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누구에게도 한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인식 되고 싶지 않다…

‘아무개는 사람이 참 좋다. 아무개는 사람이 참 선하다. 아무개는 싸가지가 없다. 아무개는 성격이 더럽다’. 기타등등….

나를 아는 100명의 사람들이 나를 한가지로 평가를 한다는 사실을 난 용납할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난 각 개인들을 대할 때마다 다르게 그리고 구별 되게 대하기 때문이며, 개인에 따라 나의 억양, 지식과 정보의 수준이 달라지면, 공통 화제의 변화와 공감대의 형성도가 적절히 조절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린아 같은 뛰어난 인재를 만나 천하지대사를 논할때면 범인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세계관안에서 우리는 대화의 장을 열며,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거나 수준 이하의 사람과 상대를 할 경우에는 공감대 형성도를 최대한 낮게 하며 표면상으로만 친근한 대화를 하며 마음을 열지도 않고 받아 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정말 상대하기 싫은 존재들을 만나면 사무라이가 마치 허공에 칼을 휘둘러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 적을 위압하는것 같이, 날카롭고도 정교한 논리와 화술로 상대편을 압도하며 그에게 ‘난 너와 자리를 나란히 마주할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계급적 차이를 정확히 두개 한다.

결과적으로 당연히 어떤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인식이 좋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이 이것이 과연 나의 책임인가? 인간 관계는 상대적이다. 높고 낮음이 있고 적대감도 있고 공감대도 있다. 성인군자가 아닌 내가 과연 억조창생을 공평하고 공정하고 한결 같이 대할수 있을까? 만인을 공명정대하게 대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특정한 사람들을 구분해서 대할 경우가 있다. 난 만인을 이끄는 지도자도 하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기껏해야 100명 이상의 직원을 돌보는 중소기업의 하나의 임원일 뿐이다. 그리고 내 주의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리는 많은데 독수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만인을 공명정대하게 대할 위치에 있지 않음이 당연하니 내 주의에 있는 사람들을 구분하여 구별되게 상대를 하는 나이다. 이러니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가가 당연이 일치하지 않고 당연할수밖에 없다.

난 그냥 일부 사람들에겐 ‘날카롭고 정교하며 뛰어난 재능과 실력 그리고 연령을 초월하는 부를 창출한, 머리는 차갑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자’로 인식 되길 바랄뿐이다. 만약 100명중에서 나를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3명인것으로 난 만족한다. (그리고 난 그 3명이 누구인지 잘안다)

About Brendon Cho

조후혁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1994년 18살때 호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고 2002년 통계학과를 졸업 한후 통신 회사 Exetel에 2004년 사원으로 입사, 2009년 최고재무관리자 (CFO)로 임명 그리고 2010년 MGSM에서 MBA를 수료 했고 지금 내부 감사장 (Head of Veracity)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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