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색깔 지키기

박시후와 문근영이 주연이였던 ‘청담동 앨리스’를 잠깐 보게 되었다. 한세경의 친구 서윤주가 청담동에 들어 갈수 있는 비법이 들어 있는 다이어리를 건네 주는 장면이였다. 순서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시계 토끼를 찾아라’ 그리고 ‘검으려면 철저하게 검어라’라는 말이 생각 난다. 그중 가장 마음에 오래간만에 다가오는 말 ‘검으려면 철저하게 검어라’.

오래간만에 조용히 서재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하나 둘씩 처리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점점 까칠 해짐을 느낀다. 결과 중심적 사고 mode로 전환이 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성적인 판단과 과학적인 분석 그리고 신속한 실행력이 조화를 이루고 그러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머리는 차가워지며 감정적인 요소는 배재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파생 효과는 바로 독설난무이다. 이왕 시작한것 오래간만에 한번 해보자.

꼭 두달에 한번 딜레마가 생긴다. 인위적으로 euphemism과 utilitarianism의 늪에 내 자신을 밀어 넣고 가끔 나에게 이런 최면을 건다 – ‘나는 보기보다 순수하고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그리고 속은 검은데 겉에 하얀색을 계속 칠하면서 검은 내용물이 변하길 기대한다. 이런 상태를 ‘착각’ 혹은 ‘망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노력하는 나를 가상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이성적인 판단력과 사고력을 약화 시킨다. 그리고 끝내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자기연민에 빠진다.

만약 누가 나에게 몇 살때 인생관이 성립 됬냐고 물어 본다면 난 국민학교 5학년때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그때 자리를 잡은 내 인생관이 지금까지 불변 했냐고 물어 본다면 나는 불변 했다고 말한다.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간 내가 주변 환경 요소들과 내 자신의 의지 그대로 변한다면,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수 있다면 아마도 3%의 지배하는 계급과 97%의 지배 받는 계급으로 나누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내 의지대로 나의 모든 것을 바꿀수 있었다면 적어도 지배 계급에 겨우 턱걸이 해서 들어 갔을 것이다.

예전에 동생 요한이랑 2008년도 겨울 정통 일식 레스토랑 Azuma에서 이런 말을 주고 받은 것이 기억난다. 동생은 나에게 두루두루 잘 지내고 아군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적군은 되지 않게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 했고, 나는 만인을 동등하게 사랑하고 품을 자신도 없고 만인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 능력도 없으니 차라리 내가 지향하는 세계관의 스케일과 방향 그리고 색깔이 비슷한 사람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꿈을 같이 이룰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자들과 상호보안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더 생산적이라고 애기 했다. 처음에 동생은 내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한이는 내가 이렇게 말했다 – ’30대 초반이 되니까 이제서야 형님의 말씀이 맞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영양가 있는 만남만을 지향합니다’라고…..

난 성인군자가 아니다. 내 자신을 굳이 설명을 한다면 나는 아마도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자일것이다. 항상 효율성을 따지고 공정거래를 지향하며 투자한것이 있다면 그것에 return이 있어야 되니 가치 없는 일에 내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면서 얻는 것이 없을때 이것을 ‘무조건적인 사랑/헌신/희생’이라는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내 비생산적인 행위를 합리화 시키는 것은 올바른 경제 활동이 아님을 내 자신에게 각인 시킨다.

이제 36살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애기를 한다 – 한 남자가 얼만큼 영향력 있고 멋있는 인생을 살아다는 것을 측정하는 방법중에 한가지가 장례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머리 숫자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겁을 집어 먹은 내가 간혹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인기관리 차원 / 원만한 대인 관계 유지 명목으로 겁쟁이 같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적이 간혹있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 한 영웅의 가치 평가 기준의 잣대는 바로 역사서에 내 이름과 나의 업적에 대해 얼만큼 기록 되냐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말한다 –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난 태어 날때 탯줄을 자르면서 싸가지줄도 잘랐다는 애기를 종종 듣는다. 마음에도 없는 미사여구로 상대편의 비위를 맞추고 헷갈리게 만들어서 내 진정한 의도를 숨길 바에는 도 아니면 모인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서 흑과 백을 분명히 가르고 가식이라는 하얀 가면을 짚어 던져 버리고 차라리 검은 내 본 모습을 적라하게 들어 내는 것이 바로 나의 정직한 자아상이다. 이런 나를 보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등지고 돌아서며 수군데고 손가락질을 할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속과 겉이 같이 새하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고 색깔의 차이를 수용하는 기준점이 다른것뿐이다. 검은 속을 가진 나라면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얗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엉성하게 양다리 걸친 회색이 되느니 차라리 철저하게 검어지고 싶다. 이러면 적어도 ‘가식’이라는 구린내는 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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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가 주최한 Sydney-Korea Job Fair를 갔다와서

