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부터 중학교 때까지 성적표는 점수와 수, 우, 미, 양, 가로 나왔다. 그냥 오래간만에 궁금해서 수, 우, 미, 양, 가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다.
‘수’는 빼어날 수, ‘정말 우수하다’라는 뜻이다.
‘우’는 넉넉할 우, ‘우수하다’라는 뜻이다.
‘미’는 아름다울 미, ‘좋다’라는 뜻이다.
‘양’은 어질 양, ‘괜찮다’라는 뜻이다.
‘가’는 옳을 가, ‘가능다라’라는 뜻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9년이라는 교육 기간 동안 9분의 다른 담임 선생님 중에서 단 한명도 성적표에 수, 우, 미, 양, 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 분이 없었다. 그냥 수는 최고이고 가는 최악이라고 했고 수가 많은 애들은 칭찬을 받고 가가 많은 애들은 무지막지하게 혼났다. 왜 선생님은 이것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수’는 좋은 것이고 ‘가’는 나쁜것이라고만 강조를 했을까.
조금전에 국민학교 동창(?)들이 기억이 났다. 방학전에 성적표를 받을때 교실 분위기는 참 도살장 문앞에 서 있는 소와 돼지들의 임시 저장소 같은 느낌이였다. 성적표를 선생님께서 하나씩 나누어 줄때 아이들의 표정은 완전 굳어진다. 그리고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받은 애들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선생님께 성적표를 고쳐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엄마한테 보여주면 혼난다고. 또 개학일에 부모님의 사인을 받은 성적표를 반드시 제출 해야 됬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무진장 맞은 것으로 기억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였다. 성적표를 받으면 덥썩 겁부터 먹었다.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고 아빠가 성적표를 보시고 혼낼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 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전산실에 몰래 잠입을 해서 성적표를 프린트 하는 종이를 구해서 도트 메트릭스 프린트를 구해서 성적표를 위조한 기억이 난다. 일부 학생들과 형들에게 부탁을 받고 성적표를 기술적으로 위조한 사건이 기억이 난다.
방학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성적표 때문에 방학에 놀게 되는지 학원에 보내 지는지 출입 금지를 당하는지 정해졌다. 방학전에 받은 성적표는 그 해 방학의 행복도를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본다. 수우미양가의 원리는 어디서 부터 나온 것인지. 이것이 진정한 본질과 목적은 무엇일까? 가를 받은 학생도 발전 가능성이 있고 용기를 주고 더 성장하고 노력할수 있도록 이끄는 선생님은 없었고 그냥 단순히 이것을 성공의 잣대로 사용해서 그들에게 학구열에 찬물을 끼얻고 용기와 의욕마져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 하지 않았나 한다.
어째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수만을 강조 했을까? 최고가 되어야 한다. 군중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한다.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 당한다. 일등이 아니면 잊혀진다. 금메달 가치가 있고 은메달과 동메달은 가치가 없다. 군림하지 않는 자는 군림을 당한다 라는 이런 극단적 2분법적 생각…. 지나친 성공지향주의…. 이것의 종점은 과연 어디인가.. .끊이 없는 전진과 개발과 노력인가? 그럼 여기서 찾을수 있는 여유은 무엇인가? 이른 아침부터 출근전에 머리가 아주 아프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