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

누가 말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이렇게 애기한다 – 나보다 뛰어난 자를 뽑으면 내 위치가 위험해진다.
 
난 위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보다 뛰어난 자들을 보지 못했으니까. 교만방자한 말로 들리지 모르나 난 내 자신을 항상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뛰어 나지도 뒤떨어지지도 않는 그런 사람. 이것이 바로 나이다.
 
토요일 오후 부하 직원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대학원에서 사용했던 설문지인데 30개의 질문이 있으며 답은 간단히 예 / 아니요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문장이 간단한 편이고 양이 적어  A4사이즈 한장에 들어가는 내용이였다. 난 벌써 기존의 설문지에 답을 한 상태이고, 이 설문지를 메니저들에게 나누어 준후에 수거하는 것이다. 위의 사항을 정확하게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실수를 만들었다.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자)
 
1. 30가지 질문중에 2개를 똑같이 썼다. 즉 질문의 총갯수는 29개이다. A4 사이즈 종이 한장에 들어가는 간단한 내용이다. 어떻게 한 질문을 두번 입력할수 있은지…
2. 적어도 10개의 단어 철자법이 틀렸다. 입력한 후에 철자법 체크는 하지 않나? 요즈음 시중에 판매 되고 있는 문서작성기는 철자법 체크가 자동으로 되는데…
3. 내가 대학원에서 사용한 설문지이다. 대답은 간단히 예/아니요 단어 위에 동그라미를 하는데… 그런데.. 예 밖에 없다. 아니요는 어디 갔는지…
4. 난 분명히 이 설문지를 내부 메니저들에게 보낸다고 애기했다. 즉 이 일의 중요성을 설명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많이 했는데…
 
이 사람은 중국에서 호주로 유학을 와서 애들레이드 대학교를 졸었했다. 전공은 회계학이다. 졸업후에 영주권을 취득 했으며 싱가폴에서 온 남자 친구와 현재 동거중이다. 별문제 없는것 같지만 이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1. 발음이 너무 좋지 않다. 내가 친절히 교정을 해주면 금세 잊어 버리고 예전의 발음으로 돌아간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 역겹다.
2. 문법이 국민학생 수준이다. 단어 수준과 문장에서 사용 하는 설정법이 정말 어설프다. 상대편이 못알아들으면 문장의 형태와 단어를 바꾸어서 뜻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말을 계속 반복해서 말한다. 아주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3. 문법의 수준이 국민학생이니 글을 쓰는 수준도 국민학생이다. 논리정연하게 글을 쓰지 못한다. 읽으면 피곤하며 정말 곤욕이다.
 
난 정말 궁금하다. 애들레이드 대학교의 수준이. 아니 어떻게 이런 수준의 영어 실력으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고 논문을 쓰며 다른 학생들과 어떻게 생각과 정보를 교류할수 있었는지… 작업 지시를 할때 같은 내용을 두번이상 반복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다시 물어 보고 제 확인한다. 비생산적인 사이클이 끝없이 반복이된다. 자아개발을 위해선 가장 먼저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키라는 나의 권면에도 무감각하며 스스로의 위치에 만족하며 머물려고 한다.
 
정말 센스가 없는 여자이다. 센스가 없다라는 말은 좀 고상한 표현 같다. 눈치발이 없는 여자다. 한가지를 가르쳐 주어도 금세 잊어 버린다. 한가지를 지시하면 완벽하게 끝내는 적이 없다. 시킨것도 제대로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려는 자와는 상종하고 싶지가 않다.
 
가끔씩 후회한다. 내가 왜 이런 여자를 직원으로 고용을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마도 내가 어떤자를 선택하기 전에 내포된 그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후회가 막심하다.
 
이 여잔 어제 중국으로 3주간의 휴가를 가지기 위해서 떠났다. 더 이상 그녀의 평균 수준이하의 발음과 언어 구사력에 역겨워 할 필요가 없다. 자기 목소리는 자기 귀에 들린다. 내가 저수준의 영어를 하고 나의 거북한 발음이 내 귀에 들린다면 난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고, 아니 생각은 있어도 실행치 않는 자들의 삶의 목적은 무었일까? 그냥 대충 살자? 난 죽어도 영어를 완벽하게 못한다는 전재를 앞세워 그냥 포기할 것인가? 이런 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넌 왜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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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분담…..

Lean process중에 하나인 JIT (Just in time) concept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마도 쌓여가는 업무들에 대한 공포감에 의해 (일이 양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나의 분석과 판단의 따라서 회사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아졌다) 내가 스스로 나의 문제점을 찾아 분석하기로 했다.
 
