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줄을 끊는 법은…..

얼마전 애들이 TV에서 동물 서커스 장면을 본 기억이 났다. 덩치는 산만한 코끼리가 조련사의 말을 들으면서 같은 재주와 재롱(?)을 부리는데 신기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나서 두번째로 생각난 것이 바로 한달전에 김변이랑 만나서 애기한 짧은 대화 내용이다. 바로 ‘코끼리 다리에 묶여 있는 줄’에 관한 내용이다.

코끼리 조련은 어렸을때부터 시작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곧 잡아온 코끼리는 거칠고 이들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밧줄로 다리를 묶는 것이다. 이 줄을 처음엔 끊어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이 줄은 코끼리의 다리만 묶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묶어 버린다. 덩치는 점점 커지고 몸무게는 들어가고 힘은 강해지는 코끼리는 발목에 묶인 줄을 쇠사슬로 바꿈이 논리적인데 성인 코끼리 사육장을 보면 덩치에 비해 실 같은 밧줄로 묶여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끊을수 있는 줄인데 어찌하여 그대로 두고 끊어 버리려고 시도 조차하지 않는가…. 바로 이 줄은 육체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는 밧줄에서 마음까지 묶어 버린 ‘습관의 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세명의 자녀와 함께 가끔 쇼핑 센터에 가서 시장을 보는 경우가 있다. 둘째 운이는 이제 5살이다. 이제 제법 장난감을 만지길 좋아한다. 가끔식 백화점의 장난감 섹션에 가면 운이도 다른 애들과 같이 넋을 잃고 만다. 이제 떠날 시간이 오면 대부분 이런 상황이 전개 된다 – 애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때를 쓰기 시작하고 심한 경우 남자 아이들은 땅바닦에 자빠져(?) 자지러 지기도 하며 여자에들은 마치 간질 환자 같이 거품을 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운이는 절대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예전에 ‘투정과 보상’이라는 습관을 교정 했기 때문이다 – 감정에 의한 충동 구매에서 목적의식이 분명한 구매 활동 습관을 가르쳤기 때문. 바로 이렇게 습관의 줄을 끊는 방법은 바로 정해진 rountine에 break를 걸고 방향 재설정과 방법론 개선 및 반복 학습/연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내 다리를 묶은 습관의 줄이 있다 – ’18살이라는 나이에 늦게 호주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나는 현지 호주인 만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주류 사회 진출은 힘들 것이며 진출 한다고 해도 한계가 금방 다다를 것이다’라는 전제.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깨닮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 ‘한국에서 태어 났고 다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며 언어 구사력은 각 개인의 어휘력과 지적 수준, 교육 환경 및 전분 분야에 따라서 결정 되는 것이니, 호주 현지인이라고 해서 영어를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곰곰히 생각 해본다. 내가 언제 이 습관의 줄을 끊었는지 – 돌아가신 사장님 아들의 결혼식 하객 350명중에 동양인은 나 한명이였고 나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영국의 Yorkshire 지방 출신이 아닌지 물어 봤고; 이메일와 전화로 몇번 연락을 주고 받다가 처음 미팅에서 만나 나를 보고 놀람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표정; 대규모 거래처와의 계약서를 변호사 수준 만큼 완벽한 검토와 수정 가능한 능력이 증명 됬을때 ‘나는 동양인 이민자여서 출세가 불가능해’라는 습관의 줄이 끊어졌다.