지난주 금요일에 점심 시간에 잠깐 들렸다. 나에게 직접적인 value add가 없는 박람회였지만 담당자와의 관계가 있고 방문을 약속 했으니 한번 짬을 내서 들렸는데….. 그날 내가 얻은 것은 바로 세가지 – 첫번째로는 따뜻하고 맑은 날씨 때문에 비타민 d를 충분히 보충을 했고, 두번째로는 멕도날드의 신메뉴를 즐겼고, 세번째로는 28일 동안 보지 못한 친구와 같이 오래간만에 시티로 나들이를 같이 간것이다. 그러면 박람회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 한가지 있다. 바로 개선 할 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왕 시작 한것 cynicism의 안경을 껴고 기록을 남길겸 몇자 적어 본다.

우선 online registration이 무용지물성에 대해서 애기 해본다. http://www.globalkmove.com에 가면 Entry Ticket이라는 section이 있다. 난 이곳에 가서 등록을 하고 티켓을 받았고 행사장까지 지참을 했는데 막상 도착을 하는데 티켓을 QR barcode scanner로 스캔도 검사도 하지 않았다. 그냥 visitor라는 명찰을 그냥 건내 주면서 들어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통계 자료를 놓치고 말았다. 바로 그것은 1) 웹사이트의 조회수; 2) 온라인 등록수; 3) 등록자의 참여률이다. 만약 방문자의 숫자가 100명인데 그중 90명이 온라인 등록을 했다면 웹사이트에 올라간 content가 유용하고 얼만큼의 흥미를 유발 했는지를 측정 할수 있고, 또 온라인 등록자 90명중 80명이 박람회관에 왔다면 등록후의 after care의 효율성을 측정 할수 있다. 그런데 미리 온라인으로 등록을 하고 티켓을 지참한 방문자의 숫자를 정확하게 하는 방법이 티켓을 스캔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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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놀란 것은 booth들이 industry 별로 clustering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쉽게 애기하면 all over the place였다. 이럴때 갑자기 생각난 형용사가 바로 desultory. 이런 박람회에선 같은 industry와 전문 분야를 clustering을 해서 참석자들의 이동 경로의 편의함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다른 회사들을 한자리에서 비교/분석 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박람회장을 한번 둘러 본 결과 clustering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산만하고 방문자들의 시선이 disorientated된다. 물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두개의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그 두개의 회사의 booth가 나란히 있으면 ‘눈치’가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clustering보다는 일부러 분산 시킨 것이였다면 이번 박람회를 면접/공개 채용이 아닌 회사 소개로 weight를 더 실었어야 된다.

