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어 본다. 얼마전 블로그에 올릴 글들을 간략하게 정리 해둔 리스트를 참조해서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파일을 담은 USB stick을 남에게 빌려주는 과정중에 파일이 삭제 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뚜껑 한번 열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예전에 적은 내용들을 차분히 상기하는 과정중 생각나는 것은 딱 한가지다. 나이 먹어서 기억력 감퇴가 시작 되는 것 같다.
내 주의에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몇명있다. 남의 잘못을 곧잘 잡아내고 논리적으로 지적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비판을 하는 자는 비판을 당하는 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좀 더 풀어 애기를 하면 한 노숙자가 국가의 재정 정책을 비판 하는 것과 한 재정 관련 정치인이 비판하는 것과는 땅과 하늘 차이이다. 전자는 쓸데 없는 ‘소음’이고 후자쪽은 (한글로 잘 모르겠다) ‘constructive criticism’이 된다. 다시 말해 비판을 해도 합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비판은 영양가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가 하는 비판은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내 주의에서 비판을 잘하는 사람들을 좀더 세심히 분석을 해본 결과 그들은 비판을 당하는 자보다 결코 높은 위치에 있지도 않고 변화를 추진 할만한 위치에도 있지 않다. 뭐라고 할까… 그냥 군중속에 속해서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구석에서 군시렁 군시렁 거리는 소인배일뿐이다. 이런 자들의 ‘헛소리’를 듣고 동요하고 동조하는 무리들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 끼리끼리 아주 잘 놀고 있다.
내 주의에 또 비판을 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할수 있는 일, 자기가 해야 되는 일에 촛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한다. 남이 뭐라고 하던 간에 별로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고 생산적인 삶을 산다. 그들이 외골수 같이 남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뜻데로 반드시 항상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과 비슷하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의 말들을 비판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때로는 이것을 격려로 조언으로 분석으로 해석을 해서 받아 들인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 들이고 흡수하며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린다. 다시 말해 그들은 비판과 조언을 이렇게 구분한다 – 자기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가졌고 이룬자의 진심어린 걱정과 기대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담은 내용을 조언이라고 하며, 뚜렷한 개선방안도 없이 그리고 자신의 짧은 식견과 적은 사회적 경험과 논리적이 분석은 결여 되고 감정적 요소가 과중하게 첨가된 사람의 말은 조언이라 하지 않고 비판이라고 구분한다.
스머프의 투덜이 스머프가 머리속에 잠깐 떠올랐다 – ‘난 이런것 싫어’.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자 혹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자를 보고서 ‘잘못 된다, 방법이 틀렸다 혹은 가질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의 무능력함을 감추려는 패배자의 아주 비겁한 자기 합리화이다. 난 이런 자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 ‘그렇게 당신이 훌륭하고 뛰어 나다고 생각을 하면 왜 당신은 당신이 비판하는 그 자의 자리에서서 세상을 바꾸어 보지 못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