하지만 오늘도 난 일부러 다른 습관의 줄로 내 다리를 스스로 동여맨다 – ‘이정도면 출세 했고 성공 했으니 이젠 여유를 부리고 만족해도 무관하다’라는 습관의 줄로. 그래야 난 또 이것을 break하기 위해서 오늘도 변한 없이 끊었는 자아성장을 위해 노력 할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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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소향의 첫 출판작 – 크리스털 캐슬 1 – |벤치 그리고 블록|

내가 소향을 언제 처음 시드니에 봤던가… 아마도 2011년 9월 봄이였던것 같다. 시드니 주안 교회에서 초청을 했고 도착 첫날 저녁 대접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 출근길에 소향에게 전화를 했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 봤을때 그녀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아주 밝고 명쾌한 목소리로 ‘랍.스.터.’라고 대답 했다. 내가 아무리 자주 가는 정통 일식집이지만 당일 타즈마니아에서 신선한 랍스터를 잡아 시드니로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당황하는 것을 눈치 챈 소향은 친절하게도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 했지만 난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거나 잘 먹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식성이 대부분 까다롭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메뉴 선정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날 저녁 소향과 소향 시부모님과 많은 애기를 나누었고 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소향과 저녁을 먹으면서 여러가지를 애기했다 – 여태까지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 내가 소향은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고 불리는 (나는 종종 소향에게 셀린 디온의 머리 끄댕이를 화악 잡아 땡길 천상의 목소리와 가창력을 가진 자라고 애기한다) 뛰어난 CCM 가수라고 알았는데…. 순간 매트릭스 영화에 나온 에이전트 스미스의 말이 생각 났다 – ‘Appearance can be deceiving’. 단정하게 올린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동그란 눈과 자신감 넘치는 밝은 목소리와 뛰어난 유머감각은 순간 ‘끼’있는 연애인(?)이라는 선입견을 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보다 한살 어린 그녀는 나보다 더 크고 넓고 깊은 세계관과 안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순간 소향이 삼국시대때 남자로 태어 났으면 제갈량과 사마의가 빛을 보지 못했을것이고, 소향이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태어나 나폴레옹을 보좌 했다면 아마도 유럽에서 러시아까지 다 프랑스 제국이 됬을 것이고, 소향이 후기 낭만 시대에 태어 났다면 라흐마니노프가 소향을 위해 많은 가곡을 썻을 것이라고….. 그날 저녁 식사를 기분 좋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 ‘소향은 나중에 영화를 만들던지 책을 쓸 것이며 단순히 가수로써 인생을 마칠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했는데….. 얼마전에 안부 인사를 묻는데 ‘책이 곧 출판 된다’라는 말을 듣고 마냥 뿌듯 했다 – ‘역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라는 나의 선경지명에 자화자찬을 하면서 🙂

9월 중순에 회사로 우편물이 배달 됬다. 한국에서 온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편물을 여는데 아니다 다른까 소향이 보내준 책이다. 참고로 소향은 글씨를 참 예쁘게 잘쓴다. 친절하게도 ‘Brendon 집사님! 언제나 평안하세여, 화이팅! 플로스 뉴에오 에이테 (빛으로 늘 평화하라)’ 메세지를 적었고 큼지막하게 사인을 책 안표지에 했다. 빨리 읽고 감상문 (혹은 독후감)을 보내지 않으면 왠지 혼날것 같은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난 날짜를 잡아 책을 읽기 시작 했다.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난 소향의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머리속에 생각난 단어가 바로 ‘text painting’이다. 말 그대로 바로 문장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생생하게 visualize (시각화)가 된다. 그리고 소향의 입체적 표현력은 꼭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의 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렬한 감성 자극이 아닌 암시와 분위기에 촛점을 맞추고 생동감 있는 표현과 함께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다음 책장을 넘기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한다. 그럼과 동시에 읽었던 책의 뒷장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한번 읽으면 처음엔 파스텔톤의 visualization에서 좀더 뚜렸한 라인과 색상이 그려지며 투명성과 선명함이 더욱더 강해진다. 그리고 매번 읽을때마다 머리속에 형성 되는 그림이 틀려진다. 꼭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을때마다 매번 신선한 느낌이 드는것처럼….

