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일 날에만 효자 그리고 효녀…..

난 솔직히 지금 당장 어버이 날이 몇일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5월 5일이 어린이 날인것은 안다. 왜냐하면 난 어렸을때 5월 5일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을 잘 하지 않는 것들이 공통점이 바로 한가지 있다. 바로 내 인생에 별로 영양가 없는 것들이다. 이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전화번호는 내가 몰라도 내 인생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은 내 머리속에 이상하게도 register다 되질 않는다. 아마도 어버이 날이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날이니 기억을 못함이 분명하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아마도 나에게 이렇게 애기 할것이다. ‘불효막심한 놈’. 그럼 나의 대답은 ‘미친놈 지랄하고 있네’.

교회에서 5월달엔 많은 행사가 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그리고 스승의 날 행사들이다. 어린이 날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이 되는데 어버이 날 행사때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우울하고 예배 끝날쯤에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그런데 난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난 항상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의에 생각보다 많다. 왜그럴까?

난 엄마에게 거의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누구는 결혼 한후에 하루 3번 엄마 한테 전화를 한다고 한다. 직장 생활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엄청나게 일을 효율적으로 잘해서 시간 관리가 완벽한 사람이거나 회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는 위치에 있는 찌질이 같은 존재일것이다. 결혼하고 나면 부모의 품을 떠난 출가외인이다. 그리고 상황 판단 못하는 또라이 마마보이들이 이런 짓을 하면서 자기 와이프 점수를 깍아 먹게 한다. 내가 한번 전화 하는 것이랑 며느리가 10번 전화하는 것이랑 맞먹는다. 즉 내가 전화를 많이 하면 와이프가 곤란해 진다. 다시 말해 와이프가 전화를 하고 난 전화를 않해 욕을 먹는 것이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사람들은 평소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고 여행을 같이 가고 하는 것을 횟수를 보고 효자/효녀를 평가하는 습관이 있다. 난 일년에 엄마와 밖에 나가서 밥을 먹는 적이 거의 없다. 엄마랑 여행을 간적도 없고 한달에 한번 얼굴 2시간 비치면 그것이 최고로 한것이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과 효심이 직선적 정비례인가? 난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몇번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엄마는 가끔씩 나이게 부탁을 한다. 아주 공손하게. (이부분에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고개 숙여 부탁하게 만들어서 내가 또 불효막심한 놈이 되는 것인가? 이젠 귀찮다. 그냥 엿장수 마음데로 해석을 해도 이젠 무관하다) 엄마는 나의 사회적 위치를 존중하고 내가 얼만큼 바쁜지 알고 있다. 그래서 명령 보다는 부탁으로 나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난 엄마가 부탁한 그 일이 엄마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목에 힘들어 가게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한다. 한마디로 엄마의 기를 살려주는 일은 앞장서서 한다. 다시 말해 싸구려 일식당에서 회전초밥을 먹느니 최고급 일식집에 가서 참치 대뱃살 2조각을 먹는 것이 더 낳고, 엄마 대신 장 봐주는 것 보다 엄마 친구가 한국에서 온다고 할때 직접 고급 승용차로 회사 늦게 출근해 가면서 픽업하는 것이 엄마에겐 더 큰 행복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남들이 하지 못한 한가지를 31살 되기 전에 했다. 엄마가 살 집을 내가 빚을 얻어 구입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자기 앞가름 하기 바쁘다. 심지어 언제 얼만큼 유산이 나에게 떨어질찌 계산하는 놈/년들도 있다. 만약 내가 이런 기회주의적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살집을 마련하기도 전에 내가 살집의 융자를 얻기도 전에 엄마 집을 먼저 구입해서 거기서 편히 사시도록 했다. 2억이 조금 넘는 빚이 나중에 내가 대출을 받을때 어떻게 작용이 될지 누구보다도 잘아는 나였지만 난 이길을 택했다. 엄마가 셋방살이로 전전긍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편하기 살게 만든것이 내 나이 30살이였다.

가만히 돌아 본다. 내가 과연 불효자인가? 어렸을때 세상 물정 모르고 겁대가리 없게 사고 많이 쳤지만 학원 과외 한번 하지 않고 2년만에 셀렉티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재수 없이 입학 했으며 혼자 자취하면서 5년반 동안 부모 도움 없이 공부하면서 결혼하고 가정 꾸리고 중소기업의 간부자리에 올라서 자유경제 자본주의 관점에서 볼때 34살이 얻을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고 누리는 내가 과연 부모에게 근심걱정거리인가? 대답은 절대로 아니다.

사람들은 부모님집에 가면 부모님의 잔소리가 싫다고 한다. 난 엄마집에 가면 잔소리 않하신다. 왜냐하면 난 내가 할수 있는 영력안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 난 엄마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난 쉬지 않고 전진하며 성장한다. 이것이 나의 효도 방법이다. 부모에게 하루 몇번 전화하고 일주일에 몇번 방문하고 얼만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보는 효도률 측정 방법은 나에겐 적용 되지 않는다.

About Brendon Cho

조후혁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1994년 18살때 호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고 2002년 통계학과를 졸업 한후 통신 회사 Exetel에 2004년 사원으로 입사, 2009년 최고재무관리자 (CFO)로 임명 그리고 2010년 MGSM에서 MBA를 수료 했고 지금 내부 감사장 (Head of Veracity)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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