다 식고 씁쓸한 둥글래 차를 한 모금 입에 넣은후 생각해 본다. 문제점은 한가지이다 – 바로 효과적인 업무 분담이다.
 
간혹 생각한다. 내가 지시한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무능함을 한탄 했고 시킨것만 하고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통찰령 제로인 자들을 저주했다. ‘난 사람이다 그리고 난 이것을 할수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그들도 내가 하는 이것을 할수 있다’ 나만의 고집스러운 삼단 논법입니다. 난 남들의 장점을 인간으로써 당연히 갖추어야 할 조건이니 칭찬을 받을 이유도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단점을 가진 그들을 보고 취약점들을 보안하고 자아 개발에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을 정말로 혐오 했다.
 
그런데 문제점을 바로 나에게 있었다. (예전에 깨달았지만 수긍하고 싶지 않는 점이다) 내게 지시 전달 방법중에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명령조’이다. 명령조로 작업 지시를 할때에 난 내가 원하는 정확한 목표를 설정해 주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정확한 시간을 준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추천하되 모든 의사 결정, 추진 방향 및 방법을 지시를 내린 자에게 위임하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있다. 내가 남에게 작업 지시를 할 경우 난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다. 이때에 발생하는 문제점은 바로 ‘내 책임’이라는 생각보다는 내 시다발이로써의 위치라는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의식이 없음은 물론 책임감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점이 또 하나있다. 난 그들보다 낳다. 일한 경력과 실력, 노하우, 연륜, 전문성 및 모든 면에서 그들을 앞선다. 주어진 작업을 끝내서 내가 결제를 받으러 오면 난 그들이 얼만큼 노력을 했으며 에러가 다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정 시킨후에 잘못된 점을 거침 없이 지적하며 방법론을 분석한후 그자리에서 feedback을 주저없이 준다. 이때에 발생하는 문제점은 바로 ‘아무리 노력해도 브랜든 만큼 하지 못한다’라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창조적으로 일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까 하여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고 창조적으로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직원들에게 말하는 명령조의 말을 녹음하고 들어 보았다. 상스러운 표현을 없다. 거칠고 남이 듣기에 거북한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언제나 흑과 백이 분명하며 증명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논리정연하며 정확하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입장을 보면 (나를 잘 모른다는 이유아래) 나의 능력과 위치를 인정하되 나의 표현 방법과 말투는 그들을 강하게 압도하며 존경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의 단점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내 본 의도와는 다르게 또 자화자찬의 길로 빠진것 같다. 하지만 난 내 문제점을 안다. 바로 나의 잘못된 경영 철학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자가 마키아벨리의 ‘왕자’라는 책을 읽은 자라면 나의 심정과 생각을 이해 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기린아는 나중에 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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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주일 – 해줄수 있는 것을 해주라고?

오늘 어린이 주일이였다. 목사님의 설교 노트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셔서 통역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세번째 하는 통역인데 점점 어려워 진다)
 
어린이 주일이니 당연히 어린이들이 노하게 하지 말라라는 설교였다. 다음주는 어버이 주일이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의 설교일것이고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예배 후에 부를 것이며 눈물을 흘리는 자가 많을 것이다. (매해를 이렇게 했다)
 
잠깐 생각이 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다. 애들이 잠자리 들때 애들이 아빠 모습을 보고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게 해주라고. 내가 아빠로써 해줄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해주라고.
 
과도한 업무와 MBA수업 때문에 난 아내와 자녀들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힘들다. 난 위의 내용이 지극히 정상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이것이 나의 독특한 일반인들이 할수 없는 생각이다 – 아빠는 나를 위해서 잠자리에 일찍들지 아니 하시고 우리를 위해 늦게까지 기도하시고, 자아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공부하시며, 회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은 분이시기에 주야로 번민하고 준비하신다라고.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내가 독특한 탓에 나는 나와 같이 잠드는 아빠를 보면 이렇게 생각이 될것 같다 – 잠이 많은 자는 게으르다고 했으며, 한가정의 평화 번영은 부모의 간절한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으며, 사회에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회사에서 중임을 맞지 않으니 잠이 길어짐이 당연하다고.
 
내 자식들이 이렇게 분석하고 판단할 나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든다. 하지만 그들의 나의 피를 1/2 받았다면 늦어도 국민학교 4학년 전에는 깨우칠것이다. 좋은 부모는 항상 자신 곁에 있어주고 돌보아 주면서 동시에 자아개발과 자아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고 흡수하며 독립성과 자존감을 키워는 주는 자라는 것을…. 난  단순히 ‘좋은’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난 ‘훌륭하고 존경 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 평가는 내 자식들이 얼마나 빨리 자기 힘으로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고 사회에 똑바로 설때에 평가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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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남편로써 가장 완벽한 모델은….

