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oxymoron 같기도 하지만 이 말에 내포 되어 있는 fundamental principle은 바로 무엇을 바꾸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정히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에 대덕에 연구단지를 모아 놓았다. 마치 미국의 실리콘 밸리 같이. 여러 연구단체가 모이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료 공유를 통해 1+1=2가 아닌 1+1=11 같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나름데로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협력을 통한 새로운 창조가 아닌 서로 status quo를 지켜 연구비를 secure하는데 급급한 것이 그 이유중에 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조직안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서로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아니하다.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끊임 없이 늘어 놓는 사람들이 조직안에 꼭 존재한다. 그들의 말에 잘 귀를 기울여보면 그들의 불만 제공 요소를 알수 있다. 그리고 그 불만 제공 요소의 공동점은 바로 자기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기 뜻은 바로 자기가 얻을 이익을 말하는 것이며 어긋나는 것은 바로 자기가 얻을 이익을 얻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도 있다. 자기의 이익과 집적 연관 된 것이면 노발대발 하면서 아주 능동적으로 (혹은 아주 공격적으로) 문제 파악 및 해결을 하지만 자기의 이익과는 먼 일이면 문제점을 지적만 할뿐 직접 소매를 걷어 올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손을 절대로 더럽히지 않는다. 이러면서 그 문제에 대한 책임자에 대한 배려라는 그럴싸한 명분 (핑계)을 내새우고 자기는 책임 회피를 하고, 문제 발생시 자신이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경고를 한 선경지명을 앞세워 자신의 주가를 올린다.
이것이 조직의 생리인것 같다. 내가 얻을 것이 있으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만 내가 얻는 것이 없으면 regulation, job description, responsibility라는 단어을 내세워서 책임을 회피하고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한다. 다들 자신이 손에 쥔 것을 지키려고 하며 더 많을 것을 취하려 할뿐이다. 자기 손에는 여분의 구명 조끼가 있고 자신은 물에 빠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물에 빠질 것이 두려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여분의 구명 조끼를 던져 그의 생명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림으로써 더 낳은 가치를 창출하고 나 혼자만이 아닌 만인의 번영과 행복과 평안이 주어 진다면 나의 희생은 정말 값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내가 내 자신만을 위해서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그런 졸장부라면 난 이세상의 어느 한부분도 바꿀수 있는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이런 자는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같이 사라질 것이며 그 누구의 기억속에도 남지 않게 될것이다. 요즘엔 이상하게도 나만을 위해 나만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나만의 번영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은 사는 것 같아 이상하게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