세번째 놀란 것은 박람회에 참석한 회사들이 공개 채용하는 포지션들의 연봉이다. 연봉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T 관리자 포지션은 2013년 8월 28일 기준으로 full-time minimum wage인 시간당 $16.37 아니면 주당 $622.20 보다 미만이였다. 현재 unemployment rate는 지난달 9월 기준으로 5.60%로 떨어졌지만 경기가 좋아질것 같은 사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럴때 언어 문제로 주류 사회 진출이 어려워 한국 교민 기업에 취직을 하려는 사람들을 싼 값에 아니 아주 헐값에 고용 하려는 것은 선진국형의 지능적 노동력 착취이다. 신청자의 경력과 학벌들을 제대로 evaluate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candidate의 조급함과 다급함을 빌미로 구시대의 갑과 을의 고용관계를 체결하고자 하려는 고용자들의 잔머리 굴리는 소리에 뒷골이 땡겼다. (사실 뒷골이 땡기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그냥 cynicism의 안경을 벗고 키보드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리스트의 길이가 아마도 길어질 것이고 밤이 길어지면서 내 수면 시간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피드백을 좋아한다. ‘잘한다고 하면 계속 잘한다’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닌 constructive criticism이 아닌가 쉽다. 잘못된 점을 알고, 인정하고, 수정하여 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며 완벽 할수는 없지만 완벽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성장의 미학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명 있다면 다음 행사는 좀더 낳아질것을 기대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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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을 것이 없으면 바꿀 의지도 없고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oxymoron 같기도 하지만 이 말에 내포 되어 있는 fundamental principle은 바로 무엇을 바꾸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정히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에 대덕에 연구단지를 모아 놓았다. 마치 미국의 실리콘 밸리 같이. 여러 연구단체가 모이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료 공유를 통해 1+1=2가 아닌 1+1=11 같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나름데로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협력을 통한 새로운 창조가 아닌 서로 status quo를 지켜 연구비를 secure하는데 급급한 것이 그 이유중에 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조직안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서로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아니하다.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끊임 없이 늘어 놓는 사람들이 조직안에 꼭 존재한다. 그들의 말에 잘 귀를 기울여보면 그들의 불만 제공 요소를 알수 있다. 그리고 그 불만 제공 요소의 공동점은 바로 자기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기 뜻은 바로 자기가 얻을 이익을 말하는 것이며 어긋나는 것은 바로 자기가 얻을 이익을 얻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도 있다. 자기의 이익과 집적 연관 된 것이면 노발대발 하면서 아주 능동적으로 (혹은 아주 공격적으로) 문제 파악 및 해결을 하지만 자기의 이익과는 먼 일이면 문제점을 지적만 할뿐 직접 소매를 걷어 올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손을 절대로 더럽히지 않는다. 이러면서 그 문제에 대한 책임자에 대한 배려라는 그럴싸한 명분 (핑계)을 내새우고 자기는 책임 회피를 하고, 문제 발생시 자신이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경고를 한 선경지명을 앞세워 자신의 주가를 올린다.

이것이 조직의 생리인것 같다. 내가 얻을 것이 있으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만 내가 얻는 것이 없으면 regulation, job description, responsibility라는 단어을 내세워서 책임을 회피하고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한다. 다들 자신이 손에 쥔 것을 지키려고 하며 더 많을 것을 취하려 할뿐이다. 자기 손에는 여분의 구명 조끼가 있고 자신은 물에 빠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물에 빠질 것이 두려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여분의 구명 조끼를 던져 그의 생명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림으로써 더 낳은 가치를 창출하고 나 혼자만이 아닌 만인의 번영과 행복과 평안이 주어 진다면 나의 희생은 정말 값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내가 내 자신만을 위해서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그런 졸장부라면 난 이세상의 어느 한부분도 바꿀수 있는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이런 자는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같이 사라질 것이며 그 누구의 기억속에도 남지 않게 될것이다. 요즘엔 이상하게도 나만을 위해 나만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나만의 번영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은 사는 것 같아 이상하게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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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Macquarie University랑 비디오 faculty 광고용 비디오 촬영 확정

내 모교인 Macquarie 대학교를 언제 졸업했지? 1997년 초에 입학해서 2002년도에 졸업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어찌하여 졸업을 하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답이 상당히 빨리 나왔다. 바로 공부를 못해서 전공을 컴퓨터 공학에서 통계학으로 바꿨고 집에서 쫓겨나 혼자 기숙사에서 생활 하느라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으니 당연히 학업에 열중하지 못해 7과목이나 낙제를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지만 졸업식장에서 나 자신에게 한말은 ‘난 이 대학교에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2006년 MGSM (Macquarie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로 다시 돌아와 MBA를 공부 할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또 모교로 다시 돌아와 3학년 학사 과정 학생들 앞에서 국제 경영 전략에 대해서 2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멕쿼리 대학교의 Faculty of Business and Economics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용 영상 제작에 들어갈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인터뷰는 BUS804 International Business Strategy의 자료로 사용 된다고 한다. 방금전에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인터뷰 예상 질문을 읽어 봤는데 준비 해야 될 것이 상당히 많다. 그냥 머리속에 있는 자료를 사용 해서 편하게 인터뷰를 하려고 했던 생각은 접어 버리고 10개의 질문을 잘 준비해야 된다.