난 집에서 처제랑 같이 산다. 그래서 집에 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연줄연줄 늘어 놓으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남에 대한 험담이 아닌 발생한 사건들을 시간적으로 전개할 뿐이다)
 
그중 가장 많이 듣는 내용중에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는 가족들을 데리고 주말에 대추를 따라 간다고 한다.
2. 누구는 1달에 한번씩 DFS가서 명품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3. 누구는 딸과 아내가 한국에 가서 하루 종일 사진을 보면서 그립다고 노래를 하면 업무에 집중치 못한다고 한다.
 
첫번째 케이스를 보면 남자가 정말 가정적이고 자상하며 자녀들의 산교육을 위한 세심한 준비와 배려임이 느껴진다.
두번째 케이스를 보면 남자가 아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 물질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자기가 번돈 자기 마음데로 쓰는데 내가 상관 할바가 아니다.
세번째 케이스를 보면 남자의 넘치는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보여주고 있다. 꼭 드라마를 보는것 같다.
 
난 여기서 말하는 ‘누구’를 직접 만나본적은 없지만 제 3자를 통해서 애기를 대충 들었다. 만나서 마음문을 열고 대화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니 내 나름데로 주언진 정보를 가지고 그들의 가치 평가를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그냥 넘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위의 나온 3명의 남자 같지 않다는 것이다. 난 내 자식들을 위해 대추를 따라 간적도 없고 갈 생각도 않해봤다. 왜냐하면 아직 애들이 대추를 따러 갈 나이가 아니니까.
 
난 진 빚이 많아 매달 평품을 사줄 능력이 않된다. 내가 알기로 여자가 명품 좋아하면 집안을 말아먹는 애기를 들었다. 진정한 명품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소장했던 시계) 들은 DFS에서 구입 할수 없다고 들었다. (이것은 많은 명품을 소유한 자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난 중산층이 다 쉽게 소유할수 있는, 개나 소나 가질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물건을 명품이라 칭하지 않는다. 명품은 희소성에 의한 가치와 가격이 결정된다. 소테를 지방의 귀부 와인 샤토 디켐 처럼.
 
난 근무 시간엔 일에 집중한다. 하루에 한통 (개인전화로) 집에 전화해서 가족의 안부를 묻고 퇴근전에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 내 책상엔 가족의 사진도 없고 내 컴퓨터 배경 화면은 가족 사진이 아니다. 내 지갑엔 가족 사진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까. 난 누구처럼 근무시간에 사진을 보면서 아니면 끌어 앉으면서 가족에 대한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다. 왜냐하면 난 그런 감상적인 모습을 보여줄 위치도 아니며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결론은 훌륭한 남편들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애들도 더 성장을 했고 인생 경험이 나보다 많을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점은… 근무시간에 이런 사적인 대화할 시간이 있는지. 아니면 이런 가족사를 상세하게 드러내는 그들의 본의는 무었인지. 직장이라는 곳에서 일에 집중하고 맏은바 책임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완수해야하는 직장이라는 곳에서 가족 사진을 껴앉고 눈앞에 애들이 어른거려 업무를 볼수 없다고 하는 상사는 과연 어떤면에서 모범이 될까? 또 매 달마다 명품 쇼핑을 가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상사는 과연 머리속에 무었이 박혀 있는지 궁금하다. 부모가 사준 집에서 편하게 놀고 먹고 사니 이해 주려고 노력해 보겠다.  혹은 나같은 남편을 만나야 여자의 팔자가 핀다 라는 것을 결혼 하지 않는 미혼녀들 앞에서 과시 하고 싶은가? 그리고 대추를따러 간다면서 자상함과 자녀들을 향한 열띤 교육열을 가진 상사는 회사에서 XX같은 놈이라고 평가가 되는데… 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안에서는 새지 않는가 보다. (난 이사람을 좀 안다)
 
