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한테 그런 애길 않하세요?

누가 나한테 그랬다. 왜 자기한테는 이런 저런 애기를 않해주고 내 ‘기린아’에게만 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편의 위치와 상태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이 결정 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하루살이 같이 바둥바둥 사는 사람에게 Gulfstream G250 (http://www.gulfstream.com/products/g250/)을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중에 하나라고 애기하면 공감대형성은 물론 불가능하고 ‘미친놈’의 허풍으로 들리것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과 애기 할때 이런 애길 자주 듣는다. 그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실현불가능한 꿈을 애기한다. 아쉽게도 10명중에서 9명은 이렇게 애기한다. ‘그냥 하나님께서 주신것 가지고 감사하면서 분수에 맞게 욕심없게 살겁니다’ 혹은 ‘오르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는데요"라고… 이 애기를 듣는 순간 난 그사람의 이름과 존재성을 잊어버린다.
 
사람이라면 특히 남자라면 뭔가 높은 것을 목표로 삶고 가질려고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정석으로 배웠다. 어찌하여 분수에 맞게 감사하면서 살자라는 관용적인 어구를 사용해서 자신을 낮게 만들고 자신을 왜 더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렇게 비굴하게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것인가?
 
‘왜 저한테 그런 애길 않하세요?’라고 물어 본 자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난 미래를 같이 하고 싶은 자에게 나의 꿈을 애기하고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며 공유한다. 높게 달린 사과를 보면서 막연히 ‘떨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맹목적으로 기대하는 자나 ‘따먹지 못할것 쳐다보지도 말자’라고 하면서 등을 돌리는 자와는 천하지대사를 논할수 없다.
 
비록 지금은 힘이 없고 미약 하여 어떻게 할지 잘 몰라 이렇게 저렇게 미숙하게 시도하는 자여도 꿈과 목표가 분명한 자가 나와 시작을 약속한다면 난 그와 같이 끝가지 가서 중원평정 (중국의 중원땅을 애기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큰 목표들을 애기함)의 꿈을 이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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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회화 100일만에 완전정복… (누가 그래?)

유유상종이라 했다. 내 자신이 뛰어 나지 않아 내 주의엔 뛰어난 인물들이 별로 없다. (기린아는 물론 제외) 그래서 그런지 호주에서 공부하고 돌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모모 학원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학원 선생이 될까? 난 우스게 소리로 이렇게 애기한다 – ‘니가 영어학원 선생이면 난 영문학과 교수다’라고.
 
주말에 한국 서점에가서 이것 저것 책을 찾아본다. 그중 (제목은 확실히 기억 않나는데) 영어회화를 몇개월만에 정복한다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책들가지고 공부하면 영어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다. 호주에서 오래 산 사람치고 혹은 여기서 태어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언어구사력 정말 수준이하이다. 왜 그럴까?
 
유창하게 물흐르듯이, 그리고 한국 사람의 특유한 억양 없이 그리고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서 문법에 맞는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영어를 완벽하게 할수 있다고 할까? 답은 ‘아니요’다.
 
언어는 상대편에게 내 뜻을 전달하고 상대편의 뜻을 이해하는데 사용된다. 대화의 묘한 재미는 상대편이 말하기 전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예상 할수 있고 대화의 전계에 따라 그 사람의 숨은 뜻과 인격, 지식 수준, 인생관, 세계관을 알수 있으면, 더 나아가 그의 감정을 마음데로 조정할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한글로 ‘오늘 기분 어때요? 일하는데 문제 있나요?’라는 문장을 영어로 번연한다면…
 
A: How are you? Do you think you can work today?
B: Please clearly state your mental and physical condition therefore we can determine whether you could perform your desginated duties or not.
 
전달하려는 내용은 같다. 하지만 뉴앙스가 틀리다. 대화할때의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게 된다. 듣는 쪽의 기분도 다를 것이다. 바로 언어구사력은 개성이다. 자기만의 멋을 독창적으로 창조하고 그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경영인들의 언변술을 한번씩 보면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과 힘이 들어 있다.
 
그럼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할까? 이 방법은 나중에 기린아에게 공개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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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경영하라…

오늘 저녁부터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제목은 ‘예수처럼 경영하라’이다. (영문으로는 The Management Methods of Jesus)
 
새로운 책을 사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로 목차 – 4개의 큰 chapter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소제목을 속독한 후에 난 이런 생각을 했다 – 굉장히 기본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생각….
 
내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베스트 셀러라고 나오는 책들과 이것에 대한 평가서를 읽어보면 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들에게서 가질수 있는 감동과 새로움이 없다.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가끔씩 책장에서 꺼내 즐겨 읽던 부분 (형광팬으로 표시해 둔다)을 읽으면 예전에 받았던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밀려 온다. 아마도 내 인생을 전화점을 제공한 책들이니 감회가 새로울수 밖에 없다.
 
반면 요즘에 읽는 책들은 어떤가?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싶지 않다. 단순히 대답하면 ‘다 아는 내용이다’. 책을 완독하고 난 후에 작가나 번역가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간혹 짧은 이메일이나 소감문을 보내고 했다. 이상하게도 난 더이상 이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 방법이나 지식전달의 목표가 아닌 의도적으로 흥미위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비판이 먼저 앞선다.
 