광고 영상 제작은 이번주 금요일 오후 4시이다. 많이 떨린다. 모교의 faculty 홍보용 영상 제작, 교제로 사용 될 인터뷰 내용, 홍콩에 초청 강의, 학술지에 실린 논문 준비등 앞으로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지금 살아계시다면 이렇게 academic쪽으로 영력을 넗혀가는 나를 보고 자랑스러워 하실까? 갑자기 할아버지 친구분이 생각난다 – 나를 보고 ‘어렸을때 지나치게 총명하면 별 볼일 없다’라고 말씀 하셨을때 ‘그럼 어르신께선 어렸을때 엄청나게 총명하셨나 봅니다’라고 답변한 그 할아버지 친구분. 그냥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후진 안목을 다시 한번 각인 시켜 주고 싶은 못된 충동이 순간 일어 났다.

약 10분간의 자화자찬의 순간이였던것 같다 (self-glorifying moment). 이제 다시 정신 차리고 내게 말한다 – 쉬지 말고 앞으로 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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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들에게 가르치는 공연 관람 예절은

어제 처제의 친절한 배려로 Night of Korean Dance를 채스우드에 있는 The Coucourse에서 가족들과 관람하게 되었다. Kozy Symphony Orchestra의 제 3회 공연이 있었던 장소여서 내게는 상당히 뜻 깊고 추억이 많은 장소이다.

공연 시작전에 두명의 애들에게 당부를 했다. 바로 공연 관람 예절이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나랑 같이 관현악단의 공연을 보러 간 첫째딸 예린이는 이런 것에 익숙 해져서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시작 하기를 기다렸다.

– 공연 시작전에 화장실을 꼭 다녀온다.
– 공연장 안에서는 물이 이외에 어떤 음료수도 음식도 섭취 해서는 않된다.
– 착석하기 전에 다른 관객의 자리를 지나 갈때는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양해를 구한다.
– 공연중에 옆사람과 잡담을 하지 않는다.
– 공연중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만약 참지 못할 경우 최대한 소리를 작게 한다.
– 공연중에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를 고쳐 앉을 경우 움직임을 최소화 한다.

위의 유의 사항의 fundamental principle은 바로 공연장에서 남을 위한 배려이다. 그런데 어제 또 한번 느낀것은 바로 시드니 사는 교민들은 남을 위한 배려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공연 시작전에 announcement가 들렸다. 공연중엔 비디오 촬영이나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 있으니 협조를 해달라고. 그런데 공연이 시작이 됬고 이층의 맨 끝에 줄에 앉는 나는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비디오를 촬영하고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다. 여기선 난 두가지 해석을 하게 됬다 –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아들으면서 무시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위에 상황은 잠시 옆으로 두고 과학적인 분석을 다음과 같이 해보자.

공연 초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플레시를 남발하면서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사람들은 점점 줄어 든다. 그 이유는 바로 사진과 비디오의 질이 조명 때문에 나쁘기 때문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찍은 사진이나 비디오는 거의 시청 불가능의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비합리적인 시도를 행하는 사람들의 잠제의식을 나는 이해한다. 바로 ‘추억’ 혹은 ‘기록’을 남겨서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닌 ‘보여주기’ 위해서다 – ‘난 이런 곳에 와서 이것을 관람했다’라는 것을. 그런데 막상 저장한 사진과 비디오를 보면 화질과 음질은 저질이니 효율적인 추억 회상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데 사용하는 그 에너지를 관람 집중에 전환을 시켰으면 좀더 많은 추억을 머리속에 감동을 가슴속에 간직 할수 있지 않았을까나….. (아니면 공식 웹사이트나 유투브에 가서 보는 것이 낳지 않을까나)

쉬는 시간에 애들에게 애기했다 – ‘Taking photos or videos during the performance is the irresponsible and inconsiderate behaviour that causes inconvenience to others, including to the performers on the stage. Such action would not be tolerated under any circumstances. Is that clear?’ 물론 대답은 ‘Yes, daddy’.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파가니니 주제의 의한 광시곡’은 26개의 variations으로 구성 되어 있다. 어느 공연장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데 몰상식한 관객들이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짜증이 난 라흐마니노프는 기침을 한번 할때마다 variation 한개씩 건너 뛰었다고 한다. 총 연주시간이 22분이나 걸리는 이 곡을 기침하는 관객들 때문에 3분안에 끝냈다는 우스게 소리도 있다. 하지만 관객의 자세가 무대에 서는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설명 해주는 애기이다.

내년이면 애들 두명다 연주 시간 30분 이상 되는 협주곡이나 교향곡 관람 가능 할것 같다. 2014년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레파투어 다시 검토 해서 스케줄 잡아야 겠다. 첼로를 시작하는 운이는 Dvorak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 그리고 예린이는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로 정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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