마지막 12번째 chapter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소향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미 있게 한장 한장을 읽고 있는데 클라이막스 올라가는 바로 그 직전에 첫권을 이렇게 야박하게 끝내다니….. 하긴 원래 아쉬움이 가득한 이별은 다음의 만남을 고대하게 한다고 했으니,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듯이 크리스털 캐슬 2권을 간절히 기다려 보는 걸로~ 🙂
so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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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 도약을 위한 발판

지난 화요일 오후부터 기분이 상당히 우울 했다. 원래 지나치게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여서 기대하지 않는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은근히 나도 모르게 비극적인 소설을 머리속에 하염 없이 쓰기 시작하면서 집중력 감퇴과 우울함과 만성피로, 자기연민 그리고 의욕부진에 시달린다. 그러나 어제 오후부터 다시 한번 내 자신을 re-calibration을 맞추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단기목표를 설정 했다. (약간의 비겁한 선택인지는 모르나 고민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전환 시켜 다른 일에 집중 시킴으로 단기간에 고민을 잊게 하는 방법이다.)

1) 가수 소향이 출판한 첫번째 작품 ‘크리스탈 캐슬 1- 벤치 그리고 블록’을 읽고 감상후기를 꼭 써서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 멕쿼리 대학교의 왕교수님이 속해 있는 faculty를 promote하는 광고용 비디오에 제작을 위해 대학교 스튜디오에서 30분 정도 분량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3) 왕교수님께서 같이 학술지에 실릴 research를 같이 해서 학술지에 공동저자로 올리자는 제안을 하셨다.
4) 10월 27일 교회 행사를 위해 피아노 독주곡을 연습해야 된다. 암보로 연주 해달라 요청도 받았다. 오늘 선곡과 악보 준비를 마쳤다.
5) 11월 30일 홍콩에 있는 AGSM의 MBA 대학원생들 앞에서 있을 강의 내용을 다시 제점검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된다
6) 심대표의 사업을 좀더 구색에 맞추어 도와주기 위해선 Diploma of Finance and Mortgage Broking Management를 크리스마스 전까지 마쳐야 된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해야 된다는 선택을 한후에 이것에 집중해서 단기간의 최고의 결과를 얻는 것이 내가 지향 했던 내 삶의 방식이다. 아마도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2013년도의 마지막 하반기에 내 자신을 이렇게 푸쉬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 A라는 생각을 하기 싫으니 대신 B를 생각해서 A에 대해 생각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뭐라고 할까… 목에 후끈거리는 파스와 같다고 할까? 목에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파스의 소염제와 찜질 작용에 의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말하는 일종의 ‘양동작전’ 같다고 할까나.

‘선택과 집중 – 도약을 위한 발판’을 보고 MBA에서는 strategic inflection point라는 단어를 쓴다. 이런 거창한 말보다는 난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도약을 위한 몸부림 혹은 발악(?)’이라고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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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 갈수록 힘든 이유는 바로…..

산소 부족 때문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숨이 콱콱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적이 좋지 않을 때 임원회의에 들어가면 그 회의실의 공기는 싸늘하고 차갑다. 윗사람들이 나를 바라 보는 눈빛이 꼭 며칠 동안 굶주린 하이에나 같고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두렵다. 이렇게 숨죽이고 눈치 보면서 임원회의 무사히 마치고 나오면 이제 실적을 올리지 못한 아래 직원들에게 화살이 날아가기 십상인데… 또 요즘엔 부하 직원들의 피드백에 의해서 승진여부가 결정 되는 시스템이 생겨서 직원들에게 예전 같이 화풀이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된다.

