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들어 갈때랑 화장실 갔다 왔을때랑 틀린 사람. 좀더 쉽게 풀어서 애기하면 받은 은혜를 까맣게 잊어 버리고 스타일의 차이로 인연 끊어 버리는 사람. 쉽게 말하면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은혜라… 난 이 단어의 정의를 잘 모른다. 사람마다 어떻게 이 단어를 해석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난 이렇게 ‘은혜’를 ‘투자’와 비교해서 설명하고 싶다. ‘투자’는 내가 input을 한 만큼 이상의 output을 원할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원하는 return이 있을 경우엔 단 정당하게 ‘투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럼 반대로 ‘은혜’는 나의 input은 return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히 sunk 혹은 outlay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은혜’를 베풀 경우는 아무런 return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은혜’를 베풀고 하는 것이 한가지가 있다. 바로 그것에 대해서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을 종종 mention 할 경우에 바로 그들에게는 족쇠가 될수가 있고 죄책감을 유발 시키게 된다. 그래서 난 절대로 내가 베푼 ‘은혜’에 대해선 재방송 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나의 실책인것 같다.
오늘 일까지 포함해서 두번 당했다. 괘씸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섭섭하게 생각한 적도 없다. 단 한번도 투자라고 생각한적이 없으니 아까운 것도 아쉬운 것도 없다. 다만 신경이 거슬리는 것은 차라리 ‘은혜’를 베풀지 말고 공정한 조건과 계약 체계를 갖춘 ‘투자’형태의 거래를 했을 경우 더 높은 수익율을 올릴수 있고 또 투자를 유치한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도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될수 있는 명분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쉽다.
그냥 좀 황당하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일경우야 뭐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그래도 어쨋든 피가 조금 어떻게 섞이고 한 집안 식구인 사람이고 나를 오랫동안 봤고 내 스타일을 알고 본의는 악하지 않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건방 떨지 마라’ 혹은 ‘인격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얼굴 볼 필요 없다’ 그리고 ‘불쾌하니까 메세지 더 보내지 말라’라고 애기하는 것은.. 거참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지? 아마도 내가 마음에 아주 많이 않들었는데 오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서 던진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나에겐 불발탄이다. 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내가 존경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모시는 분들의 조언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본질을 잘알기 때문이다. 나의 방법론에 대해서 수정 사항을 종종 제공한다. 그리고 난 그것을 받아 들이고 고친다. 애석하게도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력 없는 존재가 말한 것은 망설에 헛소리니까.
두번 잘못된 결정을 해서 이렇게 배은망덕한 인간 두명을 내 인생에서 만들었다. 세번째는 없다. 더 이상 ‘은혜’란 없다. ‘투자’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두명다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