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난 재벌집을 배경으로한 드라마는 지향하지 않았다. 시작부터가 다르고 태어 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것들이 충족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재벌집 자녀들과 난 많은 마찰이 있었다. 그들에 대한 시기, 질투, 열등감, 증오, 자격지심이 섞여 거름으로 사용 됬고 뿌리 끝까지 깊게 배였다. 이런 나무에서 열린 열매의 맛은 쓰다. 왜냐하면 열매의 원천이 되는 뿌리가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자수성가하는 과정중에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재벌집 자녀들을 하나둘씩 초월하는 과정중에서 추월/초월/승리라는 단 열매의 맛을 보았고 그들이 이해 되기 시작 했다. 사회생활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있다고 해서 결승전에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갈며 죽을 각오로 먼저 출발한 재벌집 자녀를 추월하기 위해 주야로 달리는 동안, ‘출생이 다르다’라는 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여유를 부리는 동안 어느 순간 추월 당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추격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가속이 이미 붙은 상대를 재추격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엔 재벌집을 설정으로 한 드라마를 선호한다. 아마도 박신양과 김정은이 주연한 ‘파리의 연인’이 내 선입견의 각도를 바꾸어 놓았다. 요즘엔 재벌집 자녀들을 설정으로 한 ‘상속자들’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배우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이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는 호텔 주인의 아들로 나온다. 경영 수업을 받는 도중 주방 메니저아 말다툼을 벌이고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유도장으로 아들을 부르고 무참히 KO 시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뇌리속을 스친 한마디 – ‘아비 만한 자식 없다’. 어젯밤에는 Star Trek Into Darkness라는 영화를 봤다. 명령 불복종으로 선장 Kerk와 Pike가 티격태격하는 대화중에 이런 말이 있다. “There is greatness in you, but there is not an ounce of humility. You think that you cannot make mistakes.” 이 장면을 보면서 전 위왕과 태자가 말다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서야 알겠다. 왜 돌아가신 위왕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던 것을. 바로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위왕과 태자와의 관계를 지난 9년 동안 쭈욱 지켜 보았다.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서 과대포장/평가하는 태자를 위왕은 탐탐치 않게 생각을 했다. 태자는 자신이 한 결정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결정이며 자신은 항상 옳다고 주장 했고, 자신이 잘못된 순간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교묘한 술수로 책임 회피 했고 자기 아버지의 후광을 빌미로 그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브레이크 망가진 증기관처럼 미친들이 달렸다. 목표도 모른체 그리고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체.
시간이 지나면 철이 들고 성숙 해질줄 알았지만 태자는 지금까지 아무런 발전 아니 변화가 없다. 부모의 후광을 입어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다른곳에서 사회 경험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상상조차 할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과 위치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작부터가 다른 태자는 정말 위의 영화 대사 같이 그에겐 ‘not an ounce of humility’였다. 굳이 복합한자성어로 태자를 표현 한다면 ‘천상천하유아독존안하무인’이 가장 적합 할 것이다. 결혼 할때 정말 동화책에서 나온 왕자와 공주 같은 결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 결혼 생활은 6개월만에 종결 됬고, 주의에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을 두고 주색잡기와 음주가무를 즐기고, 평민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천문학적의 돈을 주지육림과 여색의 늪에 끊임 없이 부어댔다.
이런 망나니 태자를 본 전위왕의 부인 황태후도 걱정이 되어서 전 위왕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오빠에게 맡긴다. 이리 새끼를 다루기 위해 굶주리고 비열한 하이에나를 들인것이다. 이에 태자는 현 위왕을 견제하기 시작 했고 그 둘의 완력 싸움에서 황태후는 어떻게 할지 몰라 항상 좌불안석이며, 자신의 세력을 굳히기 위해 많은 신규 세력을 외부에서 영입한 현 위왕의 처사에 황태후의 의심 농도는 점점 깊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신의 벽이 높게 쌓였고, 조직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한몫씩 챙기려고 자신만의 이익을 돌보고 있다. 근정전에 모여 관료들이 회의를 할때 ‘경청’이란 존재하지 않고 자신만의 의견을 완강히 고집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자들은 배척 했다. ‘의리’나 ‘신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힘 없고 쥐꼬리만한 녹봉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말단 관리들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사에 집중하지 못하니, 조직의 상태는 점점 악화 되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도 이들이 극히 작은 일에 목소리를 높여 탁상공론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고 절충안은 만들어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혼잣말을 큰소리로 하고 나온것 같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말한 자신에게 공치사를 하며 스스로를 신념 있는 지도자로 포장한다. 이런 애석한 상황을 보면서도 사마중달은 그냥 묵묵히 자신이 해야 될 일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회생 불가능이라면, 폭발 직전의 상황이라면 안전 거리를 두고 언제든지 안전하게 탈출 할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 놓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된다. 여기서 ‘충신’이라는 단어로 내 자신을 얾매이게 하지 않는다. 난 전 위왕에게 충성한 신하지 현 위왕께 충성하는 신하가 아니다. 잘못된 정치를 펴는 왕에게 직언을 해서 몸을 상하게 하느니 파멸의 순간이 목전에 다가와 자신의 과실의 깨닮고 후회하는 순간까지 옆에서 보좌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