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나라의 군주가 죽었다고 가정하자. 장례식 때 그를 섬기던 많은 신하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며 자리를 지킬것이다. 그때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정말 같은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그렇지 아니 할 것이다.
한부류는 이럴것이다. 죽은 군주를 진심으로 충심으로 섬기고 보좌 했으며 그의 비젼과 전통을 계승 받고 유지하며 그가 살아 생전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기 이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맹세가 그의 눈물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한부류는 이럴것이다. 죽은 군주와 특별한 관계는 아니였지만 사람이 죽음으로 해서 그것이 그냥 쌓아 놓은 정 때문에 슬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자들은 그냥 좋은 말로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잘 성립하면 딸아 올 사람들이다.
한부류는 이럴것이다. 죽은 주군이 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거추장스러웠다. 이제 그들에게 제약을 가하는 군주가 없어졌으니 그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사람들이다. 겉으로 들어 낼수는 없되 속으로는 기뻐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만의 생존을 위한 방법을 고개 숙여 흐느끼는척 하면서 계획한다. 이런 자들은 나중에 반역에 씨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주군의 죽음에 흐느껴 울면서 앞으로 실행 해야 될 계획들을 잊어 버리는 감상적인 사람이 될것인가? 아니면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만을 앞세워서 전진만을 고집할 것인가? 정답은 딱 한가지 – 상황을 보고 적절하게 판단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정공법이 반드시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 가끔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급한 판단은 화를 부르고 많은 희생을 불러오는 법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순 없다. 준비 된 자에겐 선택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바로 어느때에 이 기회를 잡는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군주의 죽음에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어 강변 너머에 있는 적군들을 대비한 봉화대의 파수병들도 장례식에 참석하여 울게 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군들은 봉화대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지휘관이 없는 나라 방비가 없는 나라를 공략할 준비를 하것이다. 난 파수병이 되어서 봉화대를 지키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거기까지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