내가 너무 머리가 커진 것일까? 지식이 풍부해져서가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한눈에 파악이 되어 흥미를 잃어 버려서 그런가? 난 개인적으로 어려운 책이 좋다. 한장을 읽으면 다음장으로 쉽게 넘겨지는 책보다는, 지금 읽고 있는 장을 몇번이고 반복하여 모든 것을 흡수 한후 다음장으로 어렵게 넘어가는 책이 좋다, 그리고 이런 책을 쓰고 싶다. 누구에나 쉽게 읽혀 지고 잊혀지는 베스트 셀러가 아닌 특별한 사람들 만이 읽고 이해 할수 있는 그런 책을 저술 할것이다 – 39살 전에… (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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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하는 자의 즐거움이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적어도 5가지를 깨우치니까…

난 선생의 위치에서 누구를 가르쳐 본적이 없다 (5주간 영어 과외한것 빼고).
 
난 자습을 좋아한다. 스스로 책을 보고 배운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증 되지 않는 지식을 쉽게 추출하여 남의 지식을 도용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잡지식이나 상식이 아닌 것은 꼭 아카데믹 저널을 찾고 검증된 자료들을 찾고 흡수하며 완벽하게 습득하여 내 것으로 만는다.
 
자습을 좋아하는 방면, 난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어렵게 습득한 지식을 남과 공유하는 것이 아까워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일까? 이것은 중달의 뜻을 모르는 자들의 아주 가벼운 판단이다. 내가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 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전수할 만한 가치 있는 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인재양성에서 내가 믿는 것이 몇가지 있다.
 
1. 잡종개는 아무리 훈련 시켜도 독일 세퍼드 같이 될수 없고 진돗개 같이 될수 없다.
2. 특출난 인재는 떡잎부터 다르다.
3. 리더십 교육은 리더십 자질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지, 리더의 자질을 못가진 자를 리더가 되게 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다.
4. 제자는 스승보다 훌륭하게 되어야 한다. 스승을 초월하지 못한 제자를 양성하는 것은 스승의 능력 부족이다.
 
오늘 ‘기린아’에게서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다. 무엇을 받았는지 공개를 할수 없지만, 난 기린아에게 지식과 정보 전달을 할때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가지를 가르쳐 주면 절대 잊어 버리지 않는다 (효율성 최고)
2. 한가지를 가르쳐 주면 적어도 5가지 정도를 응용한다. (가끔씩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는다)
3. 가르쳐 준것은 잊어 버리지 않게 써먹어서 내 것으로 만든다. (응용력 최고)
4. 한번 마음 먹고 계획하는 일은 반드시 실행한다. (그런데 준비와 실행 기간 사이가 좀 오래 걸린다. 나랑 비교해서)
5. 그리고 실행하기로 한 일은 끝장을 본다. (나랑 비슷해서 정말 마음에 든다)
6. 가르침을 주는 자를 존경하고 예로써 대접할줄 안다. (이것이 ‘기란아’를 완벽하게 만든다)
 
내가 인재 발굴 및 양성을 위해서 몇명의 사람들을 만나 봤는데 위의 6가지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자를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 6번째 조건만을 아주 겨우 충족시킨다. 즉 열매과 결실 없는 쓸데 없는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난 변화 없는 자와는 3번 이상 만나지 않는 이유이다.
 
마음과 뜻이 합하고 명백한 대의명분을 가진 자와는 주야로 담소하며 술잔에 술이 마르지 않게 하며 천하지대사를 논하는 것의 나의 희락이다. 이런 기린아가 내 나이 30살 이전에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임이 분명하다. 충무로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옮길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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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않된다… 누가 그래?

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 학교’ 참석이 였다.
 
매년 있는 행사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아무도 나에게 출석하길 권유도 강요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그냥 소리없이 기회를 놓친것 같다. (아쉽게도 내 ‘기린아’는 나를 저버리고(?) 혼자 ‘아버지 학교’에 참석을 했다. 나도 한번 좋은 세미나를 말하지 않고 혼자 참여해서 동등하게 만들까?)
 
여러가지 책자를 정리하는 과정중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구절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것에 이어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구절도 덩달아 생각났다.
 
먼저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구절을 생각했다. 난 수많은 위인전과 현대 경영자들의 성공기를 읽어 보았다. 그중 훌륭하게 자식들을 키우고 양육하여 부모가 위룬 업적과 신화를 존속 시킬수 있게 한 자들은 결코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란 애기를 한적이 없다. 반면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진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원본초의 아들 원담, 원회, 원상이 아비됨의 반도 못됨을 보고 하늘의 뜻이라고 탓했다고 했던가?)
 
거기에 더 하나 보태서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왜 이렇게 애기 할까? 자식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과 의무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녀들의 주체성과 정체성, 그리고 자신이 존재 하는 목적과 대의명분을 확실히 심어주고, 이것을 이루기위한 모든 기회 제공과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이행치 못하는 부모들이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자주 사용한다. 내 귀엔 하나의 현명한 조언 보다는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고 용은 뱀의 새끼를 낳지 않는 법이다. 자식들이 범과 용 같은 아비를 볼때 그리고 뚜렸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만인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주야로 기도하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아비를 보면 어찌하여 그들이 어찌하여 부모 뜻에 합당치 않은 길을 걸을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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