결과적으론 내가 이들을 비판하는 꼴이 됬다. 아마도 내가 그들같이 하질 못하기 때문에, 넘치는 자격 지심 때문일까?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행위를 드러냄은 내가 남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애기를 미혼녀들에게 하는 의도는 무었일까? 회사업무가 많지 않고 너무 한가해서 사적인 대화가 많이 오고 간다면 이것은 회사나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아 그리고 왜 유부남이고 더 큰 자식들이 있는 상관들 앞에선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미혼녀들의 반응은 ‘우와 과장님 너무 멋있다. 사모님 너무 행복하시겠어요’이겠지만 유부남 상사에게 이런 애기하면 ‘한가하구만. 당연히 하는 일이 뭐가 잘한다고 지랄이야? 일이나 하지? ‘라는 냉담한 반응이 나올테니까.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32살의 남편과 가장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애들과 아내에게 존경 받고 사랑 받으며 그들을 섬기고 희생하며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자이다. 너무 추상적인가? 그럼 이렇게 애기하자. 위의 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방면에 노력하는 남자, 그리고 그 과정중에 자신의 행위를 들어내기 않고 과시하지 않는자,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주의에 있는 부하 직원 특히 미혼녀들에게 받는자가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에게 평가 받는자 그리고 받은 평가가 후하더라고 자만치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자, 받은 평가가 후하지 않더라고 실망치 않고 가족의 행복함을 위해 주야로 번민하고 전진하는 남자. 바로 이가 32살의 최고 남편 모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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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때문에 책을 멀리하게 된다…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월말 결산과 다른 일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분주하여 느긎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분석하고 글로 남길 기회가 적었다. 아니 이것은 사치 스럽고 자기 합리화적 변명이며, 사실은 나의 게으름에 의한 결과 일 뿐이다.
 
2009년 4월 3일부터 정식으로 재무관리 이사로 임명을 받고 이사진에 들어간후에 아주 좋지 않는 직업병이 하나 생겼다 –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습관이다.
 
예전엔 과정을 결과 만큼 중요시 했다. 과정의 진행 여부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관심, 진행 과정중에 발견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분석한후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했고 대응책들에 따란 결과도 추측했다. 일을 할때 가장 즐거운 때는 내가 계획하고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정확히 나올때이다. 내가 세운 시나리오대로 일이 착착 진행 될때는 꼭 방송국의 PD가 된 기분이다.
 
물론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쩔땐 계획 했던데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 되지 않을때도 있다. 이럴땐 주저하지 않고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한다. 후퇴를 할때 무작정 앞만 보고 적에게 등을 보인체 줄랑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촉나라의 첫 북벌에서 조자룡이 최후방에서 스스로 군대를 지휘해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촉군을 성도로 후퇴 시킨적이있다. 일을 하다보면 나의 실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의 과실로 인한 손해를 내가 스스로 앞장서 무마시키고 의기소침된 회사 직원들을 격려한다. 이럴때 그들은 충성을 맹세하고 나의 능력을 높이 사며 존경과 신뢰가 더욱 쌓이는 것이다. (촉나라의 첫 북벌의 패배 요인은 가정을 지킨 마속의 책임이였다. 성도로 돌아온 조자룡은 마속의 과실에 대해 한마디 책망도 하지 않았다)
 
애기가 또 옆으로 새버렸다. 이제 회사의 중책을 맏으니 ‘재상은 세사에 친숙치 않다’라는 말이 세삼스럽게 느껴진다. 예전엔 사소한 것도 신경쓰고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 분석하고 습득하며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 과정 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과정을 분석한다. 아니 분석이라는 단어보다는 비판이라는 단어가 더 합당할 것이다. 예전엔 모든 프로젝트에 함께 동참하며 과정을 알고 서로를 알고 부여 받은 책임과 직원들을 알아서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 보다는 긍정적인 권면과 방법 제시로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이제는 더 아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생겼다. 예전에는 프로젝트 계획안의 첫 페이지 부터 끝페이지 까지 보았지만 이제는 계획안은 그냥 대충 읽고 간략한 설명회를 가진 후 진행 과정을 정기적으로 보고 받고 최종적인 결과를 숫자로 평가를 한다. 중요하고 급한 결제건이 많다 보니 전체적인것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간단히 요약된 내용을 빨리 습득한다. 이게 문제가 되나?
 
문제가 당영히 된다. 예전엔 두꺼운 책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틀리다. 간단히 요약된 책들, 얇은 책들이 좋다. 지금 내 책상위에는 ‘예수처럼 경영하라’, ‘리더가 알아야 랄 7가지 키워드’라는 두권의 책이 있다. 책의 두깨는 2cm도 않된다. 집중해서 속독법으로 읽으면 1시간이면 읽을수 있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이 읽으니 지식을 방대해 지나 감수성은 줄어든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중에 깊은 감동을 받은 책들은 7번씩 읽은 적도 있다. (이문열 교수님께서 쓰신 10권의 삼국지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이제는 한번 본 책은 다시 찾지 않는다. 이제는 읽는다는 동사를 쓰기 보다는 그냥 ‘본다’라는 동사가 더 적합한것 같다. 나의 또 다른 직업병이 생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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