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할줄 몰라서 A, B, C, D를 하다가 방황을 하다가 결국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기 전에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고 돌아와야 된다.
주일 설교에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절대로 공감이 않되는 부분이 있다. 아니 어떻게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100% 다 가지고 계획한 목표들을 100% 이루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다시 말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자기가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어서 더 이상 가질수 있는 것이 없고 더 이상 이룰것이 없어서 주체하기 힘든 이런 공허함에 괴로워하는 자가 과연 과연 몇명이 있을까.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전용 비행이 Gulfstream G550이고 하나는 Porsche Cayman S이다. 2004년도 모델 G550은 판매가격이 USD로 35밀리언 정도이다. 그리고 Porsche Cayman은 AUD로 십오만달러 정도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것들을 소유 했다고 가정하자.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졌기 때문에 난 그 공허함을 과연 주체 할수 없을까? 공허함 같은 소리 하네. 난 그것들을 소유하자마자 그 다음 목표를 세울것이다. 개인 전용기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졌다고 하자. 그 다음엔 아마도 보잉의 7 시리즈 비행기를 소유하고 싶어질 것이다. 737부터 747까지. 아니 이 세상에 비행기 만드는 회사가 한개인가? Airbus의 A380은 어떤가. 이것도 소유를 했다면 그 다음에는 항공사를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Porsche 시리즈 중에서 Cayman은 911에 비교해 봐서 저가 모델이다. 참고로 911 시리즈에는 19개의 다른 모델이 있다. 이것을 다 소유하고 난 후에는 아마도 Aston Martin, Maserati 그리고 Ferrari로 넘어갈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과연 내가 위의 것들을 죽기전에 다 소유 할수 있는 확률을…. 내가 내 자신을 아무리 과대 평가를 해도 위의 것들을 다 소유 해보고 죽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러니 난 주일 설교에 나오는 ‘주체 할수 없는 공허함’을 아마도 내 인생에 한번도 경험해 볼수 있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공감이 되질 않는다.
난 이렇게 해석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모는 것을 다 이룬후에 다가 오는 주체 불가능한 ‘공허감’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고 계획 한것을 가지지도 이루지도 못할때 오는 것은 주체 불가능한 ‘정말감과 허탈감’이다. 이럴때 염세주의적 사고를 가지게 되고 자신감과 의욕 상실을 동반하게 되며 탈선의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승리자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하나님께 돌아 오는 것이 아니라 ‘패배자의 굴욕과 정말감과 허탈감’을 위로 받고자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런 간증을 하는 자의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 ‘가질것 다 가져 봤고 할것 다 해봤는데 나의 빈 공허함을 채울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엔 없더라’. 그럼 난 속으로 이렇게 애기한다. ‘놀고 자빠졌네. 니가 솔로몬이냐? 솔로몬의 1억분의 1도 않되면서……’ 그리고 이런 애기를 들으면서 ‘아멘’하는 사람들을 쳐다 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같이 있으면 나도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니까. 만약 나폴레옹이나 사마의 수준의 정도가 되는 사람이 이런 간증을 한다면 난 귀를 기울일 용의가 물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