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FM 102.5를 들으면서 출근을 했다. 내 사랑스런 Audi A4가 오른쪽 아래를 부상 입는 바람에 나의 정든 Holden Astra를 끌고 갔다. 그런데 왠지 더 운전하기가 쉽고 친근감이 들었다. 구관이 명관인가… 아 ipod랑 연결이 되지 않아 혀를 끌끌 차면서 할수 없이 102.5을 틀었다. 아침부터 짜증나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mc를 보는데.. 아 진짜 열받네…. 말을 왜 이렇게 더듬어!
회사에 거의다 왔네. 프랑스의 작곡가 마스네가 작곡한 행진곡이였다. 발랄하고 재미 있는 곡이였다. 그런데 해설자가 애길 하길 이 음악엔 브루주아의 성격이 감미가 된 곡이라고. 이말의 뜻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내 머리속에 떠올린 작곡가는 바로 관현악의 역명가 베를리오즈. 그가 없었다면 리차드 바그너 그리고 거스타브 말러의 화려한 관현악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기존의 관현악 주법, 고정관겸을 완전하게 무너뜨린 선구자. 그의 혁신적인 관혁악 연주법과 작품들중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환상 교향곡’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일생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다.
아 브루조아 라는 단어가 나오면 생각나는 작곡가는 바로 멘델스죤.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고생 없이 역경 없이 그냥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밣고 자란 작곡가. 뭐라고 할까 그의 음악은 2% 부족?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그냥 너무 쉽게 만들어진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베토벤 같이 인간의 고내가 깊게 느껴지지 않는 곡들이 많아서 그냥 가끔식은… 아 왜이렇게 곡들이 밝아? 짜증나네 라는 말을 내뱉은 적이 많다. 어쨋든 고생 않하고 곱게 성장한 음악가들은 그냥 싫다. 왜? 난 자수성가 타입을 좋아하니까. 120개의 교향곡을 작곡 했지만 별로 신금을 울리는 곡이 없는 하이든 – 사람들은 (특히 기독교인들) 그가 천지창조를 초연하고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믿지만 사실 프리메이슨에 소속된 사람으로 종교계와 정치계의 사람들의 힘을 얻어 명성을 얻은 음악인이다.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기 위해서 37년을 고민한 브람스, 법대 재학중이였지만 음악가가 된 차이코프스키. 베를로이즈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 의대로 진학을 해서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키려 했으며 도중 음악인을 걷게 되면 피아노도 작곡도 음악 이론도 스스로 늦게 독학으로 끝낸 사람이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자수성가 타입. 최고다.
다시 베를로이즈로 돌아간다. 난 아직 그의 음악에 대한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 교육을 어렸을때부터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고, 또 기존의 관혁안 주법을 깨기 위한 혁신적인 시도 – 다양한 악기 편성과 연주법을 사용하여 두터운 음향 층을 형성하려는 그의 노력…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 그냥 속이 쓰리고 아쉬울뿐이다.
아마도 내가 지금 베를로이즈와 같은 심정일것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약에 힘이 필요한데 꼭 나 혼자인것 같은 외로움 그리고 사람들의 적대감에서 오는 고독함이 그냥 내 어깨를 움치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점을 바꿀려는 노력도 시도도 하고 싶지 않다. 난 그냥 내가 세운 목표대로 뚜벅뚜벅 전진할 것이다. 남의 기대를 초월하는 것이 그리고 초월함으로 얻어지는 파생 효과를 즐겼지만 이젠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하고 싶다. 남은 나의 혁신적인 시도가 이해가 않되고 실현 불가능이라 할지 모른다. 이럴때 의기소침하지 말고 나한테 속삭인데 – ‘너 같이 싸가지 없는 놈이 언제부터 남의 눈 의식하고 그랬냐? 한가하냐? 뇌가 아주 서정적이지 요즈음?’ 베를로이즈도 독학으로 음악가가 됬다. 그럼, 난 왜 않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