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회 코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 연주곡 설명 자료 (한글)

쇼팽 폴로네이즈 가장조 작품번호 40번의 1번 ‘Military’
가곡의 왕은 슈베르트, 교향곡의 대가는 베토벤, 실내악의 대가를 하이든이라고 한다면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한다. 폴로네이즈는 3/4박자의 행진무도곡인데, 대체로 기사풍의 화려하고 장려한 성질을 갖고 있다. 마주르카와 함께 폴란드의 대표적인 무곡으로 널리 알려진 폴로네이즈는 행진조의 궁정무곡으로 완성했는데, 무도로서의 전성시대는 쇼팽 출생전에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쇼팽은 폴로네이즈에 대해 연구를 했고 무곡형식에서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담았으며 용장한 애국적 정열을 담아 독창적인 폴로네이즈 17곡을 작곡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카미유 생상스는 1835년 10월 파리에서 태어나 4살 때에는 이미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피아노 파트를 능숙하게 연주했다고 한다. 13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작곡을 시작했고 모짜르트의 재현이라고 구가 되었던 신동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동시에 시인이었고, 화가였고, 천문학자, 철학자이기도 했으며 한때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1886년 2월에 작곡된 ‘동물의 사육제’는 모짜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개최된 사육제의 음악회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 되었고,생상스는 매년 2월 하순경에 열리는 흥겨운 축제에서 이 곡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곡은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14곡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제는 사자 왕의 행진, 수탉과 암탉,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수족관, 귀가 긴 사람, 뻐꾸기, 큰 새장, 피아니스트, 화석 , 백조 그리고 피날레로 되어 있다.

카노니카 폴카 콘체르타트
1846년 이탈리아의 밀란에서 출생한 카노니카는 우리에겐 비교적 생소한 작곡가이다. 원래 폴카는 1830년경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시작된 민속춤곡이며 빠른 2박자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이 춤곡은 금세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 왈츠와 더불어 살롱음악의 대표주자로 각광 받으며 19세기 말까지 유행했다. 카노니카의 폴카 콘체르타트는 2대의 피아노를 16명의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면서 연주자간의 절묘한 호흡과 정교한 박자감을 요구하는 앙증맞으면서 밝은 곡으로써 피아노 연주회를 시작하기전 오프닝때 자주 연주 된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작품번호 84번
독일의 으뜸 시인이라고 일컬는 괴테의 5막 비극 ‘에그몬트’의 서곡 – 1810년 6월 15일 비엔나 궁정극장에서 초연 되었고 베토벤이 직접 지휘했다. 16세기의 실제인물이었던 네델런드의 에그몬트 백작 이야기는 정의파의 악성 베토벤에게는 매우 공감이 가는 테마이기 때문에 에그몬트 서곡은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과는 달리 비극적이지 않고 기백이 넘친 비장함을 담아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괴테가 39살이 되던 해에 완성된 에그몬트의 줄거리는 이렇다. 네델란드의 백작 에그몬트는 조국을 스페인 왕의 학정에서 건지려고 궐기했다가 실패로 돌아가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의 연인 클레르헨은 에그몬트를 구출하려다가 실패하고 자살한다. 그러나 옥에 같혀 있는 에그몬트 앞에 그녀는 자유의 여신으로 나타나서 월계관으로 애국투사 에그몬트의 영광스러운 죽음을 축복한다. 고뇌에 싸였던 에그몬트는 마침내 죽음을 승리로 받아 들이며 단두대에 용감히 오른다.

이곡의 서주부는 스페인의 압제하에 압박 받는 네델런드 민중의 괴로움, 중심부는 반항하는 민중의 소리와 긍정의 정신과 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 그리고 종결부는 그들의 필연적인 승리를 상징한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나단조 작품번호 23번
2008년 MBC에서 방송한 ‘베토벤 바이러스’에 젊은 지휘자 강건우가 스승인 강마에에게 반항하기 위해 선곡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 1874년 늦가을에 시작해서 이듬해 2월에 완성을 본 차이코프스키의 35세 때의 이 작품은 당초에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들려 주고 그 의견을 물었고, 그간의 사정을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이렇게 알렸다.

“내가 제 1악장을 연주했으나 루빈슈타인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불유쾌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끝까지 연주해 버린 뒤에 어떠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곡은 가치가 없고 절대로 연주가 불가능하며, 작곡 자체도 서툴러서 들을 만한 곳은 2-3장 정도라고 말했고, 난 대꾸도 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루빈슈타인이 올라와서 그대로는 연주 불가능이나 자기가 지적한 곳을 고쳐 주면 연주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음부 하나라도 정정은 안 할 것이며 이대로 인쇄 하겠다고 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첫 피아노 협주곡은 장중한 악상, 색채적인 관현악법, 러시아적인 테마와 정서가 전곡에 넘쳐서 훌륭한 내용이지만, 솔로 피아노는 연주에 힘든 복음과 화음, 옥타브의 연속으로 결과적으로는 무겁고 둔중하며 화려한 기교의 과시가 없는 것 때문에 러시아의 리스트 (Liszt)라고 불리던 루빈슈타인은 연주를 꺼려 했던 것이다.

결국 차이코프스키의 첫 피아노 협주곡은 대지휘자요, 명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한스 폰 뷰로에게 헌정 되었고, 그가 미국 연주여행 때 보스톤에서 초연했으며 박수 갈채를 받고, 나중엔 루빈슈타인이도 이 협주곡을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하여 격찬을 받았으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 “작품이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이면 연주의 곤란함을 극복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About Brendon Cho

조후혁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1994년 18살때 호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고 2002년 통계학과를 졸업 한후 통신 회사 Exetel에 2004년 사원으로 입사, 2009년 최고재무관리자 (CFO)로 임명 그리고 2010년 MGSM에서 MBA를 수료 했고 지금 내부 감사장 (Head of Veracity)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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