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기한테 편한것만 찾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나이가 아닐까? 그냥 자기 맘과 마음에 편한데로 하자고 말하는 것은 상대편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무례함이 아닐까? 예를 들면 자기는 대충 편하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프랑스 와인과 정통 일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스트우드에 있는 양자강에서 대충 편하게 짜장면과 깐풍기로 먹자는 것은 나를 자기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렇게 쉽나? 나이 30살 넘으면 이제 좀더 높은 이상을 가지고 불편하고 어색함이 있더라고 새롭고 높은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것이 30대가 아닌가? 나만 이러는 것인가? 정말 헷갈린다.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즐기는 것은 낭비고 사치며 허영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좋아 하는 한끼의 식사를 하는 과정중에서 얻은 기쁨과 낭만 그리고 추억은 그 어느것보다 갚지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베케스에서 매칭와인과 한끼의 점심을 하기 위해서 2주동안 교통비를 제외하곤 아무런 지출을 하지 않는 정신력을 요구한다. 평범하게 먹은 2주동안의 식사보다는 한번 제대로 즐기면서 높은 중산층의 세계를 한번 맞보고 더 강한 자극을 받아 전진한다면 한끼의 고급스런 식사는 절대로 낭비나 사치가 아니다.
저녁을 같이 하자는 애기가 몇번 들어왔다. 물론 내가 나이가 많고 내가 경제적으로 월등한 위치에 있으니 당연히 내가 대접하려는 입장에서 가보지 못한 좀더 좋은 곳으로 추천을 하려 하는데 하나 같이 다들 ‘거지상’, ‘그냥 대충’, ‘편한곳’을 추구하니 난 어디에 도대체 선을 맞추어야 되는지 모르겠다.
화력한 식사 대접은 상대편에 대한 존경이며 배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이것을 정성과 섬김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단순한 부담감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가 배푸는 호의를 ‘빚’이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이고 반드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뜻이 내포 되어 있는 것 같다. 난 남에게 호의를 배풀때 되돌려 받고 싶지도 계획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나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 대한 배려이고 존경의 표시라 생각한다. 이런 단순한 concept을 왜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것일까? 이런 사람들에게 생전 듣보 보도 못한 곳을 데려가려는 나의 의도는 정말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석되는 것일까? 애라이 모르겠다. 그냥 나도 대충 살자. 바로 이말은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배려하지고 말고 그냥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바탕으로 끼리끼리 노는 것이 현명한 처신인것 같다.