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남편들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이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아내의 권고를 받아 들이는 선택을 종종한다. 결혼 생활 13년에 내가 믿지 않는 말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내 말 들으면 손해 볼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아내가 왕의 재정학교를 등록해서 공부를 하라고 권했고 난 ‘가정의 평화 유지’라는 대의 명분을 가지고 등록 했고 성실히 전 과정을 수료 했다. 그런데 누가 만약 내게 왕의 재정학교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 할 것이다 – ‘새로운 것을 깨달은 것도 배운것도 없으며, ‘학교’라고 하기엔 커리큘럼이나 구조가 너무나 빈약 했고, 강사들의 거품낀 자뻑용 PR은 사회적/경영학적 관점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결론은 제가 얻은 것은 한가지도 없고 그로인해 저는 가장 소중한 제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시드니 왕의 재정학교 수료식이 생각난다. ‘요단강 건너기’라는 순서인데 조원들이 손을 잡고 자신의 결심을 큰 목소리로 말한 후에 다함께 밧줄로 만든 요단강을 넘는 시간이였다. 사회를 보신 목사님께서 ‘군대에서 하듯이 큰 목소리로 다짐을 말하라’라는 말을 듣고 나는 순간 옛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 학교’에서 ‘군대식’으로 만세삼창 및 구회 외침등에 대한 후유증이 여전한데 또 왕의 재정학교 수료식에서도 ‘군대식’으로 하라는 말을 들으니 순간 불쾌지수 급상승했다. 내겐 ‘군대식’이란 말은 나이 값을 못하는 꼰대 혹은 ‘개저씨’들의 식상한 레파투어로 인식 되기 때문이다.
먼저 간사들이 강당에 올라가서 ‘숙달된 조교’로써 ‘요단강 건너기’ 시범이 있었다. 다들 ‘기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혹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라는 통상적인 말을 목청 높여 구호처럼 외치면 졸업생들이 박수를 치고 열광을 한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 ‘공동체의 화목과 평화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할까?’ 아니면 ‘초심을 잃지 않고 내 진심을 솔직히 표현을 할까?’ 역시 나는 후자를 택했고 ‘요단강’을 건너기전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애기 했다.
“저는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 크게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여태껏 해온것처럼 계속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고 고조 된 분위가 급격히 저하됨을 느꼈다. 무대 아래로 내려가 목사님들과 악수하면서 인사 할때 탐탁치 못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내가 하나님을 더 갈망하는 마음이 없고 세상에 속한 천상천하유아독존안하무인교만방자형으로 비취어진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다수의 사람들이 말한 결심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났고, 또 왕의 재정학교를 마치고 뭔가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갈망하는 마음이 담김 결심을 듣기 원하던 사람들의 귀에 내 진심은 거슬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한번 시작한 것을 제대로 끝내지 못함은 대장부 답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작심삼일로 끝날 결심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결심중독증(Resolution Addiction Syndrome)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난 행동을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결심해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보이려는 증상이 바로 결심중독증이다. 내가 ‘여태껏 해온것처럼 계속 하겠다’라는 말을 풀어 쓰면 ‘난 내가 있는 위치에서 늘 해온것처럼 최선을 다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겠다’라는 뜻이다. 들쑥날쑥 기복의 변화가 심한 그런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믿음 생활이 아닌 초심을 잃지 않고 작은 불꽃이지만 비바람에 요동치 아니하고 꺼지지 않는 그런 램프가 되어 꾸준히 빛을 비추는 것이 ‘내가 여태껏 해온것’이며 ‘나는 이것을 계속하겠다’라는 것이 나의 다짐인데….. 이런 나의 뜻을 모르고 겉모습과 말한마디로 나를 평가하는 그들의 통찰력이 문제인지 아니면 나의 완곡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내가 언어장애가 있는지 잘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