각을 적어서 보내곤 한다. 대부분 이런 피드백을 보내 주면 다음엔 따로 특별 이벤트라던지 신메뉴 launching 전 시식회에 초대를 하고는 한다.

내일까지 휴가여서 이것저것 노트를 정리 하던 중에 예전에 요식업에 관한 노트를 몇가지 찾았다. 연필로 써서 내용을 확실히 읽기는 힘들었지만 이 노트의 중요한 substance는 바로 레스토랑 매출에 대한 공식을 만드는 것이였다. 나름데로 재미가 있어서 블로그에 풀어서 적어 본다.

가장 간단한 공식은 이렇다 – total number of tables x average spending per table

그런데 위의 공식의 약점은 레스토랑의 operating hour를 무시한 공식이다. 이것을 좀더 발전 시킨 공식은 이렇다 – total number of tables x average spending per table x total hours of operations for lunch and dinner.

여기서 공식을 좀더 정확하게 만들려면 average spending per table을 좀더 세분화 할수가 있다. 한 테이블에서 매출을 올리는 4가지 element가 있다.
1) 일반 요리
2) 음료수 (non-alcoholic beverage)
3) 음료수 (alcoholic beverage)
4) 팁 (gratuity)

For 1), 평균인의 위의 크기와 장의 길이는 한정이 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소화 가능한 음식의 양은 한정이 되어 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음식의 양을 줄이고 질을 향상 시키며 단가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al carte 메뉴의 단가가 높으면 부담이 될수 있으니 코스 요리로 변형 하면 standardization과 mass production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quality 균일화가 가능해진다.
For 2), 만약 똑 같양이 액체라면 음료수는 당이 포함 되어 있기 때문에 위해서 흡수할수 있는 한계가 있다. 위와 장에서 과당이 흡수 되면 췌장에서 과도한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게 뇌에서 더 이상 당을 섭취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저당저염의 목테일을 개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알코올이 없는 대신 비주얼에 신경을 각별히 쓰는 것이 좋다.
For 3), 물장사가 돈이 가장 많이 남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적당한 양의 알콜을 섭취하면 소화 촉진과 식욕증진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부 정신 나간 사회지도층들은 비싼 명품 와인을 시키면서 자신이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For 4), 팁의 액수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평가 됨과 동시에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의 쫀쫀함(?)을 측정 할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테이블에 2명의 남자 손님과 2명의 여자 손님이 있다고 가능하자. 만약 이들은 30대 중반의 직장인들이고 데이트 중이라면 적어도 평균 80달러 이상의 와인 두명을 주문 할 것이다. 3 코스로 요리를 주문 한다면 전체 요리의 평균 단가는 35달러, 메인 요리의 평균 단가는 45달러 그리고 후식은 25달러 정도 될것이다. 그외에 적어도 2병의 탄산수와 (단가 8달러) 후식후에 즐길 차나 커피도 (단가 6달러)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이 테이블에서 얻어 지는 매출은 620달러 정도이고, 이 레스토랑에 20개의 테이블이 있고 평균 식사 시간이 2시간 그리고 영엉시간이 6시부터 10시라면 이 레스토랑의 총 저녁 매출은 2만 5천달러 정도로 예상이 된다.

결론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a) increase the spending per table by having patrons to consume more alcohol;
b) increase the number of tables by utilizing the floor space
c) increase the operating hours

만약 a)를 선택 한다면 extensive한 와인 리스트와 소믈리에 그리고 와인과 어울리는 창조적이고 계절에 맞는 참신한 요리가 필요하다.
만약 b)를 선택 한다면 레스토랑의 면적을 넓히던지 아니면 테이블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테이블의 숫자가 늘면 테이블과의 사이가 좁아 지게 되며 소음 수치가 올라가고 비좁은 면적은 고급스러움을 떨어 뜨리는 요소로 작용 될수도 있다.
만약 c)를 선택 하면 시작 시간을 당기는 것이 마감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낳다. 주방의 요리사들이 피곤하면 훌륭한 요리가 나올수 없기 때문이고 hall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체력과 사기가 저하 되기 때문이다.

오늘 두번씩이나 먹는 애기를 해서 배가 많이 고파진다. 빨리 저녁 먹고 쉬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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