예전 MBA를 공부 했을때 360 degree feedback이란 것을 인사관리 과목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난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 주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performance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기존의 경영진들은 이런 피드백 시스템을 기피하는편이다. 왜냐하면 ‘인기 관리’를 해야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기존의 performance review는 대부분 직송상관이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내가 잘 보이고 인기 관리 해야 될 대상은 내 직속상관이며 그의 측근들에게 점수를 추가로 따면 승진여부가 쉽게 결정 된다. 하지만 360도 피드백이 조직안에 들어 오면서 수직 관계에 있는 직속상관만이 아닌 내 직장 동료와 부하 직원들에 대한 ‘인기 관리’도 병행이 되야 된다. 내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입사동기이거나 장기간 같이 옆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산전수전공중전을 같이 겪었고 또 내 약점과 장점을 잘 파악한 사람들이다. 또 내 부하 직원들중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능력을 중심으로 ‘편애도’를 설정하는 나에겐 잘하면 이쁨 받고 못하면 미움 받는 그룹이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다. 다시 말해 내 주의엔 적군과 아군이 공존이 명백해지며 이들에게는 support와 질타를 공개적으로 동시에 할수 있는 힘이 부여가 된다. 표면상으로 보면 굉장히 민주적이고 발언의 자유권과 인권을 존중 해주는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360도 피드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조직을 보면 이런 폐단이 내부에 존재한다 – 바로 ‘인기관리’를 위한 지나친 euphemism과 utilitarianism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이다. 지나친 완곡어법은 정확한 정보나 상황 설명을 dilute하는 위험을 초래하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지나친 공리주의사상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때 indecisive하게 만든다 – 자신이 내린 결정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negative feedback이 두려워서. (그리고 진실성이 결여 된 euphemism은 가식 (pretense)의 열매를 맺게 하려 서로를 신뢰 할수 없게 만든다)

‘높은 자리에 군림한다’라는 말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 바로 가정 전투에서 산위에 진을 친 어리석은 마속. ‘높은 곳에 진을 치고 적을 공략한다’라는 전략을 세운 그가 사마의의 군대는 산을 포위하고 수로를 끝어 높은 산위에 고립을 시켰고 탈진된 촉군을 명장 장합이 대패 시킴으로 1차 북벌은 물거품이 된다. 9년 동안 높은 산위에서 군림 했다가 정권 교체로 인하 산 중턱까지 내려 왔다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주의를 둘러 보니 불만을 품은 자들이 벌써 산을 포위하고 수로를 차단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내 눈에는 보였다. 이제 나도 하산 할 때가 되었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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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길에 생긴 일….

M2를 타고 노스 시드니까지 오는 출근 길은 가끔씩 전쟁터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고속도로는 많은 자동차들 때문에 주차장으로 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운전석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어김없이 평소 때와 내가 사용하는 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는데 Mount Street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오른쪽편에 무단 횡당을 하려고 준비하는 두명의 정신나간 여자를 보았다. 난 가속중이였고 그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뒷걸음질을 쳤으며 그것을 확인한 나는 속도를 올려서 신호들이 바뀌기 전에 Mount St에서 Walker St로 좌회전을 준비하려고 왼쪽선에 진입하는 순간 그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두손을 공중에 올리고 나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을 듣고 있어서 그들이 내게 말하는 말 (probably 욕설?)은 듣지 못했다. 그냥 그들의 행동의 원인과 이유가 궁금해서 난 자동차를 갑자기 세우고 차에 내려서 그들에게 걸어 갔다. 순간 그들은 섬칫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난 이렇게 질문 했다. “I assume that the gesture that I just observed appears be to an expression of your unhappiness towards me. Have I understood your intention correctly Ma’am?” 그랬더니 무단 횡단을 할 만큼 정신이 나간 여자중에 한명이 정신을 차리곤 “You were coming too fast. You should drive more carefully”. 나는 쓴 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대답 했다 “Perhaps you should consider the risk involved in jaywalking before judging one’s driving skill. Last time I looked where you attempted to cross, there was not any legitimate pedestrian cross, was there not? You could have rewarded yourself with $66 spot fine just then”. 황당한 표정을 지은 그녀들을 두고 난 “I believe that we are done here. Have a good day ladies”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으려지 않고 오히려 남의 과실로 떠넘기려는 이상한 세상. 이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내 멋대로’ 사상인가? 그냥 커피나 한잔 마시고 일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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