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흔이 사용하는 말이다. We are born to rule. 처음엔 난 이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사람은 노력을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수 있다고 믿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상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노력하면 누구든지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더이상은 아닌것 같다.
잘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한사람을 창조하실 때마다 심오한 계획과 오묘한 섬리가 있음을 난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똥깨를 잘 훈련시키면 아마도 독일 세퍼트 같이 짖을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훈련된 똥깨를 최전선에 투입시키지 않고 경찰견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었일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격도 싸고 유지비도 적게 들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일까?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선택 받은자’ 아름답고 향기로운 버건디 와인을 담을수 있는 우아하고 투명한 리델의 크리스탈 글라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간장 종지 같은 사람이 있다. 불공평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세상에 미남 미녀만 있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수 없고, 이 세상에 행복만이 존재하면 눈물과 슬픔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난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선택을 받은 자인가? 내가 살아온 32년의 파란만장한 삶, 많은 훈련과 교육, 고난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32살의 나이에 전문경영인의 반열에 첫발을 정식으로 내 디닌 나를 전문경영인이 되게 선택하신 것일까? 내 운명은 경영인인가? 정답은 내가 어떻게 아나?
창조주의 섭리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었인지 난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냐고? 사람에게 운명이 있다면 이것을 벗어나려는 나의 미련한 발버둥이 아니냐고? (내 기억에 이 애기를 한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기억이 난다)
난 운명 (fate)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아이디어가 싫기 때문이다. (내가 한말이 아니라 메트릭스에 나오는 니오가 한말) 그런데 난 fate를 믿는다. 내 운명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고 내 마음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맞기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앵 그럼 그게 뭐야? 난 나름 사람과 다를바가 없는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맏기지만 난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모른다. 그래서 난 나에게 주어진 능력과 자원, 재주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나의 목표와 방법론이 잘못 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든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교정하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난 나른 사람들과 틀린점이다. 남들은 맹목적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맏깁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이렇게 한다. ‘저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인하여 내가 주의 뜻을 알지 못하오니, 전 주님께서 저를 통해서 이루실 그뜻을 보여 주실때가지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하여 제 나른데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오니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An ordinary man blindly follows his destiny. However, a real man who does his best until his destinty reveals to him. (당연히 난 후자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