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간혹 한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럼 난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사마의이다.
나관중의 왜곡된 시각으로 제갈량에게 매번 패하기만 하는 인물로 묘사 되지만…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면 ‘제갈량이 북벌을 5번 시도 했는데 5번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실패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대답은 바로 ‘사마의’이다. 그런데 제갈량의 5번 북벌을 실패하게 만든 사마의가 어찌 제갈량에게 매번 지기만 하는 일개 장수로만 묘사되는 것일까? 당시 중국에선 충과 효 그리고 의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사마의 같은 기회주의자는 불충불의한 자로 인식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깍아 내림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반문하는 자들이 더러있다. 군량 조달의 어려움 그리고 내분등을 핑계로 삼는다. 군량 조달이 어려움을 알고 무리하게 북벌을 시도한 어리석음의 책임이 제갈량에 있고 또 내부 분열 (군량을 조달하는 상서령 이엄과의 껄끄러움 관계 그리고 그의 부하 구안의 배반)을 제대로 막지 않은채로 북벌을 무리하게 시도한 책임이 제갈량에게 있는 것이다. 집안이 평화롭지 않고 씨끄러운데 어찌 바깥 일을 제대로 충실히 행할수 있을지….
사마의는 제갈량의 최대의 약점을 알았다. 바로 군량이다. 시간이 소모 되면 군량이 소모 되며 군량이 없으면 사기가 떨어진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제대로 싸울수 없으면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사마의는 이렇게 방어에 집중해서 촉군이 스스로 물러갈 때를 기다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마의의 자세를 보고 겁장이 혹은 비겁자라고 애기를 하는데 손자께서도 싸워서 성을 취하는 것이 가장 하책이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셨다. 사마의는 싸우지 않고 제갈량을 이긴 것이다. 간혹 제갈량의 도발에 이끌려서 싸움을 걸었다 매번 참패한 것으로 나관중은 기록을 했지만 사실은 삼국지 정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제갈량과의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사마의가 제갈량 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그의 정치력이다. 조조가 죽과 위황제가 된 조비의 오른팔이였지만 그는 항상 조씨 귀족들에게 견재를 당했다. 조비가 죽고 조예가 황제가 된 후에 조진과 조휴에게 견재를 받았고 모함을 당했다. 그때 마다 사마의는 몸을 낮추고 숨기며 화를 피해 갔고 자신에게 기회가 올때까지 치욕을 참고 기다렸다. 나관중은 사마의가 조씨 귀족들에게 당한 능멸을 자세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조예가 등극하고 스스로 변방으로 부임을 청한 것으로 보아 조정 안에서의 권력 싸움이 얼마나 심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갈량이 아들이 있었다. 제갈첨이였다. 아내 황월영이 늦게 낳은 아들인데 등애가 면죽관을 침공 했을때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전투 중에 자결한 것으로 기억 된다. 만약 자기 칼에 자신의 목숨을 끝을 용기가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고 군사를 재정비하여 방어를 했어야 했다. 절개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목숨을 소홀히 함이 과연 난세에 충과 의를 지킨다고 할수 있을 것인가. (방금 기억이 났는데 제갈교를 양자로 얻었다) 사마의를 보자. 사마소와 사마사 같은 뛰어난 아들을 가졌다. 평균 수명이 50살이였던 그때에 그가 살아서 천하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그는 자신의 야망을 이어 받아 이룰수 있는 두명의 뛰어난 아들을 대신 키웠던 것이다. 이것이 사마의의 선견지명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후세에 촉나라를 붙들어 이끌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다. 자신의 피붙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인재 발굴과 양성 및 교육 그리고 번영에 기반을 마련한 사마의가 승자임이 분명하다.
사마의는 수없이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분함을 이기지 못해서 자진하지 않았다. 난세에 자신의 목숨을 끊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 보았자 현실적으로 아무런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자 반간계에 빠진 어리석은 군주 유선의 부름을 받고 성도로 귀환 했다. 선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왕실 제건을 이룰수 있는 순간이 목전에 왔는데 그는 어리석게도 충의를 빌미로 회군을 했다. 제갈량은 관습에 얽매여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맹달이 반란을 도모 할때 조정에 고하지 않고 군사를 조예의 허락 없이 일으켜서 반란군을 처리 했다. 선처결후보고가 나라를 살린 것이다. 내가 만약 제갈량이 였다면 장안까지 진격하고 아니면 낙양까지 더 나아가 중원을 평정함으로써 자신의 무고함을 대신 보여줄것이다.
결과 중심적 사고로 본다면 제갈량의 노력은 아무런 결실 없는 부지한 것이였다. 사마의는 달랐다. 자신이 스스로 기업을 세울수 없는 상황에 몸을 낮추고 시기를 기다려 남이 이룬 기업을 한번에 빼았고 순식간의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 두 아들을 잘 양육하여 천하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자신의 손자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마의가 모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아니 남이 만든 기반을 사용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것이다. 이것을 기업 경영의 관점으로 본다면 CEO를 잃어 버린 튼튼한 기업을 헐값에 사서 회사명을 고치고 경영진을 자기의 측근으로 바꾸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적 관점으로 본다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을 잡는 구테타라고 할까. 이탈리아의 ‘두체’ 무솔리니가 파시시스트 당이 정권을 잡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기회주의자라고 불려도 좋고 간특한 효웅이라고 불려도 좋다.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 받는 현실이다. 이루기 위해선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하고 많은 인재들을 부릴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의였다. 충, 효, 의가 하찮은 추상명사로 인식 되고 이 단어들의 진실된 가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이런것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적 사고는 성공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성공하지 못하고 시도만 하면서 애석하게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