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최근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서 책장 한곳을 비워 꽂아 놓았다. 그중에서 우연히 눈에 띤 책이 한권 있었다. 바로 중국 작가 슈모가 지은 ‘비지니스 손자병법’이였다. 나에겐 이제 그저 상식 수준이 되어버린 내용을 담은 기본 지침서 정도라고 할까. 읽으면서 꼼꼼히 체크를 한 부분을 보면서 옛 기억을 회상 했다. 그중에 삼국지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적힌 부분을 찾았다. 바로 제갈량이 왜 한실 부흥을 실패하고 아쉽게도 오장원에 지는 별로 남았는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견해를 적은 부분이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나도 한번 복습을 해본다.
제갈량이 한실 왕조 부흥에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방법론이 대해 많이 논한다. 예를 들어 형주를 중심으로 하여 북벌을 시도하지 않은 점, 장안 공략을 위한 위연의 전략을 듣지 않은 점, 동오 정벌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점등을 애기하곤 한다. 이런 방법론들에는 제갈량의 잘못한 principle이 내포되어 있다. 바로 잘못된 인사정책 때문이다.
형주를 예로 들어보자. 형주를 다스리는 사람은 유비의 의형제 관우였다. 관우의 무공이 뛰어남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촉나라의 북벌을 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북으로는 허창과 가깝고 동쪽으로는 오나라를 있었다. 제갈량이 관우에게 당부를 하길 북에서 위나라 공격하면 방어하고 오나라와는 화목을 유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관우는 천상천하유아독존안하무인이였다. 그는 동오를 우습게 봤다. 여몽은 경계를 했지만 육손은 우습게 여겼고 형주 방어를 소홀히 한탓에 형주를 뺏기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이 과연 관우의 실수였는가?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이문열씨가 쓴 소설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을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제갈량은 항상 관우를 견제를 했는데 유비의 제 2인자가 되기 위해서 일부러 관우를 죽게 한것은 아닐까?’ 아니면 ‘제갈량은 관우가 패전 했을때 맹달과 유봉에게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게 일부러 손을 쓴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이것은 제갈량의 절대적 과실이였다. 형주에는 관우 같은 오만한 자를 앉게 하는 것이 아니였다. 문무를 겸비한 충신 조운을 배치해서 북의 침공을 막고 동과 화목을 이룰수 있는 겸손하고 신중한자가 필요 했던 것이다. 물론 유비의 둘째 의동생이니 체면을 봐서 형주땅을 다스리게 했다라고 해도 제갈량은 반대를 하고 더 적합한 인재를 형주를 지키게 하고 서촉 원정이 끝나고 바로 형주로 돌아와 수비에 힘쓰고 관우는 다른 요충지를 지키게 했어야 했다.
장안 침공을 예로 들어보자. 제갈량은 위연의 무공이 뛰어남을 알았지만 반골이 있고 불충함을 알고 그를 경계 했으며 그의 능력을 높이 사지 않았다. 위연 같은 자는 단순해서 인정해 주고 상을 주고 칭찬을 해주면 목숨바쳐 싸울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위연이 제갈량과 함께 첫북벌에 나섯을때 그는 장안 공략을 위해 (지역 이름이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양동작전을 펴고 시간을 끄느니 차라리 기습공격으로 장안을 공략하자고 했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세심한 (가끔씩 소심하다는 표현이 적합 할 때도 있다) 성격의 소유자가 이런 무모한 도박을 할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갈량이 위연의 방법을 ‘불확실한 위험요소’ 때문에 단순히 거절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방법이 위연에게서 나왔다는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진격 진로가 자신의 수제자 마속에게서 나왔다면 제갈량은 그자리에서 받아 들이지는 않아도 고려해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어리석음이였다. 자신이 불충하다고 믿는 자의 말은 받아 들이지 않고 그 불충함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자를 다스릴줄 몰랐다. 결국 그는 용맹한 장수 위연을 마대를 통해 제거 시키게 했다. 제갈량이 죽자마자 내분이 일어 남은 그가 인사관리에 결코 뛰어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인사관리 애기가 나오면 마속 애기를 빼 놓을수가 없다. 첫북벌이 실패의 요인은 사마의의 부임도 아니고 바로 가정 전투였다. 가정은 촉군의 목구멍 같이 중요한 곳이였고 이곳이 함락 되면 촉군의 첫 북벌은 물거품이 될만큼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 신참인 마속을 보낸 것이다. 제갈량 수제자로 병법을 배웠지만 자신이 직접 군사를 통솔해서 전투를 한적이 없는 초보자였다. 이런 사람을 가정에 보낸 것은 제갈량의 치명적 실수였다. 제갈량이 이곳에 보낼 장수는 단순히 길목에 진을 치고 위군의 진군을 저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마속은 자신의 용병술을 자랑하고자 산위에 진을 치고 부장 왕평의 조언을 세번이나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결국 식수 부족에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촉군은 대부분 위군에게 항복하고 무참히 패하고 만다. 만약 이 곳에 조자룡 같은 장수를 보냈다면 아마도 첫 북벌은 아마도 장안까지 성공하지 않았을까 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